바른미래당의 극심한 내홍 사태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손학규 대표 사퇴를 요구해온 바른정당계 최고위원들은 손 대표 면전에서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한다"거나 "음주 상태로 의원총회에 가서 단식농성을 결의했다"는 등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을 공개적으로 쏟아냈다. 손 대표도 이들이 제기한 최고위원회 안건 상정을 거부하며 강경하게 맞섰다.

손 대표는 22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지난 20일 하태경·이준석·권은희 등 바른정당계 최고위원 3인이 제기한 △지명직 최고위원 2인 임명 철회안 △사무총장·정책위의장 임명 철회안 △최고위 '협의'에 대한 당헌 유권해석 제안 △4.3 보선 당시 여론조사 업체 관련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유승민 축출' 발언 관련 진상조사 등에 대해 "세 분이 상정을 요구한 5개 안건은 상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지명직 최고위원 2인과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임명 철회, 당헌 유권해석 건 등은 이미 지난 9일 하 최고위원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지금으로서는 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논의에 실익이 없는 안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4.3 보궐선거 여론조사 특별조사위 설치 건은 20일 최고위에서 당무감사를 요구했고, 추후 당무감사 결과에 따라 후속 조치를 하겠다"며 "박지원 의원 발언은 이미 제가 사실무근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린 바 있다. 발언 사실여부에 대해 우리 당이 타 정당 의원인 박 의원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정치인의 발언을 일일이 문제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바른정당계 최고위원들은 즉각 강하게 반발했다. 하 최고위원은 "대표로서 성실한 당무수행을 거부한 것으로 규정한다"면서 "지속적으로 당무 거부가 반복될 경우 특단의 대책,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 최고위원도 "당헌당규에 상정 거부가 가능한 근거가 하나라도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고, 권 최고위원은 "당헌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결정해서 당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냐"고 했다.

심지어 하 최고위원은 "한 번 민주투사가 영원한 민주투사가 아니다. 민주투사가 대통령이 되고 독재자가 되고, 당 대표 되고 당 독재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개인 내면의 민주주의가 가장 지키기 어렵다.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하기 때문"이라고까지 했다. 그는 지난 17일 최고위에서도 "당의 가장 큰 문제는 올드보이 수구 세력 청산"이라고 한 바 있다.

바른정당계 최고위원들은 이어 △20일 최고위 후 이준석 최고위원이 기자 브리핑을 하던 중 손 대표 측 당직자들이 끼어들어 이 최고위원을 비난한 데 대한 사과 및 징계 요구안(하태경, 이준석) △국회의원 정수 확대 불가 입장 결의안(하태경) 등 신규 안건 상정을 요구하며 손 대표에 대해 지속 공세를 제기했다.

특히 당사자인 이 최고위원은 임헌경 전 사무부총장 등 손 대표 측 당직자들이 자신의 '4.3 보선 음주 유세'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중징계를 요청한다면서 "내가 '손 대표가 단식 전에 음주 상태로, 고량주 드시고 의원총회에 가서 단식 결의를 한 것 아니냐'고 하면 되겠느냐. 이는 제가 절대로 할 수 없는 비열한 정치공작일 것이다. 제 요청으로 '바른토론배틀' 참가자들과 식사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앞뒤 잘라놓고 제가 대표님 브리핑 하는 중간에 뛰어나가 '음주 의총 했느냐'고 하면 되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 최고위원도 같은 사안에 대해 "제가 손 대표를 비판하지만, 손 대표가 기자회견 할 때 행패 부리고 방해하지는 않는다"며 "임 전 부총장은 손 대표가 유일하게 '내 사람을 심었다'고 한 사람이다. 손 대표 사람이니 결자해지해 달라. 당장 오늘 이 안건을 올려서 당 기강 회복 의지를 보여 달라"고 가세했다.

사무총장·정책위의장 면전에서 면박도…孫 "예의 지키라"

이날 최고위 석상에서는 배석한 임재훈 사무총장이 손 대표의 허락을 얻어 최고위 안건 상정 관련 당헌당규 내용에 대해 발언을 하다가 하 최고위원이 "최고위원 아닌 사람은 말을 좀 짧게 해달라. 마이크를 너무 오래 잡고 있다"고 면박을 주고, 임 총장이 "나도 발언권이 있다"고 항의하자 다시 "(발언 중간이라도) 최고위원이 중간에 제지할 수 있다. 최고위원 아니잖아요?"라고 쏘아붙이는 등 험악한 분위기도 연출됐다.

이 최고위원은 또 4.3 보궐선거 당시 부실조사 및 당비 부정 지출 의혹이 제기된 여론조사 결과표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손 대표의 동의를 얻어 최고위 후 이를 기자들에게 배포하면서 "손 대표는 이것을 당무감사로 종결하자고 하는데, 투명하게 조사에 임할 수 있게 의견을 내겠다"고 압박했다.

손 대표는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판에 대해 "최소한의 정치적 금도가 있는 정치가 됐으면 좋겠다"며 "어제도 다른 분과 '정치가 자꾸 각박해진다'는 얘기를 했다. 여유가 있고, 지켜야 할 예의를 지키면서도 할 얘기를 하고 정정당당하게 비판할 것은 했으면 좋겠다"며 불편한 심경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바른정당계는 손 대표에 대한 공세를 계속할 의지를 드러냈다. 하 최고위원은 최고위 후 "내일(23일) 오전 10시에 재차 긴급최고위 소집을 요청할 것"이라며 "오늘 같은 꼼수로 상정을 안 할 경우 최고위원 및 동료 의원들과 상의해 자구책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고위뿐 아니라, 전날 원내지도부 회의에서도 손 대표가 임명한 채이배 신임 정책위의장의 자격 문제를 놓고 바른정당계 의원들과 채 의원이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당이 내홍을 넘어 '내전' 상황으로 가면서 완전히 둘로 쪼개진 모습이다.

'역할론' 유승민 "孫 얼마든지 만나겠다" 했지만…

의석 수 28석의 바른미래당이 지나친 당내 갈등에 휩싸인 데 대해 손 대표 측과 바른정당계가 서로 물밑에서 타협점을 찾는 등 갈등을 수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른정당계 좌장 유승민 의원은 전날 동국대 강연 전후로 기자들과 만나 "당이 혼란스런 모습을 보여드려 정말 국민들께 송구하고, 빨리 현명한 해결책 찾을 수 있도록 의원들하고 얘기해 보겠다"며 "내홍이 너무 오래 가면 국민들이 실망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유 의원은 손 대표를 직접 만나 갈등을 풀 생각이 없냐는 물음에 "당장 약속된 것은 없지만 필요하면 얼마든지(만나겠다)"고 하기도 했다.

손 대표 측 문병호 최고위원이 자신의 5.18 기념식 불참을 비판한 데 대해 "제가 특별히 달리 말할 게 없다"고 하거나, 손 대표가 평화당 의원들과 함께 자신을 당에서 축출할 것을 논의했다는 박지원 의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당사자끼리 얘기할 부분이고, 제가 문제를 삼을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 등 확전을 원치 않는다는 제스처도 보였다.

유 의원은 다만 "저도 당이 혼란에 빠진 데 대해 큰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손 대표에 대한 바른정당계 최고위원들의 퇴진 요구에 대해 입장을 같이하느냐는 질문에 "오늘 여기 (강연)와서 손 대표에 대해 뭐라 말하기는 적절치 않다"고 즉답을 피하거나 "당의 앞날에 대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이 다른 분들이 서로 대화를 해서 뭔가 해결책을 찾아나갔으면 좋겠다", "서로 입장을 역지사지하면서 해결책을 찾아나서면 좋겠다"고 하는 등 당내 갈등과 다소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유 의원은 이날 강연에서 당내 상황에 대해 "정당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모인 결사체"라며 "국가적 중요 이슈, 예컨대 외교안보, 경제에 대해 생각이 다르면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당의 갈등은 국민에게 우리를 뭐라고 설명해야 하느냐, 짜장이냐 짬뽕이냐, 우리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인지 '새롭고 개혁적인 건전한 보수로 가는 정당'인지 분명하지 않아서 (당이) 시끄러운 것"이라고 말하고, 강연 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각자 하고 싶은 정치들이 있으니까, 정체성 등의 면에서 당이 정리가 돼 가는 과정이 아니냐 생각한다. 정치하는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정치를 해 나갈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는 손 대표가 "바른미래당을 진보·보수 한 쪽 이념으로 몰고 가려는 일부 세력이 있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4.30)며 당의 보수화를 경계한 데 대한 간접 비판으로 해석됐다. '나는 보수', '내가 하고 싶은 정치는 보수의 가치를 드러내는 정치'라는 항변인 셈이다. 유 의원은 그러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이 선거 전에, 자기 하고 싶은 정치를 하기 위해서도 어디에 몸을 담을 것인지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선택하지 않겠느냐"며 "그런 것이 모이면 가닥이 잡히지 않겠느냐"고 하기도 했다.

단 그가 이날 강연 중 "총선이 어렵다고 다시 한국당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하는 사람은 죽을 때 죽더라도 자기가 추구하는 것을 열심히 해야 한다", "요즘 한국당을 보면 바뀔 생각이 없는 사람들 아니냐. 박근혜 전 대통령 팔고, 대한애국당하고 같이 태극기 붙잡고…. 그런 보수 하려고 4년째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은 점을 보면, 유 의원의 의중은 바른미래당 정체성을 '개혁 보수'로 정리하고 여기에 "몸을 담을" 생각이 없는 이들이 당을 나가라는 데 있는 게 아니냐는 풀이가 나온다.

그는 이른바 '안철수-유승민 역할론' 관련 질문을 받고 답변하던 중 "저는 제가 작년 1월 18일에 안철수 전 대표와 국민 앞에 서서 한 창당 약속을 끝까지 지킬 것이고, 그 약속이 지켜지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두 대표의 공동선언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건전한 개혁보수와 합리적 중도의 힘을 합쳐 정치 혁신을 바라는 국민 여망에 부응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관련 기사 : 안철수 '보수본색' 내걸고 통합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