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는 심영미 씨(47)는 매년 여름철마다 극도의 위협을 느낀다. 더운 여름철에 국을 끓이고 튀김을 튀기고 채소와 소스를 볶다 보면 급식 조리실 온도는 대략 40℃를 웃돈다. 그나마도 위생을 위해 모자와 마스크, 토시, 앞치마, 고무장갑과 장화를 모두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현기증에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많은 이유다. 현재 심 씨가 의지하는 것은 조리실 천장에 달린 에어컨 한 대뿐이다. 그마저도 '관공서는 실내온도 21℃ 제한'이라는 규칙 때문에 온도를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한다.
#학교 시설을 유지 보수하는 시설기동반원으로 7년째 근무하고 있는 정훈록 씨(54). 최근 '아찔한 경험'을 했다. 옥상 방수작업을 하던 중, 강한 현기증을 느낀 것이다. 옥상에 칠한 방수액이 문제였다. 방수액은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인데 온도가 높아지면 벤젠 등의 성분이 기화되어 악취는 물론 어지럼증과 구토를 일으킨다. 게다가 지속적인 노출은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독면을 써야 하지만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혹서기 대책은 얼린 물이 전부다.
폭염에 음식 열기, 부실한 냉방시설 급식실의 '삼중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여름철 폭염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26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에 무방비한 학교의 노동 현실을 고발했다. 이시정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본부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학교 비정규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급식 조리사를 예로 들며 "매년 여름이면 고온 다습한 학교 급식실에서 고된 노동을 하다가 열탈진으로 실신하는 노동자들이 발생한다"며 "교육부와 교육청은 급식노동자들이 폭염으로 쓰러지기 전에 조속히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이달 10일부터 19일까지 급식실 노동자 13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동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여름철 급식실 업무 중 건강 이상을 경험한 노동자가 88.6%로 나타났다. 이중 치료를 받았다는 응답자는 5.5%에 불과했고 90%의 응답자는 계속 일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현재 학교 급식실 환기와 냉방기 작동이 모두 잘 된다는 답변은 35.6%에 불과했다. 이외에도 적정온도에서 일하지 못하거나 덥고 습한 환경에서 일한다고 답한 노동자는 84.3%에 달했다.
발언에 나선 급식 조리사 김영애 씨(55)는 "앞이 보이지 않는 증기 속에서 일을 하다 보면 고기가 익는 건지 내가 익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씨가 일하는 학교의 배치기준은 130대 1, 조리사 1명이 학생 130명을 감당해야 한다. 김 씨는 "한 명이라도 빠졌다가는 애들 밥 못 주니까. 나도 엄마인데 어떻게 그래. 아파도 꾹 참고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더위에 더 취약한 비정규직 노동 현실
김 씨뿐 아니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장은 더위에 취약하다. 학교는 교실과 교무실을 제외하면 상당수 냉방시설이 없다. 선풍기도 없는 화장실에서 독한 약품을 사용해야 하는 청소 노동자, 학교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뙤약볕에서 안전장비 없이 일하는 시설기동반원도 대표적인 비정규직 노동자다.
안명자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은 "학교에는 100여개의 학교 비정규직 직종이 있고 그들은 각기 다른 사고와 질병의 위협을 안고 있다"고 비정규직 실태를 설명했다. 안 본부장은 "급식실 노동자들은 매년 여름에 현기증 구토 등을 겪고 심하면 열탈진으로 실려가는 것이 연례행사"라며 "노동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노동강도와 살인적인 배치기준으로 병을 안고 일하는데 교육부와 교육청은 이런 것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정부기관 통계로 2017년 산업 현장에서 산재 발생 건수는 4만건이 넘는데, 그중 입사 6개월 이내 노동자가 55%, 1년이 채 안된 노동자는 65%가 넘는다"며 "더구나 이 통계의 대다수는 비정규직이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부위원장은 "정부가 노동안전대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산재 발생 건수는 10년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고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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