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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정부에서도 원자력계가 느긋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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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정부에서도 원자력계가 느긋한 이유 [초록發光] 탈핵하려면 원자력연구개발기금 축소·폐지해야
부산 기장이 다시 핵 시설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기 스마트 원자로 수출 기술 실증과 방사선 동위원소 생산을 목적으로 시작된 '수출용 연구용 원자로' 사업의 건설 승인이 이뤄지면서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탈핵 에너지전환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지만 수출용 연구용 원자로는 탈핵 정책에서 비켜나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상업용 원전 이외의 분야, 특히 원자력 연구 개발은 여전히 탈핵정책의 사각지대에 가깝다. 한 예로, 최근 정부의 지원 아래 초소형 원자로 연구가 시작되었다. 울산과학기술원과 경희대, 서울대, 울산대, 카이스트,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초소형 원전 연구단은 7월 2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제17차 혁신 원자로 및 핵연료주기에 관한 국제프로젝트(INPRO, International Project on Innovative Nuclear Reactors and Fuel Cycles) 포럼에서 자신들의 구상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미옥 제1차관이 참석해 중소형 원전의 비전에 공감을 표시했다. 초소형 원자로 연구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올해 시작한 원자력융합기술개발 사업에 선정된 만큼 놀랄 일은 아니다. 그렇게 27억 원 이상의 연구개발비가 초소형 원자로 연구에 투입되었고, 앞으로 최소 4년간 더 지원을 받을 예정이다.

문제는 초소형 원자로 연구의 필요성, 그리고 초소형 원자로의 상용화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데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초소형 원전 연구단은 납-비스무스를 냉각재로 사용하는 20MW 규모의 소형 원자로를 개발할 계획이다. 개발에 성공할 경우, 소형 원자로는 쇄빙선이나 부유식 원전에 쓰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초소형 원전 연구단과 원자력계의 기대와 달리 소형 원전의 전망은 밝지 않다. 소형이라고 해도 핵물질을 사용하는 이상 까다로운 안전 규제를 피할 수 없다. 옹호론자들은 소형 원전이 경제성은 떨어지지만 대형 원전보다 투자비가 적게 드는 만큼 송전망 연결이 어려운 지역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분산형 재생에너지나 LNG 복합 화력 등을 놔두고 번거로운 원자력 안전 규제까지 감수하면서 굳이 소형 원전을 선택할 이유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소형 원자로는 핵잠수함이나 항공모함 등 군사적 용도로의 전용이 용이한 만큼 핵무기 미보유국이 쇄빙선이나 상업용 선박에 소형 원자로를 이용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원자력 쇄빙선은 러시아에서 몇 척 운영되고 있을 따름이다. 전 세계적으로 소형 원자로 모델이 수십 개 제시되고 있는 만큼 납-비스무스 원자로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처럼 전망이 불투명한 곳에 국가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할 필요가 있을까?

▲ 국내 개발된 소형 원자로 '스마트(SMART)'의 내외부 모습. ⓒ한국원자력연구원

그동안 원자력계는 연구개발의 필요성과 개발 가능성이 적은 분야에도 연구개발비를 쉽게 사용해왔다. 특혜에 가까운 지원이 가능했던 것은 1kWh당 1.2원씩 부과되는 원자력연구개발기금을 통해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든 원자력연구개발기금은 1996년 원자력연구소가 사업 이관을 대가로 얻어낸 것이다. 1980~90년대 원자력연구소는 원자로 계통설계, 핵연료 설계 사업 등에 참여하면서 연구비를 충당해왔다. 그러나 기초 연구를 담당하는 원자력연구소가 사업에 참여할 명분이 약했던 만큼 계속 사업 이관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원자력연구소는 사업 이관을 끈질기게 거부했고, 결국 정부가 원자력연구개발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타협책을 제시하고서야 갈등이 풀렸다.

원자력연구개발기금 덕분에 원자력계는 연구개발의 필요성이나 개발 가능성이 낮은 분야에도 쉽게 예산을 투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스마트 원전 개발에 수천억 원이 쓰였다. 지금까지 7000억 원가량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파이로 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 연구개발사업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원자력연구개발기금 덕분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폐기하거나 시도하지 않는 사업이라도 일단 예산이 투입되면 개발 기대가 확대 재생산되면서 계속 연구개발비가 투입되었다. 반핵운동의 힘은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고, 사회적 감시는 작동하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파이로 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가 거의 유일하게 도마 위에 올랐지만 2020년까지 사업이 계속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잠정적으로 실증로 건설에 추가 예산을 투입하는 않는 선에서 봉합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원전 안전, 원전 해체, 방사선 동위원소 활용 등을 집중 육성하는 방향으로 원자력연구개발의 방향 전환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연구개발비 배분에 있어 일정한 변화가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원자력융합기술개발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초소형 원자로 연구가 진행되는 데서 드러나듯이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지는 않은 듯싶다. 나아가 원자력연구개발기금의 개편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는 아예 논의의 대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원자력계는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갈 기회를 틈틈이 엿보고 있다.

한발 더 나가자면, 원자력연구개발기금 개편은 결국 탈핵에너지전환에 부합하게끔 전기요금제도를 개편하는 문제와 맞닿아있다. 원자력연구개발기금은 부과금의 형태로 전기요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원자력연구개발기금을 축소·폐지하기 위해서는 부과금 체계를 바꿔야한다. 한편 사회적, 환경적 비용을 반영하고 에너지 전환 비용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전기요금의 부과금과 조세를 조정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덴마크나 독일의 경우, 각종 부담금과 세금을 늘려 전기 소비를 억제하는 동시에 에너지 전환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 없는 에너지 전환을 표방하는 정부가 나설지 모르겠지만, 전기요금의 부담금과 조세 체계 개편은 탈핵에너지전환의 과정에서 언젠가는 부딪칠 문제임에 틀림없다. 사각지대에 놓인 원자력연구개발비 문제, 그리고 퇴행적으로 진행되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논의에 개입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계속 찾아야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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