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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쳐야 할 건 '사람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제도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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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외쳐야 할 건 '사람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제도 개혁' [기고] '1987'은 대통령 직선제, '2019'는 검사장 직선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제도 개혁'이다

대한민국 정치를 왜곡시키는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정치적 이슈가 어떤 영웅의 진퇴(進退), 그 영웅에 대한 찬반(贊反)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김구와 이승만에 대한 찬반, 김대중과 박정희에 대한 찬반으로부터 지금은 조국과 윤석열에 대한 찬반에 이르게 되었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좀 더 나은 제도로의 진화'에 있음에도, 매번 한 개인에 대한 찬반, 즉 진영논리에 갇혀버린다. 게다가 어느 한쪽이 패배하면 승리한 쪽은 마치 점령군처럼 사태를 장악하고, 종전까지 있던 '제도 개혁'이라는 이슈를 삼켜버린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두 달에 걸쳐, 대한민국은 내전(內傳)을 방불케 하는 정치적 대립을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끊임없이 어느 한 진영에 가담할 것을 요구받았다. 지금의 사태는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적대적 대립의 수렁으로 빠지는 나락이 될 수도 있다. 조국 장관에 관한 지금의 상황은 대한민국의 많은 문제점을 전면에 노출시켰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갈등을 토론과 합의로 해결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결함'에 있다. 다만 이것은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여서, 당장에 해결 가능한 문제인 '검찰 개혁'을 논하고자 한다.

어찌 되었든지, 더 이상 서초동 촛불집회에서 '조국 수호', '윤석열 아웃'이라는 구호가 나와서는 안 된다. 이번 주 서초동 검찰 개혁 촛불집회의 구호는 '조국이 구속되어도 검찰 개혁은 계속', '윤석열도 검찰 개혁의 방안을 제시하라'가 되어야만 한다.

'공수처 신설'과 '수사권 조정'은 검찰 개혁의 올바른 방향인가?

조국 표 검찰 개혁의 주요 내용은 '공수처 신설'과 '수사권 조정'이다. 분명 이러한 조치는 비대한 검찰권을 약화시킬 수 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은 단박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공수처는 검찰의 비리를 통제할 수 있지만, 공수처의 부패는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중앙지검 특수부를 대신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공수처의 과잉수사를 막을 방법은 있을까? 종전의 검찰이 권력의 주구(走狗)가 되었던 것처럼, 공수처를 장악한 대통령에 의한 공수처의 타락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수사권 조정도 마찬가지다. 최근 조국 장관의 가족에 대한 수사에서 드러난 검찰권 남용의 예는 '선택적 수사'와 '과잉 수사'이지만, 대부분의 검찰권 남용 사례는 '불기소'에 있다. 불기소로 종결된 공소권의 남용은 쉽게 통제될 수 없는데, 부당한 로비에 의해 검찰이 사건을 덮었을 때, 그러한 불기소가 부당하다고 증명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고등법원에 제기하는 재정신청 제도가 있지만, 대단히 형식적으로 운영되어 불기소된 사건이 재정신청으로 기소된 사례는 아주 드물다. 그런데 이러한 수사종결권을 전적으로 경찰에게 부여하면, 불기소의 남용은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 비대한 검찰권을 약화시키려다가 더 커다란 괴물을 키우게 될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찰조직은 검찰조직보다 훨씬 더 권력적이고, 훨씬 더 방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사냥개, 케르베로스(Cerberos)의 균형

케르베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옥을 지키는 개의 이름이다. 반인반사의 괴물 에키드나와 전능한 신 제우스를 괴롭힌 괴물인 티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사냥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법권은 그 힘이 너무나 강대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괴물로 바뀔 위험이 있기에,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경찰권은 검찰이 통제하도록 하되, 검찰 비리사건, 즉 검찰 독직(瀆職)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단독 관할권을 갖게 함으로써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검찰 독직 사건의 단독관할권에 관한 판단을 법원에 둠으로써 완벽한 '케르베로스의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좀 더 본질적으로 사법권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즉 민주적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주목해야 한다.

검찰 개혁은 '검사장 직선제'로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 검찰이 중립성을 잃어버리고 정치권력의 수단이 되어, 급기야 국민에 대한 억압기구로 타락하는 위험을 갖게 된 첫 번째 원인은 인사권을 정치권력이 장악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검찰이 역대 권력의 도구 역할을 했던 점을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반성하고,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하자마자, 검찰은 오히려 통제되지 않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민낯을 드러냈다. 여기서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다른 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서 검찰권을 시민이 통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 즉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할 장치가 없다는 데에 본질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검찰조직이 전국적으로 단일한 위계질서를 가진 엄격한 권력 구조라는 형태가 검찰권의 문제를 더욱 가중시켰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 같은 조직 형태는 전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것으로, 일제시대에 최소한의 관료로 전국을 통제하려는 필요에서 기인한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이 '검사장 직선제'이다. 미국의 경우에 2000개가 넘는 각 카운티(County) 별로 검찰청이 조직되어 있으며, 그 검사장(District Attorney)을 시민들이 선출하고 있다. '검사장 직선제'는 대통령-검찰총장-검사장으로 이어져 왔던 인사권의 예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검찰권의 독립'과 '검찰권의 중립'을 이루어낼 수 있다. 또한 검찰총장 아래의 일사불란한 전국적 피라미드 조직에서 18개의 대등한 자치조직으로 검찰을 탈바꿈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성과는 매 선거 시기에 종전의 검찰권 행사에 대해 평가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론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분명 '검사장 직선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제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더라도, 간선제보다는 대통령 직선제가 훨씬 더 진화된 제도인 것처럼, 검사장을 검찰총장이 임명하는 것보다 시민이 선거로 선출하는 것이 '좀 더 나은 제도'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은 시장이나 군수를 선거로 뽑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1995년 이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이 임명한 행정부 장관이 시장이나 군수를 임명했었고 그것을 당연시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1987년에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던 것처럼, 이제 2019년에는 '검사장 직선제'로 검찰 개혁의 신호탄을 올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언하면, 어떤 대상에 대해 생각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투쟁과 대립'이 아닌 '토론과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의 진통을 이겨내고, '토론과 합의의 시스템'을 위한 기초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후손들에 대한 우리의 책무이며, 그것이 인류문명이 진화하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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