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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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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다 [삼성공화국, 어디로 가나] 저기 사람이 있다

"국민여러분 노동3권은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기본권입니다. 무노조 삼성과 싸울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언론은 딱한 사정을 알면서도 광고수입 때문에 삼성문제를 기사화할 수 없답니다. 아내는 사고 이후 천식으로 평생을 고생하고 있고 큰아들은 보름이 멀다하고 입에 거품을 물며 사지를 뒤틀리며 쓰러지는 간질병 장애인입니다. 둘째 아들은 결혼 2년 만에 이혼하고 지금은 제 아내와 큰형과 아들 셋이서 한집에 살고 있으며, 저는 월 20만 원 얼음장 같은 달세방에 혼자 생활하고 있습니다. ... 하루하루가 죽는 고통보다 괴롭습니다."

지금 강남역 네거리 24미터 철탑 위에서 120일 가까이 고공농성중인 김용희 해고노동자는 지난해 2월, 청와대 게시판에 위와 같은 내용의 청원을 올렸다. 청원의 제목은 ‘무노조 삼성재벌의 추악한 만행을 막아주세요’였다. 하지만, 이 청원에 서명한 사람은 단 8명에 불과했다. 사회적인 외면 속의 철저한 고립감, 이것이 김용희 해고노동자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반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에도 국내외를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중요한 행사들에 참가했고, 그때마다 언론은 그의 행보를 포장해주기 바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절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재용 부회장을 수시로 만나서 악수하며 투자를 부탁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도 참가했다. 북한에서도 이 부회장은 '부통령급'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백두산 천지에서 여러 고위인사들과 함께 즐겁게 사진 찍는 이부회장을 보면서 김용희 해고노동자의 심정은 어땠을까.


당시 북한 고위간부는 만찬에서 이 부회장을 소개하면서 '여러 가지로 유명한 분'이라고 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이 부회장과 삼성은 '산재살인'으로, 노조파괴로, 부당해고로, 부패비리로... 유명한 사람과 기업이니 말이다. 지난해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전직 경찰들까지 이용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노조 파괴 등 이 부회장과 삼성이 저지른 불법과 범죄는 계속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사법부는 계속 영장을 기각하면서 삼성을 보호해줬다.

▲ 김용희 씨 고공농성장. ⓒ프레시안(최형락)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쏟아진 언론의 온갖 의혹 제기와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검찰이 저런 신속함과 과감함을 가지고 삼성의 비리와 노조탄압을 압수하고 수사하고 기소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저 언론들이 저런 집중력과 집요함을 가지고 삼성 때문에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의 문제들을 파고들어 뭐가 문제이고 누구의 책임인지를 밝혀내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삼성과 이재용 일가의 수많은 엄청난 범죄와 불법과 비리들이 쏟아지고, 삼성을 바로잡고 이 부회장을 당장 구속하고,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은 도저히 거스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이 ‘삼성공화국’에서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고, 이 상황에서 올해 봄까지도 삼성 해고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았다.

지난해, 집회나 기자회견 현장마다 ‘포승줄에 묶인 이재용’ 흉상을 끌고 도로를 걸어다니며 복직을 요구하던, ‘이재용 구속’이라고 크게 적힌 스티로폼 박스들을 탑으로 만들어서 자전거 안장에 싣고 여기저기 타고 다니던 김용희 해고노동자의 모습이 기억난다. 자신의 억울함과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이, 믿어달라는 것이,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중해달라는 것이 그의 요구였다. 지난 겨울에는 폐지나 박스를 농성장 옆에 계속 모아두면서, 그걸 팔아서라도 계속 투쟁하겠다던 김용희 해고노동자의 모습도 기억난다.

하지만 메아리가 없는 절규만 계속되었다. 결국 김용희 해고노동자는 지난 6월 10일 삼성본관 바로 코앞의 CCTV 철탑 위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올라가게 된 과정이 기발했다. CCTV가 고장나서 수리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업체는 아무 의심 없이 새벽에 차를 대줬고, 김용희 해고노동자는 아주 당당하게 사다리차를 타고 철탑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뒤늦게 알아챈 강남, 서초, 수서 경찰서는 서로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며 책임을 미루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비좁아서 다리도 뻗기 어렵고 자다가 떨어질 수도 있는 곳에 올라간 김용희 해고노동자의 극한고행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눈과 귀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모습을 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김용희 해고노동자가 20년도 더 된 낡은 가방 속에 모아두었던, 삼성이 얼마나 악랄하게 탄압했는지, 국가가 얼마나 야비하게 삼성을 도왔는지에 대한 증거들도 세상에 공개됐다. 김용희와 이재용(삼성중공업 해고자) 등 삼성 해고노동자들의 그 오랜 외롭고 끈질긴 투쟁은 삼성공화국이 꼭꼭 숨겨놓고 입을 막아놓았던 진실들을 마침내 세상에 나오게 만들었다.

그 진실이 차마 믿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것을 믿고 바다 건너 해외까지도 퍼나르고 있다. 대책위가 만들어졌고, 한국작가회의 분들이 매일 촛불집회를 진행했고 향린교회 분들이 매일 기도회를 열었다. 삼성중공업 해고노동자 이재용, 기아차판매내부고발 해고노동자 박미희, 그리고 많은 연대자들이 하루 종일 철탑 밑을 지키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 성명에 이름을 올리고 지지금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고작 8명이 청원에 동의해 서명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놀라운 변화다. 김용희의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고립된 혼자만의 외침이 아니게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외치는 커다란 함성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들은 척도 본 척도 안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다. 또 여전히 보수 언론과 경제신문들은 한국경제를 위해서는 삼성과 이재용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는 구원투수라며 이재용을 추켜세우기까지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화학물질 규제완화 카드까지 꺼내 삼성의 반도체 투자를 돕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와 일본제국주의가 70년 전에 저지른 노동착취, 인권유린, 전쟁범죄에 대해서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면, 삼성도 지금까지도 계속 저지르고 있는 온갖 노동착취, 인권유린, 범죄행위들에 대해서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고공농성 100일이 넘으면서 사람들은 묻는다. 언제 내려올 것 같냐고. 그러나 정말 질문해야 할 곳은 삼성과 문재인 정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생각이 없냐고 말이다. 여전히 김용희를 죽일 생각이냐고 말이다. 정부는 언제까지 계속 방관할 것이냐고 말이다. 답해야 할 자 또한 그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땅의 역사를 돌아보면 최초의 고공단식 농성자는 여성노동자 강주룡이었다. 1931년 5월 열흘 넘게 지속된 평원고무공장 파업이 일제경찰에 의해 폭력진압된 다음에 그는 평양성 을밀대 지붕 위로 올라가 고공단식 농성을 벌였다. 평양 2300여 명 고무직공들의 임금삭감에 대한 항의였다.

죽어가는 남편에게 자기 손가락을 찢어내 피를 먹이고, 남편의 시신 옆에서 잠을 자고, 살인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노동운동에 동참하게 되는 기구한 인생 역정의 강주룡.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다가 20년 넘게 감금, 폭행, 간첩 누명에 가족까지 온갖 괴롭힘과 비극에 시달려 왔던 김용희의 인생역정도 그에 못지않다. 그리고 김용희와 김용희를 돌보며 철탑 아래 천막을 지키는 이재용 해고노동자 또한 단지 자신만이 아니라 민주노조를 만들고 노동자의 권리를 찾으려는 모든 이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제 김용희 해고노동자를 믿고 지지하고 함께하겠다고 약속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김용희 해고노동자와, 철탑 밑에서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삼성중공업 이재용 해고노동자의 입이 되고 발이 되고 날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말할 것이다. 저기 사람이 있다고, 저 사람이 더 이상 혼자 외롭지 않게 우리가 함께할 것이라고.

“해가 동쪽으로 기울어 주룡은 광목천을 타고 을밀대 누대에서 내려온다. 달헌은 감은 눈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그 광경을 본다. 거기서부터 다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달빛이 흰 광목을 훑는다. 그 빛나는 줄을 잡고 지붕 위로 올라가려는 주룡은 마치 선녀 같다. 달헌은 그 아름다운 광경을 감히 해칠까봐 잠시 망설이다가 힘겹게 말을 건넨다. 올라가지 말아요. 거기 올라가면 죽게 됩니다. 주룡은 답한다. 알고 있다고. 달헌은 제 머릿속에서조차 말을 듣지 않는 그 여자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하늘로 올라가는 길처럼 빛나는 광목을 주룡은 단단히 붙든다. 사실은 두려워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이면서. 사실은 살고 싶어서, 그 누구보다도 더 살고 싶어서 활활 불타고 있으면서. 지붕 위에서 잠든 그 여자를 향해 누군가가 외친다. 저기 사람이 있다.”(소설 <체공녀 강주룡>의 마지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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