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숙대 포기 트랜스젠더 A씨 "다른 분들은 더 멀리 가길"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숙대 포기 트랜스젠더 A씨 "다른 분들은 더 멀리 가길" [전문] 숙대 입학 포기하며 학교 커뮤니티에 남긴 글

7일 숙명여대 커뮤니티 '스노로즈'에 트랜스젠더 A씨가 숙대 입학을 포기하는 심경을 담은 글을 남겼다. A씨는 자신의 글에서 숙대 입학을 둘러싼 그간의 고민과 괴로움, 앞으로의 바람,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고 연대해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았다.(기사 뒤에 A씨 글 전문 게재)

A씨는 글의 서두에서 자신도 특별하지 않은 삶을 견뎌내고 있다며 "그러니 내 삶은 남들에게 확인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서 끊임 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하며, "일상을 영위할 당연함마저 빼앗겼다"고 썼다.

A씨는 얼마 전 서점에 수험서를 사러 갔다며 다시 수험생활을 시작한 이유를 두고 "작금의 사태가 무서워서였다. 내 몇 안 되는 희망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언행을 보면서 두려웠다"고 밝혔다.

A씨는 "그 누구도 항상 사회적 다수자일 수는 없으며, 그 누구도 항상 소수자인 것은 아니다"라며 "자신을 늘 강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약자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을 늘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떠한 면에서는 강자일 수도 있음을 잊고, 다른 약자를 무시하기 마련이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런 사고에서는 혐오만 재생산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서점에서 자신이 모르는 다양한 의견을 찾아보는 일을 좋아한다며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는 더 알아가고자 하는 호기심이 되어야지. 무자비한 혐오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A씨는 "이러한 혐오는 진정한 문제를 가리고, 다층적인 해석을 일차원적인 논의로 한정시킨다”며 이러한 무지를 멈추었을 때만,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이해하고,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A씨는 글 말미에서 "이 사회가, 모든 사람의 일상을 보호해 주기를, 다양한 가치를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연대와 지지를 보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또 다른 곳에서 노력하며 살겠다'는 뜻을 전했다.

스노로즈 운영진은 A씨가 글을 올린지 1시간여가 지난 뒤인 오후 3시 49분 A씨가 글을 올린 게시판의 운영을 종료했다.

아래는 A씨 글 전문.

mtf 트랜스젠더입니다. 등록 포기합니다.

숙대 등록 포기에 부쳐

내게도 일상은 있다.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특별하지 않은 삶을 견뎌낸다. 꿈이 있고, 삶의 목표가 있으며, 희망이 있다. 그러니 내 삶은 남들에게 확인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을 가고자 하는 당연한 목표, 그 속의 꿈조차 누군가에게는 의심의 대상이고, 조사의 대상에 불과하다. 또한,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한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영위할 당연함마저 빼앗겼다.

얼마 전 서점을 다녀왔다. 더는 볼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수험서를 다시금 뒤적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시금 수험서를 사러 와야만 했던 이유는, 올해 수능 점수에 불만족 해서도 아니고, 법전원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법전원이 설치된 대학 학부로 진학하는 것이 유리하다던 말을 들어서도 아닌, 작금의 사태가 무서워서였다. 내 몇 안 되는 희망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언행을 보면서 두려웠다.

서점을 가는 길에는 전철을 탔었다. 전철역의 계단 앞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나는 사회적 다수자였고, 다양한 핵으로 도배된 지하철 노선도 앞에서, 세 가지 색각을 전형적으로 지닌 나는 다수자였다. 그 누구도 항상 사회적 다수자일 수는 없으며, 그 누구도 항상 소수자인 것은 아니다. 사람 모두는 소수인 측면과 다수인 측면을 다층적으로 쌓아나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자신을 늘 강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약자일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을 늘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떠한 면에서는 강자일 수도 있음을 잊고, 다른 약자를 무시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고에서는 혐오만 재생산될 뿐이다.

나는 서점 나들이를 정말 좋아한다. 그 다양한 의견의 각축장을 통하여, 보다 나은 의견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은 어떠한 근거를 갖는지를 찾아보는 행위가 재미있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과 상대방이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성숙한 사람에게 있어서,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는 더 알아가고자 하는 호기심이 되어야지, 무자비한 혐오여서는 안된다. 이러한 혐오는 진정한 문제를 가리고, 다층적인 해석을 일차원적인 논의로 한정시킨다. 이러한 무지를 멈추었을 때만,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이해하고,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이 사회가, 모든 사람의 일상을 보호해 주기를, 다양한 가치를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그런 길 만이 우리 사회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제 바람에 공감해주시고 지지를 보내주신 여러 개인, 단체에 감사를 표한다. 만약 그분들의 지지가 없었더라면, 연약한 개인은 쉬이 지치고야 말았을 것이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아주시는 여러 사람들께 감사를 표한다.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일상은 일상일 수 있었다. 나는 비록 여기에서 멈추지만, 앞으로 다른 분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또 감사한다.

2020. 02. 07.
하나의 날갯짓이 커다란 폭풍이 되었음을 바라보며.

PS. 저를 지지해 주신 여러분께 일일이 감사의 말씀 전하지 못하는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연대의 정신 잊지 않고, 또 다른 곳에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