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개봉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 개봉 당시 22만명이라는 다소 실망스러운 스코어를 기록한 이 영화가 최근 VOD, IPTV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은 역시 나라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다. 그다지 높지 않은 관객수의 영화였던 만큼 호평도 눈에 띄지 않았지만 최근엔 다르다. 영화 속에 재현된 사실적 묘사, 예컨대 바이러스의 전염경로와 발병원인 등이 현재의 상황과 매우 흡사해 주목을 받고 있다.
<컨테이젼>은 마카오 출장에서 돌아온 베스(기네스 팰트로)의 발병으로부터 시작된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곧 발작을 일으키다가 사망에 이른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전에 아들까지 같은 증상으로 죽음을 맞고 남편 토마스(맷 데이먼)는 남겨진 딸과 함께 망연자실한다. 베스와 아들의 죽음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전역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같은 증상을 보이다가 사망한다. 한편,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의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는 자신의 후계자인 에린(케이트 윈슬렛)를 감염현장으로 급파하지만 에린 역시 현장에서 감염되어 사망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오란테스 박사(마리옹 꼬띠아르)는 최초발병경로를 조사하기 위해 홍콩으로 떠나 역학조사에 착수한다. 이 가운데 발병과 감염에 관련한 사실들이 고의적으로 은폐되고 사람들이 조종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프리랜서, 엘런(주드 로)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반 정부 여론을 확산시킨다. 식료품과 비상약이 떨어지고 도시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가까스로 백신이 개발되고 사람들은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간다.
<컨테이젼>이 개봉했을 때 가장 주목 받았던 점은 캐스팅이었다. 일반적인 헐리우드영화의 원 탑 주연을 맡는 A급 배우들이 그야말로 ‘무더기’로 포진되어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배우들의 역할이 공평하게 ‘작다’는 점이다. 주연급의 기네스 펠트로가 초반에 사망하면서 (나중에 플래시 백으로 간간히 등장하나) 카메오 출연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 역할로 출연하고, 그 외에 케이트 윈슬렛이나 마리옹 꼬띠아르 같은 스타 배우들도 조연 혹은 그 보다 작은 역할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컨테이젼>은 화려한 캐스팅으로 장착한 영화임에도 배우 위주의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중심추는 인물보다는 현상, 즉 감염과 확산 과정에 놓여있고 화려한 배우들 역시 이 과정의 한 부분으로 보여지고 기능한다.
따라서 영화의 적은 포션에도 알만한 배우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은 감독과 취지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션스 시리즈’를 비롯해 수 많은 대작을 연출한 스티븐 소더버그의 네트워크와 2009년에 일어났던 신종 플루에 영감을 받아 팬데믹 (pandemic; 대감염)을 대작으로 옮긴다는 아젠다를 고려했을 때 이 프로젝트를 마다할 배우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컨테이젼>의 강점이기도, 단점이기도 하다. 특정배우를 부각시키지 않고, 영웅서사가 부재한 상태에서 리서치에 기반한 르포 형식을 따라가는 부분에선 헐리우드 상업영화라기 보다 캠페인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정스타의 눈부신 활약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영화다.
<컨테이전>과 지금, 그리고 <아웃브레이크>
그럼에도 2020년 현재 <컨테이젼>의 화제성은 아마도 이 영화와 현실, 즉 코로나 사태의 공통점들에 기반한 것임이 분명하다. 사실 이 점은 영화가 개봉하던 당시에도 높게 평가된 바 있다. <컨테이젼>의 작가 스캇 번즈는 실제로 WHO의 전문가들에게 영화 구성의 상당부분에 있어 조언을 받았고, 2009년에 있었던 신종 플루 사례에 대한 CDC의 대처 등을 정리하여 각본에 반영하였다. 개봉 한 이후 과학자들에게도 영화적 재현의 정확도에 대해 호평을 받았는데 ‘뉴 사이언티스트’의 편집장 패리스 제이버는 "<컨테이젼>이 과학이 이뤄 낼 수 있는 성공과 그 이면에 대해 치밀하게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과학 작가인 칼 짐머는 "한 명의 감염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경로로 대형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지 생생히 묘사한다"고 호평했다. 또 백신 전문가 폴 오핏은 "일반적으로 과학관련 영화의 경우 과학적인 사실을 드라마를 위해 희생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컨테이젼>은 그 반대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컨테이젼>은 바이러스 확산 과정에서 오는 사회문제들, 예컨대 생필품 사재기와 가짜뉴스의 양산, 소외계층의 고립까지 어느 사회나 공통적으로 겪을만한 이슈들을 과학적인 고증만큼이나 디테일하고 생생하게 담아내 국제적인 흥행을 거두기도 했다. 사실상 이런 평가는 <컨테이젼>을 그간 제작되었던 다른 바이러스 영화들과 차별화 시키는 지점들이다. 예컨대 1995년에 개봉했던 울프강 패터슨 감독의 <아웃브레이크> 역시 바이러스의 확산을 주제로 하는 영화지만 전염을 다루는 방법 혹은 관점이 매우 다르다. <아웃브레이크>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모타바 바이러스의 창궐부터 진압 과정을 기본 플롯으로 한다. 이 두 작품에서 발병의 원인은 각각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 서식하는 원숭이나 박쥐 같은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에 의한 것이다. 차이점은 <아웃브레이크>에서는 전염의 원인이 미군의 생물학 무기개발에 의한 것으로 극화 되어있는 반면 <컨테이젼>의 바이러스는 기존의 메르스와 사스의 사례를 혼합한 감기의 형태로 설정한다. 본격적인 감염경로도 <아웃브레이크>는 감염된 원숭이가 할퀴거나 의료사고로 전염되는 등 다소 흔치 않은, 그럼에도 드라마틱한 효과가 강조되는 사례들로 구성하고 있고 <컨테이젼>은 단순한 호흡과 공기중의 침으로 감염되는 등 보다 현실적인 사례들로 구현한다.
결정적으로 <아웃 브레이크>는 미국으로의 바이러스 유입의 원인을 한국 선박인 ‘태극호’ 혹은 한국인 선원에 의한 밀수로 설정하여 개봉 당시 인종차별 논란에 시달린 바 있다. 엄밀히 말하면 설정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그것을 재현하는 방법에 문제가 제기 된 사례다. 문제가 된 장면은 주인공, 다니엘즈 대령(더스틴 호프먼)이 숙주를 찾기 위해 태극호에 직접 방문하는 대목이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선장은 다니엘즈의 요구를 대충 알아듣고 숙주와 접촉한 한국인 선원, 정확히 말하면 사망한 채 비닐에 씌워져 있는 그의 사체를 보여준다. 동료가 원인 모를 사고로 죽었지만 다른 선원들은 시체의 옆방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다니엘즈는 주변을 싸늘히 한번 둘러보고는 죽은 선원의 침대에서 숙주 원숭이의 사진을 발견한다. 마침내 바이러스의 원인을 찾아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장면에서 집요하게 숙주를 쫓는 다니엘즈의 영웅적인 순간은 한국인 선원들의 미개함과 병치되는 것이다. 영화는 원시적인 한국인 선원들을 타자화함으로써 미국 내 바이러스 창궐에 대한 암묵적인 비난을 유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컨테이젼>에서의 바이러스 확산은 마카오에 출장 중이던 미국인 베스와 역시 출장 중이던 일본인에 의해 동서양이 동시 전파 된 것으로 비교적 중립적, 그리고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묘사가 된다. 두 영화가 바이러스 창궐의 원인을 재현하는데 보이는 이 차이점은 전염병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각과도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예컨대 <아웃브레이크>에서 바이러스와 인종을 연결 짓는 오만하고 어리석은 시선은 한국 내에서 확산되던 중국인을 향한 맹렬한 인종차별, 그리고 더 나아가 각국에 거주하는 아시아인들이 겪었던 무차별 폭행 사건등과 정확히 일치한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항공으로, 선박으로 짧게는 몇 시간, 혹은 몇 일 내에 각국의 사람들을 주고받는 시스템에 살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어느 나라에서 누가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종적 증오와 차별로 대응하는 것은 매우 원시적이고 구시대적인 대처임이 16년의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이 두 영화간 차이로도 드러난다.
영화 속 아시아와 미국
<아웃브레이크>의 경우도 비슷하다. 모타바 바이러스의 근원은 아프리카이고, 이미 수십 년 전에 진압되었던 바이러스 균을 미국 대륙에 퍼뜨리는 주체는 아시아(한국)인이며, 궁극적으로 숙주 원숭이를 잡아 몇 시간 만에 백신을 만드는 영웅은 미군이다. 앞서 언급한 ‘태극호’ 시퀀스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특히 아시아 지역의 소국이 바이러스를 진압할 수 있는 기술 보유국이 될 수 없음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통쾌한 얘기를 좀 해보자면 (코로나로 인한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영화의 시선마저도 ‘고전’인 영화 <아웃브레이크>도, 비교적 현실감을 살려냈던 <컨테이젼>도 2020년에 발생한 바이러스의 가장 큰 투사가 한국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현재 코로나 사태의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국가들이 앞다투어 한국의 질병대처를 뒤따르고자 한다는 외신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서 언급한 작품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적어도 영화와 현실이 정확히 중첩되는 한 부분에 있어서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헌신이다.
<컨테이젼>의 치버 박사는 직업적인 특권으로 먼저 받게 된 백신을 회사의 건물관리인, 로저의 아들에게 양보한다. WHO의 오란테스 역시 방치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귀국행 대신 홍콩에 잔류하기로 한다. <아웃브레이크>에서 다니엘과 그의 부하, 살트(쿠바 구딩 주니어)는 명령을 거부하고 감염지역에 남아 사투를 벌인다. 놀랍게도 이러한 영화적인 설정들이 지금 스크린 밖에서 연일 실제상황으로 일어나고 있다. 의료진들은 자발적으로 대구로 향하고, 한 농부가 있는 돈을 털어 성금을 보냈으며, 금보다 귀하다는 마스크를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등등의 소식이 어지러운 뉴스판 한가운데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컨테이전>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바이러스가 진압되고 이웃들이 제일 먼저 보이는 행동은 ‘악수’다. 치버 박사는 처음으로 로저에게 악수를 청하며, “바이러스가 옮을 수는 있겠지만, 무기는 없어요.” (앞서 치버는 악수의 유래가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설명한다) 라며 농담을 던진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로저가 치버의 손을 맞잡는다. ‘악수’는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무기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던 악수 자체가 우리에겐 바이러스에 대적할 연대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접촉으로 시작되나, 연대로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한 각계각층의 크고 작은 선행들은 이미 곳곳에서 연대의 감염이 번지고 있다는 증거다. 당신은 악수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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