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50여개 단체로 구성된 연대체인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지난 12일 한 달여 남은 21대 총선을 준비하는 정당들에 전달한 기후변화 정책요구안에 대한 답변 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비상행동의 4대 정책요구안은 △국회의 기후위기비상선언 결의안 채택 △탄소배출제로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기후위기대응법 제정 △국회 내 기후위기 특별위원회 설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예산 편성과 법제도 개편 등 탈탄소 사회 전환을 위한 기반 마련이었다.
주요 정당들의 답변은 일단 수용 여부 놓고만 보면 긍정적이다. 응답을 보낸 6개 정당 중 5개 정당이 모두 동의한다고 답했고, 미래통합당만 동의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다수의 정당이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비상한 대응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기에는 뭔가 의구스러운 점이 많다.
우선 청와대와 함께 국정을 이끄는 가장 큰 책임을 갖는 여당의 답변이 명쾌하질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4대 정책요구안에 동의한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인 답변에서는 "검토가 필요"하거나 "협의가 필요"하다고 토를 달았다. 실제로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주요 공약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언급 자체를 찾아 볼 수 없는 지경이다. 환경단체들의 요구는 존중하지만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현실은 별개라는 뜻일 텐데, 실은 이런 태도가 문재인 정부 동안에도 한국을 '기후악당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비상행동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개별 정책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탄소배출 감축을 말하고는 있으되 실제로 어떻게 그것을 실행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문재인 정부 때리기에만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자신이 집권당이었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수립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과연 분개라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에 비해 정의당과 녹색당은 그린 뉴딜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이미 발표했고, 예비후보들의 입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민중당도 각론은 아직 부족하지만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할 것을 약속했다. 반가운 일이지만, 이번 총선도 1당과 2당 사이의 네거티브 선거가 주요 구도를 이루고 있고 정책 대결이 거의 실종된 상황에서 기후변화가 총선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큰 정책 요구와 개별 정책에 대한 찬반 이전에, 과연 한국 국회가 기후위기에 대해 무얼 할 수 있거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회의원과 정당 관계자들이 얼마나 될까? 국회의 주요 기능은 입법, 예산 편성, 행정부 견제 등이다. 그런데 지난 19대와 20대 국회가 기후변화에 대해 어떤 입법이나 특별한 예산 편성에 나섰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국회가 이명박 정부 때 제정된 녹색성장기본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체 입법을 발의한 몇 건이 있었을 뿐, 그조차 본회의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올해도 512조 원 규모의 국가 예산 중 기후위기를 주로 담당하는 환경부 예산은 9조3000억 원에 불과하다. 기후변화 문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나 대정부질문에서 주요하게 포함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국정감사에서 다룬 의원조차 몇 명을 넘지 못했다.
비상행동은 이번 총선으로 구성될 21대 국회가 ‘기후 국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역 의원들과 예비후보들 사이에서,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과 정작 표를 행사할 유권자를 사이에서 기후 국회에 대한 이미지와 상상력이 부족한 게 지금의 모습인 것 같다. 그러나 실은 아주 간단하다. 입법, 예산, 행정부 감시, 그리고 의원 개인의 활동 모두에게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기후 국회다.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을 위해 필요한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제반 사업에 예산을 적극적으로 투입하며, 청와대와 각 부처가 기후위기를 어떻게 다루는지 모니터링하고 질타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의원의 입으로 기후를 말하는 것이 기후 국회다. 지금의 '기후 없는 국회'의 정확히 반대 모습이면 된다.
상임위원회 활동도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그나마 기후변화에 대해 무언가 말하는 상임위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책임지는 환경부와 관련된 환노위, 그리고 화석연료 축소와 에너지 전환을 다루는 산자중기위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기후위기 대응이 행정부에서 환경부와 산업부만 나서서 될 일이 아닌 것처럼 국회의 전 상임위가 기후와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재위는 기후금융과 탄소 세제를 다룰 수 있고, 교육위와 과방위는 기후위기 교육과 녹색기술 개발을 신경 써야 한다. 외통위는 남북 에너지 협력과 국제 기후 협력 및 녹색 ODA를 증진하고, 행안위는 기후위기 재난 대책과 중앙 및 지방정부의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 농해수위는 식량 자급률과 로컬푸드를 확대하고 탄소흡수원 산림을 늘리는 등 먹거리와 토지 이용과 관련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환노위는 직접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 관련 정책 뿐 아니라, 다른 부처와 협력하여 녹색일자리 확대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프로그램 마련에도 나서야 한다. 국토위는 도로교통의 화석연료 이용을 감축하고 도시계획에 기후위기 요소를 도입하는 역할이 있다. 심지어 정보위는 국가정보원이 기후위기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대응하도록 만들고, 여가위는 여성의 기후위기 취약성 대안을 강구하도록 할 수 있다.
결국 국회의 모든 상임위와 모든 의원이 기후위기를 말하고 기후위기에 대해 할 일이 많은 국회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면의 21대 총선은 이러한 바람과 너무도 괴리되어 있는 모습이다. 집권당과 제1야당 사이의 비례 위성정당 격돌 소동 탓에 기후위기 대응을 잣대로 정당과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길도 흐려져 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타개될 수 있을까? 부족한 대로라도 각 정당에 기후위기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촉구하고, 정당과 후보에게 기후위기를 말하도록 요구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총선 이후 새 국회가 구성된 다음에도, 우리는 기후 국회를 요구하며 또 감시하리라고 다짐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통해 정당과 의원의 역할을 평가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멀지 않은 시점에, 기후위기와 같은 중요한 문제를 중요하지 않게 다루도록 만들고 정당의 정책 기획과 책임을 사실상 의미 없게 만드는 지금의 정치 구조와 제도 자체를 뜯어고치는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기후 국회와 기후 정치를 만드는 노력은 이번 총선으로 끝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