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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n번방', 국회가 막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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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n번방', 국회가 막아야한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디지털 성범죄의 연쇄고리를 끊어야 한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10만 국민의 목소리, 국회 문을 열다" (국회 보도자료, 2020년 2월 10일자)

올해 초 인터넷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에서 발생한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대한 요구가 청와대 청원 20만 명을 넘긴데 이어 국회 국민동의청원 역시 10만 명을 넘겼다. 특히 단기간에 여성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국회 입법청원은 '1호 법안'이라는 상징에 걸맞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5일 국회에서 통과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청원의 취지를 반영한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으로 알려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이어졌다. 여성단체들이 모인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SNS에서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는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ReSET'(리셋) 모두 이번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웹하드, 단톡방에 이은 'n번방'을 아십니까?"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의 안전할 권리에 대한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다. 청와대 청원 페이지 개설 이래 20만 명 이상의 동의로 답변이 이루어진 청원 중 40%가 젠더 이슈였으며, 그 중에서도 여성폭력·안전 관련 청원이 63%로 가장 많았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회의 법제도 정비와 정부의 정책 대응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정부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설립하면서 피해 촬영물 삭제 지원 및 수사·법률·의료 연계지원을 시작했고, 경찰청에도 사이버성폭력전담 수사팀이 생기면서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2018년에도 이미 성폭력처벌법 개정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촬영한 경우라도 동의 없이 유포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촬영물 원본뿐만 아니라 복제물 유포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되면서 형량도 올라갔다. 모두 여성들의 투쟁으로 이루어낸 성과이다.

그 와중에 작년부터 언론보도를 통해 실상이 알려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지금까지 문제제기 되어온 디지털 성범죄들이 축적되어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범죄였다. 범죄자들은 주로 해킹 또는 사칭으로 여성의 개인정보를 확보하고 공유된 촬영물과 신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수법을 썼다. 가해자는 계속 수위를 올려가며 성착취 이미지나 영상물을 요구하고, '노예'로 전시된 여성들의 성착취물은 채팅방의 남성들에게 공유․거래되었다. 사이트 접속 주소를 계속 변경하며 유지되었던 '소라넷'과 마찬가지로 남성들이 공유한 성착취물과 대화가 담긴 채팅방은 그들의 '안전'을 위해 수시로 삭제되고 다시 생겨났다. 'n번방'은 몇 개인지 모를 이러한 채팅방을 의미함과 동시에 가/피해자의 수를 파악하기 어렵게 하는 새로운 디지털 성범죄의 명칭이다. 소라넷 폐쇄에 이은 제2의 소라넷'들'의 등장, 양진호 웹하드 카르텔, 정준영 단톡방 성착취물 공유 사건, 다크웹을 기반으로 한 아동포르노 사이트 운영자와 이용자들의 경미한 처벌까지. 텔레그램 n번방은 끊이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를 소환했다.

디지털 성범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


올해 3월에 이루어진 개정에서는 기존 촬영물에 피해자의 얼굴이나 특정 신체 부위를 편집·합성·가공한 '딥페이크(Deepfake)' 허위영상물의 제작과 유포가 처벌 대상에 포함되었고, 영리를 목적으로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가중처벌 규정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개정의 주요 내용인 '딥페이크'는 텔레그램을 넘어서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의 일부 형태이자 여성에 대한 성착취가 이루어지는 도구이지, 디지털 성범죄의 원인이 아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사이버 공간 내 모든 피해 유형과 그 도구를 법안의 규제의 대상으로 열거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번 성폭력처벌법 개정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졸속' 대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성폭력은 주로 물리력을 동반해서 오프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피해로 구성된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온-오프라인 공간의 경계가 흐려지며 다수의 가해자가 실질적인 물리력 행사 없이도 피해를 발생, 지속시킨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 과정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유포 협박이다. 텔레그램 n번방의 피해자들이 계속되는 성착취물 촬영 협박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촬영물이나 신상이 유포되는 순간 다수의 가해자에 의해 빠르게 전파될 뿐만 아니라 무한대로 복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촬영물이 유포되는 순간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평판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어떻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너무 잘 아는 가해자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이렇듯 유포 협박 행위가 디지털 성범죄를 유지시키는 핵심으로 제기되었지만, 이번 성폭력처벌법 개정에서도 유포 협박에 대한 처벌이나 규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텔레그램 n번방이나 '리벤지 포르노'로 불렸던 보복 촬영물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가 피해자들에게 남긴 피해는 '불안'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상담 통계를 보면 피해 유형 중 유포 협박 피해와 불안피해가 매해 일관되게 나타난다. 친밀한 관계에서도, 불특정 시공간에서도 여성들은 자신이 성착취물의 대상이 되지 않을지, 그 촬영물이 유포되지는 않을지 불안에 휩싸인다. 이미 유포가 된 경우 완전한 삭제는 불가능하다는 온라인 네트워크의 특성이 이 불안감을 다시 극도의 공포로 몰아넣는 기제다. 피해자들은 촬영물이 언제든 재유포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점으로 인해 타인과 신뢰 관계를 맺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학교나 직장에도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이 위축된다.

문제는 이러한 불안과 공포가 단순히 텔레그램 n번방에 있는 피해 여성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몰카에 대한 문제의식이 급증하기 시작한 최근 몇 년 동안 여성들은 언제 어디서든 나도 촬영될 수 있다는 불안을 호소해 왔다. 공중화장실 문이나 벽에 있던 모든 구멍, 작은 틈조차 온통 휴지로 메워진 장면은 이제 일상이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한 청원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며 나타나는 '새로운'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하라는 요구이자, 동시에 '기존의' 디지털 성범죄를 유지시켜 왔던 생산-유통-협박-소비-확산의 연쇄고리와 그로 인한 여성들의 불안에 포괄적이고 근본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했다. 국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실질적인 입법의 문이 열린 것처럼 말했지만, 디지털 성범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범죄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그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불안과 공포, 그리고 분노의 의미


디지털 성범죄의 특징 중 하나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1:1 구도에 놓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텔레그램 n번방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이다. 남성들은 다양한 금액의 암호화폐를 지불하고 입장하며, 입장하고 나서도 자신의 지인의 사진 혹은 성착취물을 공유하지 않거나 성적 대화에 가담하지 않는 경우 강퇴를 당한다. n번방은 운영자뿐만 아니라 n번방의 참가자들이 촬영이나 제작, 다운로드 및 업로드, 관람과 성희롱 대화 등에 '참여'하는 행위로 운영되어 왔다. 2018년 웹하드 카르텔이 촬영물의 비동의 유포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가 이룬 거대한 산업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면, 텔레그램 n번방은 금전적 거래와 함께 일반 남성들을 디지털 성착취물의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로 성장시킨 온라인 네트워크 속 남성문화를 폭로한다.

여성들이 디지털 성범죄에 분노하는 이유는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막연하거나 일시적인 감정으로 취급하며, 촬영물의 존재 자체나 유포 협박이 실제로 유포까지 이르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는 법제도와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배경에는 여성을 성적 대상이자 '땔감'이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서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여겨지고 있지 않다는 집단자각이 존재한다.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며 그 피해 역시 여성집단 전체에 대한 모욕과 혐오로 나타나는 점에서 여성들은 스스로가 피해를 경험한 당사자이면서 목격자, 같은 '취급'을 받는 여성집단의 일원이라고 자각한다.

이미 인터넷이 등장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폭력은 누군가의 인격을 침해하는 심각한 폭력이 아니라 남성들 간의 일상적 놀이문화, 혹은 호기심에 의한 실수, 사소한 일탈 정도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현재의 디지털 성범죄는 직접 물리적인 가해를 하지 않고서도 제3자를 이용해 피해자를 위협하고 괴롭히는 것이 가능한 남성집단의 문화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다수가 함께 관람하고 공모하는 현실,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무너지고 참여가 곧 폭력의 확산으로 이어지는 현실은 생산-유통-협박-소비-확산의 연쇄 폭력에서 직접적인 가해자와 단순 이용자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점을 드러냈을 뿐이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누구인지도 모를 가해자를 우려하며 자신의 일상을 제약하는 삶이 과연 인간다운 삶인지, 왜 가해자의 폭력은 놀이이자 문화로 정당화되고 피해자의 삶은 '디지털 감옥'에 갇혀야 하는지에 대한 여성들의 질문에 이번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은 제대로 된 응답이 되었을 리 만무하다.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을 제대로 세울 책임은


성폭력처벌법 개정을 포함한 제도의 변화가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변화는 정부나 국회의 성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수년 전부터 지인 합성이라는 이름의 디지털 성범죄 계정을 수백 개 찾아내며 정지시키고, 불법촬영물 삭제를 국가의 역할로 요구하며 피해자를 지원하고, 디지털 성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직접행동을 조직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해온 여성들의 성과로 얻은 사회적 진보다. 문제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은 정부와 국회에 있다.

반성폭력 운동에서 피해자의 말하기는 피해자를 신뢰하고 지지하는 관계망 속에서 생존자의 용기로, 명예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으로 의미화 되어 왔다. 그리고 우리는 여성들의 피해 경험 말하기로부터 시작된 용기와 변화의 연쇄작용을 '미투'라는 이름으로 목격한 바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성폭력의 피해자는 어떨까. 자신이 피해자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피해촬영물이 범죄의 증거가 아니라 음란물이나 포르노로 둔갑하고, 다시 관람자들에 의해 성적 대상이나 땔감으로 소비되고, 피해자가 아닌 '그런 여자'로 모욕당하는 구조 속에서 어떻게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은 바로 피해자들에게 다른 근거와 조건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어야 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처럼 온라인에서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는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기 위해서는 기존의 오프라인 중심, 신체 침해 중심, 음란 여부와 성적 수치심이라는 남성사회의 기준을 중심으로 한 제도를 보완하는 수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성들은 성착취물의 생산뿐 아니라 소비 행위의 사슬이 어떻게 성범죄 산업을 키우면서 어떠한 형태의 피해를 양산하는 범죄인지에 대해 새로운 지식과 관점 모두를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해자 처벌 혹은 피해자 지원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사후 대책'이 아니라 '범죄 예방'에 초점을 둔 제도와 정책, 피해자의 대처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폭력의 내용과 특성에 따라 법을 정비함으로써 범죄를 방지하고 다양한 피해 경험의 내용과 특성을 반영해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면,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을 다시금 제대로 세울 책임 역시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하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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