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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보사 상장, '햄릿의 비극'이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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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보사 상장, '햄릿의 비극'이 되려는가 [밥&돈·1] '올바른 생명보험 서비스'는 무엇인가?
경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흔히 경제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활동 및 그와 직접 관련되는 질서와 행위의 총체'로 정의된다.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결국 경제란 '인간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의 총체'다. 그래서 경제는 항상 삶의 이야기이며, 어떤 삶을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는 항상 어떤 경제를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삶과 경제의 지향점은 인간인 우리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지 신이나 시장이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경제와 인간', '경제와 삶', 그리고 '경제와 사회'를 떼어놓으려는 시도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한미FTA 협상을 전후해 그런 시도가 더욱 눈에 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대한민국 경제를 어떻게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로 만들 것이냐는 고민이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단, 고민의 핵심은 '인간의 얼굴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그 인간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느냐'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이런 고민을 공유하자는 차원에서 '밥&돈'이라는 정기 경제칼럼을 신설한다. '밥'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나 갈수록 힘들어지는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진솔하게 이야기해 보자는 취지라면, '돈'은 우리 경제와 세계 경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바를 모색해 보자는 취지다. 물론 밥과 돈은 엄격한 의미에서 분리되지도 않고,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

앞으로 1주일에 한 차례씩 그때그때의 경제현안을 중심으로 연재될 경제칼럼은 김태억 경제 칼럼니스트, 박종현 진주산업대 경제학과 교수, 오건호 민주노동당 정책전문위원,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홍기빈 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쓸 예정이다.

이들의 칼럼이 우리 사회에 진지한 대화와 건전한 논쟁의 불씨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종태 연구위원의 글로 그 문을 연다. <편집자>


생명보험회사의 증시 상장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논쟁의 양대 축은 재벌과 자유주의 시민단체들이다. 그런데 이번 싸움의 전개양상은 매우 기이하다. 양측의 무기가 바뀌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등장인물을 거의 모두 저 세상으로 보내는 유혈비극으로 끝나는 이유는 이 연극의 막판에서 햄릿과 레어티즈가 칼을 바꿔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햄릿과 레어티즈가 어떻게 싸울지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 영화 <햄릿>의 한 장면. ⓒ프레시안

'주식회사'의 개념을 둘러싼 싸움

그동안 주주가치 또는 주주자본주의 운동의 주역이었던 경실련과 참여연대가 이번엔 보험 계약자의 편에 서서 주주를 공격하고 있다. 이에 맞섰던 재벌과 관계 세력들은 주주가치를 옹호하면서 "상장에 따른 주식가치 상승분은 오로지 주주에게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기이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생명보험사(이하 생보사)의 주주 중 절대 다수가 재벌(가문, 계열사) 및 그 특수 관계인이기 때문이다. 한자리 수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좌지우지하는 '나쁜 기업지배구조'로 주주가치를 떨어뜨려 왔다는 재벌이 생보사에서만큼은 다수 주주인 것이다.

자유주의 시민단체들은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생보사들이 '사실상의 주식회사는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지배주주에겐 회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러나 대형 생보사의 지배주주인 재벌들은 이같은 의무를 준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보험 계약자들에게 돌려줘야 했던 자금을 회사의 재무상태를 유지하는 데 사용해 왔다. 생보사 재무 악화의 책임을 계약자들이 일부 감당해 왔다는 것이다. 생보사가 주식회사인 경우 피보험자인 계약자들은 회사의 재무 상태에 어떤 책임도 없는데도 말이다. 다만 '상호회사 형태의 생보사'에서는 피보험자가 회사의 주인이기도 하므로 재무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 보험료를 올리거나 보험금을 낮춰 받는 형태로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렇다면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생보사들은 '법률적 주식회사'이긴 하지만 회사의 재무상태를 피보험자가 일부 책임지는 '상호회사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상장차익 역시 계약자들에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상호회사의 이익은 피보험자들에게 배분된다).

이같은 시민단체 측 주장은 경험적 사실로 봐도 옳다. 실제로 한국의 생보사들은 1990년대까지 유배당 보험상품만 판매했지만 충분한 배당을 하지 않았다. 이익이 발생해도 배당하지 않은 경우까지 있다! 또한 1980년대 말 자산재평가로 발생한 이익 중 보험 계약자 몫으로 할당된 부분(70%)을 돌려주지 않고 사실상의 자본금으로 사용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현재 생보사 자산엔 주주(사실상 재벌) 몫과 계약자 몫이 복잡하게 섞여 있으며 이를 확실히 구분한 뒤에 상장해야 한다는 시민단체 등의 주장은 상당히 타당하다. 회사 자산에 '남의 돈'이 섞여 있는 상태에서 상장하는 것은 '올바른' 상장이 아니며, '올바른' 주식회사가 할 일은 더욱 아니다.

결국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재벌들이 남의 몫을 가로챘으므로 '올바른 주주'가 아니라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들의 투쟁 목표는 '주주가치에 입각한', '올바른 주주행동'과 '올바른 주식회사', 나아가 '올바른 주주자본주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단체를 지지하는 논객 중 일부는 생보사 상장의 긍정적 효과로 외자유치나 기업 인수합병(M&A)이 용이해진다는 점을 들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식회사다"

이에 대한 재벌 및 주변 세력들의 입장은 간단하다. 대형 생보사들은 이미 법률적 주식회사였으며, 상장차익 문제도 이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다음의 명제를 끊임없이 변주하는 것에 불과하다.

"생보사는 주식회사다. 주식회사의 자산 재평가(예컨대 상장) 차익은 당연히 주주의 것이다. 보험 계약자의 지위는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채권자일 뿐이다. 채권자가 기업 이윤의 분배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컨대 백화점(보험사)이 잘 된다고 그 고객(계약자)들이 잉여의 분배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커피 주식회사(보험사) 역시 소비자(계약자)가 지불하는 커피 값(보험료)이 자산(자본)의 원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주식회사가 상호회사적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배당을 적게 하거나 부당한 보험료 계산으로 고객의 몫을 가로챘다고 해서 '법률적으로' 주식회사가 상호회사로 변하겠는가. 한마디로, 같은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개가 고양이로 바뀌거나 고양이가 개로 바뀌겠는가. 재벌들은 이런 주식회사의 성격을 부정하는 자들을 반시장주의자, 반기업주의자로 몰아붙이며 은근히 색깔 시비까지 제기한다. 이처럼 "생보사는 법률적 주식회사"란 명제는 모든 논란을 차단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다.

'주식회사'라는 화두

결국 논쟁의 핵심은 '주식회사'다. 아니, '주식회사일 뿐'이다. 논쟁의 양측 모두 생보사가 주식회사라는 법인격을 가지는 것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상장에 따라 본격적인 주주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될 국내 생보사들이 이후 어떤 영업행태를 보일지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는다. 이처럼 '올바른 주식회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생명보험사'에 대한 문제의식은 실종됐다. 또한 생보사의 상장이라는 사건이 향후 한국 금융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논의되지 않았다.

예컨대 생보사의 상장이 의미하는 것은 생보사에서 주주가치 경영이 본격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장의 '긍정적'(?) 효과로 외자유치 및 M&A가 용이해지면, 생보사 경영진은 주가를 올리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회사에 M&A되어 경영권을 상실하는 결과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가를 올리려면 배당 규모를 확장해야 하고, 리스크가 크지만 수익도 큰 금융투자에 과감해야 할 것이다. 이는 보험 계약자의 지위가 이전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시민단체 측의 주장대로 '올바른 상장'이 이루어져 상장차익이 배분된다면 기존 계약자들이 수십만~수백만 원을 수수하거나 생보사 주주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보사의 주주가치 경영이라는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주식회사 논의의 중심에 주주가치를 둔다는 것에도 문제가 많다. 주주가치 경영, 즉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주식회사 운영이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주식회사라는 법인 형태 그 자체가 주주에 대한 사회적 특혜이며, 이에 따라 주주 역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주식회사 법인이 사회적 특혜인 이유는 자영업체 등의 개인 기업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개인 기업이 망하는 경우 소유주(겸 경영자)는 모든 채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른바 무한책임 원칙이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소유주인 주주들은 기업이 부도를 내는 경우에도 자신의 주식만 포기하면 된다. 유한책임 원칙이다. 이는 사회가, 주식회사의 경우, 주주가 유한책임만 지도록 허용한 것이며, 그 이유는 주식회사 그 자체가 '사회적 공기(公器)'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생보사의 상장 역시 그 논의의 지평이 '주식회사의 사회적 역할'과 '올바른 생명보험 서비스'(단지 '올바른 주식회사'가 아니라)의 조건을 고민하는 것으로 심화돼야 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의가 양측 모두와 우리 사회에 생산적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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