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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헌법, 뉴라이트에 불편한 공화국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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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헌법, 뉴라이트에 불편한 공화국의 진실 [기고] 한국 보수주의자들에게 제헌헌법이란?
다시 제헌헌법을 생각한다

며칠 전 "헌법 제119조, 우리 시대에 던지는 의미는?"이라는 주제로 민주당이 주최한 토론회가 있었다. 주제는 시의 적절했는데 토론회 앞 부분에 왠 형식적인 세리모니가 그렇게 많은지. 그렇게 시간을 허비해 놓고 나서 두 번째 세션이 되니 토론장이 썰렁해졌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내게는 발표자, 토론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아주 좋은 기회였다. 나는 이 토론회에서 "헌법 제 119조와 민주공화국의 경제이념- 재벌공화국에서 민주공화국으로" 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와 사회국가를 기조로 하는 제헌헌법의 경제이념과 우리 헌정사의 우여곡절을 되짚어 보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서 보는 것처럼 무책임하고 천민적인 재벌의 행태와 고삐풀린 정글 자본주의에 발목잡힌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 얼마나 반(反)헌법적이고, 위헌적인 것인지에 대해 지적했다.

그런데 이와 함께 나는 이날 발표에서 뉴라이트의 제헌헌법에 대한 아전인수적 해석 ,그리고 그에 따른 48년 민주공화국의 경제질서 해석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당일 발제에서는 간단한 지적으로 그쳤다. 이 글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풀어서 논의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두 개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교과서 포럼에서 발간한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기파랑, 2008 ), 그리고 이영훈이 쓴 <대한민국 이야기 > ( 기파랑, 2007)가 그것이다. 때마침 8.15 66 주년이 다가온다. 그러므로 뉴라이트의 한국 헌정체제 해석의 문제점을 따져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한국의 '건국' 기초 이념은 시장경제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있어 제헌헌법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그간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기본가치를 줄곧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말해 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에 "공정한 사회"를 국정기조로 내세운바 있었던 제65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렇게 말한바 있다.

"65년 전 우리는 그토록 갈망했던 광복을 맞았습니다...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두 바퀴로 삼아 '발전의 신화'를 창조할 토대를 닦았습니다."

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만약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고, 나라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것이 보수라면 저는 자랑스럽게 보수를 택할 것이고, 그런 게 진보라면, 자랑스럽게 진보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한미국을 이끄는 현재 최고권력자, 그리고 '유력한 미래 권력'이 대한민국의 기본 가치, 헌법적 가치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이들은 '어떤 자유민주주의'인지, '어떤 시장경제'인지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진보와 보수는 그 "어떤 "을 두고 다투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에서 해당 부분을 살펴 보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로서 민주공화국으로 성립하였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장경제 체제로 출발하였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건국의 기초이념을 충실히 발전시킴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안정과 번영을 이루었다"(교과서포럼지음,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기파랑, 2008, P 148).

위 인용문에서 <대안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이념과 체제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지, 또 그 내부에 어떤 갈등과 모순성을 안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자유민주주의인가'에 대해 침묵한다. 이는 레이코프(G. Lakoff)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프레임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시장경제 부분에만 한정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나의 물음은 자유민주주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위에서 말하는 시장경제가 도대체 "어떤 시장경제인가"하는 것이다. <대안 교과서>의 다음과 같은 서술이 이에 대해 답변을 주고 있다.

"OECD.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간의 경제 사회정책 협의체로서 공통의 현안에 대한 공동의 정책을 모색하여 안정과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협력기구이다 운운"(p.148).

이로부터 우리는 <대안교과서>가 말하는 "시장경제"란 OECD에 공통된 시장 경제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OECD 회원국 수는 몇 개나 되는가? 2011년 현재 34개국이다. 그 안에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패권국으로 2008년 세계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전락한 미국, 여전히 그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해 최근 신용등급이 강등된 미국이라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보편적 복지국가의 본고장인 스웨덴, 덴마크 같은 나라도 포함돼 있다. 동아시아의 일본, 그리고 사회복지 수준에서 한국과 꼴찌 1, 2등을 다투는 멕시코같은 나라도 있다. 또 '체제 전환'국인 체코, 헝가리, 폴란드 같은 나라도 들어있다. 이처럼 엄청나게 다양한 나라들이 모두 OECD 가입국이다. 우리나라는 1996년에 OECD에 가입했는데, 가입하자마자 그 이듬해인 1997년에 무분별한 '세계화'(김영삼 )정책과 고삐풀린 재벌의 행태 때문에 외환 위기의 재앙을 자초한 바 있다.

<대안교과서>에서 우리 한국이 자유시장 자본주의 주도국인 미국, 그리고 보편적 복지자본주의 주도자인 스웨덴, 덴마크와 함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관을 공유'한다고 쓴 것은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식코' (SICKO)라는 영화가 잘 보여주는바와 같이 전국민 의료보험조차 없는 복지후진국 미국과 보편적 복지 선진국 스웨덴은 얼마나 다른 나라인가. GDP대비 공공 복지지출이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면서 자유시장 패권국인 미국보다도 더 낮은 한국과 그 최고 수준 선진국인 스웨덴은 얼마나 다른 '시장경제'인가. 증세를 통해 복지 국가를 달성한 유럽과는 달리 조세 개혁을 통과하지 못한 미국의 경우, 대기업들은 재단 (Foundation)의 형태로나마 대대적인 사회기부 행위를 해 왔다. 그런데 한국의 천민 재벌들은 조세를 통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함은 물론이고, 미국식의 사회기부 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 측면에서 본 한국의 '시장경제'는 어떤가? 최저임금( 노동자 평균임금의 33%)으로 본 한국의 등급은 법정 최저임금제도가 있는 OECD 21개국 중에서 꼴찌중 넷째다. 정리해고를 당했을 때, 실업 급여의 평균소득 대체율은 꼴찌에서 둘째다.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은 길어야 6개월 정도다. '정리해고가 살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기에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약 50%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또 한국의 노동시간은 부동의 1위를 마크하고 있는 데 이는 오래전부터 악명이 높다. 1위는 또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살률이다. 한국은 2003년부터 헝가리, 일본을 제치고 계속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에 비해 2배 이상 많다. 반면 공공복지지출에서 한국과 꼴찌1,2를 다투는 멕시코는 가장 낮은 자살률 국가군에 속한다.

재벌 개혁은 어떤가. 이는 세계 모든 선진자본주의의 진화에서 민주적 선진화로 가는 기본 관문이었다. 유럽에서 스웨덴, 독일이 그 관문을 통과한지는 오래전의 일이다. 미국은 의료, 주택복지의 후진성에서 보듯이 유럽식 복지국가를 달성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고 노동의 힘도 약했다. 그렇지만 반독점정신 만큼은 어떤 나라에 비해도 투철해 루즈벨트의 뉴딜에서 재벌 개혁의 관문을 통과했다. 아시아의 경우, 일본도 전후 미국 점령기에 '전후 개혁'의 일환으로 재벌해체를 단행했다. 그런 개혁이 이후 일본 고도성장의 기초를 닦았다. '동아시아 네 마리 호랑이'중 대만, 싱가포르에는 재벌체제가 없다. 대만은 국영기업과 중소기업의 두바퀴, 그리고 싱가포르는 국영기업과 외국기업의 두 바퀴체제다. 홍콩은 워낙 예외적인 자유시장 국가다. 이렇게 볼 때 한국만이 거의 예외적으로, 민주화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재벌개혁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개혁 지체국가로서 온나라와 다수 국민이 재벌체제에 덜미가 잡혀 있는 상태다. 한진 중공업 정리해고 사건의 경우 오늘과 같은 불행한 사태를 초래한데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조남호 회장은 해외 도피 행각 53일만에 귀국하더니 여전히 '정리해고 철회'를 거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는, 2년 이상 사내협력업체에서 근무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법원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판결조차 무시하는,법위에 군림하는 횡포를 자행하고 있다. 또한 삼성은 이병철 회장이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된다"함을 신조로 삼고서 핸드폰을 불법 복제해 노동자 위치를 추적하는 식으로 탄압을 해왔다.그리고 천신만고끝에 신설된 삼성에버랜드 노조 간부에 대해 해직을 통보했다.

그러나 <대안교과서>식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개혁 후진적이고 개혁억압적인 나라 그래서 낙후된 복지와 비용절감형, 조립형 성장체제라는 낮은 길 (low road)의 덫에 빠진 한국 같은 나라와, 일찍이 재벌개혁 관문을 통과하고, 국민기업으로 거듭한 건강한 재벌과 강한 노동이 사회적 합의를 이룬 바탕위에서 보편적 복지국가와 상생의 혁신체제라는 높은 길(high road)로 나아간 스웨덴은 둘다 '시장경제라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똑같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등 이미 탈원전을 선언했거나 그 길을 추구하는 나라들과 제정신인지 '원전 투자 강국' 길을 추구하는 한국 또한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나라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대안교과서>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국민의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장경제 체제로 출발하였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건국의 기초이념을 충실히 발전시킴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안정과 번영을 이루었다"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안교과서>가 위와 같이 한국이 다른 OECD국가들처럼 단지 시장경제 가치관을 공유하는 나라라고만 두루뭉수리하게 묶어 서술하고 있는 까닭이 궁금하다. 그 이유는 뭘까. 이는 <대안 교과서>가 같은 페이지에서 서술하고 있는 다음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60년간 세계사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존중하고, 그것을 국가 체제의 기본원리로 채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가, 인간의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행복을 증진하는 올바른 방향이었음을 보여 주었다.모두가 골고루 잘 산다는 공산주의 이상은 자유와 이기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았다... 공산주의 체제는 1980년대이후 소련 중국과 같은주요 공산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해체되고 말았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공산주의체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정치적 억업과 경제적 빈곤이 계속되고 있다"( p.148)

즉 <대안 교과서>는 시장경제를 공산주의와 대비하여,또 남한을 북한과 대비하여 말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항대립적 대비속에서 시장경제 내부의 실로 엄청난 다양성과 복잡다단함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어떤 시장경제냐 "하는 것은 아예 문제로서 제기조차 되지 않는다. 낡은, 냉전적 흑백이분법이다. 이런 이항대립적인 낡은 시각과 색안경을 쓰고서, 어떻게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조화를 추구하고, 사회적 시장경제와 사회국가를 기조로 하는 제헌 헌법의 이념과 정신이 눈에 들어 오겠는가. 확실히 제헌 헌법은 뉴라이트에게 가시같이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대안 교과서>는 그 머리 부분 "책을 내면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바로 쓰다"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태어나는 역사적 과정에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 그것은 이 국가가 인간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기에 적합한 , 지금까지 알려진 한 가장 적합한 ,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 p. 6)

즉 <대안교과서>는 대한민국이 태어나는 역사적 과정을 보면 이 국가가 단지 시장경제가 아니라, 자유시장경제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로 놀라운 주장이 아닐수 없는 데, 그래서 이제 이영훈의 책을 살펴 볼 차례가 됐다.

이영훈의 <대한민국 이야기>, 대한민국 국제의 기본은 자유시장체제다?

이영훈은 <대안 교과서>의 책임 편집자이면서 뉴라이트 역사관의 대표적인 주창자다. 그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그의 책 <대한민국 이야기 > ( 기파랑, 2007)에서 다음과 같은 두가지 주장을 하고 있다.

①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으로 자유시장 체제를 국제의 기본으로 하여 출발하였습니다" (p. 223 )

② "이렇게 대한민국은 일제를 통해 이 땅에 들어온 시장경제체제를 복구하고 발전시켜 오늘날과 같은 번영하는 시장경제를 성취하게 된 것이지요" (p.173 )

이영훈은 어떤 근거로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일까. 먼저 주장 ①의 경우, 그는 제헌헌법의 15조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는 규정을 들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게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이영훈이 근거로 들고 있는 제헌헌법 15조는 자유시장 조항이기는 커녕, 오히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을 이어받고 있는 유명한 '소유의 공공성' 조항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알기에는 제헌 헌법이 자유시장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연구는 본 적이 없다. 헌법 119조를 중심으로 현행 헌법의 자유시장주의적 성격을 주장하는 자유시장주의자들조차 제헌헌법이 자유시장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헌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며 난리를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영훈은 제헌헌법이 자유시장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아전인수적, 견강부회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연구 성과로 볼때 제헌헌법이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조화,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음은 거의 상식에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이영훈은 이를 간단히 묵살한다. 그러고 나서 대한민국이 자유시장 체제를 국제의 기본으로 해서 출발하였다고 주장한다.

이영훈은 더 나아가 주장 ②에서, 대한민국이 오늘날과 같이 "번영하는 시장경제"를 성취하게 된 것은 식민지 시대 일제를 통해 이 땅에 들어온 시장경제 체제를 복구, 발전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서 그가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민법인 것같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민법이 과연 그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보건대, 48년 8.15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의 시장경제 질서가 일제 식민지 지배의 유산을 복구, 발전시킨 것이라는 이영훈의 주장은 중대한 문제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이 주장은 제헌헌법에 기초하여 틀을 세운 신생독립국가 민주공화국의 새로운 경제질서가 갖는 성격을 완전히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국가로 새로이 탄생한 민주공화국의 경제 이념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사회적 시장경제와 사회국가이다. 신경제질서도 기본적으로는 바로 이 헌정 이념에 의해 규율된다. 그리고 이런 헌정체제와 경제질서를 수립케 한 것은 결코 일제 식민지 지배의 유산이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일제에 항거한 민족해방운동 세력이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민주독립 국가를 재건"( 제헌헌법 전문)한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나는 제헌헌법을 놓고 이영훈과는 정면 대립되는 해석을 한다.

제헌헌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하에서 제정, 시행된 조선민사령이 계속 효력을 가졌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이영훈이 지적한대로이며, 법학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우리의 새 민법전은 1958년 2월에야 제정되어 60년 1월부터 시행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민법이 제헌헌법과 전혀 무관하게 효력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제헌헌법 제 10장 부칙 100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 현행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 이는 다시 말해, 식민지 지배 유산으로서 민법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사회적 시장경제와 사회국가이념에 기반한 제헌헌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내에서만 효력을 가짐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영훈은 식민지 지배 유산으로서 민법이 있음으로써 대한민국이 "번영하는 시장경제"를 성취할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주장의 근거가 뭔지는 모호하다. 그는 이 문제에도 여전히 논증 부담을 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시장 체제를 국제의 기본으로 하여 출발하였고 이 자유시장 체제를 복구하고 발전시킴으로써 "번영하는 시장경제"를 성취하였음을 논증하려고 하는 뉴라이트의 기수 이영훈 그리고 그가 책임편집자가 되어 만든 <대안 교과서>의 노력 앞에서 민주공화국의 제헌헌법은 "불편한 진실"의 벽으로 굳건히 서 있다. 그가 앞으로 이 제헌헌법이라는 높은 벽을 어떻게 넘어 설수 있을지, 그것이 일제 식민지 지배의 유산임을 어떻게 논증할 수 있을지 자못 기대된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가 이 벽을 넘기는 무척이나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그는 민족주의와 민중주의, 그리고 내재적 발전론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고 탈민족주의- 탈민중주의적인 자유주의 사관, 개인주의사관(그는 이를 '문명사관'이라고 부른다)으로 갈아 탔는데( <대한민국 이야기>, 제 2장 ;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1, 제 1부 1장 왜 다시 해방전후사인가, 책세상, 2006), 그럼으로써 그가 제헌헌법도 같이 태우는 꼴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헌헌법, '불편한 진실' 대 '오래된 미래'

민주공화국의 헌정적 기초를 정초한 제헌헌법은 한국근현대사의 탈민족주의적이고 탈민중주의적인, 보수적 전유를 추구하는 뉴라이트에만 벽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헌법 119조의 경제 민주화 조항을 삭제하고 이를 전면적으로 시장화하려는 세계화 시대의 자유시장주의자들, 아니 고삐풀린 정글 자본주의자들에게 있어서도 넘기 어려운 높은 벽이 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제헌헌법은 48년 이후 87년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칼질을 당하는 풍상을 겪었다. 그러나 소유의 공공성,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와 민주적, 사회적 공화국이라는 영혼마져 빼앗긴 것은 아니었다. 제헌헌법은 "그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인 반면, 시민과 노동의 열린 연대로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보편적 복지국가의 새 희망을 열려는 "우리들"에게는 공화국의 희망으로, '오래된, 열린 미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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