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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보다 더 무서운 한중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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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미FTA보다 더 무서운 한중FTA [창비주간논평] '조용한 협상'으로는 중국 이익만 관철된다
지난주 서울시민은 주민투표를 치렀다. 형식은 무상급식에 관한 의사를 묻는 것이었지만, 정작 관심의 초점은 오세훈 시장과 박근혜 의원 측의 힘겨루기가 아니었나 싶다. 주민투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서울시는 물론 나라 전체가 곧바로 권력투쟁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게 생겼다.

정치적 소용돌이는 국가전략과 주요정책에 대한 토론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영역에서 신중한 토론을 거쳐 협력적 균형의 상태를 찾아야 할 사안들이 갈등과 권력투쟁의 대상으로 비화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통상 분야는 이해득실의 계산이 중요하다. 이런 문제에서조차 권력 핵심부에서 갑자기 결단을 내리고 그렇게 해서 발생한 정책 실패의 부담을 국민과 정책실무자들이 뒤집어쓰는 경우가 많다. 한미FTA 비준이 여전히 분열과 갈등의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는 가운데, 이제 한중FTA의 '조용한 충격'이 다가오고 있다.

한미FTA보다 큰 충격이 다가온다

한중FTA는 2010년 5월 산·관·학 공동연구를 마쳤으며 2010년 9월 정부 차원에서 국장급 사전협의를 진행했다. 일정한 흐름이 가시화된 것은 2011년 5월 22일 도쿄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다. 여기서 양국 정상은 한중FTA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는 점에 공감하고, 향후 추진방향을 협의하기로 결론을 냈다. 중국 측은 한중FTA의 정식협상 개시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과의 비공식 협의는 외교통상부가 주도하는 가운데 2011년 7월부터 한중FTA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시민사회와 민간단체들이 설마 하는 사이에 '기존의 FTA 추진의 연장선상에서' 공식협상 개시의 사전작업이 이미 시작된 것은 아닌지 싶다. 또 한번 어느날 덜컥 중대한 결정이 이루어져버릴까 걱정이다.

한미FTA에 비하면 한중FTA는 상대적으로 침묵과 무관심 속에 있다. 그러나 한중FTA 충격의 강도는 한미FTA보다 훨씬 강할 수 있다. 2010년을 기준으로 할 때, 미국과의 교역규모는 수출액 498억 달러, 수입액 404억 달러지만, 중국과의 무역규모는 수출액 1168억 달러, 수입액 716억 달러다. 이미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걱정인 상황인 데다, 협상 결과에 따라 전면적 시장통합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한국과 중국의 대칭적 이익구조

한중FTA는 '죄수의 딜레마'를 연상시키는 협상구조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만큼 제조업 비중이 높지만 서비스 비중은 낮은 편이고, 제조업 경쟁력이 서비스업 경쟁력에 비해 높은 편이다. 제조업 쪽에서는 공격적이고 서비스업 쪽에서는 방어적인 이익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는 대칭적인 이익구조를 갖고 있다. 한쪽의 일방적인 이익과 다른 쪽의 일방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협상 결과는 실현되기 어렵고 그러한 협상은 양국관계에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균형상태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협상'과 '낮은 수준의 제한적인 협상'이다.

중국은 협상 범위의 폭을 제조업으로 한정하는 것이 이익이고 한국은 서비스업까지 넓히는 것이 이익이다. 관세양허에 있어서는 중국은 그 폭을 크게 하는 것이 이익이고 한국은 양허의 폭을 작게 하는 것이 이익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수출용 제품 원자재에 대해서는 광범하게 관세를 환급해주고 있어 중국의 한국에 대한 실질적인 관세율은 2%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공산품 관세율은 6.7%에 이른다. 농림수산물 관세율의 경우 중국은 15%인데 한국은 63% 수준이다. 양국간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대등하게 관세율을 감축하거나 철폐한다면 한국 쪽에 불리하게 가격변동이 생기고 한국의 생산자에게 피해가 발생한다.

물론 산업 내에서도 이익과 피해를 보는 부문·계층이 뚜렷하게 갈린다. 정부 안에서도 산업담당 부처의 판단은 석유화학, 공작·정밀기계, 철강, 전자, 디스플레이, 반도체 부문은 이익을 취하겠지만, 농림수산업, 전기, 섬유, 비철금속, 건설기계, 기계부품, 정밀화학 부문은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한중FTA는 대체로 대기업에게는 이익이 될 수 있지만 농민·중소기업에게는 피해를 가져온다. 그 결과는 사회적 양극화를 가속화하는 것이다.

농업 같은 경우는 한중FTA의 파괴력이 한미FTA 및 한EU FTA에 비해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산 농산물 가격은 중국산에 비해 적게는 1.5배(돼지고기)에서부터 많게는 15배(고추)까지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중국의 산둥(山東)성이나 동북지역은 한국의 국내산 농축산물과 동일한 품종·품질의 생산이 가능한 곳이다. 농산물 공급의 불안정과 불안전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중FTA는 한국 농업의 기반 자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 전면적 식량의존 같은 사태로까지 가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형국이 된다.

▲ 지난해 9월 충북지역 농민단체들이 한중FTA 저지 투쟁을 선포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피해는 확실, 이익은 불확실한 포괄적 협상

한중FTA의 이익을 주장하는 이들은 기존에 한국이 추진했던 것처럼 '수준 높고 포괄적인 협상'을 통해 중국의 서비스시장이나 지적재산권 분야에 진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분야는 중국의 개방도가 낮으므로 한중FTA를 통해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시장은 매우 정교한 재산권제도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제도적 투명성이라는 측면이 취약하다. 중국이 비상품 분야에 대해 대폭 양보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지만, 양보를 받아낸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이익을 실현해낼 수 있을지는 보장받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중국 내부가 매우 불확실한 영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형식상으로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협상'이 되어도 현실에서는 상품 분야에서만 개방폭이 커지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말해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협상'은 피해는 '확실'하지만 이익은 매우 '불확실'하다.

이렇게 보면 남는 것은 '낮은 수준의 제한적인 협상'뿐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어떤 의도를 품고 있을까? 지금까지 중국의 FTA 정책을 연구한 결과들은 대체로 중국이 경제적 고려보다는 외교안보적 고려를 중시하여 FTA를 추진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중FTA 역시 외교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면, 중국은 경제적 쟁점을 최소화하면서 협정 체결 자체에 의미를 두는 '낮은 수준의 제한적인' FTA를 선호할 수 있다.

물론 협상 과정에서 중국의 산업과 통상부처 전문가들은 경제적 이익을 적극 주장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정부와 민간이 함께 끈질긴 자세로 분투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처럼 '조용한' 상태로는 한중FTA가 중국의 일방적 이익이 관철되는 틀로 가버릴 수도 있다.

새로운 지역질서 구상이 뒷받침되어야

마지막으로 몇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그렇다면 경제적 쟁점을 축소하고 협정 체결 자체를 중시하는 '낮은 수준'의 한중FTA는 우리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중FTA가 동아시아의 공동번영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한중 우호관계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한중관계를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세계질서에 어떻게 위치지울 것인가. 미국은 과잉소비하고 동아시아는 중상주의적 수출경쟁에 몰두하는 세계경제체제가 이제 더이상 작동하기 어렵게 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한중FTA는 새로운 동아시아 지역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가.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한중FTA는 이러한 물음에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중FTA의 치명적인 결함은 새로운 동아시아 지역 형성이라는 원대한 이상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중국의 의도는 어느정도 분명한데, 우리는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침묵 속에서 충격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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