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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단일정당 못 만들면 한나라당에 필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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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복지국가 단일정당 못 만들면 한나라당에 필패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1>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복지가 대세다. 무상급식 논란이 촉발시킨 '복지' 담론은 국민들이 낸 세금의 쓰임새와 국가재정,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둘러싼 백가쟁명의 각축장이 됐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코앞에 둔 정치세력들에게는 비껴갈 수 없는 소용돌이인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한정된 국가재정으로 무차별적 시혜를 베풀고 환심을 사려는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이 결코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서 논란은 한층 확산됐다. 감세, 작은 정부, 시장 만능주의의 경제정책을 신념으로 내면화시킨 보수 정부로서는 복지라는 말 자체가 달갑지 않음이다. 하지만 복지 소용돌이는 여권의 미래권력들 사이에 균열을 냈다. '복지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달리 박근혜 의원은 '한국형 복지'를 내걸고 이슈 선점에 속도를 붙였다.

반면 복지 담론은 야권 전반을 아우르는 우산이다. '뭉쳐야 산다'는 지상명제를 받아든 야권에선 연대·연합의 질서로 '복지동맹'을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원론적 교감만 오갈 뿐 연대·연합의 방법론에서는 동상이몽이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복지국가 정치포럼'과 함께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 및 학계·시민사회 인사들을 두루 만나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을 모색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가 진행하는 연쇄 인터뷰의 첫 손님은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인 이상이 제주대 교수다. <편집자>


▲ 이상이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공동대표(좌)와 김윤태 고려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올해 안에 복지국가 단일정당 만들자"

이상이 교수는 오래전부터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극복할 대안적 모델로 '역동적 복지국가'를 주장해 온 '복지국가 전도사'다. 10%에 불과한 노동조합 조직률, 강력한 진보정당의 부재 등 유럽의 복지 선진국들과 다른 우리나라의 제약을 한계로 바라보는 정태적 시각을 넘어서자는 취지에서 '역동적' 복지국가다. 또한 국가의 전략적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복지'의 확충이 아니라 '복지국가'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제도적 틀은 만들어졌지만 보편적 복지가 너무 취약하다"고 했다. GDP 2만 달러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비의 비중이 8.5%에 묶여 있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다. 이 교수는 되레 "복지국가가 있어야만 노조 조직력도 높아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90%에 달하는 미조직된 노동자들이 사회적 약자"이며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복지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부담자'가 되는 보편적 복지를 구현하기 위해선 '세금'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전제다. 이 교수는 "'내가 내는 세금은 나와 무관하다'는 반(反)복지의 덫에 빠져 있다"며 "이를 극복하려면 정당과 시민사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최소한 2011년까지는 정당과 시민사회세력이 연합해야 한다"며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정체성을 가진 (단일) 정당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최근 복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비등해지고 정치권에도 복지 담론이 만개한 현상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국가발전 전략이 빠져있다는 점에서 이 교수에게 아직은 만족스러운 수준이 못 된다.

이 교수는 우선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 등 민주당 정치인들의 경우 "당의 입장으로 정리된 게 아니라 개별 정치인이 정치적 도구로 채택한 정도"라며 "복지국가 담론을 일부 논의하는 초보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이 지금대로 총선, 대선까지 가게 되면 한나라당을 못 이긴다"며 "과감한 좌클릭을 통해 중도진보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국민참여당에게는 "사회투자국가론의 오류를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이 교수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회투자국가론'은 "보편적 복지 확대라는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고 사회투자를 해야한다고 내세웠기 때문에 진보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심지어 사회투자국가론이 "복지국가로 발전하는데 명백한 걸림돌이 됐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비민주 진보대통합' 노선에 대해선 "도로 민주노동당으로 환원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절하했다. 특히 민주당을 배척하면서 한미 FTA를 찬성하고 복지국가 담론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국민참여당을 진보대통합의 범주에 넣은 것은 "정치공학"이라고 일갈했다.

결국 야권 재편과 관련한 이 교수 주장은 '다수파 전략'을 채택하라는 게 결론이다. '정통 진보'의 소수파 전략이 아닌, '중도 진보'의 다수파 전략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정당은 시민적 토대 위에서 총선, 대선에서 정통 복지국가 노선을 내걸고 승리할 수 있다"며 "올해 1년 동안 전국적 수준의 풀뿌리 시민정치 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김윤태 교수가 진행한 이상이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박근혜, 경제는 그냥 놔두고 복지만 확충하자고?"

김윤태 : 요즘 복지국가 담론이 인기다. 정치권에서 여러 사람들이 복지를 주장하고 있다. 가장 언론의 관심을 끈 인물은 한나라당의 박근혜 의원이다. 한국형 복지 구상을 밝혔다. 정치권에서 복지국가, 복지 논의가 많이 나오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이상이 :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에게 이득이고 우리사회의 발전에도 유익하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의원이 자신의 복지 구상을 '한국형 복지국가'라고 명시했고, 생애주기별 사회서비스 제공을 통해 복지가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예방적이고 선제적인 복지를 의미하는 사회투자 개념까지 포함해서 폭 넓은 복지담론을 공세적으로 제기해 준 데 대해서 고맙게 생각한다. 특히 박근혜 의원의 경우, 한나라당이라는 보수정당에서 복지를 확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어서 오히려 더 반가운 면이 있다. 다만, 한 가지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복지와 복지국가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는 데 대한 개념적인 혼선이 그것이다.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것과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복지는 협의의 정책적 개념으로 복지정책 또는 프로그램들의 조합이나 패키지를 의미하는 것이고, 복지국가는 사회정책과 경제정책, 조세재정정책까지를 다 포함하는 포괄적인 국가모델이다.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서 얘기하는 복지는 협의의 정책적 개념으로 기존의 선별적 복지를 중심으로 하는 '복지의 일부 확대'이므로 복지국가와는 개념적으로 다르다. 혼란이 없어야 한다.


김윤태 : 복지는 진보진영의 담론으로 알려졌는데, 보수진영의 박근혜 의원도 복지를 말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상이 : 박근혜 의원은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꿈은 복지국가"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복지라고 했다가 복지담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언론에서는 '복지국가 담론'이라고도 하더라. 그런데 박근혜 의원은 실제로는 '복지' 이야기만 했다. 그리고 경제정책, 조세정책, 재정정책과 복지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에 대한 얘기는 한 마디도 없다. 박근혜 의원은 복지와 복지국가를 구분해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의원의 '복지'에 대해 확실하게 평가해 줄 수 있는 부분은 복지 확충에 대한 신념이다. 이것은 인정한다. 그래서 국민적 지지가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복지의 확대'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존재해 왔던 기존의 선별적 복지를 중심으로 하는 복지 프로그램의 일부 확대, 그리고 적극적 복지를 의미하는 사회투자전략의 일부 도입이다. 후자는 이미 참여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제시하였던 사회투자국가론과 같은 '버전'이다. 아동보육과 교육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인적자본 확충 논리'이다. 이게 소위 말하는 '보편적 복지 없이' 추진되는 영미식의 사회투자, 즉 신자유주의 '제3의 길'이다. 지난해 12월 20일의 공청회에서는 박근혜 의원이 직접 '선제적이고 예방적인 사회투자'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재원을 아끼고 낭비가 없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회투자의 요소들이다. 결론을 짓자면, 박근혜 의원의 복지 또는 복지국가 담론의 내용은 기존의 선별적 복지의 확충에 더해 사회투자 복지의 일부 도입 정도로 개념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이것을 복지국가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박 의원의 복지가 경제정책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특히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공정한 경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여당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자신의 복지구상과 어떻게 연관 지을 것인지, 조세재정정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이런 부분들이 빠져 있다. 그래서 박근혜 의원의 복지담론은 복지확충론 정도에 그칠 뿐, 포괄적인 '국가 발전 모델'로서의 복지국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이상이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이상이 대표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박근혜 의원의 '한국형 복지',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이상이 : 역동적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경제와 복지를 유기적 일체로 본다. 박근혜 의원의 복지론, 혹은 복지국가론은 경제와 복지를 대립적 이분법으로 보는 기존 보수진영의 관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박 의원도 경제는 경제대로 따로 보고, 복지는 복지대로 따로 보는 것은 확실하다. 두 대립물 중에서 경제는 가만히 놔두고, 복지가 부족하니까 일부 확충하자는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와 복지는 한 묶음으로 묶여 있는 유기적 통합체로 본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경제체제의 극복을 의미하는 '공정한 경제'가 없는 복지는 성공하기 어렵고,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 없이는 우리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없다.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은 긴밀하게 관련돼 있는 유기적 통합체인 것이다. 여기서 조세재정정책의 매개적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10.3 전당대회에서 민주당도 보편적 복지를 당의 강령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박지원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보편적 복지국가가 민주당의 노선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직은 선언적인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종합적인 국가 발전 전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복지 강화' 의지를 뚜렷하게 표명한 것 정도로 이해된다.

이것이 한나라당과 다른 것은 기존 선별적 복지의 확대뿐만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포함됐다는 것 정도다. 이는 다른 버전의 복지확충론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당내 일부 정파의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정당 전체로 보면, 한나라당의 복지와 민주당의 복지국가 담론은 '보편적 복지가 있다, 없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지, 당 차원의 제대로 된 포괄적인 복지국가 전략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나마 그런 틀을 갖고 있는 게 진보신당의 복지국가론 정도인데, 그 쪽에는 노동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오히려 '시민적 연대'를 강조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전체 그림의 실천적 함의를 흐리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유시민식 사회투자국가론, 복지국가의 걸림돌"

김윤태 : 진보신당이 주장하는 '노동이 있는 복지'와 '역동적 복지국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상이 : 거의 비슷하다. 그 쪽은 '노동이 있는 복지'를 얘기하는데, 저는 이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복지가 있는 노동'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복지가 없으면 노동의 확장이나 단결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에 노동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신당은 노동 없이 복지국가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율이 10% 남짓밖에 안 되기 때문에 복지국가가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노조 조직률을 이유로 복지국가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복지국가론'을 내 놓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저는 한국의 조직된 노동이 10%밖에 안 되고, 그 10%도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조직돼 있는 이 현실은 복지국가로 가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제가 노동 없는 복지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노동 있는 복지'를 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여기서의 '노동'은 노동자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10%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90%에 달하는 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다. 또 이 사람들은 지역과 시민사회에서 서민이나 시민으로 불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기존의 노동운동은 이 부분을 포괄하는 데 실패했다. 앞으로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을 더욱 강화해 나가면 이게 가능해 질 것인가? 저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국가의 제도적 복지와 시장개입을 통한 '복지 있는 노동'이라고 본다. 즉 국가가 보편적 복지를 제도화함으로써 미조직 노동이 조직될 수 있는 계기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복지국가가 있어야만 노동의 조직력도 높아질 수 있다.

▲ 김윤태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강력한 노동조합이나, 스웨덴처럼 80% 이상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없으면 복지국가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 현재와 같이 민주당 몇몇 정치인들이 관련된 복지국가를 추진하는 것은 지나치게 상층, 엘리트 중심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최장집 교수도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상이 : 그 부분에 이견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이 10%밖에 안 되는데, 유럽 국가들처럼 50%, 혹은 70~80%가 돼야 노동에 기반을 둔 정당이 만들어지고, 그 정당을 통해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오래된 과거의 논리다. 스웨덴에서는 이미 80년 전에 있었던 방식이다. 80년 전의 스웨덴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를 향한 열망이 어디에서 주로 나오고 있는지 찾아보자. 현대 자동차나 현대 중공업 다니는 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인가, 아니면 거기 다니는 또는 중소기업 다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인가? 누가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이 강할까. 누가 사회적 약자이고, 누가 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나.

김윤태 : 대기업 노조의 노동자들은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이 적다고 보는가?

이상이 : 그렇다. 그 사람들은 회사에서 기업별 복지에 의존하고 있고, 강력한 조직력을 통해 임금협상이나 단체협약에서 지속적으로 자기 지분을 따오고 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이대로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

김윤태 : 다른 얘기를 해보자. 진보 개혁 진영에서도 진보신당 이외에도 민주노동당에서도 복지국가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소위 노무현 정부에 핵심적으로 참여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사회투자국가'를 얘기했다. 천정배 의원도 참여정부 때 법무부장관으로 참여했는데, 지금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얘기했다. 소위 자유주의 진영의 복지국가 담론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상이 : 저는 진보적 자유주의는 복지국가로 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정치세력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진보적'이라고 하는 데 강조점을 둬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자유주의자들은 그렇게 진보적이지 않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대부분 중도적, 내지는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이다. 저는 국민참여당을 이끌고 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진보적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분 스스로 자신을 진보적 자유주의자라고 말씀했는지는 모르겠다. 스스로 자유주의자라고 얘기한 것은 그 분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분이 만약 진보적 자유주의자라고 스스로 주장한다면 그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최소한 참여정부 시절에 제가 봤던 그 분의 이력은 '진보적'이라는 용어와는 거리가 멀고, 정치적·경제적 의미에서 자유주의는 맞는 것 같다.

김윤태 : 유시민 전 장관의 어떤 점이 진보적이지 않다는 말씀인가?

이상이 : 그 분이 주장해왔던 사회투자국가론 자체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사회투자국가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보편적 복지의 요소가 없었고, 복지국가의 모습도 아니었다. 사회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복지의 일부 확대'는 맞다. 그것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도 근로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노동시장으로 다시 사람을 밀어 넣기 위한 수단 또는 기회 제공으로서의 사회투자였다. 이것을 추가적인 것으로 하면 좋은데, 그 분은 우선순위를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는 데 두지 않았다. 힘 있는 장관으로서 사회투자를 강력하게 내세웠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의 제도화 등은 국가적 관심사에서 오히려 멀어져 버렸다.

김윤태 : 유 전 장관은 재임 시절 기초노령연금 도입하고 보육 예산을 확대했다고 스스로 얘기한다.

이상이 : 아동과 보육 예산의 확대는 사회투자국가론의 한 내용이다. 그리고 주무장관으로서 아동복지에 집중한 것은 잘 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보육은 당시 청와대와 여성가족부의 일이었고, 참여정부에서 처음으로 실시되었던 보육료 지원이라는 사회서비스 정책의 성과는 유시민 전 장관의 것이 아니다. 실질적 공과는 김용익 당시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위원장(참여정부 사회정책수석)과 여성가족부 장관들의 것이다. 그리고 기초노령연금은 유시민 전 장관이 오히려 협소화시켰다고 본다. 당시 한나라당이 하자는 대로 했어야 했다. 한나라당은 '보편주의' 기초연금제로 가자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청와대 사회수석실과 국무총리실의 이견과 진보적 시민사회의 반대를 뚫고 지금의 방식대로 유 전 장관이 해 놓은 것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많아야 8만 원, 보통의 경우 한 달에 3-4만 원 정도의 푼돈을 받도록 해 놓은 것이다. 말로만 기초노령연금제였다. '경로의존성(한번 시작한 제도는 나중에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도 바꾸기 힘들다는 의미)'이라는 게 있다. 애초에 시작할 때 잘 했어야 했다.

김윤태 : 유시민 전 장관의 노력이 오히려 보편적 복지국가로 발전하는데 걸림돌이 된 것인가?

이상이 : 명백한 걸림돌이 된 것이다. 그때 시민사회 진영에선 총리실 사회협약기구를 통해 유 전 장관의 프로그램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었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나 한명숙 당시 총리도 반대했었다. 그런데 유 전 장관이 자기 힘으로 밀어붙여서 저렇게 간 것이다. 지금 이게 얼마나 큰 족쇄인가.

유 전 장관이 저질러놓은 아주 엄청난 업보 중 하나가 노인장기요양보장제도다. 이 제도 역시 설계를 할 때 잘 했어야 했다. 공적 재정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야 하는데, 월 보험료 3000원 이런 식으로 시작했고, (일자리) 공급 체계를 전부 민간에 맡기는 바람에 60만원짜리, 80만원짜리 요양보호사, 이렇게 아주 형편없는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120만원에서 15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적정한 사회 서비스 일자리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사회 서비스 일자리가 지금 완전히 허드렛일이 된 것이다. 아르바이트처럼 가서 청소나 해 주는 희한한 일들을 하고 있지 않나. 이런 것은 전형적인 정책 실패인데 그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안 지고 있다.

▲ 이상이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민주당의 정동영 의원은 역동적 복지국가를 얘기했고, 천정배 의원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얘기했다. 그 둘은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와 일맥상통하고 가까운 점이 많은 것인가?

이상이 :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상당부분 정치적으로 벤치마킹해 간 것이다. 정동영 의원 뿐 아니라 천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복지국가라는 담론을 정치적으로 상당부분 벤치마킹해 갔기 때문에 상당한 유사성은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확고하게 복지국가 담론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내부의 정파 모두가 확고하게 입장 정리를 한 것이 아니고, 개별 정치인들이 하나의 정치적 도구로 채택한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동영 의원이든, 김근태 전 의원이든, 천정배 의원이든 스스로의 복지국가론을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포함하는 자신의 버전으로 더욱 발전시켰으면 좋겠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당당하게 '내 복지국가론이 더 우수한 복지국가'이라며 정치 무대에서 경쟁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복지국가가 전문가들의 담론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복지국가는 시민적 의제, 또는 국가적 의제로 발전하고 확장되어야 한다.

"DJ-노무현, 복지 업적 있다. 그러나…"

김윤태 : 보편적 복지국가 내지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강조하고 있는데, 김대중 정부 때 생산적 복지나 노무현 정부 때 사회투자국가와는 상당히 다른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은데, 김대중, 노무현 정권, 민주정부 10년간 복지정책이 많이 발전했다고 하는 평가도 있다.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이상이 : 김대중 정부는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고 난 후, 50년 만에 정권 교체를 한 정권이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에 따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제 받은 정권이었다. 그렇다 보니 굉장히 많은 사회적 약자, 실업자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나타나는 등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본격화됐다. 당시는 누가 대통령이 됐더라도 복지를 확충할 수밖에 없는 외부적 조건이 만들어졌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복지 수요가 폭증한 때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복지 수요의 폭증, 이에 대한 제도적 대응이 요구된 시대였다. 사실 김 전 대통령은 요구된 것보다 훨씬 잘했다고 생각한다. 저는 복지와 관련해서 가장 걸출한 대통령 한 분을 뽑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뽑을 것이다.

일단 4대 사회보험의 제도 틀을 완성했다. 1인 이상을 고용하는 모든 사업장까지 다 포괄하도록 4대 사회보험의 적용을 확대했다. 가장 빛나는 업적 중의 하나는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출범시킨 것이다. 그 전에는 수백 개의 의료보험 조합들이 산재해 있었다. 이것을 하나로 통합해서 영국이나 스웨덴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가의료보장)처럼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적의료보장제도, 즉 단일 보험자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영국의 의료보장에 버금가는 좋은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성과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로 전진해간다면 아마 국민건강보험이 하나의 전범이자 선례가 될 것이다. 굉장히 소중한 복지국가의 경험을 만들어 준 것이 국민건강보험의 출범이다. 이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에 있어서 제도적 틀로만 보자면, 소위 유니버설 커버리지(universal coverage), 즉 모든 인구를 제도 속에 포함한다는 측면에서 보편주의를 달성했다.

국민건강보험은 그렇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복지제도나 서비스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많은 사각지대가 있다. 지금도 당장 실직했을 때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50%밖에 안 된다. 국민연금도 30%가 연금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지 않다. 사각지대가 광범위하다. 보장성 수준이나 소득 대체율도 굉장히 낮은 편이다. 그래서 보편주의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많이 부족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틀을 만든 것은 김 전 대통령의 큰 업적이다.

또 하나의 업적을 들자면, 소위 '선별적 복지'에서의 업적인데,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이것은 선별적 복지의 획기적인 질적 변화다. 생활보호법은 국가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시혜적 성격인데 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기초보장 수급권 개념을 넣어서, 국가 지원을 '국민의 권리'로 인정해준 것이다. 이제 생활보호 대상자가 기초보장 수급권자가 된 것이다. 일정한 조건에 달한 가난한, 어려움에 처한 국민은 국가로부터 응당 사회적 기본권을 요구할 권리를 가짐을 명시했고, 실제로 그렇게 해 줬다.

김윤태 : 노무현 정부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이상이 : 복지에서 노무현 정부의 성과라면 두 가지다. 하나는 김대중 정부가 깔아놓았던 제도적 복지를 잘 안착시켰다. 이를 제대로 하려다 보면 대상자가 많이 늘어난다. 그러면 복지 재정을 늘려야 하는데, 실제로 참여정부는 복지 재정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였다. 노무현 정부는 전년 대비 평균 10% 이상으로 복지 재정을 키웠었다. 두 번째는 사회서비스의 개념을 도입했던 것인데, 보육의 사회화가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끝날 때쯤에는 소득 기준으로 하위 50%의 아동에게까지 보육료를 지원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 이명박 정부에서 하위 70%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경로의존성'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보육료 지원 정책을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 시작할 때는 저항이 대단하였지만, 그 저항을 뚫고, 말하자면 재정부의 반대를 뚫고 성공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중요한 성과였다. 그리고 복지와 관련된 사회적 기업을 도입했다. 법률적 지원에 따라 사회적 기업이 꽤 많이 생겼고,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졌다.

김윤태 :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복지 제도의 틀이 만들어지고, 확대가 됐다. 복지 재정도 많이 늘어났다. 그러면 한국은 이제 복지국가라고 말할 수 있나?

이상이 :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 GDP 대비 사회복지비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낮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인데, 보통 유럽 선진국들은 1만 달러 시절일 때 다들 사회복지비가 GDP 대비 15%를 넘어갔다. 그런데 우리는 2만 달러임에도 불구하고 8.5%에 묶여 있다. 그래서 복지국가라고 말하기 어렵다.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제도적 틀이 만들어졌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사실, 이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민주정부 10년이 아니었으면 이 틀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의 성과 위에서 4대 사회보험을 확대하고 내실을 기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틀은 만들어져 있지만 아직 복지국가라고 말할 수는 없는 그런 상황이다. 둘째, 보편적 복지가 너무 취약하다. 복지국가라고 말하려면 보편적 복지가 상당 수준으로 돼 있어야 한다.

김윤태 : 우리나라가 복지국가의 제도적 틀은 마련했지만 선별적 복지의 성격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아직은 복지 국가라고 평가하기 충분치 않다는 얘기인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미국이나, 일본, 영국 등 자유주의적 복지국가라고 얘기하는 나라들처럼 시장에 복지가 맡겨 있는 그런 수준으로 보는 것인가? 그런 나라와는 다르게 스웨덴처럼 보편적 복지나, 보편적 재정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 것인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모델이 미국이 아니라 스웨덴이 돼야 한다는 얘기인가?

이상이 : 미국도 사회복지비 비율만 따지면 GDP의 16%나 된다. 사실, 미국은 잔여적 복지를 우리보다 잘한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를 보장해주는 메디케이드(Medicaid)라고 의료보호제도가 있다. 전체 미국인의 14%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3.2%에 대해서만 의료보호를 하고 있다. 미국의 14%에 비하면 엄청나게 규모가 작다. 이런 수준이다. 선별적 복지 수준으로 보면 우리는 미국보다 못하고, 보편적 복지가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유럽이 갖고 있는 것을 못 갖고 있다. 우리의 복지 수준이 굉장히 뒤떨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은, 선별적 복지를 보완하고 확대하겠다는 한나라당의 노선도 참고해야 하겠지만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야권과 진보세력의 노선을 우선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김윤태 : 결과적으로는 유럽형이나 스웨덴식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인가?

이상이 : 그렇다. 스웨덴이 대표적으로 그런 나라다. 보편적 복지가 촘촘하게 생애 전 과정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적용되도록 깔려 있다. 그런데 가끔 보편적 복지만으로는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몸이 많이 아픈 사람들이나 일부 노인들처럼 복지 수요가 많은 사람들은 보편적 복지만으로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지방정부가 자산조사를 통해 선별적 복지인 '공적 부조'를 시행한다. 이것이 2차 안전망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가 잘 조합이 돼 있다.

"국민들은 기꺼이 세금 낼 준비가 돼 있다"

김윤태 : 한국에서 일부 사람들은 스웨덴처럼 복지를 많이 제공하면 열심히 일하려는 의지를 떨어뜨리고, 또 세금이 올라가게 돼 기업에 부담을 주면 경제가 약화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스웨덴은 복지도 잘 된 나라지만 경제도 꾸준히 성장하는 나라 아닌가? 그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이상이 : 그 비판도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최근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을 보자. 남유럽 국가들도 복지국가다. GD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의 비중이 20%를 넘는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도 꽤 잘 돼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가 맞다. 그런데 남유럽은 성장도 못하고 있고, 국민들은 그 복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현금 지급 위주의 복지로 갔기 때문에 그렇다. 남유럽 국가들은 연금이나 고용보험에서 받는 현금급여의 소득 대체율이 너무 높다. 연금의 경우 너무 일찍 돈을 주고, 실업급여의 경우 너무 오래 돈을 준다. 그래서 '복지병'이 생길 수 있다는 보수파의 비판은 상당한 논거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남유럽 방식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남유럽은 일자리가 크게 부족하다. 실업률이 높다. 일자리를 만드는 복지를 안 하고 현금 주는 복지를 했기 때문이다. 일자리 복지는 전 생애에 걸친 사회서비스 복지다. 이것을 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이 필요로 하는 사회서비스에 중점을 둬야 한다. 출산, 보육, 교육, 의료, 노인요양, 이런 것들이 사회서비스다. 이것은 엄청나게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일자리의 보고다. 그런데 남유럽에서는 사회서비스를 보편주의로 제도화 하는 것을 안했다. 아주 취약하다. 보육은 누가 하느냐? 엄마가 애를 키운다. 여성이 아이 키우고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게 남유럽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낮다. 그리고 여성이 일을 하려고 해도 일자리가 없다. 사회서비스가 공적으로 제도화되는 대신에 시장화 내지 가족화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유럽의 경우, 사회서비스가 보편주의로 잘 제도화 돼 있다. 그래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공무원이나 준공무원, 민간이 하더라도 공익 법인이 운영하니까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진다. 국가가 인건비를 보조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의 경제활동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현금 지급 형의 복지에서 소득 대체율이 높지 않다. 국민연금도 돈을 많이 안주고 실업을 당해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해 일자리로 조기에 복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 대신, 사회서비스에는 굉장히 많은 돈을 들인다. 보육, 교육, 의료, 요양서비스의 질이 세계적으로 높다. 그 높은 서비스의 질을 가난한 사람이거나 부자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누리는 것이다. 상향평준화된 사회서비스를 온 국민이 누리니까, 거기에 얼마나 많은 인력이 투입되겠나. 그 투여되는 인력은 경제사회의 생산성으로 직결된다. 스웨덴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 있고 복지가 튼튼하니까 경제위기 상황이 오더라도 복지가 경기순환에서 경제 안전망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복지에는 경기 자동조절 기능이 있다. 경제 사이클이 불황으로 들어가더라도 복지가 경제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잘 하는 나라가 제대로 된 복지국가다.

▲ 이상이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남유럽은 현금 지원 위주로 하다 보니 복지 지출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못 주지만, 북유럽은 일자리를 만드는 복지를 만들어서 경제에 도움이 되는, 성장 친화적인 복지국가가 됐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조세 부담률이 매우 높다. 한국이 스웨덴 모델을 지향했을 때 높은 조세 부담률을 국민이 지지해 줄 것으로 보는가?

이상이 : 국민들이 지지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거 민주정부 때 국민 의식조사를 해보면, 국민이 복지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복지를 위해 기꺼이 세금을 부담할 의사가 있느냐고 하면 그렇다고 하는 비율이 별로 높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5월, <한겨레>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70%가 '내가 혜택을 보는 보편적 복지라면 기꺼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고 했다. 저는 그런 국민들의 의식의 변화에 주목한다. 10년 전, 5년 전에는 '복지'라고 하면 아주 가난한 사람들 돕는 복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세금을 내는 중산층 이상의 국민들은 복지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세금 내는 걸 싫어했다.

지금은 보통 사람들을 위한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는 국민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를 10년을 겪으면서 국민들, 특히 중산층의 삶이 불안해졌다. 그러다보니 복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낼 준비가 조금씩 돼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김윤태 : 복지국가를 우리가 만들어야 하고,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금을 인상해서라도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것을 목표로 내걸고 한국의 정당, 정치세력이 선거에 나간다면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이상이 : 가능하다고 보고, 가능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유럽의 경험에서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에서는 세율을 다 높였다. 최고 소득세율이 최대 70%까지 가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최고 소득세율은 35%다. 일반정부의 재정 규모를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는 GDP의 31% 정도인데, 북유럽 국가들 평균은 55%이고, 유럽연합 국가들의 평균은 51%, OECD 국가들 평균은 45%다. 일반정부의 크기를 키워야한다. 지나치게 '작은 정부'를 벗어나기 위한 국민적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저는 이것을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시대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복지국가를 위한 시민정치운동이다.

지금 당장 대폭적인 증세를 주장하면 즉각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저도 의문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상당수의 보통 국민들이 복지, 특히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누군가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더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의 관점에서 몸에 밴 인식, 즉 '내가 내는 세금은 나와 무관하다'고 하는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반(反)복지'의 덫에 빠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두 가지 축에서 다 나타나야 한다고 본다. 하나는 정당들이 노력해야 하고, 두 번째 시민사회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 스스로가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세금을 기꺼이 더 내겠다고 말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이 의료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준다면, 나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그 돈의 일부를 국민건강보험료로 더 내겠다고 인식하는 보통 국민들, 중산층, 서민들이 많아져야 한다. 이것을 달성하는 데는 정치권의 노력만으론 부족하다. 풀뿌리에서부터 그런 의식이 확산돼야 하기 때문에 저는 풀뿌리 시민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운동이 보통시민의 정치의식을 높이고, 시민들이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도록 결심하게 하는 굉장히 중요한 운동이다. 그래서 제가 시민정치운동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중도진보'의 다수파 전략으로 가라"

김윤태 : 정당 뿐 아니라 시민 사회 세력까지 연합하는 큰 운동이 돼야 한다는 것인가?

이상이 : 그렇다. 최소한 2011년은 그렇게 가야 한다. 이 성과를 가지고 궁극적으로는 정당이 재편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태 : 복지국가 정치운동의 최종 목표는 하나의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인가?

이상이 : 그렇다.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거대한 중도 진보 정당이 필요하다.

김윤태 :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사회당 등이 다 하나로 통합돼야 한다는 말씀인가?

이상이 : 먼저, 저는 담론의 재구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민주당은 지금의 민주당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얘기하고 있지만 다분히 정치적 수사인 측면이 많다. 실제로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당 내부의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 자체의 체질이 복지국가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 저는 그게 '중도 진보' 정당이라고 본다. 민주당이 지금의 모호한 중도 개혁 정당에서 중도 진보 정당으로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 국민참여당의 경우에는 참여정부 때부터 유지해오던 사회투자국가론의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버리고 보편적 복지국가로 와야 한다. 그리고 한미 FTA라든지 참여정부 때 했던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서는 반성적 성찰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기존의 NL이라는 주사파 담론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 문제에 대한 태도를 크게 수정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해야 한다.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것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문제를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 둘은 별개의 문제다. 지금 민주노동당이 복지는 얘기하지만 복지국가 얘기를 잘 안한다. 저는 그래서 지금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진보신당 내부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내지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는 정통 PD 세력도 소위 혁명적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할 것인지, 아니면 복지국가를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의회주의와 다원주의적 입장에서 이를 추진할 것인지, 즉 사회민주주의로 갈 것인지, 아니면 혁명적 사회주의로 갈 것인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서 진보진영에서 넓은 의미의 사회민주주의 세력들은 중도 진보로 합류해야 한다. 결국, 좌클릭을 감행한 새로운 민주당 세력과 보편주의 복지국가 노선을 천명한 모든 진보개혁 세력들이 '중도 진보진영'에 다 모여서 단일정당을 만드는 게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최고로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총선 전에 이뤄지는 게 정답이라고 본다.

김윤태 : 정치적인 얘기를 서너 가지 더 해보겠다. 기존 정당이나 정치세력, 시민사회까지 망라한 정당을 새로 만드는 것이 방법이라고 했는데, 최근 일부 진보진영에서 민주당은 뺀 진보대통합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서울대 조국 교수의 경우 보수, 중도, 진보의 삼각 정치 체제로 재편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상이 대표의 의견은 중도 진보와 보수의 양대 정당 중심의 정치 체제를 염두해 둔 것 같다. 최근 다른 움직임과는 차이가 있다. 어떻게 보나?

이상이 : 보수, 자유, 진보", 이 3구분론은 지금까지 진보진영에서 계속 주장해왔던 것이다. 민노당, 진보신당, 사회당까지 포함해 진보진영에서 논의돼 왔던 틀이다. 민주당을 자유주의 중도로 놓고, 진보와 보수 블록이 있다는 식의 이러한 구분 방식을 사용하면서 자유와 진보는 다른 것으로 차별 짓는다. 그런데 이것은 이른바 소수파를 감수하며 유의미한 역할을 찾겠다는 소수파 전략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것은 진보진영이 지신들이 고수해온 기존의 틀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논리에 불과하다. '현상 유지' 논리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계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역동적 복지국가로 교체하라는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요구로부터 자신들의 기존 입장을 지키기 위한 논리인 것이다.

그리고 조국 교수 같은 분은 학자이자 관찰자로서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기존의 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진보는 통합해야 하고, 자유주의 정당들은 좀 더 진보적으로 '좌클릭'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관찰자이자 연구자로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저는 활동가다. 저는 복지국가 운동가다. 저는 기존의 틀을 깨기 위해 싸움을 할 의지를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조국 교수는 학자이기 때문에 아직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게 차이다. 저의 주된 정체성은 복지국가 운동가다. 제 의견은 기존의 오래된 '3 구분론'으로는 복지국가를 못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4 구분론'이다. 오른쪽에 정통 보수가 있고, 그 다음에 현대 보수주의 이념의 개혁적 보수다. 왼쪽에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있는데, 이것은 중도 진보다. 그 옆에 정통 진보, 즉 혁명적 사회주의가 위치한다. 강경 보수, 중도 보수, 중도 진보, 정통 진보의 네 가지가 '4 구분론'이다. 저는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면 중도 진보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민주당이 좌클릭 해서 옮겨 온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민주당과 사회민주주의 그룹이 주도하는 진보가 만나서 '중도 진보'를 형성해야 한다. 이 '중도 진보'는 '중도 보수'로 견인돼 나올 새로운 한나라당과 거대한 양대 세력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는 복지국가 세력이 정통 진보 노선으로 가는 것은 '소수파 전략'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다수파 전략'으로 가야하며, 그럴 경우에만 역동적 복지국가의 실현이 가능해진다.

김윤태 : 복지국가를 현실화하려면 집권 전략이 있어야 하고, 현재와 같은 '진보대통합' 즉, 민주당을 배제한 연합 정치는 사실상 현상 유지나 소수파 전략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이상이 : 그렇다.

김윤태 : 진보적 자유주의에 가까운 민주당과 사민주의 성향을 가진 진보정당이 함께 한다는 이념적인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현실정치로 볼 때 의석수를 따져보면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많다. 결국 민주당 중심의 통합이 아니냐. 민주당으로 흡수가 되거나 민주당의 조그만 진보블럭이 될 뿐 아니냐. 이런 우려가 있는 것 같다. 결국 이상이 교수의 제안은 이념적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 정치에서 민주당 중심에 동참하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상이 : 그렇게 이해될 우려도 있다.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이 주장했던 빅텐트론에 대한 진보진영의 우려도 그런 것 아닌가. 일단 명백하게 짚어야 할 게 있다. 민주당이 기존의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이 과감한 좌클릭을 해서 '중도 진보'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민주당이 해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는데, 저는 이것을 해낼 수 있다고 본다.

해낼 수 있다는 첫 번째 이유는 지금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데, 지금 이대로 민주당이 총선과 대선까지 가면 한나라당을 못 이긴다는 것이다. 대선은 절대 못 이기고, 총선에서도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장차 절망적인 상황을 의미한다. 그래서 민주당은 지금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나는, 민주당의 이념적 위치 재설정과 재구조화 작업에 나설 필요가 절박해질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국민의 열망이다.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열망이 너무 강하다. 그러면서도 이대로 살아간다. 왜? 사람은 살기가 버거워지면 생존본능 때문에 각자도생한다. 여기에서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안 된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만성적 민생 불안이 국민들로 하여금 보편적 복지에 대한 강한 열망을 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기성 정당은 재구조화 작업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은 아마 당명도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과감하게 '중도 진보'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선언하고, 그 내용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가능성을 저는 민주당 내부의 주요 정파들에서 보고 있다. 심지어 김근태 전 복지부장관의 경우는 50%를 내 주는 한이 있더라도 민주당은 진보정당으로 가야 한다고, 복지국가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전 장관 외에도 민주당 개혁 블록에서 그런 목소리들이 굉장히 강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은 현재 상당 수준의 환골탈태가 가능한 조건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본다.

▲ 김윤태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정치적으로 통합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데, 복지국가 외에도 한미 FTA 등 다른 현안들에서 노선의 차이가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은 어떻게 보나?

이상이 : 한미 FTA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런 문제도 복지국가 담론에 다 포함된다.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그것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복지국가가 아니다. 한미 FTA는 복지국가와 배치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미 FTA는 의료민영화 노선이고, 보험회사 살리는 노선이고, 금융자본 살리는 노선이다. 그것은 우리네 삶에서 사회적 영역과 사회 공공성을 확충하고 제도화 하자는 복지국가 노선과는 안 맞는다.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평화나 생태의 개념까지도 다 포함하는 것이다.

김윤태 :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말씀하셨는데, 최근 민노당, 진보신당 등 진보대통합을 추진하는 세력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이상이 : 현재 일각에서는 비민주 진보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저는 그것이 성공하기 쉽지 않다고 본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주장은 기본적으로 '가치의 재구성이 없는' 기존의 자칭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모이자고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은 도로 민주노동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가치의 재구성이 없는 진보의 변화는 진정한 변화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방식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제가 의구심을 또 다른 부분은 민주당과는 같이 안 하겠다고 '비민주'라고 하면서 국민참여당은 넣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당의 노선으로 선포까지 했고 한미 FTA도 명확하게 반대하고 있다. 입장이 명확한 정당은 빼고 있다. 그런데 국민참여당은 한미 FTA에 대한 명확한 반대 입장도 없고, 복지국가 얘기도 안하고, 보편적 복지국가 얘기에는 시큰둥한데, 그 쪽은 같이 해도 좋다는 논리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또 하나의 정치공학이 아닌가 싶다. '가치의 재구성 없는 정치공학'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명백하게 가치의 재구성을 통해 중도 진보 정당에 다 모여야 한다. 그래야 집권 가능한 복지국가 정당이 나오게 된다고 생각한다.

"복지국가의 열쇠는 깨어있는 시민"

김윤태 : 지금까지 정당의 통합을 얘기했는데 시민사회에서는 어떻게 조직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시민사회의 역할, 그리고 복지국가 정치포럼의 활동과 역할은 어떤 게 있을까?

이상이 : 예를 들 수 있다. 참여정부 말기에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얘기를 청와대에서 슬며시 꺼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당시 대표가 이를 '세금폭탄'이라고 비판해서 바로 주저 앉혔다. 그래서 저는 풀뿌리 시민사회에서 보통시민의 자각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퇴임 후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말씀했지만, "깨어있는 시민"이 복지국가로 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안타깝게도, 참여정부 말기에 와서야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갈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을 이야기했지만 "세금폭탄"이라는 한마디에 무너졌던 것이다. 국민과 여론이 그런 방향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국민이 세금폭탄 논리를 지지하면서 결과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는 보수의 성장주의-감세 프레임이 작동했었다. 저는 시민들의 의식이 복지국가를 향해 제대로 깨어 있지 않으면 복지국가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본다.

제가 노심초사하면서 지난 1년 동안 신경 써 왔던 것 중의 하나가 '건강보험하나로' 시민운동이다. 이 운동은 국민들이 "내 여건에 맞게 내가 지금 내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료의 34%를 더 내겠다. 그러니 의료비 불안을 없애 달라. 내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 안 해도 되도록 해 달라.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국가의 의료보장제도 하에서 나는 안정감을 얻고 싶다."고 기꺼이 나서도록 하자는 풀뿌리 시민운동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시민들, 그리고 중산층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타나야 한다. 그런 연대 의식, 이것이야말로 복지국가의 핵심이다. 국민 일반이 갖고 있는 불안을 제도적 방식으로, 사회 연대적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깨어있는 국민들, 시민들이 많아야 한다. 이것이 시민정치운동이 할 일이다. 이것은 바로 복지국가의 문화, 즉 연대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연대의 문화를 만들어 놓았을 때, 이를 기반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정당은 이 시민적 토대 위에서 복지국가 노선을 내걸고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2011년 1년 동안, 특히 상반기 동안에는 전국적 수준의 풀뿌리 시민정치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이 얼마나 들불처럼 일어나느냐에 따라 올 가을과 겨울의 정치질서 재편 국면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것이 잘 안되면 정치질서 재편이 잘 안될 것이다. 그러면 복지국가로 가는 것은 한동안 미뤄지든지 포기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김윤태 : 복지국가정치포럼은 어떤 일을 하나?

이상이 : 바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상반기 때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깨어있는 시민들과 함께 시민정치운동을 풀뿌리 수준에서 진행하려고 한다. 저희는 전국적으로 투어를 할 것이다. 저희가 가야 할 모든 곳에 갈 것이다. 그리고 수천 명의 진성회원을 광범위하게 조직할 것이다. 이 분들은 복지국가를 열망하는 깨어있는 보통 시민들일 것이다. 이 시민들이 나중에 정치적 요구를 조직하고 표출할 수 있는 복지국가 추진 세력이 되는 것이다.

김윤태 : 이 대표는 복지국가 만들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차원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운명공동체라는 연대의식이 강해졌을 때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실제로 이런 정치 운동이 효과를 내서, 집권에 성공했다고 한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복지 정책이나 프로그램으로 뭘 꼽을 수 있나?

이상이 : 제일 먼저 할 일은 일자리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비정규직이라는 차별 있는 일자리가 아니라 차별 없는 일자리가 돼야 한다. 비정규직에 종사했던 사람도 정규직과의 격차가 최소화되는 그런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복지국가를 하는 이유여야 한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해야 한다. 하나는 사회서비스를 보편주의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사회서비스가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으면 경제 주체의 역동성이 높아진다. 창의성도 높아진다. 그래서 사회서비스의 보편적 제도화가 중요하다. 또 하나가 고용보험이다. 이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고용보험 분담금을 더 높여야 한다고 본다. 기업의 부담도 더 높여야 한다. 정부도 일반 누진적 조세를 통해 걷은 세금을 훨씬 많이 쏟아 부어야 한다. 그래서 고용보험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안 되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기업의 역동성을 보장할 방법도 없어진다. 사실, 망해야 할 기업은 망해야 한다. 망해야 할 기업이 못 망하면 장차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망해야 할 기업이 망하도록 하는 것, 그러면서도 노동자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것, 그것을 국가가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해야 한다.

김윤태 : 일단 정권이 교체가 돼야 하고, 보육이나 교육, 요양 같은 사회 서비스가 시장 논리에 맡겨지는 게 아니라 국가가 개입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서비스를 제공해 삶의 질을 높이는 역할들, 노동시장에서 교육이나 훈련에 투자를 많이 하는 고용 정책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 복지국가 발전의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상이 :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전제가 있다. 첫 번째 전제가 공정한 경제다. 여기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부의 규제, 즉 시장 개입이다. 특히, 공정거래에 관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 대기업의 횡포를 막는 규제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생산성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규제, 그리고 중소기업을 도와주기 위한 적극적인 산업정책이 중요하다. 이것이 시장 개입이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조세정책, 특히 누진적, 연대적 조세를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이 중요하다고 본다.

김윤태 : 복지국가의 중요성을 잘 이야기 해준 것 같다. 그리고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연대를 통해 정권 교체를 해야 하고, 구체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들도 잘 들었다. 성공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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