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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경기조작, 박현준과 김성현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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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프로야구 경기조작, 박현준과 김성현뿐일까? [야구라의 그린라이트] 운동과 학업 병행은 미룰 수 없는 과제
한국 프로스포츠 판을 쑥대밭으로 만든 '승부조작 쓰나미'가 프로야구까지 휩쓸고 지나갔다. 투수 두 명의 혐의가 드러나는 선에서 수사가 종결되기는 했지만, 뒷맛은 꽤 씁쓸하다. 그간 "경기 특성상 승부조작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팬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프로야구마저 조작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수사 과정에서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온갖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야구판 전체가 적지 않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현재까지 혐의가 밝혀진 선수는 박현준과 김성현뿐이지만, 정말로 그 둘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브로커들이 특정 구단이나 선수 한두명에게만 접근하는 선에서 그쳤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추가 진술이나 증언이 나올 경우 사태는 언제든지 '연장전'으로 돌입할 여지가 있다. 다른 종목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단순히 평화로운 학교에 불량학생 한 두 명이 물을 흐렸다면서 퇴학시키면 끝날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야구계가 경기조작 사태를 선수 두 명의 일탈이 아닌 프로야구 전체의 문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이미 해당 선수의 전 소속팀들이 공개적으로 팬들에게 사과를 했고, KBO 총재와 9개 구단 이사들도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또한 나름대로의 강도 높은 경기조작 방지 대책도 마련해서 발표했다. 아마추어 야구를 관장하는 대한야구협회(KBA) 역시 올해 진행될 고교야구 주말리그의 목표로 '경기조작 예방을 위한 인성교육'을 들고 나왔다. 외견상으로는 비교적 발빠르게, 올바른 대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작 심각하게 여기긴 하나

하지만 야구계의 대책 대부분이 조작 행위 자체에 대한 감시와 적발시의 징계에 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범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번에 혐의를 인정한 선수들도 적발되면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몰라서 조작 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대책 중에는 조작 방지를 위한 예방교육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연간 몇 차례 행하는 의례적인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예 교육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경기조작을 가능하게 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원인이란, 조작이나 불공정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야구계 대다수 구성원들의 의식이다. 이걸 확 바꿔놓지 않으면, 어떤 처벌이나 감시 조처로도 나중에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란 어려울 것이다.

▲프로야구 경기조작과 관련해 검찰 소환통보를 받은 LG트윈스 투수 박현준이 지난달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시스
의식 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처음 경기조작 의혹이 제기됐을 때 몇몇 야구인에게 "현역 시절 경기조작 행위를 하는 선수를 본 적이 있는지" "경기조작에 대한 소문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하나같이 "조작은 야구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며 소문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신 그들은 다른 추억담을 이야기했다. 선배가 다른 팀에서 뛰는 후배에게 일부러 안타를 맞아준 이야기, 대학 선배인 내야수가 상대팀 후배에게 동료 투수의 사인을 알려준 얘기, 2군으로 내려갈 위기에 있는 학교 선배 투수를 위해 일부러 아웃된 얘기였다. 그들은 "승부조작은 없지만, 선후배간에 그런 정은 있었다"며 그 시절에 대해 낭만적으로 회고했다.

그런데 야구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저런 '미담'이 경기조작을 가능하게 한 밑바탕 아닌가? 돈을 받고 고의로 경기내용을 조작하는 것이 나쁘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선후배나 친구간의 정을 위해 경기내용을 조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모두가 관대할뿐더러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긴다. 어떤 야구인은 비교적 최근에 하위권팀 소속 A감독이 4강 싸움에 한창인 선배 B감독과의 맞대결에 에이스를 등판시켰다면서 사석에서 비판하는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 이미 경기조작 파문이 있기 오래 전에도, 야구는 상대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고의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도 있는 종목이었던 셈이다. 이런 풍토에서는 경기 스코어나 상대에 관계없이 언제나 전력을 다하는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 같은 부류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며,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

프로야구만의 일도 아니다. '공정하고 정정당당한 승부'라는 스포츠의 존재 의의는 초중고와 대학교의 아마추어 야구에서부터 훼손된다. 어린 선수들은 야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스포츠가 결코 만화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100% 깨끗하고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보고 배운다. 금품을 제공하는 학부모나 금품수수로 물의를 빚어 쫓겨나는 지도자를 보며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선수의 실력 순이 아니라 부모의 파워에 따라 출전기회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부모가 어떻게 힘을 쓰느냐에 따라 대학진학과 프로 지명 여부가 갈리는 것을 보며 야구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땀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격언은 학원야구의 현실 앞에서는 우스워질 뿐이다. 어떤 면에서 조작과 관련해 한국 야구계는 모두가 공범인 셈이다.

야구계가 문제의 초점을 단순히 경기조작 그 자체에만 맞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경기조작 근절을 위해서는 단순히 '돈을 받고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차원을 넘어, 관행이나 정을 빌미로 행해지는 모든 형태의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거부로 이어져야 한다. 선배가 상대라고 해서 대충 홈런을 맞아주거나, 후배가 감독직이 위태롭다고 해서 큰 대회 본선에 진출하게 도와주거나, 실력과 노력 외의 요소가 선수 선발에 개입하는 따위의 일이 야구에서는 절대 있어서 안 되는 행위라는 점에 대해 구성원들 모두가 심각성을 느끼고 인식을 같이 해야 한다. 그래야만 선수들도 어릴 때부터 야구는 정정당당한 스포츠이며 조작이 결코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우고 깨달을 것이며, 지저분한 유혹이 다가올 때 단호하게 뿌리칠 수 있을 것이다.

고교야구 주말리그, 하려면 제대로 하자

무엇보다 야구선수들도 보통 학생들과 같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운동선수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얘기 중 하나가 "운동하는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운동선수들끼리 형성된 이너서클 속에서 일반 사람들과 분리된 채 성장하기 때문에, 그들 세계의 독특한 관습이나 행동규칙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숙소에 갇혀 야구만 하는 '야구기계'로 자라다 보면, 또래의 보통 학생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어떤 사회적 관습에 따라 행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프로가 된 뒤의 인간관계도 운동하며 만난 선후배 아니면 술 사주고 용품 사주며 접근하는 연예계 뚜쟁이들이 소개해준 사람들로 제한된다.

실제로 이번에 혐의가 드러나거나 루머가 돈 선수들의 경우, 학교 선배나 불순한 의도를 지닌 지인들을 통해 조작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친한 선배나 신세를 진 형-누나가 '한번만 도와주면 안돼?'라고 제의를 해오면 거절하기도 쉽지 않고, 선수로서도 별 것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가능성이 커진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 사생활 문제로 물의를 빚은 모 선수의 경우에도, 일반 대중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윤리적 판단 기준이 잘못된 결정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엘리트 위주 체육의 폐해는 커질 대로 커져서 더 이상 국제 경쟁력이나 현실을 핑계로 놔둘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고교야구 주말리그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도입된 제도다. 주중에는 일반 학생들처럼 학교 수업을 받고, 방과 후와 주말, 방학에는 야구 선수로 활동하게 하자는 게 주말리그의 취지다. 올해에는 경기조작 여파를 반영해서 인성교육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게 대한야구협회의 방침이다.

문제는 좋은 의도로 도입된 주말리그가 실제 현장에서는 전혀 취지에 맞게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장 지도자들 입장에서도 바뀐 제도에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일부 학교의 경우에는 주말리그 시행 이후에도 선수들이 전혀 수업을 듣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부와 대한야구협회 방침을 무시하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온종일 훈련만 한다는 게 해당 학교 학생들의 얘기다. 다른 학교 선수들이 수업을 듣는 동안 훈련을 시키니 당장은 경기에서 월등한 실력을 보이는 게 당연한 일. 성적 좋은 몇몇 학교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주말리그 제도는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해당 학교 교사나 교육청 차원에서의 문제제기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누구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주말리그 도입에 앞장선 교과부에서 좀 더 강력한 장학 지도와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선수들이 수업을 받게 하는 학교들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학교는 야구부 선수들만 따로 모아놓고 한문이나 영어 같은 몇가지 과목에 대해서만 수업을 하고 있다. 아마도 선수들이 교과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는데다, 고3 학급에서 수업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절충안일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는게 수업을 전혀 받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운동선수의 학업병행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단순히 기초 학력 향상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반 급우들과 함께 어울려서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고, 야구를 안 하는 친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갖고 살아가는지, 운동선수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룰이 아니라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룰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배우고 체험하게 하는 게 진짜 목표가 돼야 한다.

지난해 학교 수업을 거의 대부분 소화한 한 선수는 "솔직히 수업 내용은 거의 이해를 못 했다"면서도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무엇보다 내가 야구로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다른 친구들도 각자 열심히 노력하며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프로야구에서 활약할 이 선수는 야구 실력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훌륭한 품성으로 야구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아마추어 현장에서 느끼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당장 한국야구의 인프라가 너무도 열악한데다 한국 교육의 현실도 그다지 녹록치가 않기 때문에 학업병행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생각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려움과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 운동선수의 학업병행은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시대적인 과제이고, 국가 교육 정책의 일환이기 때문에 야구계에서 반대한다고 해서 엎어질 성격의 일도 아니다. 이번에 혐의가 밝혀진 두 선수의 징계 수위를 놓고 일각에서는 "야구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유로 영구제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두 선수를 영구제명에서 구제해서 해결할 성격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는 '설령 야구계에서 영구제명된 선수라 할지라도 야구 외에 먹고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게 바람직한 길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애초에 선수들이 '경기조작이나 불법행위가 매우 심각한 잘못이며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가르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 아닐까.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빼놓고 프로야구 경기조작 대책을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야구인들 모두의 자성과 공범 의식, 야구계 관행에 대한 인식의 전환도 절실하다. 사과문 발표보다는 분명 어려운 일이겠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야구에서 절대로 불가능하다던 경기조작도 실제로 일어났는데, 불가능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www.yagoor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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