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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프로야구, 순위는 이미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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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프로야구, 순위는 이미 정해졌다? [야구라의 그린라이트] 리그 전력 균형의 함정
흔히 스포츠를 가리켜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결말이 정해져 있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스포츠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스포츠의 힘은 바로 이 예측불가능성에 있다. 끝까지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예상 밖의 이변이 연출되면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만약 경기가 어느 팀의 승리로 끝날지, 어떤 팀이 우승할지가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이 뻔하다면, 사람들은 스포츠를 즐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란 사실을 알고서도 [식스센스]를 재미있게 볼 수는 있지만, 양키스가 우승한다는 걸 미리 알면서 메이저리그를 즐길 수는 없는 법이다.

2012 프로야구가 시즌 초반부터 흥행 대폭발이다. 박찬호, 김태균, 이승엽 등의 국내 복귀에 연일 명승부가 이어지면서 구름 관중을 모으고 있다. 이미 4월 29일자로 사상 최단경기(65경기)만에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이 기세라면 800만 관중 돌파도 어렵지 않을 분위기다. 한 야구 관계자는 "롯데와 두산, LG 세 팀이 상위권을 달리면서 사상 최고 흥행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평했다.

야구장에 관중이 몰려드는 데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치열한 순위 다툼 와중에 이변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즌 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던 삼성은 7승 10패로 6위로 처져 있다. 삼성을 대적할 유일한 팀으로 평가받은 KIA는 총체적인 난국 속에 7위다. 반면 개막 전까지만 해도 하위권이 유력하던 넥센은 SK와 함께 공동 3위, 꼴찌 후보로 거론되던 LG는 3위에 한 게임차 뒤진 5위에 올라 있다. 초반부터 예측 불가능한 승부가 펼쳐지면서 팬들의 눈과 귀를 야구장으로 잡아끄는데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생기는 질문. 과연 지금과 같은 물고 물리는 대혼전이 시즌 마지막까지 이어질까? 2012 프로야구의 최종 순위는 야구 전문가들을 낯뜨겁게 할 만큼 충격적인 이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에 앞서 지난 2007년 이후의 프로야구 순위를 살펴봐야 할 것 같다. 2007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프로야구에서 4강 이내에 진입한 팀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2007년: SK-두산-한화-삼성
2008년: SK-두산-롯데-삼성
2009년: KIA-SK-두산-롯데
2010년: SK-삼성-두산-롯데
2011년: 삼성-SK-롯데-KIA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찾아냈을 거다. 지난 5년 동안 프로야구에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4팀의 명단이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SK가 1위와 2위 사이에서 오가고 KIA가 이따금 '반짝'한 것을 제외하면 4강 팀은 항상 같았다. SK, 두산, 삼성, 롯데.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두산과 롯데가 시즌 초반부터 치고 나가고, SK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시즌 초반 고전하던 삼성은 지난주부터 서서히 반격의 채비를 갖추고 있다. 결국 올 시즌에도 SK, 두산, 삼성, 롯데가 4강을 놓고 다투고 거기에 KIA와 넥센, LG가 끼어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시나리오의 반복이다. KIA와 넥센, LG가 자력으로 4강에 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 4강 단골팀들 중에 부상이나 내부 문제로 자별하는 팀이 나오면, 어부지리로 한 팀 정도가 이득을 보는 형태가 될 것이다.

결국은 올 시즌 프로야구 최종 순위도, 시작부터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작년 하위권이었던 팀 팬들 입장에서는 서운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지난 5년간 상위권에 든 4팀과 하위 4팀을 따로 놓고 살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상위 4팀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뛰어난 지도자(김성근, 김경문, 선동열, 로이스터)를 보유했(었)고, 신인 선수 발굴과 2군 육성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과 롯데, 두산은 훌륭한 2군 전용 훈련장을 보유한 구단이고 SK는 2군 선수까지 선수단 전원을 전지훈련에 데려간 바 있다. 또한 네 팀은 비교적 구단 운영에 있어 시스템이 잘 갖춰진 편이라 장기적인 계획 하에 팀을 만들어 나가고,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전력 측면에서 보면 선수층이 두껍고 대체로 수비력이 강하다는 것(롯데를 빼고)이 특징이다.

반면 하위 4팀은 정확하게 그 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이 팀들은 구단 운영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거나, 지도자를 잘못 선임하거나, 선수 육성에 소홀하거나, 선수 영입과 트레이드 실패로 전력이 약화되는 등의 문제를 한 두 가지 이상 경험했다. 팀 전력에 있어서는 투수력이 약하고, 특히 수비력이 매우 떨어지는 것이 공통점이다. 물론 KIA처럼 한 시즌 바짝 잘 해서 우승을 거둔 사례도 있지만,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받쳐주지 못한 결과 이듬해부터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몇 년을 기약없는 희망만으로 버틴 결과, 이들 팀을 응원하던 팬들은 멘탈이 용해된지 오래다.

상위 그룹과 하위 그룹 간의 이런 간극을 단숨에 뛰어넘기란 쉽지 않다. 가령 5승 12패로 8위까지 내려간 한화가 대표적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한화는 박찬호, 김태균, 송신영 세 명을 영입한 뒤 당장 4강에라도 갈 것처럼 환호했다. 하지만 박찬호는 전성기가 지난 투수고 송신영은 원래부터 필승카드와는 거리가 있던 투수다. 김태균이 있던 2009년에도 한화의 순위는 8위였다. 게다가 세 선수의 영입에도 불구하고, 한화가 지닌 기존의 문제점–특히 수비-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4강 진출이 대형 선수 영입으로 한 번에 이루어질 수준의 일이었다면, LG는 지난 10년 동안 수도 없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어야 한다. 야구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지금은 1980년대처럼 작년 8위했던 팀이 반짝 돌풍으로 포스트시즌에 올라가서 우승하는(그래놓고 다음해는 다시 추락하는) 식의 기적은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처럼 괴물신인 한 명이 등장해서 팀의 운명을 바꾸는 시대도 아니다. 이제 하위그룹 팀이 상위권에 오르려면 참을성과 꾸준함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계획 하에 팀의 문제를 하나씩 차근차근 개선하고 퍼즐을 맞춰나가야 한다. 선수 육성도 길게는 10년까지 내다보고 기다려야 한다.

삼성과 SK, 두산 등은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반열에 오른 팀이다. 그런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선수 영입 한 방으로 4강을 노리는 식으로는, 목표하는 4강에도 들 수 없을뿐더러 부작용만 잔뜩 남길 뿐이다. 전력보강을 해줬는데 왜 4강에 들지 못했냐면서 감독에게 책임을 묻는다거나, 투자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음해부터는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는 식이다. 만년 하위권을 맴도는 팀이 항상 반복하곤 하는 실수다. 실수를 하고서도 그걸 깨닫지 못한다. 실수인 걸 알면서도 얼마 후에는 같은 실수를 또 되풀이한다. 상위권 팀은 항상 상위권에, 하위 팀은 매번 하위권만 맴도는 이유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팬들은 순위싸움이 치열하고 승부를 예측하기가 어려울 때 야구장을 많이 찾는다. 아무리 성대가 터져라 응원해도 좋아하는 팀이 4강에 들 확률이 희박하다면, 야구장을 찾는 팬의 발길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상하위 팀의 구도가 고착화된 지금의 프로야구는 분명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제일 좋은 건 하위 팀들이 생각을 바꿔 구단 운영에 심혈을 기울이고 강팀으로 거듭나는 일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과연 지금과 같은 판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프로야구는 올해 사상 최고 흥행 성적을 노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를 찾은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

새로운 구단의 창단이 그 답이 될 수 있다. 9구단 NC 다이노스의 가세와 10구단 창단은 양극화가 심화된 프로야구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중요한 변수다. 새 구단이 생기면 우선 각 팀 간의 선수 이동이 활발해진다. NC만 해도 창단과 함께 신인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권을 통해 좋은 신인들을 충원했고, 2차 드래프트에서도 많은 선수를 영입했다. 기존 팀들은 "알짜배기 신인을 NC가 데려가서 뽑을 선수가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2차 드래프트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은 선수 상당수는 팬들은 물론 구단 관계자들도 아쉬워할 정도로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여기에 올 시즌이 끝난 뒤에는 기존 구단들로부터 보호선수 20명을 제외한 선수 1명씩을 받아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 8개 구단의 선수단 구성이 적지 않은 변화를 겪게 될 전망이다. NC는 올 시즌 후 FA(자유계약선수)도 3명까지 영입할 수 있다. 역시 FA 영입으로 빈 자리를 채우려는 다른 팀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만일 NC에 이어 10구단까지 창단되고 나면, 신생 구단으로 인한 리그 전체의 '재편'은 최소한 2014년까지 계속 이어지게 된다. 기존 팀의 입장에서 보면 적지 않은 타격이다. 4년 동안 매년마다 주전급 선수를 신생팀에 내주고, 유망주를 2차 드래프트로 다른 팀에 넘기고, 신인드래프트에서 원하는 선수를 얻지 못하고, FA 시장에서도 찬물을 들이켜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기존 팀 전력이 크게 약화되는 것은 물론, 미래 전력인 유망주 농사에서도 흉작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기존 구단 중에 이런 대대적인 변화가 가장 달갑지 않은 팀은 어디일까. 만년 하위권에 머무는 팀보다는, 탄탄한 전력을 갖춘 단골 4강 팀들이 더 손해를 보는 쪽이다. 이들 4강 팀의 입장에서 보면, 프로야구 리그는 '지금 이대로' 진행되는 편이 제일 좋다. 각고의 노력으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안정적 기반을 마련한데다, 하위권 팀들이 워낙 헛발질만 해대는 통에 당분간은 성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신생팀이 리그에 끼어들어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리그 팀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변수도 늘어난다. 선수들이 이리저리 이동하고, 늘어난 팀 수만큼 경기 수가 늘고, 리그가 양대리그로 나뉘거나 하면 그 변화가 우리 팀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불리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즉시전력감인 아까운 선수를 다른 팀에 보내는 아쉬움도 하위팀보다는 선수층이 두터운 상위팀 쪽이 훨씬 크다. 다시 말해, 단골 4강팀들의 입장에서는 신생 구단 창단을 반길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최근 열린 KBO 이사회에서 신생팀 창단을 놓고 일부 구단이 반대한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사장이 총대를 메고 나선 롯데를 비롯해 삼성, 두산, 한화는 10구단 창단과 NC의 2013년 1군 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중 한화를 제외한 나머지 3팀은 최근 프로야구에서 포스트시즌 진출의 단골손님들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기존 구단들, 그 중에서도 특히 강팀으로 분류되는 팀일수록 지금의 프로야구 구도가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증거라고 봐야 한다. 지금의 안정적인 시스템을 계속 가동하면서 '항구적' 상위팀으로 남아있는 것. 이게 새 구단 창단을 반대하는 팀들의 숨겨진 속내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새 구단 창단을 반대하면서 '리그 경쟁력'과 '관중 동원'을 이유로 든 모 구단 사장의 말은 정반대로 해석되어야 한다. 우선 그가 말한 경쟁력은 리그 전체가 아니라 자기 구단의 경쟁력을 가리킨다. 또한 관중 동원 역시, 순위가 미리 정해진 것과 다름없는 지금의 체제보다는 10구단 체제로 가는 편이 더 많은 관중을 끌 수 있다. 현재의 구도는 상하위 팀이 수년째 극명하게 나뉘어진 상태라 팬들의 흥미가 갈수록 떨어질 위험이 있다. 구단 창단으로 리그가 재편되면 상위 4팀과 하위 4팀의 구도는 자연스레 허물어진다. 교착 상태에 빠진 순위 싸움이 활기를 띄고, 페넌트레이스는 예측 불허의 전개를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그때가 되면, 프로야구가 진정으로 '각본 없는 드라마'로 한 단계 도약할 것이다. 프로야구 판이 크게 요동칠 그 날이 몹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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