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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퍼트와 주키치, 귀화라도 시켜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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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니퍼트와 주키치, 귀화라도 시켜야 하나? [야구라의 그린라이트] 2013년 WBC 선발 에이스가 없다
지금도 가끔 TV를 틀면 볼 수 있다.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 2078년 쯤에도, 야구가 우천으로 취소된 날에는 여전히 TV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한도전 재방송보다도 더 자주 방영된다는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하이라이트 얘기다. 벌써 6년이나 지났지만, 그때 그 경기들이 가져다준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건 야구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봐도 지겹지가 않네요." 훈련이 끝난 뒤, 휴게실에서 WBC 하이라이트를 시청하던 퓨처스팀의 한 선수가 말했다. "아마 저런 대표팀을 다시 꾸리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타자들도 대단하지만, 투수진은 지금 봐도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저 선수들이 한 팀에 모여서 활약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젊은 선수의 흔한 호들갑이 아니다. 실제로 해외파 투수들이 총출동한 초대 WBC 대표팀 마운드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막강한 위력을 자랑했다. 2005년 뉴욕 메츠 소속으로 절정의 기량을 뽐낸 서재응을 필두로, 콜로라도에서 선발로 뛰던 김병현과 샌디에이고에서 12승을 따내며 재기에 성공한 박찬호가 모두 합류했다. 여기에 일본킬러 구대성, 빅리그 선발투수의 가능성을 보여준 김선우, 신시내티 마이너 소속의 봉중근도 있었다. 이들에 비하면 손민한이나 박명환, 배영수 등 국내무대 에이스들의 이름이 초라해 보일 정도. 하지만 국내 에이스들 역시 전년도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특급 투수들이었다.

2006년 대표팀 주요 투수들의 전년도(2005년) 성적

박찬호: 30경기 12승 8패 평균자책 5.74
김병현: 40경기 5승 12패 평균자책 4.86
서재응: 14경기 8승 2패 평균자책 2.59
김선우: 24경기 6승 3패 평균자책 4.90 – 이상 메이저리그
배영수: 31경기 11승 11패 평균자책 2.86
손민한: 28경기 18승 7패 평균자책 2.46
박명환: 20경기 11승 3패 평균자책 2.96
오승환: 61경기 10승 1패 16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 1.18

서재응이 선발로 나오고 박찬호가 마무리를 하는 비현실적인 투수진을 앞세운 한국은 WBC 첫 대회에서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특히 빅리거들이 즐비한 미국 대표팀을 상대로 7:3으로 완승을 거뒀고, 일본 대표팀과의 세 차례 대결에서도 2승 1패로 우세했다. 대회 7경기에서 6승 1패에 평균자책은 2.00으로 전체 1위. WBC 4강의 위업은 마운드의 높이 덕분에 가능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09년에는 제2회 WBC가 열렸다. 이때는 해외파 투수들 대신에 국내 무대에서 활약 중인 젊은 에이스들 위주로 대표팀이 구성됐다. 1회 대회에 출전했던 봉중근을 중심으로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의 영 에이스 트리오가 가세했고, 여기에 한창 주가를 높이던 장원삼과 일본에서 활약 중인 임창용이 더해졌다. 무엇보다 오승환과 정대현, 이승호, 임태훈, 정현욱, 이재우 등 강력한 구원 투수들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던졌다. 이름값의 화려함은 1회 대회보다 약간 떨어지지만, 개개인의 능력과 가능성 면에서는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도 할 수 있는 라인업이었다.

2009년 대표팀 주요 투수들의 전년도(2008년) 성적

윤석민: 24경기 14승 5패 평균자책 2.33
김광현: 27경기 16승 4패 평균자책 2.39
류현진: 26경기 14승 7패 평균자책 3.31
봉중근: 28경기 11승 8패 평균자책 2.66
장원삼: 27경기 12승 8패 평균자책 2.85
정현욱: 53경기 10승 4패 11홀드 평균자책 3.40
오승환: 57경기 1승 39세이브 평균자책 1.40
정대현: 49경기 4승 3패 20세이브 평균자책 2.67
임태훈: 57경기 6승 5패 14홀드 6세이브 평균자책 3.41



▲2009년 열린 2회 WBC에서 봉중근이 역투한 후 포효하고 있다. ⓒ뉴시스

선수들의 국내 성적에서 드러나듯이, 당시 대표팀은 기량이 최절정에 달한 국내 최고 투수들로 구성됐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대회를 앞둔 시즌에 최고의 성적을 냈다(류현진은 제외). 기대대로 WBC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 일본과의 결승에서 아깝게 패하긴 했지만 준우승을 거두면서, 2006년 4강보다 한 단계 위의 결실을 맺었다. 팀 평균자책은 3.44로 1회 때보다 다소 높았지만, 예선 일본전에서 대패한 경기만 제외하면 그 외의 경기에서는 철벽 마운드를 자랑했다. '다음 대회 때는 충분히 우승까지 가능하다'는 희망 섞인 관측이 여기저기서 쏟아진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13년 제3회 WBC를 앞둔 올 시즌 현재, 프로야구 에이스급 투수들의 상태가 심상치가 않다. 윤석민과 류현진을 제외하고는 정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가 거의 없다. 투수 부문 각종 순위는 외국인 투수들의 이름으로 뒤덮인지 오래다. 자칫하다간 내년 대표팀 마운드 구성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A 방송의 해설위원은 "지금 상황만 놓고 볼 때는 투수가 없는 게 사실"이라며 "지난 두 대회와 비교하면 너무 약한 투수진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말로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문제는 지난 2009년 대표팀에 참가했던 투수들의 현재 상황을 살펴보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참가 투수들 중 올 시즌에도 정상급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선발투수는 윤석민과 류현진 두 명 뿐이다. 투수 3파전을 펼쳐야 할 김광현은 퓨처스리그에서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중이다. '봉열사' 봉중근은 토미존 수술에서 회복해서 이제 막 돌아왔다. 손민한은 무대에서 사라졌다. 좌완 선발로 한 축을 맡았던 장원삼도 올해는 부진하다. 불과 3년 사이에, 대표팀 마운드의 주축을 이뤘던 투수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셈이다.

반면 빈 자리를 대체해야 할 젊은 투수들은 성장 속도가 더디거나, 오히려 기량이 퇴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례로 한때 큰 기대를 모았던 양현종과 차우찬은 현재 퓨처스리그로 내려가 있는 상태다. 고원준이나 강윤구, 문성현 등 젊은 선발투수들도 기대치에 비해 보여주는 투구내용은 안정감과는 거리가 있다. 이용찬과 윤성환이 시즌 초반 좋은 투구를 보여주고 있지만, 국제경기에서 한 경기를 책임질 수 있는 투수인지는 미지수다. 사실상 국제대회용 마운드의 세대교체에 실패했다고 봐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그렇다.

원인이 무엇일까. B 방송사의 해설위원은 "리그 전체적으로 선발투수의 수가 모자라고 질적으로 떨어지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타자들의 기량 발전 속도를 투수들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프로야구가 발전하면서 중간급 선수들의 기량은 어느정도 올라온 반면에, 상위 클래스 선수들의 기량은 답보하는 모습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류현진, 윤석민 등 몇몇 타고난 선수들 외에는 상위 클래스로 치고 올라오는 선수도 거의 없었다."

그런가 하면 C 방송의 해설위원은 "1군에서 한 명의 선발 에이스급을 키워내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1이닝을 책임질 투수를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빠른 볼과 주무기 하나만 있으면 불펜에서는 당장 어느정도 써먹을 수 있다. 하지만 선발투수로 6회 이상을, 그것도 시즌 내내 책임질 투수는 좀처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순위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젊은 투수에게 선발로 성장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일단 불펜에서 활용하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선발 두 자리는 어차피 외국인 투수로 채우면 되기 때문에 젊은 투수를 굳이 선발로 써야 할 필요성도 크지 않다."

▲프로야구 LG트윈스의 선발투수 주키치. 올해도 외국인 선발투수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실제로 선발투수 기근 현상에 비해 불펜 쪽에서는 투수들이 넘쳐난다. 오승환과 정우람, 손승락을 필두로 박희수, 유원상, 노경은, 안지만, 김혁민 등이 맹활약을 펼치는 중이다. 불펜투수 순위는 국내 투수들로, 선발투수 순위는 외국인 투수들로 철저하게 양분됐다. 여기에 다승 부문 1, 2위에 올라있는 니퍼트와 주키치, 탈보트, 나이트를 한국 국적으로 귀화라도 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B 방송의 해설위원은 "어중간한 투수를 뽑느니 차라리 박찬호나 김병현을 다시 뽑는 게 국제 경험 면에서는 나을 수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박찬호와 김병현은 6년전 WBC에 참가했던 멤버들이다. 그때 그 선수들이 지금 뛰는 선수들보다 낫다는 건, 야구의 미래를 봐서는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일단 퓨처스에 내려가 있는 각 팀 에이스급들이 남은 기간 제 기량을 회복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투수 전문가인 D 방송 해설위원은 "아직 시즌 초반인 만큼 컨디션이 올라오는 선수도 있을 것이고, 젊은 투수들 중에 확 튀어나오는 선수도 나올 수 있다. 1군에 복귀한 송은범도 있다"며 "남은 시즌을 기대해봐야 한다"고 했다. 지적대로 김광현, 양현종, 차우찬이 제 모습을 되찾고 송승준과 김선우가 최소 지난해 수준까지만 올라온다면 대표팀 선발투수 구성에는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불펜이 워낙 강하니까 류현진 윤석민에 한 명 정도만 더해지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본다." D 해설위원의 말이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확실히 2009년의 대표팀 마운드는 2006년보다는 선발은 약하고 불펜 쪽에 힘이 실려 있었다. 선발 에이스감이 아예 보이질 않는 올해의 상황은, 그런 추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다소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지면 앞으로 10년쯤 뒤에 열리는 국제대회 때는 투수진 전체가 불펜 요원들로 채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야구계가 젊은 투수들의 불펜 쏠림과 넘쳐나는 외국인 선발투수 범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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