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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구단 창단 가로 막은 '좀비'가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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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구단 창단 가로 막은 '좀비'가 살아났다 [야구라의 그린라이트] 프로야구의 '독', 1차지명 부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올스타전 보이콧을 철회했다. 선수협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야구위원회(KBO)의 10구단 창단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며 "팬들을 위해 올스타전 참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서 사상 초유의 프로야구 올스타전 파행 사태는 실현되지 않은 역사로 남게 됐다. 벌써부터 야구계는 21일로 예정된 올스타전 준비로 떠들썩하다. 분위기만 봐서는 언제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가 싶을 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제 자리로 돌아왔다.

물론 선수협의 올스타전 참가는 고뇌에 찬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선수들이 입을 피해와 프로야구 파행에 따르는 책임 등을 모두 고려한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올스타전 보이콧을 결의하기 이전과 비교해서 실질적으로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KBO 이사회는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어 "10구단 문제를 KBO에 위임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KBO는 10구단 창단과 관련해 아무런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일단 올스타전 파행의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한 '조삼모사'인 셈이다. 한 야구인은 이를 두고 "이사회가 KBO에 위임한 건 10구단을 창단할 권한이 아니라, 올스타전 파행 문제를 해결할 권한이었던 것 같다"고 비꼬았다.

일단 올스타전이 지나고 나면 선수협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얼마 되지 않는다. 포스트시즌, 동계훈련, WBC, 그리고 정규시즌 정도가 남는다. 하나같이 한국야구에 쓰나미급 타격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 엄청나게 큰 건수다. 차라리 팬들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지극히 미미한 올스타전 수준에서 어느 쪽으로든 결판이 나는 편이 좋았을지 모른다. 이번에야 팬들도 '그깟 올스타전 한 경기 안 보고 말지' 하고 선수협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지만, 당장 좋아하는 야구를 못 보게 되면 여론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10구단 약속이 '공약(空約)'에 그쳤을 경우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폭은 좁아진 반면, 짊어져야 할 부담은 더 무거워졌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열린 '10구단 창단 및 올스타전 관련 선수협 기자회견'에서 박충식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이 올스타전 최종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올스타전 보이콧은 생각보다 훨씬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10구단 창단에 미온적이던 이사회가 지난 10일 안건에도 없던 10구단 문제를 논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만큼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사회의 논의는 어디까지나 올스타전 파행을 막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10구단을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안 만들겠다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을 내놨다. 혹시 모를 올스타전 파행에 따르는 책임을 KBO와 선수협에 떠넘긴 것이다. 만일 예정대로 선수협이 올스타전 불참을 강행했다면 '이사회는 나름대로 타협을 시도했는데 선수협이 지나치게 강경했다'는 알리바이를 내세울 수 있었다. 반면 선수협이 (실제 그렇게 한 것처럼) 보이콧을 철회한다면,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니까 그 역시 성공이다. 노조를 상대하는데 익숙한 대기업 이사회의 절묘한 외통수가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10구단 문제를 KBO에 위임한 이사회의 결정이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바로 같은 날 이사회에서 통과된 '1차 지명 부활'이 그 증거다. 1차 지명(연고지역 신인 우선지명제) 부활에 대해 아마야구계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환영 의사를 표하고 있지만, 사실 구단들이 기를 쓰고 구시대의 좀비나 다름없는 1차 지명을 되살려낸 이유는 간단하다. 신생 구단의 리그 진입을 방해하려는 기존 구단들의 이기주의가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라고 봐야 한다.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훼방놓던 대기업 집단의 수법이 프로야구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1차 지명 부활은 신생 구단 창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다. 이는 마치 김성모 만화에서 '목숨만은 살려주지' 해놓고 곧바로 '죽을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형용모순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1차 지명이 부활하면 유리한 것은 지역 소재 고교팀이 많은 수도권과 지방의 몇몇 팀 뿐이다. 각 지역마다 고교 야구부 수와 전력의 편차가 매우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금은 유망주가 넘쳐나서 비명을 지르는 삼성만 해도, 연고지에 아마야구 팀 수가 적고 유망주가 드물어 오랜 기간 애를 먹은 바 있다.

어차피 신생 팀이 창단하면 수년 동안은 하위권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팀이 전력을 강화해서 빠른 시일 내에 상위권으로 올라가려면, 좋은 신인을 뽑아서 육성해야 한다. 이는 리그 전력 균형을 위한 전면드래프트가 시행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1차 지명이 살아나면 신생 구단의 선수 수급에는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NC의 경우 현행 도시연고제를 적용하면 내년부터는 마산고와 용마고에서 1차 지명자를 선택해야 한다. 두 팀은 나란히 올해 주말리그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제도를 개정해서 광역연고제를 적용, 울산공고 등을 지명 대상에 포함시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는 같은 경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롯데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에 부산고, 경남고 등 강팀이 수두룩한 롯데가 양보해야 할까. 그런데 롯데만 도시연고제를 적용하면, 광역연고를 통해 천안북일고를 흡수하는 한화나 화순-효천고까지 보유하게 되는 KIA와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

10구단이 생겨도 마찬가지다. 만일 10구단이 수원에 생길 경우, 야탑고나 유신고 등에서 1차 지명자를 골라내야 한다. 역시 기존 구단들의 연고지에 비해 불리한 조건이다. 전북을 연고로 해도 전주고나 군산상고가 선택할 수 있는 최대치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역 아마야구 발전에 투자하면 상황이 나아질지 모르지만, 투자가 결실을 맺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그 기간 동안 상위 지명에서 좋은 선수를 건지지 못하면, 신생 구단으로서는 성적을 낼 길이 요원하다.

사실 연고지에 고교 팀이 많은 구단들이 지역 아마야구를 위해 특별히 투자와 노력을 해왔다고 보기도 어렵다. 광주-전라권은 해태 창단 당시부터 강팀과 유망주들이 넘쳐났고, 부산지역 야구도 롯데가 있어서 딱히 덕을 본 것은 없다. 대구 경북 지역 아마야구는 삼성이 창단한 이후 오히려 완만하게 하향 곡선을 그려왔다. 1차 지명 부활은 그동안 별다른 노력 없이 떨어지는 감 받아먹을 생각만 하던 구단들이 신생 팀더러 '지역 아마야구에 투자해서 자급자족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존 구단들이 진작에 지역 아마야구를 위해 투자했다면, 지금처럼 전국에 고교야구팀이 겨우 51개밖에 되지 않는 참혹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1차 지명은 신생팀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권리인 우선지명권과도 충돌한다. NC의 경우 올해까지 두 장의 우선지명권을 신인드래프트 이전에 행사하게 된다. 그런데 만일 1차 지명이 있는 상태에서 NC가 우선지명권을 행사한다고 가정해 보자. NC가 충청지역 투수 하나와 부산지역 투수 하나를 지명하면, 해당 지역을 연고지로 보유한 구단들만 드래프트에서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또는 유망주를 신생팀에 내주지 않기 위해 사전접촉을 통해 미리 계약을 확정지으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아예 쌍방울 창단 때처럼 10명씩 미리 지명하게 하면 문제가 덜하겠지만, NC의 특별지명 5장도 3장으로 축소한 기존 구단들이 그런 선심을 쓸 가능성은 전혀 없다.

1차 지명 부활의 또 하나 문제는 넥센 히어로즈다. 1차지명이 부활하면 서울 지역 세 구단이 한정된 서울권 유망주들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옛날처럼 주사위 굴리기로 정할 수도 없는 일. 결국은 계약금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대기업을 등에 업은 LG와 두산과 비교할 때, 넥센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경쟁이다. 물론 더 많은 돈을 주고 영입한 선수가 반드시 더 성공하라는 법은 없지만, 공정한 게임의 룰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은 핑계거리일 뿐이다. 이는 일부 팀의 10구단 반대가 실제로는 '넥센 고사 작전'의 일환이라는 야구계 일각의 주장과 맞물려 더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공교롭게도 10일 이사회에 넥센 이장석 대표는 불참했다.

결국 1차 지명의 부활은 겉으로는 아마야구 활성화니 유망주 유출 방지니 그럴싸한 의도로 포장하지만, 실은 신생구단의 진입과 전력 강화를 방해하려는 속셈이 숨어 있다. 새로 창단하려는 팀에게 웬만하면 리그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말라는, 정 들어오더라도 백년 만년 하위권에서 '밥'으로 머물라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1차 지명 부활이 10구단 창단 문제와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결정되었다는 사실은, 구단들이 정말로 신생팀 창단을 승인할 생각이 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선수협은 KBO의 의지를 믿는다고 했지만, 정작 결정권을 쥔 구단들이 거부하면 모든 게 도루묵이다. 과연 선수협이 올스타전 참가를 결정하면서, 1차 지명이 갖는 이런 의미에 대해 얼마만큼 신중하게 검토했는지 궁금하다.

기업들의 끝없는 욕심과 이기주의에 프로야구가 거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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