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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박근혜, 아버지와 단절하라…환관들을 정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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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박근혜, 아버지와 단절하라…환관들을 정리하라" [도올과의 인터뷰②·끝] "'인간 박정희'와 '역사 속 박정희'는 달라"
도올 김용옥 한신대 초빙교수가 신간 <사랑하지 말자>에서 대선정국을 그리고, 주요 대선 후보들을 평가해 화제에 올랐다.

그와의 두 번째 인터뷰 주제는 박정희와 박근혜다. 도올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높은 국민적 지지를 누리는 이유는 전적으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덕택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후보가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아버지와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올은 우선 '인간 박정희'와 '역사 속의 박정희'를 달리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성공을 위해 변절을 거듭한 박정희는 도덕적으로는 "무덤에 침을 뱉을 필요도 없는" 인간에 불과하지만, 그가 역사에 남긴 공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여전히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하는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정치인의 기본적 자질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도올은 언급했다. 그의 현재 위치를 고려할 때, 아버지가 남긴 유산 못지않게 부정적 그늘 또한 짙음을 지적한 셈이다.

이제 말기를 달리고 있는 현 정부 치하에서 나타나는 외교 문제와 정치 개혁 방향,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도올은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중국과의 외교를 강화해야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독도 논쟁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우리 사회가 미국에 대해 지나친 경외감을 품고 있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기독교에 대해서도 그는 "우리 사회에 해악이 많다"고 질타했다.

긴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도올과의 인터뷰는 두 편에 걸쳐 게재했다. 인터뷰 진행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맡았다. 다음은 두 번째 인터뷰 전문.

▲"'인간 박정희'와 '역사 속의 박정희'는 달리 봐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박정희가 곧 한국사… 어떻게 봐야 하나

프레시안 : 책의 3장 '조국'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남로당원이었다가 동료들의 명단을 팔아 사형을 면하고 살아난 과정이라든가, 형의 친구였고 김일성의 밀사였던 황태성을 사형시킨 정황 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적을 이렇게 자세하게 풀어 쓴 글은 처음이 아닐까 싶네요.

도올 : 개인적으로 당시 정황을 소상히 알 수 있는 여건이었어요. 관계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체화한 얘기였으니까요. 황태성 사건(박정희의 형 박상희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으나, 5.16 군부 쿠데타 직후 북한의 밀사로 월남했다 체포됨. 박정희 대통령 당선 직후 간첩죄로 사형 당함. 편집자)에 대해 총체적인 보고서를 쓴 미국 사람도 나와 가까운 사이였어요.

프레시안 : 우리가 아직 박정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닌가요?

도올 : 나는 내 책을 박정희라는 인간을 비판하거나 찬양하려고 쓴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려고 쓴 것이지요. 그 사람은 자기 내면의 이상(理想)을 끊임없이 배반하면서 변절의 삶을 살아 온 불쌍한 사람이지만, 그 변절은 개인의 차원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 민족 모두의 굴절이기도 해요. 그래서 '박정희의 망령' 운운하기 전에, 그의 집권 과정은 우리 스스로도 책임이 있는 우리의 역사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박정희의 생애 자체를 우리 20세기 역사 전체의 축소판으로 조감하는 관점을 가져야 해요.

박정희는 20세기 우리 역사의 아픈 면들을 드라마틱하게 다 겪었죠. 일제 강점기의 죄악, 해방 이후 좌우 분열의 죄악, 이승만 정권 하에서의 부패,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후 이어진 미국의 압력,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은 모든 과정이 우리 현대사의 아픈 면을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어요. 그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반성할 게 너무 많아요.

프레시안 : 그럼에도 역대 대통령 평가하면 박정희는 언제나 압도적 1위입니다.

도올 : 그건 너무나 당연해요. 이승만하고 박정희를 비교해보세요. 이승만은 너무 형편없어요. 정통성 없는 자기 권력만을 유지하는 데 급급했지, 역사를 이끌어나가는 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이승만에 비한다면 박정희는 최소한 민족사를 도약시키려고 하는 비전이 있었어요.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우리 경제발전은 국민들 노력 덕분이지 독재자 박정희의 덕분이 아니다', '당시 세계적 운세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라고 말해도, 그러한 비판의 언사만으로 박정희 치세를 다 도매금으로 넘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박정희의 군사독재가 인권을 억압하고 정당한 정치과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것과는 무관하게 대다수 국민은 박정희가 만든 역사에 대한 근원적인 가치 평가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치밀한 계획으로 인프라를 구축해 국가를 근원적으로 격상시켰습니다. 그 이미지가 민중의 마음속에서 어떤 확고한 가치를 유지하고 있어요. 문제는 그 이후에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스케일의 국가경영을 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박정희의 그런 공까지 인정하고 그걸 극복할 수 있는, 근원적으로 새로운 정치를 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비판한다고 새로운 지도자상이 생겨나진 않아요.

프레시안 : 최근 고 장준하 선생의 죽음 정황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민주화 운동하던 사람들이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란 힘든 일인 것도 사실입니다.

도올 : 그것도 너무 당연하지요. 박정희 시대에 저질러진 일들이 얼마나 흉악합니까. 우리 세대에 정신이 깨인 자들은 매일 자고 일어나면 '저 인간을 누가 어떻게 안 해주나'하는 간절한 기도 속에 살았어요.

장준하 선생 얘기도 아마 내가 <중앙일보>에 가장 먼저 썼을 겁니다. 제가 우리 집에 오신 함석헌 선생님한테 직접 생생하게 들었거든요.

사건이 난 1975년 당시 장준하 선생이 함석헌 선생한테 '이대로 올해를 무사히 넘기기란 힘들 것 같다. 우리가 뭔가 해봐야겠다. 막강한 유신 앞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도, 절망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라는 말을 했답니다. 함석헌 선생이 이런 장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신 이후에 '저 사람이 뭔가 혼자 꾸미려나보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실제 이날 대화 이후에 장준하 선생이 세 가지 행동을 취했습니다. 갖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태극기를 이화여대 박물관에 기증했어요. 그러고 나서 효창동의 김구 선생 묘소를 들르고, 자기 아버지 성묘를 했지요. 세 번째로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식을 못 올렸던 부인과 망우리 상봉동 성당에서 미국인 변 신부의 집례로 가톨릭 혼배성사를 치렀습니다.

문제의 그날 산에 오르려는데, 옛날 잘 알고 지내다 한 동안 전혀 나타나지 않던 사람 둘이 나타나서 '산에 모셔다드리겠다'고 집에 찾아왔더래요. 그러고 나서 일이 발생한 거예요. 함석헌 선생이 소식을 듣고 바로 사고현장에 달려갔는데, 딱 보니 타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그 분은 '장준하가 시청 앞 광장에 가서 분신자살이라도 하려 한 것 아니겠느냐. 당시 정보부에서 그런 분위기를 파악하곤 죽였을 거다'라고 추측하셨어요.

박정희 시대의 비극이 어디 장준하 하나뿐입니까. 인혁당 사건도 그렇고, 그 수많은 학생들이 당한 고초를 돌이켜보세요. 당시 나는 일본 유학생이었는데, 조총련이 운영하는 불고기집 가는 것도 엄청난 공포였어요. 조총련과 접촉만 했다 해도 간첩으로 몰리던 시대였으니까요. 박정희 시대 민중의 공포라는 것은 요새 사람 입장에선 상상도 못합니다.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 보면서 '우리 국민 전체 도덕성이 마비됐다'고 개탄하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게 바로 박정희 시대가 남긴 폐해라는 지적 또한 있고요.

도올 : 정확한 지적입니다. 박정희를 통해서 경제발전이 도덕성보다 중요하다는 이런 엉뚱한 논리가 만들어졌어요. 경제발전은 얼마든지 도덕적으로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도덕적으로 못 이룩하는 이유는 개인의 욕심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이런 욕망의 화신이었어요. 권좌에 집착해 국가의 대간을 그르쳤어요. 이런 논리가 만들어진 근원은 조선왕조의 세조에게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세조가 정권을 잡으면서 뭐가 되든 밀어붙이기만 하면 정의가 된다는 논리가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지식인들의 변절이 정당화되었지요. 그것이 조선 지식인들의 자기모멸로 이어졌어요. 이런 대립구도가 조선 후기의 노론정치로 이어지고 그 맥락에 박정희도 있어요. 그리고 그걸 가장 극악한 형태로 구현한 게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봐야 돼요.

"박근혜, 아버지와 단절해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근혜는 물론 한국 정치의 거물이다. 그러나 박근혜에게서 박정희를 완전히 떼내기란 불가능한 것 또한 사실이다. ⓒ뉴시스
프레시안
: 전두환이나 이명박도 어떻게 보면 '박정희 2세'라고 말할 측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유력 대권 후보로 떠오른 박근혜는 아예 생물학적 2세이지요. '박근혜 현상', 어떻게 봐야 합니까?

도올 : 박근혜를 얘기하려면 박정희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세워야 합니다.

국가대사의 사실담론으로서의 박정희 문제와, 우리가 한 인간으로서 살아야 할 도덕적 당위성의 맥락에서 박정희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거시 담론 차원에서 박정희의 생애는 역사의 한 굴절로서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개인 박정희의 인생은 그 자신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했다지만, 침조차 뱉을 가치가 없는 인생이에요. 우리가 배워서는 아니 될 인생입니다. 위무불능굴(威武不能屈)하는 대장부의 인생은 아니지요.

그의 권력욕 하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가 피해를 겪었습니까. 경제발전 공을 이야기하지만 얼마든지 그것을 도덕적인 방식으로 할 수 있었어요. 국가를 사유화해 죽을 때까지 대통령 해먹겠다는 유신과 긴급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있었지요. '천황폐하'가 되려고 한 거예요. 그릇된 자기 욕망을 품었고 끊임없이 변절한 사람이기 때문에 박정희는 너무나 불행한 인간이고, 우리가 절대 긍정해선 안 될 인간이에요.

그렇다면, 박근혜는 어떤가. 박근혜는 이러한 박정희를 인지할 능력이 없어요. 자식은 아버지를 객관화할 수 없어요. 자식에게 부모는 개념화될 수 없는 느낌으로만 남지요. 박정희 삶의 주요 부분은 이미 박근혜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뤄졌고, 박근혜의 삶과 박정희의 삶은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박근혜' 이미지의 후광에 항상 박정희가 있다고 하는 것이 너무도 잘못된 것이지요.

박근혜는 정치가라고 하지만 독자적인 정치행위를 해본 적이 없는 인물이에요. 박정희는 인생을 걸었지만 박근혜는 몸을 사리기만 했어요. 우리 역사에서 실제적으로 긴 시간 동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국민의 대의를 위해 정의로운 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4대강 때문에 우리 민족이 얼마나 앞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됐습니까. 그 피해를 예상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처절하게 4대강 반대운동을 했는데도 박근혜는 뒷짐 지고 쳐다만 보고 있었어요. 모든 불의에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예전 당내 경선에서 대운하를 두고 '난센스'라고 열렬히 주장한 사람이라면, 그 이후에도 그 주장을 관철시켜야 했습니다.

만약 박근혜가 '이런 저열한 토목공사는 한국의 위상으로 볼 때 전혀 걸맞지 않으며 그것은 해선 안 된다'라고 발언했다면, 당장은 이명박과 불편한 관계가 됐을지 모르지만, 그 정의로운 발언 하나로 인해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을 거예요. 그런데 박근혜에게서 단 한 번이라도 국민의 기억에 남을 정의로운 목소리가 있었던가? 없어요. 이건 정치가로서 일차적 자격 미달입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후보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도올 : 아버지와 모든 관계를 단절해라. 스스로 독자적인 정치인이 돼라. 한 인간으로서 역사의 평가를 받아라. 그리고 주변 환관들을 다 정리해라. 이런 나의 소리와 무관하게 박근혜를 찍을 운명의 사람들은 박근혜를 찍을 거예요. 그러나 그들도 마음속으론 '이번엔 또 어떤 놈들이 5년 동안 설칠 거냐'고 체념하면서 찍을 겁니다.

아울러 이명박의 모든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합니다. 반민특위가 좌절된 역사가 재현돼선 안 됩니다.

프레시안 : 비단 박근혜 후보뿐만 아니라 새 대통령에게 주어진 공통의 과제 같군요.

도올 : 맞아요. 이제 우리는 상식을 회복하고, 남북화해도 적극 추진해야 해요. 특히 낙후된 우리 교육 시스템을 리모델링하는 것도 필요하고. 이건 진보-보수와 관계없는 문제에요.

▲독도 문제는 한일 관계를 급랭시키고 있다. 과연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을 닷새 앞둔 지난 10일 오후 전용헬기에서 독도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뉴시스

"독도 문제, 차라리 잘 터졌다"

프레시안 : <사랑하지 말자>에서도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셨죠. 새 정부가 지향할 남북관계는 어떤 방향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도올 : 중국과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회복해야 남북관계를 풀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 감정의 밑바닥에는 '짱꼴라'니 '되놈'이니 하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어요. 괜히 중국을 깔봅니다. 외교 등 모든 문제에 있어서 중국을 미국과 동등하게 대접하지 않아요.

당장 주미대사보다 더 능력 있고 중후한 인물이 베이징에 가야 해요. 이런 것부터 실천하는 게 '본질적 회복'입니다. 중국 지도자들이 '남북을 통일시키는 게 우리에게 이득'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한때 이건희 회장이 '우리 민족의 미래는 중국에 달렸다'고 했는데, 단순히 기업의 중국진출에 관해서만 얘기한 게 아니에요. 중국 지도자와 한국 지도자가 상호 이해를 찾아내고, 인간적 유대를 맺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중국이 남한을 지지하게 해야 합니다.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겐 매우 절박한 문제예요.

그래서 나는 대일관계에 균열을 낸 이명박의 이번 독도 발언이 차라리 잘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조중동 등 보수 세력을 독도에 가둬버리고, 거기에 책임을 지게 만들면 돼요. 남북은 이 문제에 공동 대응하도록 하고, 거기에 중국의 지지까지 끌어내서 우리가 한미일 공조에 편향된 냉전질서를 청산하고 새 판을 짜야 합니다.

프레시안 : 우리는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과연 가능할까요?

도올 : 남북관계 정상화의 핵심은 '맥아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미국 덕분에 한국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은, 이여송 덕분에 임진왜란에서 승리했다는 말 만큼이나 미친 환상이에요. 맥아더 동상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게 우리 민족사의 비극이에요.

프레시안 : 대선의 가장 큰 화두가 경제민주화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예전에는 대기업 회장들과도 좋은 관계를 가졌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이야기를 담은 <대화>란 책도 냈죠. 재벌이 불편하게 느끼는 경제민주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올 : 내가 경제학자는 아니니 구체적 처방을 내리진 못하겠지만, '경제학자가 경제를 제일 모른다'는 조순 선생의 말씀도 있으니 한마디 해보지요.

우리나라 대재벌 문제는 결국 잘못돼 온 우리 정치의 결과예요. 재벌 문제와 정치 문제는 분리될 수 없어요. 정치가 재벌을 매판자본으로 키웠어요. 재벌은 국가권력과 밀착해 비리를 저질러왔어요. 그래서 재벌이 자체적인 논리도, 도덕성도 갖추지 못하고 적나라한 독식의 지배체제만 추종하는 거예요. 자국민의 생활세계를 식민지화하는 데 광분하고 있어요.

오늘날 소위 30개의 대재벌이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반면, 너무도 도덕성이 없다는 것이지요. 공익을 위한 비전과 행위가 없어요. 이런 비정상적인 체제가 이어지다보니 재계 지도자들도 비정상이 돼 가는 거 같아요.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급적이면 기업을 좋은 방향으로 휘몰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그런 희망을 버렸습니다. 골목상권까지 잠식하는 대기업은 대기업의 자격이 없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대기업은 투쟁의 대상이에요. 기업이 불의의 화신이라면, 앞으로 대기업을 타도하기 위해 정의로운 세력이 길거리에서 항거해야 할 역사적 국면이 올 수도 있어요.

▲"기독교는 우리나라 모든 불합리한 논리의 뿌리."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책에서 말씀하시고자 한 핵심은 '우리의 전통적 인간관과 세계관을 회복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도올 : 정확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독교 문제도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우리가 우리 문제의 해결을 위해 주체적으로 기독교를 수용했고, (같은 논리로) 언젠가는 주체적으로 뱉어내버릴 것이라고 하셨죠. 기독교가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유지하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신 것 같은데요.

예컨대 책에서 조선조 말, "기독교도들이 천당을 추구할 때 동학은 이 땅의 혁명을 주도했다"며 우리 전통사상을 높게 평가하셨죠. 또 "과학은 조선인을 개화시켰지만, 기독교는 조선인을 퇴화시켰다"고 지적하셨는데요. 특히 천주교 전도에 열심이었던 안중근 의사가 전도의 대가로 뮈텔 주교에게 대학 설림을 요청했으나 "조선인이 학문과 문장을 알게 되면 교를 믿는 일에 소홀하게 될 것"이라며 대학 설립을 거부했다는 얘기, 그리고 이후 안중근 선생이 천주교에 환멸을 느꼈고, 뮈텔 주교가 그를 파문했다는 얘기는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도올 : 기독교가 한국 역사에 공헌한 부분이 있어요. 교육, 의료, 근대적인 생각, 인간 평등관 등등을 가져다줬죠.

그런데 총체적으로 평점을 내 보면, 기독교는 이 땅에서 존립해야 할 이유를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불합리한 논리의 뿌리가 기독교에서 나와요. 초월을 강조하고, 절대를 강조하고, 불변을 강조하고, 절대자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이 모든 논리가 기독교의 폐해입니다. 기독교는 우리나라 사람의 모든 보수적 성향의 근원입니다. 우리 민족은 이처럼 격렬하게 절대자에게 귀의한 적이 없습니다. 절대는 자연이지, 초월적 존재자일 수가 없어요. 우리 민족은 언어와 사유를 기독교에게 빼앗긴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논리는 간단히 자멸할 겁니다. 니체는 신을 살해했지만 결국 미칠 수밖에 없었어요. 그의 존재의 혈관을 흐르는 피 전체가 하나님이었으니까. 그러니 피 전체를 갈아 치울 수는 없지요.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기독교는 살갗에 붙은 때를 씻어내는 정도의 노력이면 없앨 수 있는 겁니다. 200년의 어설픈 랑데부가 아직도 뿌리를 못 내렸어요. 우리가 기독교에 관해 어떤 담론을 하든, 그 담론이 서구인이 가진 담론의 깊이와 고뇌를 가질 수는 없어요.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유교사회입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가치에 유교적 합리성이 99퍼센트 깔려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광포한 대형 기독교는 머잖아 자멸할 겁니다. 그리고 진정한 신앙을 추구하는 훌륭한 기독교 신앙인들이 살아남겠지요. 일본은 기독교 인구가 전체의 1퍼센트 밖에 안 되지만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요.

프레시안 : 새로운 정치의 요체는 검찰과 언론을 바로 세우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도올 :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무서운 권력 중심이 검찰이에요. 검찰하고 각을 세워봤자 되질 않아요. 노무현 대통령도 검찰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대의를 그르친 사람입니다. 검찰과 타협하지 않고 또 검찰에게 끌려 다니지 않는 정치적 역량이 있는 인물이 필요합니다. 검찰 안에도 정의로운 세력이 많아요. 그러니 이들을 통해 검찰을 정의롭게 만들고 검찰이 정의를 위해 협조하도록 만들면, 아무리 허약한 정치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사회장악 능력을 가질 수 있겠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조중동을 어떻게 다룰 거냐는 거예요. 이명박 대통령은 '종편'이라는 미끼 하나를 갖고 멋지게 조종했죠. 이제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아요. 조중동의 권력을 통제할 근원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정보다원화가 대세인 흐름으로 볼 때,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한 치의 양보도 있어선 안 돼요.

프레시안 :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말씀 해 주시죠.

도올 : 지금 청춘이 가위에 눌려 있어요. 그냥 뛰어만 가면 되는데, 가위에 눌려서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청춘은 깨어나기만 하면 뛰어나갈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목에 풀칠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잘 사는 나랍니다. 그러니 사회 전선의 무가치한 전위에 나서려고만 하지 말고, 정의로운 삶을 여유 있게 살도록 노력하세요. 청춘의 역량을 조직하고, 투쟁하세요. 인생은 청춘의 꿈에서 시작해 비극의 해탈로 끝납니다. 꿈과 해탈을 연결하는 외나무다리가 모험입니다. 청춘의 생명은 오직 모험 속에서 유지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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