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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공약 가계부, 낙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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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정부 공약 가계부, 낙제점이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꼼수에 기대지 말고 재원 방안 논의해야
박근혜 정부가 지난달 31일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한 '공약 가계부'를 발표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약속했던 135조 원의 사용처와 재원 조달 방안을 가계부라는 이름으로 국민에게 선보인 것이다.

정부는 "공약 가계부는 역대 정부 최초로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라며 자화자찬한다. 이는 잘한 일이다. 이번 공약 가계부가 지닌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인 점이다.

지각 발표가 '자랑'할 일인가

하지만 공약 가계부를 냈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건 좀 민망하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국민들의 보편 복지 민심을 반영해 모든 후보가 복지 확대를 약속했고, 선거 직전에 각 후보가 포괄적이나마 공약별 필요 재정 규모와 재정 방안을 제출했다. 이번에는 어떤 후보라도 당선된 후에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가계부를 제출해야 했다. 그만큼 시대가 바뀐 것이다.

엄격히 따진다면, 공약 가계부는 지난 인수위원회에서 발표되었어야 할 문서이다. 그런데 인수위원회는 아예 공약 재정 방안에 대해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그만큼 준비가 부족한 채 공약이 태어났다.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야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공약 재원 방안을 마련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고, 이제 반년이 지나서야 선보인 것이다. 6개월이나 지각한 게 자랑은 아니다.

▲ 출처: 기획재정부, "박근혜 정부 국정 과제 이행을 위한 재정 지원 실천 계획 '공약가계부' 발표" (2013. 5. 31)

공약 가계부 134.8조 원 : 세출 절감 84.1조 원, 세입 확충 50.7조 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초점은 공약 가계부의 내용이다. 놀라울 정도로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실제 살림을 운영할 가계부로 보기 어렵다. 국민들이 기대했던 공약 가계부의 핵심은 재원 방안이다. 그런데 이 문서만으로는 진짜 재정이 마련되는지 확신할 수 없다.

공약을 이행하는 데 소용되는 재정 규모는 134.8조 원으로 애초 공약과 거의 동일하다. 재정 마련 경로에서도 세출 절감 84.1조 원(62.4%), 세입 확충 50.7조 원(37.6%)으로 비중이 공약과 엇비슷하다. 세율 조정이나 세목 신설과 같은 '직접 증세'를 제외한 것도 공약대로이다.

그런데 공약 가계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알맹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애초 공약과 다른 점도 눈에 띈다. 각각의 내용을 살펴보자.

아리송한 '국정 과제 재투자 40.8조 원'

첫째, 세출 절감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게 '국정 과제 재투자' 40.8조 원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내용이나 설명이 없다. 전체 135조 원의 30%에 해당되는 재정이 총액만 제시되어 있다. 다른 재원 방안을 검토하고 남는 몫을 모두 '국정 과제 재투자'로 산정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 출처: 기획재정부, "박근혜 정부 국정 과제 이행을 위한 재정 지원 실천 계획 '공약 가계부' 발표" (2013. 5. 31)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이 기존에 낭비되던 지출을 줄이면 상당한 재정이 마련된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이번 공약 가계부에서도 여전히 국민에게 그 실체를 보고하지 않았다. 기존 국정 과제를 새로운 사업으로 재투자하는 것이라면 기존 사업과 새로운 사업이 질적으로 얼마나 다른 것이지 검증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사한 사업을 이름만 바꾸고 세출 절감을 통한 신규 공약 사업으로 치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국정 과제 재투자'는 기존 사업들을 일괄적으로 일정 한도로 예산을 묶는 방식을 통해 조달하는 것이란다. 애초 공약에서도 '재량 지출 7% 절감, 경제 개발 예산 추가 7% 절감 등' 획일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국민이 원하는 세출 개혁은 '기존 사업의 옥석을 가려 부실하게 진행되는 사업을 개혁하라는 것'이지 국가 사업을 일괄적으로 축소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꼭 필요한 핵심 사업들이 오히려 억제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임대주택 사업을 이름만 바꾸면 '재량 지출 조정'?

둘째, '재량 지출 조정' 34.8조 원 역시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복지 분야에서 12.5조 원이 재량 지출 조정을 통해 마련된다. 당연히 의문이 제기된다. 복지를 늘린다면서 어떻게 기존 복지에서 12.5조 원이나 줄일 수 있단 말인가?

공약 가계부 발표 직후 진행된 문답에서 '세출 절감에서 복지 지출이 12.5조 원 줄어드느냐'고 기자가 물었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의 답은 다음과 같다. "보금자리주택 150만 호가 철도부지 위에 짓는 '행복주택'으로 개념 변경되면서 구조조정되는 게 9조5000억 원을 차지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기존의 보금자리주택이 행복주택으로 이름이 바뀌니 기존 보금자리주택 예산을 절감하고 행복주택만큼 재원을 늘린다는 이야기다. 사업 방식만 달라졌을 뿐 모두 정부가 주관하는 임대주택 아닌가? 어떻게 이게 새로운 재원 조달이란 말인가?

이차 보전 전환과 민간 투자 사업 : 국민 부담 늘리는 꼼수

셋째, 세출 절감에서 '이차 보전 전환' 5.5조 원과 '민간 투자 활성화'는 정부가 행해서는 안 될 나쁜 방안이다.

'이차 보전 전환'은 정부의 재정 융자 사업에서 기존 융자금 지출 대신, 이자 차이만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보금자리주택 건설에 1조 원을 융자 지출하면 재정 지출로 1조 원이 소요되지만, 이차 보전 전환 방식에서는 보금자리주택 사업자가 정부 융자금 대신 금융 시장에서 1조 원을 조달하고 이에 따른 추가 이자 비용을 정부로부터 보전받으므로 정부 지출은 추가 이자 비용만 계산된다. 정부의 입장에서 당장 1조 원의 융자 지출을 줄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국채로 조달하는 것보다 높은 시장 금리에 의존하므로 국민의 입장에서 예산을 낭비하는 일이다.

올해 예산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이명박 정부가 이차 보전 방식을 활용했다. 이명박 정부는 기존 융자 지출 중 3.5조 원(국민주택기금 3.0조 원, 중소기업진흥기금 0.3조 원, 에너지특별회계 0.2조 원), 신규 3.2조 원(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2.5조 원) 등 총 6.7조 원을 재정 융자 대신 이차 보전으로 전환했다. 이렇게 정부는 무리하게 재정 지출을 줄이려는 편법에 의지하면서 불필요한 이차 보전액 1168억 원을 낭비하고 있다. 이는 올해뿐만 아니라 매년 계속되는 예산 낭비이다.

또한 공약 가계부는 SOC 분야 지출을 줄이면서 민간 투자 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투자 사업 역시 현재 정부의 재정 지출을 줄여주지만 장기적으로 민간에 수익을 보장해주어야 하기에 재정 사업에 비해 국민에게 더 부담을 주는 방식이다. 민간 투자 사업이 도입되면 당장 정부 SOC 지출은 줄겠지만 SOC 사업 총량은 변하지 않는 대신 국민 부담만 늘어난다.

결국 이차 보전, 민간 투자 사업 등은 단기적으로 현 정부의 재정 지출을 줄일 수 있지만, 민간 금융 투자자의 금리 수입, 민간 투자 사업자의 시장 이윤을 보전해주어야 하기에 장기적으로 국민들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일이다. 자신의 임기 동안에만 재정 운용의 혜택을 보려는 박근혜 정부의 단기주의·이기주의적 행태이다. 국가 SOC 사업은 재정을 통해 진행하는 게 옳다.

'방향 제시'에 그친 지하 경제 양성화

넷째, 세입 확충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재원 50.7조 원도 애매하다. 세입 확충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영역이 지하 경제 양성화이다. 임기 중 총 27.2조 원을 조성하겠다는데, 구체적 내용이 없다. 내년부터 매년 6-7조 원씩 마련하는데, 어떠한 형태의 지하 경제인지 설명이 없고, 어떻게 이 금액이 계산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단지 '고의적 소득 탈루, 민생 침해형 탈세 등'에서 지하 경제를 양성화하겠다며 'FIU(금융정보분석원) 정보 활용, 영수증 발급 확대 등 세원 투명성 제고'가 설명의 전부이다. 애초 공약에서 진전된 게 거의 없다. 이는 '방향 제시'이지 '공약 가계부'는 아니다.

▲ 출처: 기획재정부, "박근혜 정부 국정 과제 이행을 위한 재정 지원 실천 계획 '공약 가계부' 발표" (2013. 5. 31)

세입 방안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영역이 비과세 감면 축소이다. 비과세 감면 조치는 이미 항목별로 진행된 것이기에 축소 방안도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영역이다. 공약 가계부는 총 18조 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저항이다. 그만큼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일몰 도래 시 종료 원칙'이 확실히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공약 사업 내용 수정 : 국방·과학기술 지출 늘어, 복지 축소 불가피

공약 이행을 위한 사업의 가계부는 어떨까? 우선 공약 이행 총 사업은 135조 원으로 규모에서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약속이 달라졌다.

애초 공약과 비교해 공약 가계부에서는 국방, 과학기술 지출이 늘어났다. 공약에서 국방예산 확충이 2.4조 원에 불과했지만 이번 공약 가계부에서 17.4조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발표된 공약가계부 자료만으로는 엄격한 비교가 어렵지만 과학기술 분야도 애초 약 2조 원 수준의 공약에서 8.1조 원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국방, 과학기술 분야 지출이 늘어나고 총량 135조 원의 변화가 없다면 결국 복지 분야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인수위 시절부터 논란이 되었던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적용 확대에 배정한 예산이 이번 공약 가계부에서 2.1조 원이다. 향후 4년간을 감안하면 고작 연 5000억 원 규모이다. 과연 이 예산으로 4대 중증질환 국가 책임 공약이 구현될 수 있는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4대 중증질환 국가 책임으로 연 1.5조 원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실제 앞의 <표 1>을 보면, 공약 가계부는 135조 원의 재정을 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융성, 평화 통일 등 4대 국정 과제에 배분하고 있는데, 복지에 해당하는 국민 행복 재정이 79.3조 원이다. 경제 부흥에 포함된 주거 안정, 교육 부문을 포함해도 100조 원이 넘지 않는다(보금자리주택을 대체한 국민행복주택 사업을 제외하면 약 90조 원 수준). 135조 원의 추가 재원이 대부분 복지 확대 용도일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과 사업 내용이 다르다.

국민들은 이미 인수위원회에 시절부터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이 차등 지급으로 변질되고, '4대 중증질환 국가 책임'이 비급여 보장 제외로 후퇴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크게 공론화되지는 않았지만 '저임금 노동자 사회보험료 전액 지원'이 현행과 비슷하게 절반 지원으로 사실상 백지화된 것도 심각한 일이다. 정부가 무엇을 발표할 때마다 또 복지 공약이 축소되는 것이 아닌지 불안이 더해 간다.

▲ 지난 2월 8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중곡제일시장을 방문해 순대를 구입하는 박근혜 대통령 ⓒ뉴시스

복지 공약은 약속대로, 보편 복지 위해 사회복지세 도입해야

이제 공약 가계부에 어떤 점수를 줄 수 있을까? 낙제점이다. 이러한 문서로는 가계를 운영할 수 없다. 사실상 국정을 운영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공약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진짜 복지와 재정 공약을 약속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갈수록 커진다.

애초 복지 공약은 약속대로 시행돼야 한다. 국민의 절반은 박근혜 대통령보다 더 강한 복지 공약을 가진 후보를 지지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재원 방안이 논의의 핵심이다. 세출 절감, 세입 확충 모두 절실한 과제이다.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재원 마련이 충분치 않다는 게 갈수록 확인되고 있다. 자꾸만 꼼수에 의지하지 말고 재원 방안을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

국민에게 증세를 요청하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모든 이가 능력대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복지목적세로 '사회복지세' 도입을 제안한다. 1970년대 자주 국방을 위해 방위세, 1980년대 국민 교육 향상을 위해 교육세, 1990년대 WTO 가입에 따른 농어촌 지원을 위해 농어촌특별세를 도입했다. 2013년 대한민국은 보편 복지를, 이에 따른 재원을 요청하고 있다. 사회복지세를 도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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