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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DJ 방북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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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DJ 방북에 달렸다 한반도 브리핑 <9> '빈손'으로 가면 곤란하다
한반도의 6월은 뜨겁다. 월드컵 열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2000년 남북관계를 바꾼 정상회담이 6월에 열렸다. 그래서 매년 6월에 6.15 기념행사가 열린다. 작년부터는 6.15 행사에 당국이 참여한다. 올해 6월도 뜨겁다. 광주에서 6.15 6주년 행사가 열린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6월 27일 방북한다. 북핵문제로 '오랜 교착'을 거듭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까?

지금 왜 DJ 방북이 중요한가?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이 중요하다. 왜 그런가? 북한 정치체제의 특수성 때문이다. 북한의 정책결정 과정은 중앙집권화 되어 있다. 북한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말은 그 자체가 법이고, 최종 결정이다. 장관급 회담을 비롯한 남북대화의 가장 큰 애로는 북측 협상대표들의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6자회담 참여나 남북관계의 도약과 같은 중요현안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북한에서 한 사람뿐이다.

이 점은 이미 2005년 6월에 확인된 바 있다. 정동영 전 장관의 그 해 6월 17일 면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전격적으로 '7월 중 6자회담 참가'를 선언한 바 있다. 당시의 상황에서 북한의 어느 누가 6자회담 참가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관계에 대한 발언은 곧이어 장관급 회담의 합의사항으로 확인된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북대화 역사에서 사전에 김정일 위원장 면담을 확정하고, 방북한 사례는 2000년 정상회담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흔치 않은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국면의 중요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은 지난해 9.19 공동선언 채택 이후 여전히 교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도쿄에서의 비공식 6자회담 대표 회동이 무산된 이후 더욱 그렇다. 남북관계는 어떤가? 한편으로 6자회담의 교착 상황에서 각종 남북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불신 속에서도 최소한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다음 단계로의 도약과정에서 나타날 법한 '진통'도 드러나고 있다. 바로 경제협력 중심의 남북관계가 갖는 한계다. 북한의 군부는 열차 시험운행 합의를 번복했고,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비롯한 '근본문제 해결'을 민감하게 제기하고 있다. NLL 문제에 대한 북한 해군의 섬뜩한 경고나, 북한 공군의 영공침범 주장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그동안 바삐 달려 온 남북관계를 둘러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방향의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 "남북대화 역사에서 사전에 김정일 위원장 면담을 확정하고, 방북한 사례는 2000년 정상회담이후 두 번째다." 사진은 2000년 남북 정상의 만남 장면 ⓒ연합뉴스

통일방안 논의, 걱정할 것 없다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 정상회담 이후 6년이 흘렀다. 그동안 남이나 북이나 '제2의 6.15 시대'를 말할 정도로 많이 달려 왔다. 그렇지만 가야 할 길도 멀다. 참으로 서로가 할 말이 많은 자리가 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화하러 가지 협상하러 가지 않는다'는 말로 과도한 기대를 경계했다. 김 전 대통령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시선들이 많다.

오해도 있다. 통일방안 논의에 대한 경계가 대표적이다. 통일방안 논의는 안 되고, 6자회담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문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주문은 김 전 대통령의 생각을 잘못 읽은 것이다. 통일방안 논의의 맥락을 오해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 전 대통령의 통일방안은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의 3원칙과 남북연합, 남북연방, 완전통일의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작년 12월 노벨 평화상 5주년 기념연설이나, 연초에 있었던 몇 개 언론사들과의 인터뷰에서 강조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다. 핵심은 6자회담이 성공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형성되는 10년, 혹은 20년후 한반도는 통일 1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의 상식과 부딪치지 않는다. 평화의 중요성을, 교류협력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6.15 공동선언의 제2항, 즉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는 문구가 어떻게 합의되었는지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통일은 점진적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지 서두를 일이 아니라는 점이 이 합의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6.15 공동선언 제2항의 의미를 "통일을 하기는 하되 너무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과, 지금 가능한 통일작업부터 진행하는 것"이라고 요약한 것은 맞다. 결과로서의 통일보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중요하고, 통일 방안보다 "사실상의 통일 상태'가 중요하다는 김대중 정부 당시의 통일관과 최근의 발언들은 일관성이 있다.

바삐 살아 온 한국 사람들에게 미래 담론은 익숙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평생을 남북관계를 고민한 전직 대통령에게 통일의 미래를 논하지 말라는 것은 가혹하다. 하물며 통일에 대한 생각이 다수 국민의 합의인 평화와 교류협력을 기반으로 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라고 누차 강조하고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북한의 6자회담 참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모두들 이번 방북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바로 '6자회담 참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김 전 대통령을 빈손으로 보내면 안 된다. 2005년 6월 17일 김정일 위원장의 '7월중 6자회담 참가' 약속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방북할 때, 그의 손에는 5월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있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여러 말을 했지만, 그중에서 'Mr. 김정일'이라는 호칭과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많은 유인(a lot of inducements)을 제공할 수 있다'는 발언이 있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흥미를 가질 만한 동기였다.
▲ "작년 6월 17일 김정일 위원장의 '7월중 6자회담 참가'약속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사진은 김정일 위원장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환담 장면 ⓒ연합뉴스

북한은 6자회담이나 한반도 평화체제와 같은 주제들은 남북관계 이슈라기보다 북미 관계 이슈로 생각한다. 한국이 이런 구도에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한미 대화를 통해 '남-북-미 3각관계의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다. 한미 대화를 통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 김 전 대통령의 방북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부시 미 행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외교적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쟁점이 되었던 이란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전환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이란을 공격하기 어렵고, 공격한 이후 감당할 수 없는 고유가와 안보불안에 대한 우려로 미국은 비록 조건부이지만 이란과의 직접대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이란과 직접대화를 한다고, 이란 핵문제가 쉽게 해결되기는 어렵다. 이라크의 늪에 빠진 미국이 이란에 대해 군사적 옵션을 쉽게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이란은 알고 있다. 이란은 앞으로의 협상에서 고자세를 유지할 것이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이 최근 지적했지만, 이란과 직접대화를 결정한 부시 행정부가 왜 북한과는 대화하지 않는가? 부시 행정부가 외교에서 성과가 필요하다면, 오히려 이란 핵문제보다 북핵문제가 쉬울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북핵문제는 최우선 과제다. 최근 한미 관계에 쟁점들이 많지만,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간의 진지한 대화보다 시급한 것은 없다. 김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제2의 6.15 시대, 구동존이(求同存異) 정신 필요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방향정립이 필요하다. 북한은 이른바 '근본문제의 해결'을 대남 정책의 최우선적인 관심사라고 강조한다. 북한은 작년 8.15에 국립 현충원을 참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측에서 여전히 상응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것을 불만스러워 할 것이다. NLL 문제를 비롯한 군사적 현안에 대해서도 남측이 소극적이라는 불만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지난 6년 동안 북측이 남쪽에 가진 불만만큼이나, 남측 역시 북측에 대해 할 말은 적지 않을 것이다.

탈냉전으로 가는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같음을 추구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남북관계는 가야 할 길이 멀고, 서로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고, 여론이 중요하다. 남북관계의 방향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들이 많다. 정치적인 문제든, 군사적인 문제든 다수의 지지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해결해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북한이 진정으로 군사적 신뢰구축과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NLL 문제와 같이 남측이 받기 어려운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6자회담에 참가하고, 북핵문제 해결에 진전을 만들어, 하루빨리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6년전 남북 정상회담의 주역들이 남북관계에 대해, 민족의 바람직한 미래에 대해 많은 생산적인 대화를 했으면 한다. 하반기 한반도 정세에서 한국의 역할은 전직 대통령의 방북 성과에 달려 있을 것이다. 불필요한 오해나, 정치적 편견을 갖고 오해를 증폭시키기보다는 전직 대통령의 평양행이 보다 성과 있는 만남이 되도록 지혜를 모으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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