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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손인가 부패의 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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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손인가 부패의 손인가 [기고] 삼성 '천년왕국'의 꿈, 3대에서 꺾이고 말까
삼성특검이 13일 e삼성 사건 피고발인들을 불기소하기로 하면서 삼성특검이 '면죄부 특검'에 불과하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인으로 활동 중인 이덕우 변호사는 14일 <프레시안>에 기고문을 보내 와 삼성특검은 태생부터 무력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덕우 변호사는 이 글에서 삼성특검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7일 돌연 입장을 바꿔 특검을 받아들인 배경을 분석하며 삼성에 면죄부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고발하고 있다.

진보신당 공동대표이기도 한 이 변호사는 지난 12일 삼성특검 사무실에서 과로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된 바 있다. <편집자>


지난 해 10월 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첫 기자회견 후 4개월이 지났다. 그 동안 사제단과 김용철 변호사는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했다. 검찰은 처음에는 고발장이 없으면 수사할 수 없다고 버티다가 국회에서 삼성특검법안을 발의하려 하자 대규모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했다. 박한철 본부장이 지난 해 11월 "특검이 필요없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도록 수사하겠다"며 "현대자동차 사건 때처럼 경제적인 고려는 전혀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엄정한 수사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 등에 대한 전격 출국금지, 삼성증권 등에 대한 압수수색 등 일련의 조치를 취하면서 수사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역관계에 의해 삼성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언하던 노무현 대통령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를 중단하고 특검에게 맡기라고 했다. 그 후 특검법에 따라 대한변협 회장 이진강의 추천을 받아 노무현 대통령은 조준웅 변호사를 특별검사로 임명하여 올해 1월 특검이 수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1차 수사기간 60일이 마감되는 3월 9일이 지났다. 지난 2월 27일에는 조준웅 특검이 사제단 대표들을 면담하겠다고 요청했으나 사제단을 그를 거부하고 기자회견을 했다. 사제단은 특검 출범 뒤 최대한 자제하면서 특검의 수사 진전을 살펴보았으나 조준웅 특검의 면담요청과 참고인 조사방침,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고 수사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특검 면담 거부와 3월 9일 1차 수사기간까지 수사, 수사기간 연장 포기, 중간수사결과 발표 및 검찰에 인계 등을 요구했다.

이건희 일가의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불법 경영권 승계, 온갖 로비 등 유사 이래 최대의 부패, 범죄행위에 대한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과 사제단의 활동, 검찰과 청와대, 국회 및 정당의 대응 등 약 4개월 동안 진행된 일을 이 짧은 글로 정리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태의 본질과 중요한 몇 가지 사실만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김용철과 사제단

우선 이번 삼성사태의 주역을 살펴보자. 단연 김용철 변호사와 정의구현사제단이다.

지난 해 10월 26일 함세웅 신부의 소개로 김용철 변호사를 만났다. 첫 인상은 몹시 불안해 한다는 느낌이었다. 양심고백의 내용, 앞으로 벌어질 삼성 및 국가권력과의 싸움 등 사제단 법률고문으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은 변호사로서도 두려움을 느꼈을 정도이니 죽을 각오를 한 당사자가 공포에 떨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첫 기자회견 후 김 변호사는 급속히 정신적 안정을 되찾았고 육체적으로도 건강상태가 호전되어 갔다. 가장 가까운 아들 등 가족들의 이해가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제단의 첫 기자회견을 전후해 언론은 물론 여러 경로로 김용철 변호사를 비난하는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성격, 가족관계, 축재 등 여러 가지였다. 김 변호사는 죄인임을 고백했고 언제라도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허위로 이건희 일가의 명예를 훼손했거나 삼성의 신용을 추락시켰다면 언제라도 감옥으로 가겠다고 공언했다. 그럼에도 김 변호사의 과거 행적이나 사생활 등에 집착하는 언론 등에 대해 김 변호사나 사제단은 달을 보라고 가리키고 있는데 왜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느냐고 질책했다.

물론 왜 삼성에서 일할 때 폭로하지 돈 많이 받고 실컷 즐긴 후 이제야 폭로하느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굳이 성경의 돌아온 탕자에 비하지 않아도 반성과 회개가 늦었다는 터무니없는 비난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이 사실이었음이 하나 둘 밝혀지자 법조계 내부에서부터 비난의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김 변호사를 알아본 택시기사가 요금을 받지 않고 사인을 부탁하거나, 거리나 식당에서 알아보고 힘내라고 격려하는 시민들도 많아졌다. 사제단은 지금도 김 변호사에게 죄인임을 강조하며 겸손하라고 특히 언행에 조심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1974년 7월 23일 고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 무효'라고 선언하고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자 젊은 가톨릭 사제들이 중심이 되어 같은 해 9월 26일 강원도 원주에서 결성한 단체이다. 특히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된 양심수 석방 및 유신헌법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민주회복국민운동, 1964년에 일어난 인민혁명당재권위원회 사건의 진상규명운동, 자유언론실천운동 등에 앞장섰다.

1987년 5월 18일에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축소·조작 및 은폐 사실을 폭로하여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선 6월항쟁의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 미완의 혁명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정치적 민주화의 한 획을 그은 6월항쟁은 사제단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이렇게 권위를 인정받는 사제단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믿고 김 변호사를 보호하고 앞장서 나서지 않았다면 이건희 일가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와 전국민적 비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삼성특검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연합뉴스

특검 수용을 둘러싼 검은 노림수들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이 검찰 및 특검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것은 이건희 일가의 욕망으로 썩어가는 국가제도, 국가권력을 제자리로 돌리려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건희 일가는 시종일관 부인했다. 그들만의 자신감이었다. 이런 자신감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무리 '관리의 삼성'이라지만 국가권력의 어디까지 관리해 왔기에 저렇게 자신만만한가. 그 실태가 낱낱이 드러나지 않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특검법 통과와 특검 임명까지의 과정만 살펴보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선을 불과 앞둔 지난 해 11월 13일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제안하고 정동영·문국현 후보가 동의해 정기국회인 23일까지 삼성특검법안을 처리하기로 전격합의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2002년 16대 대선 때 삼성, 현대 등 재벌로부터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선자금을 받아 차떼기당, 부패원조당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어 특검을 반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한나라당은 별도의 특검법안을 냈고 노무현 대통령 대선잔금과 당선축하금을 특검수사대상으로 끼워 넣어 정치적으로 이득을 보려 했다. 대통령의 목에 비수를 들이댔으니 틀림없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고 대선에서 승리하면 국회에서 재의결하지 않고 폐기시키면 될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통합신당도 특검법안에 찬성했으나 대선 후 재의결할 굳은 의지는 없어 보였다. 결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확실해 특검법이 무산될 것이니 일단 국회에서 통과시켜 명분이나 쌓자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정치적 계산을 한 정당들에 의해 11월 23일 국회에서 어렵게 특검법안이 통과되었으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당시 청와대는 처음 특검법안에 대하여 문제해결의 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하다가 갑자기 특검법안이 위헌이라고 태도를 돌변하였다.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은 "다리로 다녀도 되는데 왜 배를 띄우나"라고 분명히 반대의사를 밝혔다. 11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은 해인사에서 "저는 당선축하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특검을 하든, 안 하든 진실은 밝혀질 것입니다"라고 행사 축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11월 25일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은 점검회의를 했다. "대통령이 최장 12월 10일까지 특검법안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12월 10일 거부권을 행사하면 12월 19일 대통령선거 이전 임시국회를 소집할 수 없다. 대통령 선거 결과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특검을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특검은 물 건너간다. 검찰이 뒤늦게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고 검사들의 생리상 일단 수사에 착수하면 덮기 어렵다. 특본에서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확실히 그려주자"는 것이 회의에서 점검된 내용이다.

이렇게 해서 사제단은 11월 26일 기자회견을 하고 11월 27일부터 김용철 변호사가 검찰에 출두해 수사에 응했다. 11월 26일의 기자회견 내용은 이건희 일가의 범죄행위를 종합한 것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26일은 물론 27일 오전까지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처럼 하더니 느닷없이 27일 11시 반 기자회견을 자청, 특검법을 수용한다고 했고 오후에는 법무부 장관에게 삼성이 2중~3중으로 수사받지 않고 경제에도 영향이 없도록 협조해 달라고 했다. 이는 결국 이건희 일가와 삼성에 대한 수사는 특검에 맡기고 검찰은 손을 떼라는 지시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건희 일가와 삼성의 범죄행위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수사의 피의자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열심히 수사하는 특별수사본부 검사들에게 손을 떼라고 지시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중단 지시를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특본 검사와 수사관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당연히 특본 안팎에서 특본 해체니, 축소니, 수사 중단이니 하는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특검법을 수용하고 수사중단 지시를 한 것일까. 특검법을 통과시킨 한나라당 등 정당의 계산과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은 역으로 거부권을 포기하여 허를 찌른 것이다. 즉 삼성과 대통령이 궁지에 몰려 찾아낸 묘수, 노림수는 특본 수사 중단과 특검 무력화였다.

특검 추천권은 대한변협 회장에게 있다. 대한변협은 김용철 변호사를 징계하겠다고 했던 조직이다. 그리고 3명의 후보 중 한 명을 임명하는데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다. 자신을 피의자로 조사할 수도 있는 특별검사로 과연 강직한 사람을 임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삼성은 대한변협 회장 추천, 대통령 임명이라는 2중의 방어막을 구축하고 적당한 인물을 특별검사로 내세운 후 최악의 경우 이학수, 김인주 두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을 계획을 세우고 이를 그대로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수십년 가신인 두 명을 희생양으로 내친다면 이재용의 불법승계와 회장 취임은 자연스럽고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여지도 있다.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포기와 특본 수사 중단 지시 당시 분석했던 특검 무력화는 대한변협의 특검 후보 추천과 대통령의 조준웅 특검 임명, 그리고 지난 약 50일간의 수사가 보여줄 성과가 될 것이다. 결국 특검은 적당한 선에서 도마뱀 꼬리 자르기와 같은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삼성 사건의 본질은 저열한 욕망

그리스 신화에 프리지아의 왕인 미다스의 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영어로 하면 마이다스의 손이라고들 한다. 미다스는 몹시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늘 허기진 사람처럼 재산을 탐하는 사람이었다. 미다스는 우연히 좋은 기회를 잡았고 그리스 신 디오니소스가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하자, "제 손이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 소원은 이루어져 미다스가 만지는 모든 것 심지어 길에 굴러다니던 넝마구두도 황금으로 변해 반짝였다. 그러나 미다스는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 먹을 수 없었다. 손으로 잡는 순간 모두 황금으로 변했으므로.

그리고 가장 큰 사고가 터졌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가 황금상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미다스는 크게 슬퍼하며 디오니소스를 다시 찾아가 소원을 철회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디오니소스는 파크톨로스 강에서 목욕하라고 했고, 미다스가 그대로 하자 모든 마법이 풀렸다는 이야기이다. 미다스의 손은 원래는 이런 교훈적인 이야기인데, 최근에는 그 '황금손'이라는 의미 때문에 엄청난 갑부, 혹은 손대는 일마다 잘 성사되어 돈을 잘 버는 사람을 가리키곤 한다. 뛰어난 최고 경영자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을 속여 먹였다는 김경준도 아마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었던 것 같다.

삼성, 이건희 일가의 손은 미다스의 손처럼 황금의 손이다. 그들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은 황금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들과 만난 손을 잡는 모든 사람은 썩는다. 부패한다. 관리의 삼성은 그들과 손잡는 정치인, 공직자와 언론인, 교수, 변호사 등 모든 이들의 양심을 마비시킨다. 정말 큰일이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 썩어 악취가 진동할 것 같다.

미다스는 손도 유명하지만 귀도 유명하다고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에서 임금님이 바로 미다스이다. 미다스의 이발사가 이발을 하면서 알게 된 귀 이야기를 땅을 파고 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이 돌아다녔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도 신라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인데 대나무 숲에서 바람이 불면 당나귀 귀라는 말이 돌아다녔다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이야기다.

진실을 마주보는 것, 응시하는 건 불편하다. 더더구나 자신의 잘못, 조직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천년왕국을 꿈꾸던 대한민국 재벌, 특히 삼성의 이건희 일가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고통스럽게 잘못을 인정하고 부패라는 마법으로부터 풀려나오길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참회하지 않더라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숨겨진 진실은 언젠가 드러날 것을 믿는다.

* <삶이 보이는 창>, <레디앙>에 동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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