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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산' 이후 30년, '중화 대가정'은 성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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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산' 이후 30년, '중화 대가정'은 성공했나 [中國探究性学习] 화제의 영화 <탕산 대지진>
1976년 7월 28일 새벽 베이징 동쪽 약 150여 km 지점의 작은 도시 탕산(唐山)에 7.8도 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탕산 지진은 그해 9월 9일 마오쩌둥의 사망과 문화대혁명의 종식 등 파란 많은 중국 현대사에 대한 어떤 전조 같은 일로 두고두고 회자되곤 했다. 무려 24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함으로써 아직까지도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되고 있는 탕산 지진은 아직도 중국인들에게 선명한 비극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진 발생 34주년이 되는 올해 7월 탕산을 시작으로 전국 상영에 들어간 영화 <탕산 대지진>이 화제다. 중국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해 수많은 중국인들을 울리고 웃기며 각종 기록을 갈아 치워 온 솜씨 좋은 상업영화 감독 펑샤오강(馮小剛)이 메가폰을 잡았다. 개봉 두 달이 채 안 된 지난 8월 말 이미 3000만 명 이상이 관람하며 6억5000만 위안(한화 약 1100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영화는 대륙 뿐 아니라 홍콩과 대만 등 '화어권' 지역에서도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며 순항 중이다.

장링(張翎)의 소설 <여진(餘震)>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23초 동안 세상을 뒤흔든 지진이 앗아간 탕산을 재현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무너진 건물 더미 아래 쌍둥이 남매를 묻은 한 어머니의 선택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딸을 구하면 아들을 잃어야 하고, 아들을 구하면 딸을 잃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양자택일의 순간이 펼쳐진다. 두 자식을 모두 버릴 수 없었던 어머니는 아들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어머니는 딸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지만 대재앙 앞에서 시신마저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 그러나 딸은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고 마음씨 좋은 인민군 양부모에게 길러진다.
▲ 영화 <탕산 대지진>의 포스터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했던가. 무력한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재앙에 대한 기억은 분명 중국인들의 집단적인 트라우마로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는 무력한 인간의 능력을 극단적으로 표상해 주는 재앙의 기억을 한 가족의 문제로 집중시키고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은 지진의 배후에는 당도 정부도 없다. 마오쩌둥에 대한 집단 추도가 지진 이후 공식적인 행사의 전부다. 지진과 더불어 당과 정부를 이끌던 마오쩌둥은 죽었고, 가족은 해체됐다. 다만 '버려진' 딸을 거두는 인민군의 모습은 헌신적이다. 군에 의해 가족의 일부가 재구성된 셈이다.

영화의 흐름은 다소 완만한 편이다. 지진 이후를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과 그들의 새로운 선택이 짧지 않게 펼쳐진다. 영화는 당초부터 할리우드식 재난 영화의 스타일을 지향할 생각이 없다. 들머리에 재현되는 지진 장면들도 스펙터클이라기보다는 영화를 구성하기 위해 삽입한 최소한의 장치처럼 보일 뿐이다. 지진의 상처를 후벼내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영화의 주제를 가족의 문제로 전이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 딸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기억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결국 영화는 예상대로 화해를 선택한다. 딸을 선택하지 못한 무력한 개인으로서 어머니의 후회는 30년 간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어머니가 딸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딸도 역시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한다. 함께 찾은 아버지의 묘소 앞에서 이들은 다시 새로운 가족으로 재탄생한다.

갈등과 봉합을 거듭하면서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 어떤 재앙이 오더라도 가족의 가치는 숭고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주선율'(主旋律: 당과 정부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기 위한 영화)의 혐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1987년 '주선율'이라는 구호가 공식 제기된 이후 수많은 영화들이 가족의 가치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가족은 언제나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인간관계의 표상으로 작동한다. 혈연을 기초로 한 전통적인 가족 관념은 매우 공고한 방식으로 인간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구성한다.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다른 더 큰 사회적 문제들을 봉합하려 할 때, 가족은 언제나 중요한 가치로 손쉽게 되살아난다. 그리고 종종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는 전 사회적 관계를 은유하는 유비적 관계로, 즉 '사해동포' 이데올로기와도 직결된다.
▲ 영화 <탕산 대지진>의 한 장면

영화가 후반부에 연전의 원촨(汶川) 지진을 다루는 것도 그 까닭이다. 34년 전의 탕산과 2년 전의 원촨을 겹침으로써 오늘의 중국인을 향한 메시지를 던진다. 무력한 인간의 힘으로 대응할 수 없는 재앙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들을 '가족' 이데올로기로 우회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원촨의 화면에는 탕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일사불란한 구조의 장면들이 펼쳐진다. 이제 탕산 이후 30년 동안 실천해 온 중국의 발전을 통해 새로운 '중화 대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가 되어 현대화를 달성한 탕산의 발전상을 보여준다. 30년 개혁·개방의 결실을 통해 '중화'가 하나의 가정으로 다시 봉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 그 이후의 시대를 이끌어갈 아들의 아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재앙과도 같은 사회적 갈등이 터지면 언제나 다시 불려 나올 수 있는 주류 이데올로기적 힘을 발산한다. 그러나 어쩌면 생물학적 혈연을 확대하여 우리 모두가 '가족'이라는 가치는 역설적으로 활용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가족은 힘이 세다. 하지만 그 센 힘이 곧바로 사회적인 관계로 확대되는 데에는 무엇보다 '공정한' 절차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힘 센 어느 한 쪽의 획일적 무기로 활용되어 그렇지 못한 이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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