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등극했다. 14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2010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5조8800억 달러로 5조4740억 달러에 그친 일본을 눌렀다. 지난해 분기별 성장률 발표 때 이미 예고된 결과지만 중국의 가파른 성장세를 새삼 느끼게 한다.
영국 <BBC> 방송은 이는 지난해 중국의 '제조업 붐' 때문이라며, 현재 추세대로라면 중국이 세계 1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미국을 따라잡는 것도 10년 내로 가능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전했다. 미국의 2010년 GDP는 14조6600억 달러로 현재 중국의 3배에 가깝다.
이로 인해 21세기에는 미국과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일 겄이며, 두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을 놓고 격돌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가열된 위안화 환율 논쟁이나 무역 마찰은 양대 강국 간 '경제전쟁'의 서곡이라는 것이다.
또 중국은 정치적으로도 '도광양회'(韜光養晦, 그늘 속에서 힘을 기름)로 대표되던 지난 시기의 외교를 넘어 대국으로 우뚝 서고(屈起) 있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은 주변 국가와 영토 분쟁을 겪고 있으며, 지역 패권을 놓고 미국과 맞붙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인 한광수 인천대 교수는 이런 시각은 사실과 다르다며 아직 중국의 국력은 미국과의 '경쟁'을 이야기할 만한 수준이 안 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미중관계를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방어하는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즉 중국의 성장이 놀랍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며, 중국은 미국이 만든 질서 안에서 국력을 키우는 단계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미중관계는 본질적으로 협력관계"라며 갈등론적 시각은 섣부르다고 지적했다. '한광수 중국문제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그는 "미중 양국은 큰 틀에서는 협력하면서 내부의 조그만 갈등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겪을 것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겪고 있는 변화의 가장 큰 속성으로 '예측 불가능성'을 꼽은 한 교수는 한반도 문제에서도 미중의 협력은 기본적으로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천안함 침몰, 핵 문제, 연평도 포격 등 구체적인 문제에서 의견차이는 있을지언정 넓은 시각에서 보면 남북이 분단된 현 상황을 그대로 유지시킴으로써 두 나라 모두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지난 14일 <프레시안>을 찾아 한중관계와 한반도 문제에 대한 특강을 진행했다. 인천대 동북아통상학부 교수인 그는 같은 대학 '공자학원' 원장을 맡고 있고,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친디아저널> 편집위원장이기도 하다. 1991년 한중수교 이전 베이징에 한국 무역대표부가 있던 시절부터 대표부의 경제 고문을 했고, 수교 후에도 대사관을 도와 많은 일을 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활동을 공식·비공식으로 지원하고 중국 사회과학원 등에서 6년간 연구를 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날 특강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미중관계의 본질은 갈등 아닌 '협력'
미국은 100년 넘도록 세계 제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미국은 1800년대 후반에 산업 생산 면에서 유럽을 완전히 눌렀고, 2차례의 세계대전은 미국으로서는 '대박이 터진' 것이었다. 한편 인건비가 싼 지역으로 제조업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중국은 지금 산업화의 초점이 되고 있다.
또 현재 시점에서 한반도 분단과 가장 밀접히 관련돼 있는 나라가 (남북한을 제외하고) 미국과 중국이다. 이 두 나라는 우리에게 밀어닥치고 있는 외세의 물결 중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 나라들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한반도 문제도 같이 짚어보자.
▲ 한광수 인천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미중 양국은 문화적 DNA(유전자)가 다르고 갈등을 겪는 부분도 있지만 글로벌 경제의 최대 공동수혜국으로서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큰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중 간의 협력과 갈등은 병렬적인 것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큰 틀 아래 상대적으로 작은 갈등 요소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미중 간의 경제 협력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던 2001년부터 초고속 질주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양측 모두 득을 보고 있다. 미국이 적자를 보긴 하지만, 수입을 많이 하는 나라도 그만큼 혜택을 많이 누린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이다. 즉 글로벌 경제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나라가 이 두 나라다. 미중관계는 지난 20~30년간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제 막 그 열매를 따먹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현재 이 '차이메리카'가 세계 전체 GDP의 20~30%를 차지하고 있다.
원래 과거부터 미중관계는 협력관계였다. 쑨원(孫文),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등 중국 지도자들은 미국을 매우 사랑했다. 다만 미국에 대한 사랑은 '중국식 사랑'이고, 풀어서 말하자면 미국이 부러운 것이다.
1972년 마오쩌둥 주석이 닉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때 마오 주석의 건강이 좋지 않아 의료진들은 모두 말렸다. 그래도 본인이 부득부득 직접 하겠다고 우기니까 큰 체육시설에 중간에 장막을 쳐서 장막 앞은 회담장으로 꾸미고, 장막 뒤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응급실을 차려 놓고 회담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니 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냉전이 시작되기도 전인 1945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 7차 대회에서 마오쩌둥이 한 말 중에, '우리는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었다. 지금 시진핑(習近平) 부주석도 유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도 2006년 방미했을 때 이례적으로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먼저 만났다. 이것도 밑바닥에 전략이 깔린 '중국식 구애'로 봐야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미중 양국은 큰 틀에서는 협력하면서 내부의 조그만 갈등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겪을 것으로 본다.
물론 양국 간 패권경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미국이 카스피해의 석유벨트를 장악하려 하는 것은 중국의 목줄을 움켜쥐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덩샤오핑이 '미국에 석유가 있다면 우리에겐 희토류가 있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경쟁도 거대한 협력의 틀 속에서 움직인다. 지금 상황에서는 두 나라 중 어느 한 쪽도 상대방과 '협력 안 한다'라고는 못한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지난달 방중했을 때, 중국의 군사력이 '예상을 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매스컴에서도 중국 군사력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미 중앙정보국(CIA) 통계를 봐도 중국 군사비는 미국의 1/8 수준이다.
중국은 국공채를 합쳐 미국 채권을 1조5000억 달러 어치나 갖고 있다. 미 재무부 채권만 7000억 달러를 사들였는데 2008년 금융위기 후 오히려 9000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이는 중국이 '미국이 흔들리면 우리도 좋을 것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봐야 한다.
위안화 절상 문제도 처음에는 미국이 최소 10%, 제대로 하려면 20% 절상해야 한다고 했고 중국은 연 3% 정도가 적당하다고 맞서다가, 최근에는 미국 쪽에서는 7~8%, 중국에선 5%까지 절상하면 어떻겠냐는 수준까지 대화가 진전됐다.
다만 두 나라는 협력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서도 스타일이 다르다. 미국은 공격적이고 게임을 주도하는 스타일이며, 중국은 우회적으로 이를 방어하면서 이득을 취한다. 양국 모두 이 차이를 잘 알고 있다. 한편에서는 중국 입장에서 미사일방어체제(MD)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보는데, 사실 지금에 와서는 MD도 별 의미가 없다. 중국은 이미 위성요격용 미사일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중국 학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중국의 대미전략에서 친미나 반미는 모두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중국이 친미냐 반미냐 하는 것에 사로잡혀 있다. 중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언젠가 한판 붙을 것이라는 전제가 암시돼 있는 국내 언론 보도도 많은데, 사실과 다르다는 생각이다.
한국의 평택을 예로 들어 보면, 이 지역에는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고 또 자유무역지대에 중국 기업도 와서 투자하고 있다. 인천 송도 자유무역지대도 중국 시장을 노린 건데 개발책임자가 미국 기업인 게일 사(社)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중 양국은 서로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고 교류도 한다는 것이다.
■ 미중관계 최대 이슈는 '일본'
지금 미중관계에서 최대 이슈는 일본이다. 일본은 사실상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수족이었지만 고이즈미 정부 시절 중국에서는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로 1년씩 반일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 정권이 민주당으로 바뀌면서는 주일미군 기지 문제 등을 놓고 미국과 갈등을 빚었는데, 그 배경을 보면 일본의 태도 변화는 중국 시장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것도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經團連)가 중국과의 경제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자민당을 버렸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중일 양국은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한시도 무역이 끊어진 적이 없다. 심지어 한국전쟁 중에도 경제협력을 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3대 무역 파트너인 유럽연합(EU), 일본, 미국과의 교역 액수는 거의 똑같이 각각 3500억 달러 수준이고, 한중간 교역 액수도 1800억 달러까지 따라갔다. 일본이 생각할 때는 '왜 우리가 미국, EU랑 같아야 하는가, 왜 우리 경제규모의 반도 안 되는 한국이 대중무역에서는 우리가 가져가는 것의 반 이상의 이득을 챙기는가'하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 중국 충격의 본질은 '예측불가능성'
중국은 정말 많이 발전했다. 중국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지난 200년 동안의 수렁에서 놀랍게도 빠져나왔다. 거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고 해낸 것인데 그 믿음은 거의 착각 수준의 믿음이었다. 중국의 근성이 놀랍다.
미국 사람들이 하는 얘기인데, 한국에서는 하룻밤 자고 나면 없던 빌딩이 솟아난다고 한국 경제를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하룻밤도 아니고 걸어가다가 뒤돌아보면 그 자리에 없던 빌딩이 솟아나 있다고 말한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는 생산, 유통, 소비를 통해 미중 양국은 최대의 이익을 빨아들이고 있다. 2005년까지 미중 간 통상 마찰이 급증하는 것을 보면서 양국 정부 모두 깜짝 놀랐다. 예측을 못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미중 간 경제전략대화다.
지난 40년 동안의 미중관계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이다. 이때부터 미중관계는 급격히 변화했다. 당시 미중 무역 규모가 1000억 달러를 넘어섰는데 5년 후인 2006년에는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양국 정부와 세계적인 전문 기관들을 포함해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독일의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는 지금 미국의 '중국 쇼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겪은 '유대인 쇼크'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사회 각계각층에는 중국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학계, 연예계, 과학기술계 등 광범위한 현상이다. 예를 들어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진의 1/3이 중국계다.
중국의 우주산업 발전도 놀랍다. 로켓, 우주선 개발은 기본적으로 IT산업과 연관돼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IT산업도 잠재력이 크다고 본다. 중국의 로켓 기술은 미국과는 전혀 다르면서도 비용이 싸고 정확하며 안전하다. 이것이 중국 첨단산업이 주목받는 이유다. 또 이는 국가 브랜드, 자존심과도 관련돼 있다. 실질적인 목적 없이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 '중국'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려 보겠다는 것이다.
중국 공장들을 돌아다녀 보면 또 놀라운 것이, 중국 기업들은 설계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말에 따르면, 중국은 문화혁명에도 불구하고 산업기술 전문가 층의 단절이 없었다. 키신저는 이 점을 소련과 중국의 중요한 차이로 봤다.
지금 중국이 경험하고 있는 변화의 핵심 성격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는 데 있다. 앞으로도 중국의 변화를 예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 시장경제의 기틀을 세운 유명한 경제학자로, 지난 2007년 작고한 마홍(馬洪) 같은 사람도 최근 20~30년간 소규모 자치기업인 '향진기업'이 도시의 공업 발전을 뒷받침한 중국의 발전상을 보고 '중국공산당과 정부도 중국 농민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향진기업에 대해 우리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예측불가능성'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쑨원이 미국, 유럽 등을 전전하며 혁명 자금을 모으던 중 시절 소련 볼셰비키파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이때 이들이 쑨원에게 위로랍시고 '중국도 백년 안에는 공화정이 설립되지 않겠냐'는 말을 건넸는데, 불과 몇 년 후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가장 급진적인 세력이었던 볼셰비키도 중국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예측 불가능성'이 중국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충격의 본질이다. 앞으로도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서 중국을 잘 지켜봐야 혼란에 대비할 수 있다.
■ 미중이 바라는 한반도, '전쟁과 통일 사이'
▲ 한광수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한 긴장과 대치는 우리 책임도 크지만 기본적으로 강대국들의 작품이다. 지난해 천안함 침몰, 연평도 사태의 진행 과정에서 미중 양국은 이 문제를 당사자인 우리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기민하고 섬세하게 대응했다. 어찌 보면 오히려 우리보다 더 기민하게 대응한 측면도 있다.
예를 들면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천안함 사건 발생 당시 1시간이나 통화를 했다고 한다.
한반도의 진정한 '관리자'는 미국이다. 미국은 일본과 러시아가 만주와 한반도를 놓고 다툴 때부터 이 지역 문제에 개입해 왔다. 19세기 말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필리핀을 넘겨받은 미국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이 필리핀을 넘보지 않는 대신 한반도를 지배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때부터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이익을 위한 '완충지대'로 취급됐다. 미국은 1940년대에 소련과 한반도를 분단시키는데 합의했는데, 당시 소련공산당 총서기였던 스탈린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제2차 세계대전을 같이 치르면서 말이 잘 통하는 사이였다. 또 소련과 중국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이런 정황을 놓고 볼 때,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주장한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킨 것은 미국의 유도라는 함정에 빠져든 것'이라는 주장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딘 애치슨 당시 국무장관이 "한국전쟁이 우리를 구했다"(Korea save us)라고 말했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결국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에서 미국은 중국과 한반도 상태의 고착에 합의했다. 100여년 전 필리핀을 자국령으로 편입시키면서 처음 동아시아에 나타난 미국은 일본, 소련, 중국과 차례로 합의하면서 한반도를 관리해 온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놓고 3차례 합의를 했다. 1953년 한국전 휴전, 미중수교의 발판을 마련한 1970년대 초, 미중 경제전략대화를 신설한 2005년이 그것이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 전 해 가을에 키신저 장관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가 비밀 회담을 했는데, 총 회담 시간 4시간 중 2시간 동안 한반도 얘기만 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에 일본 자위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 등이 회담의 내용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주한미군 철수가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의무적으로 이를 주장해야 하는 측면이 컸고, (미국 영향력 축소라는) 큰 추세를 따라가 준다면 사실 중국으로선 큰 불만이 없었을 수도 있다. 또 중국 입장에서도 주한미군이 있어 줘야 전쟁을 억지할 수 있다고 여기는 측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5년 신설된 경제전략대화에서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던 로버트 졸릭 현 세계은행 총재가 '중국에게도 좋고 미국에게도 좋은 한반도 시나리오를 강구할 때가 됐다'고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한국전 당시나 1970년대의 비밀회담의 성격을 벗어나, 미중 양국의 입장을 남북한 당국에 알려준 것으로 해석된다.
미중 양국의 한반도 관리는 분단과 대치 상태를 지속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즉 이들의 '카드'에 통일은 없다. 한편에선 전쟁을 막고 또 한편에선 통일을 막는 '현상 유지'가 이들 공통의 전제다. 현상유지는 미중시대의 전제이며, 미중 협력의 필수 조건이다.
이 대전제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작동해 나갈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이들이 한반도 문제를 관리하면서 얻는 이득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이 얻는 이득을 중국이 양해하는 측면이 강하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카드를 다 읽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통일에 반대하고 전쟁에도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전쟁이 나면 통일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바란다는 것은, 지나가는 말로는 몰라도 외교문서상에는 없다. 단지 북한에 친미적 민주정부가 들어서기를 바란다는 얘기가 있을 뿐이다. 6자회담도 수십 년 동안 우려먹을 소재이고, 이는 미중 양국이 한반도를 관리하겠다는 의도의 회담이다.
■ 중국에 대한 체질화된 거부감
중국 지도부는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한국이 1988년 서울 올릭픽 당시 GDP가 얼마였는데 지금 얼마다, 이런 말이 중국 언론에서 계속 나왔다. 이런 것을 보면 중국 지도자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은 분명하다. 중국 지도층과 얘기를 나눠 보면 한국을 보통 부러워하는 게 아니다. 이들은 '우리도 한국처럼 발전하고 싶다', '앞으로 30년간 이대로 가면 한국처럼 될 수 있다' 이런 얘기를 막 한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도 집권 당시 방한했을 때 비행기 안에서 수행원들에게 '내려다봐라, 한국이 이렇게 산이 많고 영토도 조그마한 나라인데 거리의 자동차가 다 국산이다. 한국울 연구해 봐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 정부 내에 한국을 연구하는 TF도 생겨났다. 중국인들, 특히 지식인들은 한국에 대해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으로 IMF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인 것을 꼽으며, 한국이 미국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나라는 아니라고 평가한다.
한중 경제 관계는 또 한미관계 등 여러 요인들과 연결돼 있다. 미국은 한국 경제에 대해 영향력을 갖고 있고, 한국의 대중 수출 통계 중 40~60%가 중국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미국으로 가는 한국 제품들이다. 중소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했다가 도산하는 경우도 있지만 연간 50만 달러 이상씩 투자하는 대기업은 이들과는 입장이 다르다. 중국은 한국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태도를 보면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체질화돼 있다. 지난 얘기지만 정부 고위당국자가 외교적으로 결례를 범한 사례도 여러 번 있었고, 한중수교 10주년을 맞아 열린 한 좌담에서는 당국자가 중국 관계자들 면전에서 '당신네는 IMF 안 당할것 같냐'며 큰 소리로 말한 적도 있다.
또 중국이 막 시장 경제를 받아들인 직후에, 한국 금융기관에서는 중국이 한국 은행들을 따라오려면 100년이 걸린다고 봤다. 그러나 IMF나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는 현재 중국의 금융 시스템이 낙후돼 있긴 하지만 금융 마인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15세기까지 상업으로 세계 제국을 이룩한 나라였다.
중국에 대해 잘못 알고 저질러지는 이런 사례들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한때 일본 대기업이 중국에 잘못 투자해서 일본 경제가 흔들흔들한다는 잘못된 얘기가 정재계에 파다하게 퍼진 적도 있다. 한국을 위해서는 중국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전문가들이 나와야 한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해 공히 '미국화된 나라'라고 본다. 하지만 서구 연구자들은 오히려 베트남이나 한반도가 장래엔 중국 세력으로 편입될 거라 본다. 따라서 중국이 이 문제에 대해 결코 서두를 이유는 없다. 지금 중국은 자기들 사정도 정말 바쁘다.
현재 미중관계에서 가장 큰 사안은 충격적인 무역 급증이다. 현재 미중 간 하루 평균 교역액이 10억 달러 정도다. 그런데 미중 양국이 무역하는데 바로 옆(한반도)에서 총질하고, 총질 연습하고 이러면 미국이 좋겠나? 북한 문제가 우리에겐 중요할지 몰라도 미국에게 있어 한반도 문제는 '부록'이다.
1905년 맺어진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1924년에야 공개됐는데, 1909년 안중근 의사는 이 사실을 모르고 이토 히로부미를 쐈다. 이걸 알았으면 (미국인들도) 몇 명 더 쐈을지 모른다. 또 1970년대 미중 화해 당시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원칙에 동의했다는 것을 박정희는 모른 채 죽었다. 친미를 한다고 해서 안전한 게 아니며, '주한미군 철수 반대하는 한국인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할 만큼 미국이 단순한 나라가 아니다.
중국에게도 한반도는 시급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 국민들에게는 통일이 중요하지만, 중국 입장에선 자기들 국익이 제일 중요하다. 거기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한반도에는 별 신경을 안 쓴다. 중국과 영토를 맞대고 있는 나라는 14개나 된다. 중국 사람들은 한국 같은 작은 나라에 집착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이웃나라들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목표이며, 다소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입장이 다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다. 중국에게 한국과의 관계는 대외관계의 일부일 뿐이지만 우리에게는 한중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지도자들이 한반도에서 분단과 대치가 아니라 협력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려고 한다면 미국과 중국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만큼 외세의 압력이 강한 나라가 없는데 또 이렇게 외세에 대한 연구가 없는 나라도 없다면서 이를 '불가사의'라고 한 적이 있다. 이 불가사의를 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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