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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가 놓치고 있는 역사적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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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가 놓치고 있는 역사적 '대세' [창비주간논평] 큰 그림에 대한 논의가 빠졌다
뜻밖에 벌어지게 된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새로운 '2013년체제'가 태동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안철수 현상'은 기존의 보수-진보의 진영구도를 흔들었고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변호사를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등장시켰다.

여권의 치열한 네거티브 공세는 기존의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반면 급조된 박원순 후보 캠프는 정돈된 메씨지를 내놓기보다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주 열린 TV 토론에서도 이런 면이 이어졌다. 토론의 주요 쟁점은 전임시장 시절 형성된 도시 경쟁력에 대한 평가, 시장의 갈등조정 능력, 야권연대의 정당성과 효율성, 후보의 도덕성과 이념성 등이었다. "질문에 답하라" "왜 말을 끊나" 하는 언쟁 속에서 정작 '새로운 서울'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역사적 국면 전환과 새로운 발전모델

이번 선거 자체가 여권의 실책으로 시작되었지만, 야권 역시 미래의 비전과 변화 방향을 뚜렷이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선거준비 부족,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후보의 성향 등이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시민사회와 진보개혁진영의 이념과 정책의 혁신이 국내외에서 진행중인 역사적 국면 전환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직면한 역사적 '대세'의 변화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국내적으로 대세가 움직이고 있다. 냉전과 분단의 조건에서 성장한 발전국가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새로운 발전모델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의 체제를 '1953년체제'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보수 우세, 진보 열세'의 진영구도다. 미국 헤게모니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확대된 한국의 발전국가는 재벌체제를 육성했으며 상당한 경제성장의 성과를 거두었고 그 성과의 일부를 중산층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다. 냉전체제를 선호하는 극우세력은 재벌을 주축으로 삼아 중산층과 자영업자를 끌어들였고, 호남을 배제하는 지역정당체제를 구축했다. 한편 민주화운동세력, 중산층 일부와 서민층, 노동운동 및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진보개혁세력은 소수파로 구조화되었다.

그러나 글로벌화의 진전으로 그 이전에 성장을 주도했던 국가의 역할이 제한되면서 재벌체제로의 집중성이 높아졌다. 재벌이 강화되면서 여타 집단과의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다. 소수로의 집중은 다수의 중산층, 자영업자, 비정규직, 청년세대에게 주어질 성장의 기회를 제한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중대한 변화는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를 선호하며 중도우파적 성향을 지닌 중산층과 그 후속세대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양극 분해 또는 전면적 하강의 불안을 겪으면서 '정의' '공정' '기회'에 매우 민감해진 상태다.
ⓒ뉴시스

기존 정당체제에서 풀려나온 대중

그런데 때마침 지역정당체제는 이완되고 진보정당운동이 퇴행하고 있다. 지역분할과 이념대립을 축으로 한 기존의 대의제도가 동요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은 대통령제 아래서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을 경험했고, 이에 따라 카리스마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전국적이고 전략적인 정치적 의사결정에 능숙하다. 이제 대중은 기존의 정당체제에서 대거 풀려나와 혁신적 성취와 윤리를 겸비한 지도자 민주주의를 탐색하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거론되었을 때의 압도적인 관심은 이러한 국내적인 대세 변화의 징후가 폭발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서울시민의 대다수가 안철수 교수를 지지하고 강남지역에서 그 지지율이 특히 높았던 점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혁신과 공정을 원하는 대중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며, 기존의 이념대립과 지역분할의 구도를 흔드는 드라마틱한 변화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한편 세계적 차원에서도 대세가 변화하고 있다. 미국의 일극체제에서 진행된 금융자본주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세계체제가 모색중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으로 금융자본이 집중되고 미국의 대외적 군사활동이 확대되면서 미국이 강화하는지 쇠퇴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세계경제위기를 거쳐 몇가지 변화의 방향성은 분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세계체제의 향방

전세계적으로 진행되었던 금융적 팽창은 이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미국이 주도했던 금융세계화는 주식시장, 부동산시장, 파생상품시장의 확대와 그에 따른 사회구조의 재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적 팽창이 위기를 가져왔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미국은 통화공급 확대를 시도했으나 경기침체가 지속되었고 인플레의 역습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여타 통화에 대한 달러의 신뢰와 우위는 유지되고 있지만 달러 발권(發券) 특권의 능동성은 약화되고 있다.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는 국내적 리더십의 약화에 의해서도 제약에 직면했다. 정치권에서는 국가부채한도 증액과 재정적자 감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또한 재정 확충을 반대하는 풀뿌리운동과 금융권력에 저항하는 풀뿌리운동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유럽은 비록 통화는 통합했으나 재정은 각국이 독립되어 있는 모순 속에서 유로존(Euro zone)을 지키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 봉착했다. 미국과 유럽의 위기는 과거 신흥국으로 향했던 자금의 흐름을 역류시킴으로써 위기를 확산시키고, 이는 자본이동을 통제하는 힘을 좀더 강화할 것이다.

미국의 금융적·재정적 팽창능력이 제한됨으로써 중국의 영향력은 증대될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는 급속한 실물적 성장을 계속했지만, 이는 달러체제에 편승한 수출 중상주의의 성과에 힘입은 바 컸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시장의 침체, 중국 국내의 인플레와 빈곤층 확대, 막대한 지방정부 부채, 급속한 고령화 추세 등으로 향후 중국의 성장세는 주춤할 가능성이 높다. 실물적 성장이 둔화되면 그에 따른 사회적 위기를 막기 위해 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중국은 오랜 영토주의 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남중국해 등에서도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중국의 과두제 자본주의는 보다 덜 자본주의적인 특성 때문에 지역적 영토주의 국가의 길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혁신공간, 서울

요컨대 국내적으로는 '보수 우세, 진보 열세'의 구조화된 구도를 뒤흔드는 중도적 대중이 활성화되고 있고 세계적으로는 금융위기의 심화 속에서 새로운 국가발전모델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미국의 일극적 헤게모니 시대로부터 세계적 책임성을 결여한 지역 헤게모니 국가들의 경쟁 시대로의 역사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아시아의 지역적 자율성이 증대하는 가운데 금융팽창을 대체하는 실물성장의 싸이클을 만들어낼 도시와 국가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이 이미 천만 인구를 지닌 거대도시지만 역사적 비중은 그 이상이다. 서울은 그간 한국·한반도·동아시아의 발전모델이었으며, 앞으로는 더 좋아진 발전모델을 만들어내야 할 혁신의 공간이다. 서울시장 선거가 일개 자치단체장을 뽑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이번 선거가 영토적 국가와 탈영토적 지역을 융합하는 비전, 정상국가 형성과 도시 혁신을 융합하는 모델을 논의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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