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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변동의 열쇠, 한반도가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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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변동의 열쇠, 한반도가 쥐고 있다 [격동, 2012년 동북아]<상> 김정은의 北, 남측 대선까지 '기다리는 전략'
동북아시아 미래의 전환점이 될 2012년이 밝았다. 동북아에 있어 올해가 중요한 이유는 모든 나라에서 권력 교체가 있기 때문이다. 1월 대만 총통 선거, 3월 러시아 대선, 10월 중국 최고지도부 교체, 11월 미국 대선, 12월 한국 대선이 있다. 일본에서도 최근 총리들의 평균 재임 기간과 현 내각의 취약성으로 볼 때 조기 총선이 치러지거나 총리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

여러 나라의 선거가 몰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환의 해가 되지는 않는다. 각 나라의 현황을 둘러보면 큰 변화가 과연 있을까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러시아·중국은 차기 최고지도자가 이미 정해져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어렵지만 결국은 이길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대만의 경우는 총통 선거 막판 판세가 초박빙인데, 설령 야당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이 정권을 교체한다고 해도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시절과 달리 온건한 변화를 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처럼 개별 국가 차원에서의 변화는 작을 수 있어도 동북아 전체의 질서를 놓고 볼 때 2012년은 여전히 적잖은 의미를 가진다. 특히 그 의미를 배가시키는 사건이 작년 말 극적으로 일어났다. 바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김정일 사망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가져오지 않았고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을 줄인 측면이 있지만, 2012년을 전환의 해로 만들 가장 큰 변수임에는 틀림없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인 올해를 '강성대국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오래 전부터 공언해 왔다. 그 2012년을 김정일이 갑자기 사라진 채로 맞은 상황에서 북한은 김정은 후계 체제의 조속한 안정화와 강성대국 약속의 실현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따라서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정중동'의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 무작정 움츠리기만 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때 '김정은의 북한'과 동북아 각국이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는 향후 동북아 정세를 좌우할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특히 남북한 정부간 관계가 관건인데, 이 관계는 12월 한국 대선까지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가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크게 다른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를 두고 벌어지는 미중 경쟁도 미국의 대선과 중국의 지도부 교체라는 상황적 요인과 맞물려 가열될 가능성이 높다. 이 점에서는 오바마 정부가 먼저 공세적인 태도를 보일 공산이 크다. 대선을 앞두고 중국에 큰소리치는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말 이라크 미군 철수로 중동에서 발 하나를 빼는데 성공한 오바마 정부는 작년 11월 몰아붙였던 중국 견제·포위 움직임을 더욱 노골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경우 중국도 작년 11월처럼 침묵을 지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세적으로 대응하다가는 중국 내 민족주의적인 여론이 미국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도부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동아시아 질서의 본질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시각이 여전히 설득력을 갖지만, 선거와 지도부 교체라는 요인이 빚어낼 양국의 갈등은 동아시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푸틴의 러시아도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대상이다. 푸틴은 3월 선거를 거쳐 대통령에 복귀한 후 '유라시아 연합' 구상을 통해 구(舊) 소련의 부활을 꾀하는 한편 9월 블라디보스토크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동북아로도 눈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김정은의 북한'에 대한 접근 속도도 높일 것이다. 그러나 작년 말 집권당의 부정선거 의혹으로 푸틴 자신이 큰 내상을 입었다는 것은 이같은 적극적인 대외 행보에 어느 정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격변을 잉태하게 될 2012년 각국은 어떤 정치적 상황에 놓여 있고, 권력 교체기 대외정책의 성격은 어떠할 것이며, 그것이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첫 글은 김정은 체제의 북한과 한반도 문제를 짚어 보고, 두 번째는 중국과 러시아, 세 번째 글은 미국과 대만을 점검한다.

▲ 북한군 최고사령관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1일 새해를 맞아 공식활동으로 군고위 간부들을 대동하고 '근위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처음 시찰했다. ⓒ연합뉴스

█ 북한, 내부 결속 다지며 중-러와 협력

김정은의 북한을 전망하는데 있어서는 1일 발표된 신년 공동사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기 전까지 힘을 쏟았던 분야 등을 종합 검토해야 한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을 강조하며 대전략에서의 변화는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을 빨리 처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북한은 이미 12월 30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했다. 김정일 사후 13일 만에 이뤄진 빠른 승계다. 앞서 26일에는 <노동신문>이 김정은을 '당 중앙위원회 수반'이라고 부른 바 있어, 조만간 당 총서기로도 추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이처럼 당, 정, 군에서 김정은의 유일 영도체제를 조속히 구축함으로써 승계로 인한 권력 누수를 최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리영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 핵심 후견인들의 손발이 얼마나 잘 맞느냐는 것이다. 주민들에 대한 사상 무장은 더욱 강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일성 조선의 첫째가는 국력은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사상의 위력, 단결의 위력"이라고 강조한 신년 공동사설은 주민들에게 '사상'과 '단결'을 강조할 것임을 예고했다.

'강성대국 원년'을 선언한다면 김일성 주석의 100번째 생일(4월 15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당초 목표에 비해 실적이 미진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목표치를 낮추어 선언적인 의미의 강성대국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올해를 "강성부흥의 전성기"라고 비유적·원론적으로 표현한 신년 공동사설의 제목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김정일 사후 '강성대국' 대신 '강성국가'라는 표현으로 낮춰 부르는 것도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에 대한 민심을 확보하기 위해 경공업, 농업 등 경제를 강조하는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당장 4~5월 춘궁기에 필요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 등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물론 핵 문제에서 일정한 양보를 함으로써 미국의 식량 지원도 받아내려 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주요 전략기업들의 정상화 작업도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다. 희천발전소, 평양 만수대의 초고층아파트, 2.8 비날론 연합기업소 등이 4월까지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내다봤다. 이밖에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전까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던 나선 및 위화도‧황금평 특구는 협력 대상인 중국, 러시아가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고 있어 별다른 변화 없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대남관계에서는 강경한 자세로 나올 게 확실시된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이미 지난달 30일 성명에서 김정일 위원장 조문에 대한 남측 정부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이명박 정부와 영원히 상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2009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남측을 격하게 비난했다. 북한은 작년 6월 초 남북 비밀접촉을 폭로한 후 이같은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명박 정부의 '기다리는 전략'에 대응해 북한 역시 남측의 정권 교체까지 기다리겠다는 심산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간 교류 일부를 허용하는 남측의 '유연화' 조치까지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북한이 이산가족·금강산 문제 등에서 선제적으로 나오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북한은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내정간섭적 선전 공세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이 시급한 상황에서 그 공세를 행동으로 옮길 확률은 낮지만, 꽂게잡이철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의 긴장을 회피하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나 북핵 문제에서는 비교적 유화적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성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국방위 성명과 신년 사설에서 남측을 격렬히 비난하면서도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 식 전술을 구사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지만, 미국이 호응할 공산이 매우 낮다. 2009년 이후 북한은 통미봉남적 태도를 꾸준히 보여 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남측 정부가 미국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11월 대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뿌리치고 대북관계를 개선하는데 나서는 무리수를 둘 가능성은 낮다. 북한이 할 수 있는 일은 미국으로부터 식량을 지원받기 위해 북핵 문제에서 최소한의 양보를 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남측의 12월 대선 결과를 기다리며 중국·러시아와의 협력을 유지하며 한 해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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