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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MD, 그 기구한 악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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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MD, 그 기구한 악연에 관하여 [정욱식의 '핵과 인간'] 제주 해군기지 논란의 또 다른 측면
중국 고사에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창과 방패'를 의미한다. 유래는 이렇다. 초나라의 한 장사꾼이 저잣거리에 창과 방패를 갖다 놓고는 "여기 이 방패는 어찌나 견고한지 제아무리 날카로운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습죠"라고 말하고, "여기 이 창은 어찌나 날카로운지 꿰뚫지 못하는 방패가 없습죠"라고 했다. 그러자 한 구경꾼이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거요"라고 묻자, 장사꾼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장사꾼은 세계 최대의 무기판매국 미국의 모습과 흡사하다. 한편으로는 각종 공격용 무기들을 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사일을 막으라고 MD를 팔려고 한다. 미국 국민들에게 MD를 갖고 있으면 절대 안보를 이룰 수 있을 것처럼 꼬드기면서 막대한 예산 낭비를 합리화하려고 한다.

적의 탄도미사일을 중간에 요격시킬 수 있다는 미사일방어체제(MD)는 얼핏 자기 보호 본능의 발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MD만큼이나 '미국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 레이건의 "악의 제국",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이 잘 보여주듯 MD에는 국제질서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보는 미국의 삐뚤어진 세계관이 깔려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창을 이미 보유한 상태에서 상대방 공격까지 막을 수 있는 방패까지 갖는다면, 미국은 절대 안보를 실현할 수 있고, 그래서 자신의 패권은 영원할 수 있다는 제국주의 논리가 숨어 있다. MD를 발판으로 삼아 인류 최후의 전쟁터로 일컬어지는 우주를 군사적으로 정복하면 "우주를 통해 지구를 지배할 수 있다"는 지배 논리도 깔려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젠하워가 1961년 퇴임사에서 경고했던 군산복합체의 힘이 여전히 미국의 정책결정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요약하자면, MD는 미국의 과학기술 숭배주의의 궁극이자 절대 안보의 총화이며 군산복합체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MD는 핵무기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핵무기와 이를 먼 곳으로 날려보낼 수 있는 탄도미사일의 출현은 전선이 전지구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머나먼 곳에서 핵미사일이 날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은 곧 '신의 방패'를 향한 욕망을 낳았다. '적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만 있다면?' 그러나 안보는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다. 내가 창과 방패를 동시에 갖는다면, 상대방은 더 많은, 그리고 더 날카로운 창을 만들고 또 방패도 가지려고 하기 마련이다. 무제한의, 그리고 공멸을 부르는 군비경쟁이다. 이런 짓을 하지 말자는 것이 바로 1972년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이었다. 그리고 그 조약을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한 사람이 바로 레이건이었고, 그 조약의 족쇄를 풀어버린 사람이 바로 조지 W. 부시였다.

그런데 MD는 군산복합체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겠지만 납세자들에게는 '돈 먹는 하마'와 같은 존재이다. 미국이 MD를 추진할 때마다 국제질서도 요동친다는 점에서 '문제아'이기도 하다. 하여 MD는 그 어떤 무기 체계보다도 명분이 필요했다. 엄청난 예산과 국제 관계의 불안을 감수하고도 추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미국 국민들에게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냉전이 끝난 마당에 러시아를 거론하긴 어려웠다. 중국을 직접 거론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공화당을 비롯한 매파들은 먹잇감을 찾아 이곳저곳을 주시했고, 시야에 들어온 나라가 바로 북한이었다.

단언컨대, MD는 2000년을 전후한 한반도 문제를 이해하는데 '키워드'이다. 또한 MD만큼이나 한반도 분단의 삐뚤어진 현실을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 한반도의 북쪽은 MD 구실의 단골 메뉴처럼 등장해왔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개발.보유.확산 국가이고 그 지도부가 비이성적이고 예측할 수 없으며 도발을 일삼는 집단이라는 이미지에 편승해서 말이다. 반면 한반도의 남쪽은 MD 포섭의 대상이 되어왔다. 한미동맹의 종속성과 더불어 MD의 명시적.잠재적 대상국들인 북한, 중국, 러시아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이야말로 미국에게는 최고의 지정학적 이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MD와 햇볕정책의 정면 충돌

한반도와 MD의 질기고도 역동적이며 기구한 악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1998년 여름이었다. 그 해 7월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었던 미국 의회는 도날드 럼스펠드를 위원장으로 앉혀 '탄도미사일 위협 보고서'(일명 럼스펠드 보고서)를 작성케 했다. 럼스펠드는 포드 행정부 때에는 40대에,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에는 70대에 국방장관을 오른 인물로 최연소와 최고령 국방장관 기록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군수산업체의 임원을 두루 거친 네오콘의 핵심이기도 하다.

럼스펠드 보고서의 핵심적인 결론은 북한이 5년 이내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할 가능성이 높으니, 미국은 하루빨리 NMD를 구축하라는 것이었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위협을 너무 과장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데 8월 들어 두 가지 사건으로 새로운 국면이 조성됐다. 하나는 미국 정보기관이 '텅 빈 동굴'을 '비밀 지하 핵시설'을 우기면서 등장한 '금창리 핵의혹 시설'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기다리면 망할 것 같았던 북한이 건재함을 과시하듯 선진국에서나 가능하다는 3단계 로켓체(광명성 1호)를 쏟아 올린 것이다. NMD파들로서는 그야말로 '광명'을 만난 것이다. 럼스펠드는 '내 말이 맞잖아'하면서 무릎을 쳤고, 공화당 주도의 미 의회는 "가능한 빨리 NMD를 구축하라"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클린턴 행정부는 이른바 '3+3 계획'을 발표해 3년간의 실험평가를 통해 그 성능이 입증되면 3년간에 걸쳐 NMD를 실전배치 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제 NMD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듯 했다.

그러나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는 한반도 정세는 NMD가 탄탄대로를 걷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 NMD 논쟁이 거세지고 있던 2000년 4월,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었다고 발표했다.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발표된 직후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북한은 정말 위협적인가"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최대의 명분으로 삼아 추진되었던 NMD에 직격탄을 날렸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NMD의 가장 큰 명분, 즉 '북한위협론'의 설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도전과 기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클린턴은 페리프로세스에 바탕을 둔 대북포용정책에 본격 시동을 걸었고, NMD 구축 여부는 차기 정권으로 넘겨버렸다. 남북정상회담 3개월 후, 그리고 미국 대선을 2개월 앞둔 9월에 발표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클린턴은 평양행을 결심했다.

그런데 클린턴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민주당의 앨 고어가 아니라 공화당의 부시였다.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 내 강경파들의 반격은 즉각 개시되었다. 눈앞에 다가온 '스타워즈'의 꿈을 클린턴의 평양행 비행기와 함께 날려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클린턴의 방북을 가로막았다. 그 의도는 클린턴의 방북을 위해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前) 미국 국무장관이 2003년 9월 출간된 회고록 '마담 세크러테리(Madam Secretary)'에 잘 담겨 있다. "의회와 전문가 그룹의 많은 사람들이 북한과 하는 거래가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의 구축의 명분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에 반대했다." 그리고는 'ABC(Anything But Clinton)'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사실상 전면 폐기했다. MD를 사활적인 이해관계로 간주한 부시 행정부에게 대북 포용정책과 MD 구축은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취임 직후부터 부시 대통령의 관심사는 온통 MD에 있었던 반면에,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를 설득해 클린턴의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하게 만드는 데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ABM 조약 파동'이 불거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3월 초 워싱턴 방문에 앞선 2월말 푸틴을 손님으로 맞아 정상회담을 열었다. 그런데 한러 공동성명에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을 보존.강화하는데 합의"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모스크바는 뜻밖의 동맹국을 만났다고 환호했고 워싱턴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ABM 조약은 부시 행정부가 출범 전부터 MD 구축을 위해 '파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었는데, 미국의 종속적 동맹국인 한국 정부가 ABM 조약의 보존.강화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천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파동은 DJ 정부의 외교당국이 ABM 조약과 MD와의 민감한 관계를 제대로 알 지 못해, 러시아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발생한 것이었다. 당황한 김대중 정부는 "MD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부시 행정부는 성의 표시를 요구하고 나왔다. 한국 정부의 MD에 대한 공식 입장을 아래와 같이 밝히라고 친절하게(?) 문안까지 작성해서 한국 정부에 전달해줬다.

"오늘날의 세계는 냉전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억제와 방어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도 변화가 필요하다. 부시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와 운반 수단으로서의 미사일 위협이 점증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왔으며,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을 신뢰하고 있다. 미사일 방어는 이런 반응의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미국이 이 점에 대해 합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을 인정하며, 특히 우리 군과 영토 방위를 위해 효과적인 (미사일) 방어망을 배치할 필요를 인정한다."

이 미국측 문안에 대해 김대중 정부는 미국 방문 직전인 2001년 3월 2일 세 문장으로 정리해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특히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장은 거의 받아쓰기에 가까울 정도로 미국의 요구안을 따라 썼다. 그러나 세 번째 문장까지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대신 "우리는 미국 정부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동맹국 및 관련 국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이 문제에 대처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발표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 즉 한국이 MD를 지지하고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김대중 정부가 미국측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때 철저한 '푸대접'으로 보복했다.

이 즈음부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부시 행정부의 MD 구상은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햇볕정책과 MD는 양립할 수 없었다. 햇볕정책이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탈냉전을 지향하는 것이었다면, MD의 근본전제는 '북한은 억제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미치광이 집단'이라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시는 MD의 구실을 되찾고자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을 중단하는 등 초강경 정책으로 일관했고, 한국에게도 MD에 참여하라는 노골적인 압박을 행사했다. 미국의 MD가 '북한위협론'을 최대 구실로 삼고 동맹국인 한국을 포섭 대상으로 삼으면서 MD 문제는 한반도 평화의 최대 위협 요인이자 한미동맹 갈등의 핵으로 부상했다. 급기야 2002년 10월에는 북한과 미국이 고농축 우라늄(HEU) 문제로 정면 충돌해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고 2차 한반도 핵위기가 발생하면서 부시의 MD 추진은 더욱 가속화됐다.
▲ 폴란드 MD 기지 개념도

미국, '한국을 MD의 전초기지로'

한국은 미국 주도 MD의 명시적, 잠재적 대상국인 북한, 중국, 러시아와 가장 인접해 있는 미국의 동맹국이다. 또한 약 2만8천명의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을 MD의 전초기지로 삼고자 해왔다. 미국은 2003년 초부터 미국 외부 지역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최신형인 PAC-3 배치를 개시했는데, 이는 이라크 침공을 위해 걸프 지역에 배치한 것과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PAC-3 배치는 수원-팽택의 오산공군기지-군산을 잇는 한국의 서남부에 집중되었다. 참고로 오산공군기지와 군산기지는 미 공군력의 핵심적인 전력투사 근거지이고, 수원 비행장은 유사시 미국 공군력이 전개되는 지역이다.

미국은 또한 PAC-3를 한국에 배치하기 직전인 2003년 초에 최첨단 조기경보 레이더를 한국에 배치했다. '합동 전술 지상기지(Joint Tactical Ground Station)'로 불린 이동식 조기경보 레이더는 첩보위성에서 보내온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 상대방의 미사일 발사 위치와 시점을 파악한 후 PAC-3와 전투사령부에 그 정보를 보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아울러 미국은 주한미군은 2004년 말 패트리어트 포대를 지휘·통제하는 상급부대인 35방공포여단을 미국 텍사스 포트 블리스에서 오산공군기지로 옮겼다. 요격 미사일인 PAC-3-조기경보 레이더-전투지휘통신본부로 이어지는 하층 방어 시스템을 갖춘 셈이다.

이처럼 중국과 가장 가까운 한국의 서남부에 미국 MD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배치되자, 중국의 경계심도 커졌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미국 MD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오던 터였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한 연구자가 중국의 정부 관리, 군관계자, 민간 전문가 등 60여명을 인터뷰해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중국이 미국 주도의 MD를 21세기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분석은 이후 중국의 공식 문서에서도 확인된다. 2011년 3월에 발표된 <2010년 국방백서>는 "MD가 국제사회의 전략적 균형과 안정에 해롭고, 국제·지역 안정을 해칠 것이며, 핵 군축 프로세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중국은 어떤 나라도 해외에 MD를 배치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해 미국 주도의 MD가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급기야 한중관계에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2004년 11월 29일 라오스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예정에도 없던 한중 정상회담을 중국 측이 제안해, 원자바오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원자바오는 "최근 한국의 서해상에 미군 패트리어트 요격 미사일이 배치되고 있는데, 이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한국이 중국의 적국이 아닌데 이와 같은 시도에 대해 중국은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주한미군이 양안 문제에 개입하는 군으로 전환되는데, 이렇게 되면 중국과 한국 관계도 문제가 된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미국의 한국 MD 배치 계획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2005년 3월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에 PAC-3 배치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며, 앞으로 PAC-3보다 요격 범위가 길고 넓은 고고도최종단계미사일방어체제(THAAD), 적의 미사일을 이륙단계에서 요격할 수 있는 항공기탑재레이저(ABL), 해상 MD인 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ABMD) 등을 배치해 다층(multi-layered) MD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입장은 2008년 3월에도 거듭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MD 시스템은 개발이 완료되는 대로 속속 한국에 배치될 전망이다. 이지스함을 이용한 ABMD는 이미 한국 영해를 들락거리고 있고, 지상에 배치되는 THAAD는 2011년에 개발 완료되어 한국 배치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미국이 한국에 MD를 배치하면서도 한국과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미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한국은 허여(許與)하고 미국은 수락한다"고 되어 있어, 미국이 MD를 포함한 무기체계를 배치하는데 한국과 사전에 협의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노무현 정부 때 국정상황실은 전략적 유연성에는 '장비의 유연성'도 포함된다며, 여기에는 "미군의 MD 또는 핵무기 배치 등에 대해 우리측이 포괄적인 양해를 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이용해 미국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MD 무기를 한국에 배치할 수 있고, 한국은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반영하듯 2005년 6월 필자와 만난 노무현 정부의 고위 관리는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은 동맹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노무현 정부 때 대거 MD 시스템을 한국에 배치했다. 그리고 2007년 대선에서 보수성향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국의 MD 참여에 대한 미국의 기대와 요구도 더욱 높아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한달 뒤인 2008년 3월 초,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이 미국과의 협력 및 미국 시스템과 완전히 통합되는 MD 능력을 갖추는 것은 한국의 이익이라며, "나는 강하게 그렇게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은 조속히 미국의 시스템과 완전히 통합될 수 있는 한국형 전역미사일방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를 추진하더라도 미국 MD 시스템과 통합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미국, 특히 부시 행정부로부터 MD 참여 압력을 강하게 받았지만, 미국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한미동맹도 중요하지만, 막대한 재정 부담, 남북관계의 파탄 및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악화 우려, MD의 기술적 효용성 및 한반도 전장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급적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한미동맹이 악화되었다"며, '한미동맹 복원'을 대외정책의 핵심 목표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현재는 새누리당) 안팎에 MD 참여를 선호하는 인사들이 많았고, 미국 역시 한국에서 보수적 정권이 출범한 것을 계기로 MD 참여 요구를 높였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 정부는 한국을 MD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국가들 가운데 하나라고 일컫기 시작했다. 국무부의 프랭크 로즈(Frank Rose) 부차관보는 2010년 9월 하순 도쿄 연설을 통해 "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은 이미 중요한 MD 파트너들"이라고 말하면서 양자 협력을 넘어선 한-미-일의 MD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다른 국무부의 고위 관료도 2011년 3월 21일 "우리는 일본, 프랑스, 이스라엘, 한국, 호주 등과 보다 능력 있는 MD 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더욱 긴밀한 협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브래들리 로버츠(Bradley Roberts) 미 국방부 핵·미사일방어 정책 담당 부차관보도 그 해 4월 13일 청문회에서 "우리는 한국과 양자 MD 협력 문제를 논의해왔고 최근에는 한국이 미래의 MD 프로그램의 유용성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미 양국이 요구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약정(Terms of Reference)과 협정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청문회에 나선 패트릭 오라일리(Patrick O'Reilly) 미사일방어국(MDA) 국장도 "MDA는 현재 20개 이상의 국가들과 MD 사업, 연구,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며, 한국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때 한국의 미국 MD로의 편입은 빠르게 진행되어왔다. 양국 정부는 2010년에 공동 MD 연구 약정서를 체결했다. MB 정부는 미 국방부가 이 사실을 공개할 때까지 국민과 국회에 알리지 않으면서 "MD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또한 양국 해군은 2010년 7월 초 합동 미사일 요격 훈련을 실시했다. 한국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이 적의 탄도미사일을 추적해 그 위치 정보를 미국 해군에 제공하자 미국 이지스함이 SM-3 미사일을 발사해 명중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세종대왕함이 탄도미사일 발사를 탐지·추적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SM-3를 장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기야 양국 정부는 한국이 오키나와와 괌을 방어하는 데에 기여하는 방안도 밀실에서 논의했다. <신동아> 2011년 6월호에 따르면 "괌이나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에 미사일이 발사되는 경우에도 한국군이 이를 대신 요격해주는 콘셉트가 여러 차례 도출됐다"고 한다. 적어도 개념 수준에서는 한미간의 MD 협력이 이미 한반도를 넘어서 동아시아 전체로 확대되고 있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그동안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가 미국 MD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해온 MB 정부와 군당국의 해명을 더더욱 신뢰할 수 없게 한다. 제주해군기지 논란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지도를 펼쳐보면 알 수 있듯이, 제주도는 오키나와와 괌으로 날라가는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한편으로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강정마을을 파헤치면서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키나와와 괌을 방어하는데 한국의 기여도를 높이는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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