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안보정상회의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해 노벨평화상을 '선불'로 받은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2010년 4월 12~13일에 미국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 회의는 50명의 국가 수반들이 참석한 것에 비해 회담 의제는 대단히 협소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핵 테러리즘 방지를 위한 국제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내세우면서 핵무기 제조에 이용될 수 있는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의 통제를 의제로 한정했다. 워싱턴 회의에서 오바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테러 집단이 핵무기를 손에 넣을 가능성은 장기적으로는 물론이고 중단기적으로도 미국의 유일하고도 가장 큰 위협입니다. 만약 뉴욕이든 런던이든 요하네스버그든 어디선가 핵폭발이 일어난다면, 경제적.정치적.안보적 파장은 재앙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알카에다와 같은 조직이 핵무기를 손에 넣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9.11 핵 테러?
"뉴욕 맨해튼으로 몰래 반입된 10킬로톤의 핵폭탄이 센트럴 파크에서 폭발한다. 약 50만명이 사망하고, 직접적인 피해액만도 1조 달러에 달한다."
가장 무서운 무기인 핵과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인 9.11를 조합해서 만든 '9.11 핵 테러(Nuclear 9/11)'는 미국의 공포와 패권주의가 중첩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9.11 테러가 발생한 이후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의 핵무기를 이용한 테러리즘은 미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도 전가의 보도처럼 회자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이나 이란이 핵무기를 갖더라도 이들 국가의 핵보유 자체보다는 이들 핵무기가 테러 집단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더 두렵다고 말한다. 부시 행정부 때 맹위를 떨친 핵 테러 9.11은 오바마 행정부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미 2010년 NPR 보고서를 통해 핵 테러리즘을 미국과 국제사회가 직면한 최대 위협이라고 지적했고, 이러한 위협 인식을 기반으로 핵안보정상회의를 발족시켰다.
일반적으로 핵 테러리즘의 위험성이 부각되는 이유들은 이렇다. 첫째, 9.11 테러에서도 입증된 것처럼, 테러리스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둘째, 테러리스트가 핵무기나 핵물질, 핵 과학자에게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셋째, 테러 집단에게는 '핵 억제력'이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자살도 주저하지 않기에 핵보복의 위협으로도 테러 집단의 핵공격을 예방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넷째, 현재 세계 도처에는 핵무기 10만개 분량에 해당하는 고농축 우라늄 1천500여톤과 플루토늄 500톤 안팎이 있는데, 탈취나 도난, 혹은 암시장에서의 밀거래 등에 의해 핵물질이 테러집단에게 넘어갈 수 있다.
또한 최악의 경제난에 직면해 있는 북한이 외화 수입을 위해 핵무기나 핵물질을 테러 집단에 판매하거나, 이란이 핵무장에 성공하면 미국과 이스라엘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하마스나 헤즈볼라에게 핵무기를 넘겨줄 가능성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아울러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의 정치 및 치안 불안 역시 테러 집단에 의한 핵 탈취 위험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파키스탄 정권을 전복시키거나 핵시설에 침투해 핵무기를 획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약 100개의 핵무기와 다량의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극심한 정치 불안과 테러 집단의 활동 무대가 되고 있는 파키스탄을 주목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의회의 '대량 살상 무기 확산과 테러리즘 예방 위원회'에서 작성한 2008년 보고서는 "향후 5년간 핵 테러리즘의 가능성은 전례 없이 높아질 수 있고", "테러리즘과 WMD의 모든 길은 파키스탄으로 통한다"라고 분석한 바 있다.
아울러 일반적인 핵폭탄처럼 엄청난 폭발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심각한 사회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방사능 무기 '더티밤(dirty bomb)'도 9.11 테러 이후 크게 주목받고 있는 무기이다. 더티밤은 핵폭발 장치가 아니라 재래식 폭탄에 방사능 물질을 장착한 무기로, 재래식 폭탄의 폭발을 통해 방사능 물질을 주위에 살포시킨다. 이 무기는 원자 폭탄에 비해 직접적인 파괴와 살상 효과는 크게 떨어지지만 해당 지역을 장기간 방사능으로 오염시켜 심각한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국제적인 규제 대상이 된 무기다. 더티밤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방사능 물질에는 세슘-137, 코발트-60 등이 있다. 더티밤은 상대적으로 제조가 쉬우면서도 공포를 유발하는 데 효과적이어서 테러 집단의 더티밤 사용 가능성이 자주 언급된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핵무기를 비롯한 WMD로 무장한 테러 집단의 공격을 막는 것을 안보 정책의 최우선 순위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고, 이를 '국제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테러 집단 및 이를 돕는 국가들에 대해 재래식 무기는 물론이고 핵무기로도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 전략을 채택했고, 북한, 이란 등 이른바 '깡패 국가들'의 대량 살상 무기가 테러 집단에게 이전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대량 살상 무기 확산 방지 구상(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PSI)을 창설했다. 부시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던 오바마 행정부도 이러한 정책들은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미국은 핵 테러 방지를 위한 국제 체제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거의 매년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주도해 유엔의 모든 회원국들은 테러 집단이 WMD를 획득하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2009년 9월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유엔 안보리 의장으로 나서, 핵 테러리즘 방지를 위해 수출입 통제 체제 강화, 유엔 회원국들 사이의 공조 체계 구축, 핵밀수 차단을 위한 국내법적 체계 구축 등을 관철시켰다. 2005년 유엔 총회에서는 미국과 러시아 양국 주도로 '핵 테러리즘 분쇄를 위한 국제 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uppression of Acts of Nuclear Terrorism)'이 제정되었는데, 2012년 2월 현재 115개국이 서명했고, 이 가운데 77개국이 비준을 마쳤다. 또한 1987년에 제정된 '핵물질 및 핵시설 방호 협약(Convention on the Physical Protection of Nuclear Material and Nuclear Facilities)'을 개정해 국제 거래에 국한 조약의 범위를 '국내 거래'로까지 확장했다.
▲ 정승조 합참의장이 1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열린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육상경호경비사령부 출정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
핵 테러리즘에 숨겨진 미국의 패권 논리
핵 기술과 물질이 확산되고 있고 테러 집단이 핵무기 획득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실제로 핵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류 사회가 핵 테러 방지를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유독 핵 테러리즘에만 초점을 맞추는 모습에서 미국 패권주의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 핵 테러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많은 테러집단들이 핵 테러를 일으킬 동기 자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핵 테러 자체가 기존의 재래식 방법과는 다른 차원의 기술적, 병참적, 재정적 수단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이 핵 테러 위협을 과장해 또 다른 패권 추구의 논리로 삼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이 필요한 까닭이다.
인류 사회는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를 이유로 "나의 편이 아니면 테러리스트의 편"이라며 세계 각국에 줄서기를 강요했고, 이 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했으며, 급기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강행한 것이 얼마나 큰 폐해를 만들어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뒤이어 집권한 오바마 행정부도 '핵 테러리즘'을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고는 이러한 미국의 위협 인식에 국제 사회도 동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핵 테러리즘의 가능성과 위험성이 존재하고 이를 예방할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유독 이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은 착시 현상을 유발한다는 문제가 있다. 미소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이 자신을 포함한 강대국들의 핵문제는 도외시하면서 북한, 이라크, 이란 등 일부 국가들의 핵문제만 문제 삼았던 것과 닮은꼴이다. 이렇듯 핵 테러리즘을 부각시키는 데는 미국의 패권주의 논리가 숨어 있다. 우선 미국은 북한과 이란이 테러 집단에 핵무기나 핵물질을 넘길 가능성을 부각시키면서 이들 나라를 '악마화'함으로써 강경책을 정당화하는 기재로 이용한다. 북한 급변 사태 발생 시 미국 특수 부대를 투입해 핵무기를 제거하겠다는 미국의 군사 계획은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만에 하나라도 미국이나 동맹.우방국이 핵 테러를 당하면, 엄청난 후폭풍을 야기할 위험이 크다. 이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응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북한, 이란, 이라크 등 일부 국가들에게 찍힌 '테러지원국'이라는 낙인이 9.11 테러 이후 이 테러와 관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에 대한 미국의 초강경 정책의 구실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핵 테러가 발생하면 '핵확산 국가들'이라는 북한과 이란은 핵 테러와 연계되지 않았더라도 미국 주도의 초강경 대응의 대상국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오바마의 전쟁'으로 불리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에도 핵 테러리즘은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되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면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파키스탄의 핵무기를 탈취해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공포의 논리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바마는 테러리스트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마을을 무인 폭격기로 공격해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다. 이를 두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부시 행정부는 테러 혐의자를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한 반면에,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결정한 오바마는 테러 용의자들을 사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디언>은 이를 '오바마 독트린'이라고 부르면서 '부시 독트린'보다 나을 바가 없다고 비판했다.
요란한 빈수레, 핵안보 정상회의
미국의 핵 테러리즘 방지 '국제화' 전략의 정점에는 핵안보 정상회의가 자리잡고 있다. 이 회의에서는 핵안보를 "비국가행위자를 비롯한 테러리스트 그룹에 의한 불법적인 핵물질 탈취 및 거래, 이를 통한 원자력시설 등에 대한 테러행위에 대응하기 위한 포괄적 개념"이라고 정의해놓고 있다. 2010년 4월 워싱턴에서 열린 첫 회의에서는 핵분열 물질 통제를 위한 국제 체제 강화, 핵 암시장 분쇄, 핵 물질 및 기술 확산 방지를 위한 탐지 및 검색 능력 강화, 핵확산 관련 기업 및 국가에 대한 금융 제재 강화, 농축 우라늄 및 플루토늄의 민간 사용 최소화 등을 주요 의제로 논의했고, 2014년 이내에 핵분열 물질에 대한 통제 체제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2년 3월 하순 서울에서 열릴 두 번째 회의를 앞두고 이명박 정부는 ▲핵테러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력 방안 ▲핵물질의 불법 거래 방지 ▲핵물질과 원전 등 핵관련 시설들에 대한 방호가 핵심 의제라고 설명한다. 정부는 이러한 의제를 바탕으로 의장국으로서 '서울 코뮤니케' 채택을 추진하고 있다. 워싱턴 회의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핵 테러리즘' 방지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인류 사회는 수많은 핵문제에 직면해 있다. 오바마 스스로 주창한 '핵무기 없는 세계'를 비롯해, 핵보유국들의 핵폐기, 핵무기 선제 불사용 및 비핵국가들에게는 핵무기 사용 및 위협을 하지 않는 '소극적 안전 보장'을 국제법으로 만드는 문제,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군비 경쟁 억제 방안, 이스라엘의 핵 독점과 이란의 핵 개발로 그 필요성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는 중동 비핵 지대 창설, 핵보유국들의 핵미사일 발사 준비 태세 완화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또한 후쿠시마 참사로 그 필요성이 더욱 절박해진 '탈원전'과 재생 에너지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중대한 문제들은 2010년 회의에 이어 이번 회의에서도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 모여 유독 핵 테러리즘 방지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오히려 이번 회의 의장국인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원전 비즈니스'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인류 사회의 핵문제를 심도 깊게 논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협애화하고 있는 셈이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핵무기가 존재하고 확산되는 한, 핵 테러를 막을 방도는 없다며, 핵 테러를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핵무기를 없애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또한 미국이 핵무기에 안보를 의존하고 그 무기를 지배의 도구로 삼는다면, 미국도 "병 속에 든 두 마리의 전갈 가운데 하나"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그의 경고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러면서 핵 테러의 위험을 부각시켜 새로운 패권의 논리로 삼으려 한다. 이처럼 핵안보 정상회의는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거대 비전은 그 본래의 취지에서 멀어진 채, 북한과 이란 등 일부 국가들을 몰아붙이고 핵 테러리즘 위험을 부각시켜 무차별적인 인명 살상과 전쟁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는 우리가 오바마의 화려한 정치적 수사에 숨어 있는 미국의 패권 논리를 직시하고 그 문제점에 주목해야 할 까닭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부 역시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으로 조선인 4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피폭은 결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전쟁이 핵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이 있었고, 이후에도 한반도는 핵전쟁의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분류되어왔다. 오늘날 많은 나라들이 그토록 우려하는 '북핵'의 뿌리도 바로 여기에 있다. 냉전이 끝났다지만, 강대국에 의해 분단된 한반도의 냉전은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유사 이래 최대의 국제회의라는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러한 한반도 문제의 속성과 국제적 의미를 세계에 알리고 협력을 모색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그러나 원전 비즈니스와 정권 홍보에 매몰된 MB 정부에게 이러한 역사의식과 미래 비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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