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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약골' 이윤석이 과학 책을 쓴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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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민 약골' 이윤석이 과학 책을 쓴 이유는? [인터뷰] <웃음의 과학> 펴낸 개그맨 이윤석
개그맨 이윤석이 과학책을?

명문대 졸업에 신문방송학 박사, '교수님' 소리까지 듣는 긴 '가방 끈'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연예인, 그것도 개그맨이라는 본업 때문인지 세간의 첫 반응은 '피식'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난 며칠간 출판계를 몰래 떠돈 이 책, <웃음의 과학>(사이언스북스 펴냄)에 대한 반응이 심상찮다. 필자의 의외성에 기댄 가벼운 기획이란 편견은 싹 접어도 좋다는 거다. 출판사, 미리 읽어본 독자들 모두 '활짝'이다.

'피식'부터 '활짝'까지, '호호호'부터 '푸하하'까지 인간은 매일 수십여 종의 웃음과 상대한다. 웃고 웃기는 게 업인 개그맨은 오죽할까. 매일이 관객의 안면 근육과의 씨름일 것이다. 때론 허리케인 블루로, 때론 '국민 약골'로 17년간 그 씨름을 업으로 삼아 온 이윤석이었기에, 웃음에 대한 궁금증과 학구열을 어떤 학자보다 제대로 숙성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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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의 과학>(이윤석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그렇게 웃음의 '과학'적 가설과 연구 결과를 성실히 살피느라, 이 책은 TV 속 그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빵~' 터질 만한 틈은 주지 않는다. 다만 진지한 해설, 현장에서 건저 올린 생생한 예들이 독자들의 안면 곳곳 편안한 주름을 지어 낸다. 그런 그답게 집필 의도에 대해 "빵빵 터지는 개그는 못 해 드리지 않나. 웃음에 대해 설명해드리는 개그맨, 그게 내 역할 아닐까" 이렇게 자학 개그를 섞어 대답한다.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저자' 이윤석을 만났다. 매고 온 화려한 나비넥타이를 제외하면 연예인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수더분한 모습이었지만, 다른 저자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그만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 활짝, 더 크게, 더 자주 움직이는 그의 얼굴 근육들이었다. 국민 약골이라지만 표정만큼은 누구보다 활기찼다.

신인 과학책 저술가의 탄생을 기념하며 이번 인터뷰는 천문학자로서 과학 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이명현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진행했다. 그 역시 이윤석처럼 본업에 만족하지 않는(?) 멀티플레이어로 과학자이지만 과학소설(SF), 영화, 만화 등 다방면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저술가이자,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이다.


▲ 개그맨 이윤석. ⓒ프레시안(손문상)

과학계의 '먼지 성운' 나오다

이명현 : 개그맨이 책을 썼다고 하니 대중은 '웃기는 법'을 알려주는 일종의 개그 실용서를 기대했을 것 같다. 그런데 제목 그대로 웃음의 '과학'을 다룬 책이다. 왜 이런 책을 쓰게 됐나?

이윤석 : 처음부터 특별히 웃음이란 주제에 관해 써야지, 하고 책을 찾아본 건 아니다. 평소 이런저런 과학책들을 읽다 보니 저마다 웃음에 대해 다룬 부분이 있더라. 호기심이 생겨 자료를 모으다 보니 '내가 명색이 개그맨인데, 사람이 왜 웃는 건지는 알고 웃겨야 하지 않나' 싶었다. 마치 나에게 맡겨진 숙제 같았다. 빵빵 터지는 웃음은 못 드리는 개그맨이지만, 웃음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정리해서 제공하는 개그맨으로서의 역할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책임감이랄까?

이명현 : <오래된 연장통>(사이언스북스 펴냄)의 저자 전중환 경희대학교 교수가 쓴 추천사를 보니 의외로 기존에 웃음에 대한 대중 과학서가 없다는 얘기가 있더라.

이윤석 :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송국에서 효자 노릇을 하는데도 좋은 대우를 못 받는 것처럼 웃음에 대한 담론 역시 그런 것 같다. 한 권으로 묶여서 나온 것이 거의 없고 죄다 흩어져 있다. 그래서 나라도 웃음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현 :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먼지 성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지 성운은 우주의 모든 것을 흡수한 후 다시 방출하는 성운이다. 이 책도 여러 연구 결과, 책들을 흡수했다가 그것을 자신의 방식대로 잘 뿜어내 정리한 것 같다.

이윤석 : 영광이다. 먼지 성운에 대해서 꼭 찾아봐야겠다. '먼지'라고 해서 움찔했는데 좋은 뜻인 것 같다. (웃음) 실제로 정말 여러 책을 참고해서 썼다. 내가 썼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선배 저자들의 힘을 빌렸다. 집필하는데 있어 결정적으로 희망을 줬던 책은 <괴짜 심리학>(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한창호 엮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이다. 인간의 두뇌 분야와 관련해서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책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명현 : 저자로서,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봐 주었으면 하나.

이윤석 : 유시민 전 의원이 자신에 대해 '지식 소매상'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는데, 나 역시 지식 소매상이 되고 싶다. 이 책에 나온 웃음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은, 몰라도 살아가는데 상관없지만 알아서 해 될 것도 없다. 인류 발전에 크게 득이 되진 않겠지만, '아니, 이런 정보도 있었네' 하는 걸 새록새록 깨닫게 하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

과학은 인류에 이런저런 혜택을 준 의의도 크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 행위이다. 과학책을 읽다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나만 재밌는 게 아닐 거야'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책을 통해, 방송에서 개그로 주는 웃음과는 또 다른 은은한 웃음을 주고 싶었다. <웃음의 과학>이 TV나 개그는 좋아해도 과학이나 책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을 초대하는 초대장 같은 책이길 바란다.

개그맨, 속은 울어도 '행복한 감정 노동'

이명현 : 책에서 웃음의 정체에 대해 진화심리학적 접근으로 밝혀나가고 있지만 결국 '인간'의 웃음으로 귀결된다. 인간의 웃음, 정체가 대체 뭘까?

이윤석 : 나도 아직 모르겠다. 웃음이란 게 마치 100% 좋은 점만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시초를 보면 원래 공격성을 드러내는 기제였다고 하지 않나. 우리가 구라 형(방송인 김구라), 명수 형(방송인 박명수)의 공격적 개그를 원초적으로 즐길 수밖에 없는 이유에도 그런 진화적인 측면이 있지 않을까. 또 웃음 중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표현으로 쓰이는 비웃음, 쓴웃음 같은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런 면이 섞여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갖고 있는 표현 중에 가장 좋은 걸 꼽자면 역시 웃음 아닐까.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왜 사냐건 웃지요'에 나오는 그 웃음이 웃음의 본질인 것 같다. 책을 쓰면서 그 시구가 계속 떠올랐다. 내가 웃음에 대한 과학책을 쓰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웃긴 거다. 어떤 웃음이건 많이, 크게 웃는 게 좋은 삶 아닐까.

이명현 : 가짜 웃음은 어떤가. 책에도 썼듯 '뒤센 미소'와 '팬 아메리카나 미소'가 있다. (뒤센 미소는 18~19세기 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신경생리학자인 기욤 뒤센이 마비된 실험 참가자의 얼굴에다 전기적 자극을 가했을 때 만들어지는 얼굴 표정을 자연스러운 웃음과 비교한 결과로 발견한 '진짜 웃음'이다. 팬 아메리카나 미소는 항공기 승무원이 짓는 웃음이 가짜 미소의 대표 격이라고 생각한 과학자들이 붙인 일부러 꾸며내는 웃음의 다른 이름이다.)

이윤석 : 가짜 웃음이라도 마냥 욕할 수만은 없다. 책에서도 억지 미소라도 짓고 있다 보면 행복한 기분이 든다는 내용도 나오지 않나. 친구라서 웃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되기 위해 웃고,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지는 거다. '진짜/가짜'와 웃음 중 한 군데 방점을 찍자면 웃음에 찍을 것 같다. 국진 형(방송인 김국진)을 보면 늘 미소를 띠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나까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누구나 그 같을 순 없지만 의식적으로라도 웃음을 짓고 있다 보면 주변 사람을 절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이명현 : '팬 아메리카나 미소'가 미국의 항공사 이름에서 왔듯 승무원들은 극단적으로 늘 미소를 띠고 있어야 한다. 그런 직업적 의무들이 일종의 '감정 노동'인데, 개그맨들이야말로 극단적인 감정 노동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도 슬픈 일, 화나는 일이 있을 텐데 직업상 늘 웃음을 줘야 하니까.

ⓒ프레시안(손문상)
이윤석 :
사실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수술을 받고 계실 때도 병원에 못 가고 개그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것도 밀가루 터뜨리고 풍선으로 가슴 만들고 하는, 강도가 센 '몸 개그'였었다. 가만히 웃고 있는 일도 벅찬데 그런 연기를 할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개그맨이 대중들에게 일일이 내 감정을 알아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슬픔을 들키지 않는 게 이 직업의 숙명이기도 하다.

이명현 : 그런 일들이 겹치면 스트레스가 클 것 같은데, 해소 방법은 있나.

이윤석 : 사실 별다른 취미가 없다. 술 마실 때 빼고는 늘 집에만 있다. 하지만 공 찰 힘은 없어도 책장 넘길 힘은 있어서 그런지 책은 많이 읽는다. (웃음) 어떤 고민이 있었더라도 책을 펼쳐 놓고 몰입하다 보면 다 잊어버리게 된다.

이명현 : 최근에 와서 '남자의 자격'(한국방송(KBS) <해피 선데이>) 같은 감동적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웃음보다는 울음, 눈물이 더 어울리는 개그맨이 됐다.

이윤석 : 그렇지만 늘 눈물의 마무리는 미소였다. 방송에서도 그렇고, 모니터하면서도 화면 속 우는 모습을 보며 우리끼리는 오히려 또 웃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울음과 웃음은 최상의 감정 표현인 만큼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가는 걸지도 모른다.

개그의 다양성이 민주화의 척도다?

이명현 : 개그맨이란 위치 때문에 책, 그것도 과학 교양서를 쓴다는데 대한 편견이나 질투의 시선은 없었는가.

이윤석 : 빵빵 터트리는 개그를 하는 이가 아니다 보니, 그런 편견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연예인이 시청자들의 무난한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기대를 벗어나는 일탈도 필요하다. 개그우먼 곽현화 씨가 수학책을 낸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고 한다. 과학에 웃음을 접목한 방송 프로그램도 해보고 싶다. 정체성의 뿌리는 개그맨에 두되,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들로 가지를 뻗어 나가고 싶다.

이명현 :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코미디에 대한 탄압이 컸다. 코미디에도 등급을 매기고 어떤 것은 저질이라고 얕잡곤 했다. 거기에 따라 코미디계 전체가 흔들리기도 했다. 이런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이윤석 : 그래도 요즘은 상대적으로 많이 덜해졌다. 과거엔 개그에 대해 보수 언론에서는 주로 '질 낮다'고, 진보 언론에서는 '정치의식이 없다'고 비하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요즘은 양쪽 다 웃기는 건 웃기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인 것 같다. 웃음의 다양성은 정치적 민주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웃음이 민주화의 바로미터랄까? 웃음이 대우받는 사회일수록, 다양한 개그가 받아들여지는 사회일수록 민주화가 진전된 사회가 아닐까.

덧붙이자면 책에 쓴 것처럼 여성 코미디언들의 직업적인 성공과 가정에서의 행복이 우리 사회의 진보성을 시험하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개그우먼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과거보다 무대 위에서나 사적으로나 늘어났다. 그게 우리 사회가 진보했단 증거가 아닐까. 이 책이 그녀들의 자리를 확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수는 없겠지만 '코미디언 중에서도 여성은 더 약자구나'하는 사실이라도 알게 됐으면 좋겠다. 기 세 보인다고 욕먹는 개그우먼들, 사실 방송계에서는 약자인 경우가 많다.

ⓒ프레시안(손문상)

이명현 : <웃음의 사회학>이나 <웃음과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후속작을 기대해도 되나.

이윤석 : 또 낸다면 '웃음'이 아니라 '과학' 시리즈로 하겠다. <행복의 과학>이라든가 <모순의 과학>이라든가…. 행복에 대한 책은 많아도 과학적 대중서는 없는 것 같고, 모순 역시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해서 관심 가는 주제다. 내가 과학책에 '꽂힌' 이유가 있는데, 설명이 명료해서다. 마치 손에 돌멩이를 쥐어주듯 개념을 와 닿게 하는 면이 있다. 물론 그 돌멩이들이 진실의 극히 일부분이 아닌가, 좀 더 큰 진리를 못 보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과학과 과학적 설명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명현 : 혹시 주변 개그맨 선후배 중에 집필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 또 없나.

이윤석 : 이경규 선배(방송인 이경규)가 언젠가 '취중어록'을 낸다고, 술 마실 때 하는 말들을 후배 개그맨이 받아 적고 있다. 나는 옆에서 "이건 넣고, 이건 쓰지 마" 라고 훈수 및 편집을 담당한다. (웃음)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책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 아주 좋은 자료들이 될 것 같다. 우리 어머니가 어머니의 인생사를 쓰는 식으로, 각자의 현장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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