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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짜 구원자는 '예수' 아닌 '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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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짜 구원자는 '예수' 아닌 '사탄'! [김용언의 '잠 도둑']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어쩌다 내 죽음을 미리 알게 되더라도, 이런 식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악몽 같은 죽음의 예언.

모스크바작가협회 운영위원회 의장 미하일 베를리오즈, 시인 이반 니콜라예비치 포느이레프가 따스한 봄날 한가로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대화에 끼어든 낯선 외국인으로부터 "당신은 목이 잘려 죽을 거요"라는 예언을 듣는다. "안누쉬카가 이미 해바라기 기름을 사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녀는 기름을 사왔을 뿐 아니라 엎질러버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몇 분 지나지 않아, 미하일 베를리오즈는 전차를 기다리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전차에 깔려 머리가 잘린다. 그 광경을 목격한 여인들이 호들갑스럽게 소리친다. "안누쉬카가 식료품점에서 해바라기 기름 1쿼트를 가져오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출입구에서 병을 깨뜨려버렸다니까! 그런데 그 불쌍한 사람이 그만 기름에 미끄러져 차 밑에 깔렸어요." 유감스럽게도 미하일 베를리오즈의 시체는 예언이 정확히 실행되었다는 걸 알 수 없었다.

낯선 외국인은 '검은 마술'을 전공하는 볼란드 교수라고 자처하지만, 실상 악마다. 은유도 별명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악마. 그가 세 명의 수행원 코로비예프, 베헤못, 아자젤로를 이끌고 모스크바에 나타난 이유는 두 가지다. "너는 모스크바 사람들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아느냐?" 그 옛날 위대한 혁명의 이념은 사그라진 지 오래, 돈과 권력과 허세, 관료주의, 속물성에 취해있는 모스크바를 한바탕 뒤집어놓기 위해서다.

두 번째로는 연례행사 '봄날 만월의 무도회'(라고도 하고 '백 명의 왕의 무도회'라고도 하고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악마들의 대무도회')를 열기 위해서다. 칼리굴라, 메살리나, 루돌프 황제를 비롯하여 무수한 살인범, 미치광이, 배신자, 교수형당한 자, 마녀, 흡혈귀들이 무덤을 헤치고 나와 요란한 하룻밤의 축제를 즐기는 것이다.

이 무도회를 개최하기 위해선 여주인이 꼭 필요하다. 그것도 '마르가리타'라는 이름의 여성이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적당한 '마르가리타'를 찾아내는데, 그녀는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름 없는 작가를 사랑하는 불행한 유부녀였다. '거장'은 예슈아('예수'를 히브리어로 읽은 이름)와 본디오 빌라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지만,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작가' 혹은 '전투적인 구교도'라고 맹렬한 비난을 받은 채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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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과 마르가리타-1>(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박형규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문예출판사
645쪽에 달하는 장편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전2권, 박형규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는 중반까지 이르러도 대체 이 소설이 어디까지 질주하려는 건지 짐작도 할 수 없게 혼란스러움을 가중시킨다. 볼란드 일행이 떠들썩하게 극장 천장에서 돈다발을 뿌리고 화재를 일으키고 사람들을 미쳐 날뛰게 만드는 사이, '거장'의 미완성 소설이 조각조각 장별로 소개되고, 마르가리타가 차라리 악마와 함께 하기를 결심하는 환상적인 모험담이 곁들여진다.

굳이 미하일 바흐친의 카니발 문학론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언어로 구사할 수 있는 환상성의 가장 높은 경지를 구현한다. 환상성은 현실과 대립되는 무언가가 아니다. 현실 혹은 현실적인 원칙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현실 안의 어떤 모순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충돌 지점을 도려내어 그 구멍을 응시할 수 있게끔 이끄는 유용한 장치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환상성은 우선 작가 자신의 격동적인 삶을 선명하게 반영함으로써 맥락이 한층 풍부해진다. 옮긴이 박형규는 1926년 스탈린을 풍자한 소설 <개의 심장>이 검열에 문제시되면서 반동 작가로 규정, 이후 불가코프의 모든 희곡이 상연 금지되고 어떤 글도 활자화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불가코프는 극심한 좌절감에 스스로 원고를 불태우기도 했다 한다. 결국 불가코프는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자신의 국외 망명을 허용하든지, 아니면 작품 활동을 보장해주든지, 그도 아니면 차라리 총살시켜 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이 와중에 문인 사회는 볼셰비키 정권의 옆에 알짱거리며 불가코프를 공격함으로써 불가코프를 더한층 절망감에 빠뜨렸다.

<거장과 마르가리타> 곳곳에서 불가코프는 무기력한 작가가 할 수 있는 건 원고를 불태우거나 제 발로 정신병원에 기어들어가는 것뿐이라 절규한다. 그리고 "비겁한 행위가 가장 무서운 죄"라고 분노한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슈아를 처형해야 했던 본디오 빌라도의 죄이며,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라며 신과 악마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스스로의 타락을 정당화했던 러시아 인들의 죄이며, 결혼 제도라는 관습에 얽매여 자책만 일삼던 여인의 죄이다.

해결책은 단 하나다. 매듭을 한 번에 끊어버리는 것. 혁명이 그렇게 성공했듯. 작가가 자신의 미완성 소설을 가장 감동적이며 적절한 방식으로 끝맺음으로써, "사랑은 어두운 골목길에서 강도가 달려들 듯이 그렇게 우리에게 뛰어들었습니다. 벼락처럼, 핀란드의 단도처럼!"이라 찬양하던 첫 기억처럼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그리고 선을 인정하는 것만큼 악도 인정하며 현실과 환상을, 신과 악마를, 혼란과 침묵을 동시에 끌어안을 수 있게 됨으로써 이 죄는 비로소 사해진다.

"자네는 그림자를, 그리고 또 악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말을 했어. 만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네의 선은 어떻게 되고, 만일 그림자가 사라진다면 지구는 어떻게 보일까? 그림자는 사물과 인간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는가? 자네는 순수한 빛을 즐기려는 환상 때문에 모든 나무, 모든 살아있는 것을 지상에서 쓸어버려 지구 전체를 벌거벗기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그리고 그 극심한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다름 아닌 악마다. 예슈아만큼이나 오래된 존재, 세상의 모든 슬픔과 죄악과 행복을 묵묵히 지켜보며 심연 속 영생을 지속해온 지혜로운 존재. 악마가 썩어빠진 모스크바를 뒤집어엎고("다 타버렸으니 새 건물을 짓는 게 당연하군. 뭐, 그렇다면 지난번 것보다도 좋은 것이 세워지기를 바라는 도리밖에 없군."), 자신의 소설을 없애버린 거장에게 "원고는 타지 않았습니다"(이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다!)라며 돌려줌으로써 세상이 다시 한 번 재생의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한다.

악마는 세계를 파괴했고, 또 부활시켰다. 예슈아가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인류를 구원한 것처럼, 악마에게는 악마 나름의 방식이 있었다. 대신 가능한 한 화려하고 그로테스크하고 방자한 방식으로. 이를테면 샹들리에 위로 뛰어올라간 고양이가 앞발로 브라우닝 권총을 쥔 채 사람들에게 난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죽거나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불가코프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젊은 의사의 수기, 모르핀>(이병훈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도 추천한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초기작들을 음미할 수 있다.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시골 마을의 유일한 의사로 고군분투하던 불가코프의 젊은 시절을, 그리고 결국 외로움과 권태를 이기지 못하고 모르핀 중독에 빠져들었던 괴팍한 열정까지 엿볼 수 있다.

무덤덤한 듯 의외의 유머 감각이 배어있고, 애조 어린 필치로 거대한 약점 투성이인 자신을 객관화시키려 애쓰는 작가의 패기도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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