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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흑사병보다 더 무서워한 전염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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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흑사병보다 더 무서워한 전염병은?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14] 전염병 예방 규칙
대한제국 정부는 1899년 8월 16일 내부령 제19호 <전염병 예방 규칙>을 필두로 몇 가지 전염병을 예방, 관리하기 위한 법령을 잇달아 제정했다. 그보다 4년 전인 1895년 7월 내부령 제2, 4, 5호로 <호열자병 예방 규칙> <호열자병 소독 규칙> <호열자병 예방과 소독 집행 규정>을 공포한 바 있었지만 이제 관리 대상 전염병을 확대하고, 관리 방법도 더 체계화한 것이었다.

이러한 법을 제정하고 전염병 예방에 나선 것은 근대 국가의 통치 기구를 자임하는 국왕과 정부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일본의 영향도 컸다. 정부는 <전염병 예방 규칙>에 이어 콜레라(虎列刺), 장티푸스(腸窒扶私), 적리(赤痢), 디프테리아(實布垤里亞), 발진티푸스(發疹窒扶私), 두창(痘瘡) 등 여섯 가지 법정 전염병에 대해 각각 예방 규칙을 제정했다. 당시 일본은 여섯 가지 외에 성홍열과 페스트도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했는데 한국 정부는 이 두 가지 전염병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 대한제국의 <전염병 예방 규칙>(1899년 8월 16일 제정, 왼쪽)과 일본제국의 <전염병 예방법>(1897년 3월 제정). 대한제국 정부가 <전염병 예방 규칙>을 제정하면서 일본의 법을 많이 참고했던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런 한편,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는 페스트는 제외하는 등 한국의 실정에 맞추는 노력을 벌인 흔적도 적지 않게 보인다. "예방"의 "예"자도 한국(預)과 일본(豫)은 (의미가 다른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자를 사용했다. ⓒ프레시안

우선 개개 전염병에 관한 법령의 전문(前文)들을 통해 그 질병들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살펴보자. (원문의 뉘앙스를 되도록 살리면서 현대어로 옮기려 했다.)

"콜레라는 전염병 중에 사납고 모질기(猛惡)가 가장 심하여 그것이 만연 유행할 때의 흉포하고 참학(慘虐)함은 세상 사람들이 익히 아는 바이다. 그 병의 병독은 일종의 세균(細菌)이 위주인데 (세균은) 환자의 토사물 중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병의 만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토사물과 그 밖의 오염물에 소독법을 사용하는 것을 빠뜨릴 수 없다. 불가불 환자가 발생하는 초기와 병독이 아직 널리 퍼지기 전에 십분 소독법을 시행하여 병재(病災)를 좁은 부분에 국한시켜 불씨를 꺼트려야(熄滅) 한다." (<호열자 예방 규칙>)

콜레라는 19세기 질병의 챔피언이었다. 당시 인류에게 피해를 가장 많이 주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피해의 규모만을 따진다면 콜레라는 말라리아, 두창, 발진티푸스 등 전통적인 강자, 그리고 결핵이라는 새로이 떠오른 "문명병"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당시 사람들이 콜레라를 가장 두렵게 여긴 것은 폭발적인 발생과 높은 치명률 때문이었다.

10년, 20년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느닷없이 나타나 순식간에 질풍노도와 같이 온 세상을 휩쓸고는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는 그 특성 말이다. 위의 인용문처럼 콜레라는 "사납고 모질기가 가장 심한" 질병이었다.

세균학의 챔피언인 코흐는 콜레라를 "세균학자들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라고 불렀다. 인류에 대한 콜레라의 위협이 지속되는 한 세균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의 전자 현미경 사진. 1870년대까지만 해도 세균병인설을 주장한 사람들은 동료 의사들에게서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1880년대가 되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코흐가 결핵균(1882년)과 콜레라균(1883년)을 잇달아 발견하면서 "세균학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렇다고 당장 의학이 전염병 치료에 크게 기여했던 것은 아니었다. 항생제와 결핵약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60여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때까지는 영양 상태의 개선, 공중 위생 조치가 전염병 퇴치에 기여한 바가 훨씬 컸다. ⓒ프레시안

그리고 코흐는 마침내 1883년 동맹군의 정체를 규명했다. 19세기의 마지막 콜레라 팬데믹(세계적 유행) 때 라이벌인 파스퇴르에 앞서 콜레라균을 발견했던 것이다. 콜레라균의 발견으로 코흐와 세균학의 성가는 더욱 높아졌다. 그 뒤 코흐와 동료, 제자들은 기세를 몰아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 왔던 세균성 전염병들의 원인균과 정체를 대부분 규명하게 되었다.

"장티푸스는 그 병독이 환자 설사물(瀉下物) 중에 있으니 콜레라 병독과 같이 불결 오예(汚穢)한 토지에서 번식 미만하여 널리 유행하는 세를 이루는 병이다. 그 예방하는 방법도 콜레라와 대략 같다. 이 병은 여섯 가지 전염병 중에 최다한 질병이다. 유행 기간이 길고 병증 경과가 오래 지속(久)되면 공중의 안전 행복에 손해를 끼침이 콜레라처럼 유심하다. 따라서 이 병이 유행할 조짐이 있거든 속히 십분 진력하여 이를 박멸하고 제2의 유행을 예방하기를 태만히 해서는 안 된다." (<장질부사 예방 규칙>)

"적리는 그 병독이 환자의 설사물 중에 있어 전염하는데 병의 특성(病性)이 장티푸스와 유사한 병이다. 따라서 그 예방 소독하는 방법도 장티푸스와 대략 같다. 유행할 시 설사물 중에 혈액(血液)이 섞이지(混) 않은 환자라도 이 병(적리)과 마찬가지로 예방해야 한다. 장티푸스와 같이 참독(慘毒)이 매우 오래가고 심한지라 발병 시를 당하여 박멸 방법을 십분 진력하여 예방법 등을 전체적으로 장티푸스와 같이 해야 한다." (<적리 예방 규칙>)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지만 장티푸스와 적리(이질)는 콜레라에 비해 유행이 장기적, 지속적이라는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장티푸스가 여섯 가지 전염병 중에서도 가장 흔하다고 한 것은 한국 정부가 스스로 조사하여 파악했던 사실이 아니고 일본의 데이터를 차용한 것이었을 터이다. 그리고 설사 환자 가운데 혈변(血便)을 보이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일단 적리로 간주하는 것은 세균 검사가 불가능했던 당시로는 적절하고 타당한 조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디프테리아는 미성년 아동에게 침범하여 병상(病狀)이 가장 험악하게 나타난다. 그 병독은 인두 후두를 포함하여 환자의 가래(痰) 침(唾) 콧물(鼻汁)과 환자가 사용하는 의복, 완구 등을 매개로 하여 전염하기 때문에 이 병이 만연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아동을 격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專要)하다. 소학교와 유치원 등 아동이 군집하는 장소에 이 병이 유행할 조짐이 있는 경우에는 특히 긴중(緊重) 주의해야 한다." (<실포질리아 예방 규칙>)

디프테리아는 영유아와 학령기 아동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전염병이다. 디프테리아를 법정 전염병에 포함시킨 데에는 일본의 영향이 작용했겠지만, 한편으로는 어린이 건강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의 반영일 수도 있다. 서구 사회에서 여성과 어린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싹튼 것은 대체로 18세기이다. "모성 병원" "모자 병원"이 생겨난 것이 그러한 점을 뒷받침하는 근거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전문적인 부인과, 소아과 서적이 간행되고 있었다. 한 가지 잣대로만 세상을 볼 일은 아니다.

"발진티푸스는 그 병독이 환자의 신체를 통해 퍼져나가(揮散) 전염되는 병으로 전파 속도가 가장 빠르고 날랜(最迅疾) 병이다. 그것이 1차 유행할 조짐이 있으면 홀연히 산만(散漫) 전파하여 빈민부락 등 군집 잡거(雜居)한 장소에 가장 먼저 침입한다. 가옥이 불결 협애하면 공기의 유통이 불량하기 때문에 전염성의 위세가 더욱 맹렬(猛劇)해져 전체 부락민(全部人衆)을 침해한다. 따라서 이 병이 만연함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속히 환자와 건강자를 격리하고, 빈민 부락에 침입하는 때에는 피병원과 요양소를 개설하는 빈민구료법의 보급을 서둘러야(不怠) 한다." (<발진질부사 예방 규칙>)

전염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질병이 가난과 연관되어 있음은 동서고금을 통해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리고 "질병의 사회성"은 요즈음에 새로 발견된 진리나 담론이 아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발진티푸스는 감옥, 빈민촌, 전쟁터와 같이 생활 조건이 열악한 곳에서 창궐하는 질병으로 알려져 왔다. 발진티푸스의 그러한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발진질부사 예방 규칙>에는 "빈민구료법"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법률이 만들어졌던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경우 피병원은 수시로 세워졌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기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었고 조선 시대 내내 유지되던 전통이었다.

"두창의 병독은 두창의 고름(痘漿)과 딱지(痘痂) 중에 있어서 병자의 신체를 통해 발출(發出)하므로 전염력이 다른 병들보다 더 강렬하다. 그 때문에 한 겹 해진 옷을 통해 병독이 전파되어 무수한 대중에게 병독이 침입한 적이 왕왕 있었다. (다행히) 두창은 종두와 같은 만전(萬全) 예방법이 있어 그 병의 피해(患害)를 미연에 방제(防制)할 수 있다. 하지만 (종두를) 재삼 반복하지 아니하면 그 효과가 무(無)한지라 진실로 이 병이 발생하는 때에는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임시 종두를 보급하고 환자에게는 면밀히 소독법을 시행하여 십분 병독을 박멸케 하고 종래의 경험에 의거함이 필요하다. 보호 간병하는 사람이 친히 환자를 병구완(介抱)하다 두창 병독에 오염되더라도 그 수족과 의복 등에 십분 소독법을 시행치 아니하여 병독을 전파하는 경우가 매우 많으니 이 점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두창은 앞의 다섯 가지 전염병과 달리 우두술이라는 "만전(萬全) 예방법"이 있는 질병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조선 정부는 1885년부터 우두술 보급을 국가 사업으로 전개해 왔지만 이 당시까지도 크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의학적 방법의 유무도 질병의 퇴치에 중요한 요인이지만, 설사 그러한 방법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역량이 갖추어져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두창의 경우가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문제만은 아니다. 확실한 치료법이 있는 데도 사용하지 못한 채 죽어가거나 신음하고 있는 사람이 지금도 우리 주변과 지구촌에 얼마나 많은가?
▲ 확실한 치료법이나 치료약이 없어서 죽어가는 환자와, 그것이 있는데도 사용하지 못한 채 죽거나 신음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억울할까?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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