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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미래를 알려줄게. 바꿀 자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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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당신의 미래를 알려줄게. 바꿀 자신 있어?" [김용언의 '잠 도둑'] 로버트 소여의 <멸종>·<플래쉬포워드>
과학 소설(SF)을 거의 읽지 않는다 하더라도 익숙한 이름들은 있다. 로버트 하인라인,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필립 딕. 그에 비해 로버트 소여는 익숙한 이름이 아니다.

한국에 단 두 권 소개된 그의 소설 제목 역시 낯설긴 마찬가지다. <멸종>(김상훈 옮김, 오멜라스 펴냄)과 <플래쉬포워드>(정윤희 옮김, 미래인 펴냄). 어쩌면 미국 드라마 팬이라면 더 금방 알아차릴 지도 모르겠다. 한국계 배우 존 조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던 드라마 <플래쉬포워드>는 바로 그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했던 작품이다.

공교롭게 한국에 소개된 그의 책 두 권, <멸종>과 <플래시포워드> 모두 시간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궁금해하는 시간, 과거와 미래 말이다. 과거의 내가 A라는 선택을 내렸기 때문에 지금의 B라는 현재, 혹은 C라는 미래가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는 걸까.

'시간선(Time Line)'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만일 우리가 과거에 A가 아닌 A'라는 선택을 했더라면 현재 혹은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런 호기심은, 의지만으론 단 하루 동안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리고 체념에 더 익숙해진 이의 간절한 백일몽에 불과한 것일까.

▲ <멸종>(로버트 소여 지음, 김상훈 옮김, 오멜라스 펴냄). ⓒ오멜라스
로버트 소여는 <멸종>과 <플래쉬포워드>를 통해 시간이 '가능성을 가진 한 가지 형태'임을, 시간 여행의 온갖 이론과 패러독스를 종횡무진한 끝에 그것이야말로 논박하기 힘든 이성적인 결론임을 입증해 보인다.

<멸종>에서 인류는 2013년에 이르러 실제로 작동하는 타임머신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고생물학자 브랜든과 지질학자 클릭스가 이 타임머신을 타고 중생대 백악기 말로 돌아간다. 이 단촐한 탐사대의 목적은 바로 그 당시 공룡 멸종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함이다. 흔히들 말하는 운석 충돌 때문인가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백악기 말에 실제로 도착한 두 사람은 뜻밖의 광경과 마주친다.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뜨고, 그 달은 현재의 우리 위치에서는 볼 수 없는 '뒷면'을 보여주고 있다. 중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볍다. 하룻밤이 지나고 두 사람은 가장 지능이 높은 공룡이자 교활한 사냥꾼 공룡 중 하나인 트로오돈과 마주친다.

트로오돈의 눈과 콧구멍에서 진득거리는 파란색 젤리 덩어리가 나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 두 사람의 뇌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다시 빠져나온 젤리는 트로오돈에게 들어간다. 갑자기 트로오돈이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1억 3000만 년 전의 기억을 갖고 있다. 우리는 화성에서 왔다." 물론 '파란 젤리'가 말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뇌에서 끄집어낸 인류의 기억을 불완전하게 조합하여, 두 사람의 언어인 영어로.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두 명의 과학자가 막 개발된 타임머신을 타고 백악기 말로 돌아가 공룡 멸종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그때 마주친 공룡(속의 파란 젤리가)이 말을 한다. 자신들은 화성에서 온 존재라고 한다. 너무 황당무계한 나머지 책을 덮어버리고 싶어지는가?

그러나 막상 <멸종>의 첫 장을 일단 넘기고 나면, 고생물학과 지질학이 교차하는 지점의 이론적 성과들을 호쾌한 어드벤처와 정교하게 맞물린 작가의 필력에 넋을 놓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꼼짝없이 계속 그의 '시간선'을 붙잡고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시간 여행은 단순히 인디애나 존스 풍의 어드벤처물에 머무르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생명 창조의 비밀에 관한 어떤 가능성을, 과거와 미래가 서로를 규정함에 따라 우리의 현재 시간선이 어느 순간 정반대 의미를 함축할 수 있다는 섬뜩한 진실을 직면해야 한다.

"시간 여행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새커리 박사님. 시간 여행이 왜 필연적인지를 설명하고 있어요." "필연적이라니요?" "시간 여행은 이미 실현되었어야 해요. 미래는 이미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과거를 다시 쓸 수가 있어요. 언젠가는 우리도 실험실에서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죠.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생명을 모방해서 역설계하는 식으로 해야만 합니다."

<멸종>의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어쩌면 문자로 표시될 수 있는 최대한의 스펙터클이다. "한 시대가 종말을 맞이했다. 나는 공룡의 우툴두툴한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당신 역시 기이한 전율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까마득한 과거의 어떤 풍경이, 내가 경험한 적은 없지만 나의 유전자 어디선 당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몸서리치면서.

<멸종>이 기존의 시간 여행 플롯을 대담하게 바꿔버림으로써 인류의 기원을 탐구한다면, <플래쉬포워드>는 시간 여행물의 고전적인 규칙에 비교적 충실하게 출발한다. 2009년 4월 21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를 돌려 고에너지 입자물리학의 성배인 '힉스(신의 입자)'를 발견하는 실험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전 세계는 암흑에 휩싸였고, 1분 43초 동안 전 인류가 의식을 잃었다. 당시 자동차를 몰고 있었거나, 비행기에 타고 있었거나 계단을 오르고 있었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잃었다. 다행스럽게도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1분 43초 동안 21년 6개월 2일 2시간 후의 미래를 보았다.

로이드는 지금의 약혼녀가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누워있는 자신을 보았다. 가스통은 곧 태어날 아들이 청년으로 성장해 자신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광경을 목격했다. 프랑코는 지상에서 20센티미터 정도 뜬 채 움직이는 자동차를 신기하게 구경했다. 그리고 테오는…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 즉시 전 세계는 끔찍한 혼란에 빠진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쟁점은 인간의 자유의지다. '불변하는 단 하나의 미래만 존재할 뿐이다'는 가설에 반론을 제기하는 건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에서 촉발된 '다세계 해석(서로 분리된 우주에서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1분 43초 동안 인류가 목격한 저마다의 미래는 도저히 바꿀 수 없을지도, 그저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플래쉬포워드>(로버트 소여 지음, 정윤희 옮김, 미래인 펴냄). ⓒ미래인
그리고 로버트 소여의 결론은 후자에 더 가까워진다. 환상 속에서 보았던 2030년과 아직 다가오지 않은 2030년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사건의 집합 중에서 어떤 미래를 택할지는, 역시나 개개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는 21년 뒤 예고된 자신의 죽음을 피하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채 삶을 무감하게 흘려보내고, 누군가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초라한 미래에 절망하며 자살함으로써 그 미래를 말소시키고, 누군가는 환상 속에서 보았던 배우자를 찾아내 그녀를 만나자마자 정말 사랑에 빠져버리고, 또 누군가는 이것을 인류 정신과 육체의 진보 자체로, 끝내는 불멸의 삶에 이르는 비밀로 향하는 하나의 출구로 현실화시킨다.

4차원의 시공간은 그 자체로는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연속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바꿔나가는 건 인간이다. 퇴보가 아닌 전진을, 그것도 영속적인 전진을 꿈꾸는 인간만이, 시간 여행을 빅뱅 실험과 중성미자 폭발이 극히 우연하게 맞물림으로써 벌어진 섬광 같은 모험담으로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지난 6월 5일 실제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은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를 돌려 인공적인 빅뱅 실험을 한 끝에 (힉스 입자는 아니지만) 반물질(Antimatter)을 1000초 동안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만일 이때 <플래쉬포워드>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아니,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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