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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 북쪽에 의사가 많았던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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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 북쪽에 의사가 많았던 까닭은? [일제 강점기 의료의 풍경·18] 일제 강점기의 의료 상황 ③
의사(의료인) 수와 더불어 의사의 지역별 분포 양상은 국민(주민) 건강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어떤 국가의 의사 수가 많더라도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으면 의사 수가 적은 나머지 지역은 그만큼 의료 서비스에서 소외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의 지역적 편중에 따른 문제는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더욱 심각했다.

의사 편중의 대표적인 예는 도시-농촌 간 의사 수의 차이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도농 간의 의사 수는 차이가 컸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시계열적(時系列的)으로 보여주는 통계 자료는 없다.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 등에는 의사와 의료 기관의 분포를 도(道)별로 집계하여 수록했을 뿐 도시(府), 농촌(郡)별 자료는 없다.

의료 관련 단체에서 비정기적으로 발간한 의적록(醫籍錄)과 <총독부 관보>의 의사 개업 및 이동 신고 등을 종합하면 어느 정도 윤곽을 그려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뒤로 미루기로 하고, 이번 회에서는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에 수록된 도별 의사 수의 변화를 추적, 분석해 보기로 하자.

▲ 출처 :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 ⓒ프레시안

위의 표에서 보듯이 의사 1인당 인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감소했다. 다시 말해 의사의 공급이 늘어났다. 하지만 일제 말기인 1943년에도 전국 평균으로 조선인 인구 1만 명당 조선인 의사 1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지역(道)에 따른 차이도 대단히 컸다. 경성, 인천, 수원 등 대도시가 많은 경기도가 의사 수급 사정이 가장 나았으며, 그 다음으로 평남, 평북, 황해, 함북, 함남 등 북부 지역이 뒤를 이었다. 흔히 "개화(開化)"가 상대적으로 일찍 시작되었다고 일컬어지는 북부 지역에서 신식 의사의 배출이 많았던 것이다.

경기도가 사정이 가장 좋았던 데에는 의학교가 대부분 경성에 있었던 점도 작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다. 타 지역에서 경성으로 유학 온 학생들이 의사가 되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그러면 전통의료인이라고 할 의생들의 지역적 분포는 어떠했을까? 의생들 역시 인구당 수를 산출해 보면 북부 지역이 많아 함북, 함남, 평북, 평남 순이었다. 신식 의사의 분포와 차이나는 점은 의생이 경기도에 상대적으로 적었던 반면 경남에 많았다는 것이다. 전라도, 충청도, 경북 지역은 의사든 의생이든 전국 평균치를 훨씬 밑돌았다. 그만큼 일제 강점기 조선의 남부 지역은 의료인들의 서비스로부터 더 많이 소외되어 있었다.

ⓒ프레시안

이번에는 일본인, 조선인 의사와 의생을 모두 합한 전체 의료인의 분포를 살펴보자. 앞의 자료들에서 예견할 수 있듯이 경기도와 북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았다. 특히 경기도는 전 기간 동안 의료인 1명당 인구 2000명 수준을 유지했다. 경기도에서는 의생의 감소치를 신식 의사의 증가치가 상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함북, 함남, 평남, 평북, 경남 지역은 전체 의료인 공급이 점차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 정도가 심한 것은 아니었다. 이에 반해 삼남 지방을 비롯한 그 밖의 지역은 식민지 초기에도 좋지 않았던 상황이 날이 갈수록 더욱 악화되었다. 특히 전남과 전북 지역이 최악의 상태를 나타내었다.

▲ 1943년 당시 도별 인구와 의사 비율. ⓒ프레시안

일제 말기인 1943년 조선인 신식 의사가 절대수로나 인구당 비율로나 가장 많았던 곳은 경기도였다. 전체 인구의 12퍼센트 가량을 차지하는 경기도에는 의사의 30퍼센트 남짓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조선인 신식 의사가 많이 분포했던 곳은 평안남도였다.

ⓒ프레시안

한편, 1943년에도 의생이 가장 많았던 곳은 함경남도였다. 그리고 의생은 인구 비례로 보았을 때 의사의 경우보다 지역적 편중 현상이 적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전남, 전북 지역은 의생 역시 다른 지역들에 비해 훨씬 적었다.

ⓒ프레시안

강점 초기에 비해 의사 수는 많이 늘어나고 의생 수는 많이 감소한 1943년에도 전국적으로 의생은 의사보다 30퍼센트 가까이 많았다. 하지만 경기도에서는 이미 의사 수가 의생 수를 압도했으며, 평안남도에서도 의사 수의 우세가 확실했다. 황해도에서는 이 무렵 의사 수가 의생 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나머지 지역들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의생 수가 의사 수보다 많았다. 충북, 충남, 경남, 함남 지역이 특히 그러했다. 이렇듯 의료인 분포의 변화 속도는 지역마다 달랐다.

몇 차례 살펴보았듯이,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지역의 의료인 수급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남부 지역이 특히 심했다. 이러한 의료인 수급의 악화는 사망률과 이환률 등으로 나타나는 건강 수준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앞으로 이 연재에서 살펴볼 중요한 테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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