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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한국형' 복수 드라마의 원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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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한국형' 복수 드라마의 원조가 있었다? [김용언의 '잠 도둑']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어린 시절 <암굴왕>이라는 제목의 아동용 모험소설이 떠돌았다. 제목만 봐도 암울한 기운이 물씬했기 때문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여년이 지나서야 <암굴왕>의 원래 제목이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란 사실을 알게 됐고 "복수극의 원조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이지"라는 주변의 회상을 심심찮게 듣게 됐다. 그래서 책을 펼쳐들었고, 20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앤디 듀프레이와 <빠삐용>의 죄수 빠삐용, <올드 보이>의 오대수가 어쩌면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아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총 5권짜리 소설을 읽느라 4일 밤낮을 홀랑 날려버렸다는 건 사족으로 덧붙여둔다.

1815년, 연인 메르세데스와의 결혼을 꿈꾸던 선량한 선원 에드몽 당테스는 뜻하지 않은 음모에 휘말린다. 에드몽의 행복을 시기하던 회계사 당글라르, 메르세데스를 짝사랑하던 페르낭, 자신의 안위 때문에 이 모든 범죄를 알고도 모른 척 해버린 이웃 가스파르, 그리고 출세의 야망 때문에 에드몽을 희생양으로 삼은 빌포르 검사 등이 그를 음모로 몰아넣은 주인공이다.

'나폴레옹의 열성 지지자'라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14년 동안 감옥에 갇힌 에드몽은, 그곳에서 만난 또 다른 죄수 파리아 신부의 도움으로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다. 신부가 숨겨뒀던 어마어마한 보물까지 물려받은 그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타나 치밀한 복수극을 차근차근 전개한다.

▲ <몬테크리스토 백작>(전 5권,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오증자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민음사 버전 기준으로 말하자면, 1권 전반부는 상당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1815년에서 출발하는 이 장대한 대하소설은, 프랑스 혁명 이후의 소용돌이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자코뱅파와 왕당파 사이의 심각한 갈등이 절정에 달했던 무렵에서부터 모든 사건이 시작된다. 당시의 정치적 혼란 때문에 무고한 에드몽 당테스가 14년이나 캄캄한 석탑에 갇혀있어야 했던 상황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기나긴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1권 249페이지, 즉 감옥에서 자살을 생각하던 에드몽 당테스가 옆방의 죄수 '미치광이' 파리아 신부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이 책을 덮고 휙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됐다. "주님과 절망을 동시에 말하는 자는 누군가?" 지하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생과 사, 선과 악, 구원과 절망, 사랑과 증오의 양극단을 모두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에드몽의 운명을 알리는 우렁찬 예고편이다. 그 순간 나의 피도 끓기 시작했다.

옮긴이 오증자의 해설을 잠시 참조하자. "극장은 관객들의 반응이 즉석에서 전달되는 곳인 만큼 관객의 반응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작가는 그들의 요구를 '매우 빠르게' 작품에 반영해야 했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바로 이러한 극장에서 문학의 '기초'를 배웠기 때문에 많은 작품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19세기의 (한국형) 드라마 작가였다고나 할까. 게다가 19세기 중반 프랑스와 영국을 뒤흔들었던 연재소설의 붐은 영국의 찰스 디킨스와 함께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뒤마를 가능케 했던 중요한 토대다. 1844년부터 1846년까지 2년 동안 신문 <논단>에 연재되었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모든 챕터들은 가장 간질간질한 순간에 문이 닫힌다.

때로는 그 클리프 행어가 도가 지나칠 때도 있다. 소설 말미에 이르러 프랑스 판 '로미오와 줄리엣' 이라 할 수 있을 막시밀리앙 모렐과 발랑틴 빌포르의 사랑을 가장 진실된 방식으로 이어주기 위해, 반죽음 상태를 유지시키는 약을 이용하며 한 달 뒤를 기약하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술수는 극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하자 연장 방영을 급하게 요구하는 방송사 때문에 머리를 굴리는 드라마 작가의 응급처치를 연상시킨다.

전 세계를 누비며, 심지어 이국적인 동양에 대한 허풍스러울 만치 거대한 환상까지 곁들여지며 펼쳐지는 모험소설과 딱 적절한 정도의 스릴러, 또는 추리소설의 초기 단계가 발아하던 시대를 반영하는 '팩트' 추적과 인과응보로 귀결되는 메시지까지,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대중소설이 갖출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쾌락을 최상급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무엇보다 독자들의 촉수가 집중되는 지점은 여기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네 명의 원수들에게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 범인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은혜롭게 즉시 숨을 거둘 수 있는 살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꿀에 사로잡힌 파리처럼 애처롭게 죽음을 예감하며 몸부림치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도록 방치할 것인가?

물론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후자를 선택하지만, 그것이 일대일의 대결 형태로 등장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는 네 차례의 복수극을 가장 극적인 절정의 순간에, 무수한 목격자들이 이 복수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한 상황을 '세팅'한 다음 한 방을 내지르는 '연출가'로서 움직인다. 죄인들이 마지막 순간 자신들이 저질러왔던 모든 죄악들을 떠올리며 공포의 참회를 하게 되는 카타르시스의 순간까지 놓치지 않는다(이 순간 <토지>에서 "찢어죽이고 말려죽일 테야"라고 울부짖는 최서희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건 한국 독자만의 오해일까). 이를테면 코앞에 닥쳐온 파멸을 예감하는 빌포르 검사가 맛보는 공포 같은 것.

"빌포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사실이 발각되는 것이 아니었다. 부정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에겐 갑자기 벽 위에 피 같은 글자로 씌어진 <마네, 테켈르, 파레스>(바르다가르의 향연 때에 우연히 벽에 나타났다는 암호로서 '세어지다, 달아지다, 나누어지다'라는 뜻) 같은 것은 그리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 글씨가 도대체 누구의 손으로 씌어졌는지 하는 궁금증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혹여나 그의 가혹한 복수극을 비난할지도 모를 선량한 이들에게,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다음과 같은 해설도 빠뜨리지 않는다.

"난 이 세상을 하나의 살롱으로 보고 있소. 그러니 그곳에서 나오려면, 예절 바르고 정직하게 나와야 한단 말이오. 다시 말하면 인사치레를 할 건 하고, 빚도 갚아야 할 것은 다 갚고 나와야 하지 않겠소?"

사교계에서 통용되는 지극히 평범한 언어를 통해 영혼을 짓누르는 복수의 집착을 우아하게 표하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반어법적 대사를 볼 때마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언어 자체뿐 아니라 화용론에 관해서도 능수능란해야 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가끔 지나치게 멋들어져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법한 대사들도 간간히 튀어나온다. 그마저도 고풍스런 매력을 더한다.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복수를 결심한 날, 왜 내가 심장을 뽑아버리지 못했단 말인가!"

궁극적으로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인과응보의 결말을 맞이하지만,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인간사를 비관적으로 응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분노와 집착이 부질없는 삶을 지탱해주는 단 하나의 끈이었다 할지라도, 그것마저 강력한 생의 의지였음을 상찬하며 다음과 같이 외친다.

"신이 인간에게 미래를 밝혀주실 그 날까지 인간의 모든 지혜는 오직 다음 두 마디 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수 십 년의 고통을 이겨낸 낭만주의 영웅의 이 같은 마지막 일갈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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