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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영어를 못하는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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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영어를 못하는 진짜 이유는… [도시 주인 선언·30] 영어 교육 기회 불평등
'어륀지'-몇 년 전 이른바 '영어 몰입 교육' 정책을 주도했던 어느 정치인의 발언이자, 그러한 교육 정책에 대한 풍자로도 널리 회자되었던 말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영어 교육 열풍을 반영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영어 교육의 중요성과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영어 발음을 교정을 위해서 입과 혀를 성형 수술한다는 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로부터 대학생들과 취업 준비생들의 책상에 몇 권씩 꽃혀있을 토익/토플 교재들, 그리고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설 영어 학원은 우리 사회의 영어 교육 열풍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하겠다. 심지어 태권도장의 광고 전단지조차도 태권도 잘하는 사범이 아닌 영어 잘하는 원어민 사범을 모셔놓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실정이니, 우리 사회의 영어 교육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반영하듯, 공교육에서도 보다 수준 높은 영어 교육을 위한 정책적 노력과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학교 원어민 보조 교사이다. 정부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학교에 원어민 보조 교사를 배치해 왔고, 그 숫자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원어민 보조 교사는 학생들의 영어 교육에 대한 만족도라든가 영어권 문화에 대한 직·간접 체험 기회를 제고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된다. 즉, 원어민 보조 교사를 통한 영어 교육은, 한층 수준 높은 영어 교육을 받을 기회를 의미한다고도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원어민 보조 교사에게 영어 배우는데도 명당자리가 있는가?

그렇다면, 원어민 보조교사들에게 영어를 배울 기회는, 도시 공간에서 얼마나 평등하게 주어져 있는가? 서울시를 예로 들자면, 강남에 사는 학생들이나 강북에 사는 학생들이나 원어민 보조 교사를 통해서 영어를 배울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진 것인가?

나는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원어민 보조 교사 현황을 <교육 정보 공개 시스템>을 통하여 조사해 보았다(2010년 4월 기준). 그리고 자치구별 초, 중, 고등학교 학생 수 현황(초등학교는 영어 교육 대상인 3~6학년만 조사, 2010년 기준)과 원어민 보조 교사의 수(외국어 교육에 특화된 학교인 외국어고, 국제고는 집계에서 제외)를 비교하여, 자치구별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산출하였다. 교사 1인당 학생 수와 교육의 효과는 반비례하는 만큼, 이는 원어민을 통한 영어 교육 기회가 얼마나 평등한가를 보여줄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확인 결과, 서울시의 원어민 보조 교사를 통한 교육 기회에는 자치구별로 심한 불평등이 나타났다.

우선 초등학교의 경우를 살펴보자. 아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가장 적은 성북구(295명)와 가장 많은 강북구(5707명)의 차이는 무려 20배에 육박한다. 즉, 똑같은 서울시의 초등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어디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원어민 보조 교사에게 영어를 배울 기회는 천양지차로 달라지는 것이다.

▲ 서울 자치구별 초등학교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 수. ⓒ이동민

이는 중학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가장 적은 자치구(성동구 : 1122명)와 가장 많은 자치구(강동구 : 7581명)의 차이는 7배에 가깝다. 고등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가장 적은 자치구(관악구 : 1457명)와 가장 많은 자치구(강동구 : 7951명) 사이에는 5배가 넘는 차이가 존재한다.

▲ 서울 자치구별 중학교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 수. ⓒ이동민

▲ 서울 자치구별 고등학교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 수. ⓒ이동민

자치구별로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은, 서울시라는 도시 공간 내부에서도 원어민 보조 교사를 통해 영어 교육을 받을 기회가 지역별로 평등하게 주어져 있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똑같은 도시 내부에서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원어민 보조 교사에 의한 수준 높고 만족도 높은 영어 교육의 기회가 불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강남구, 서초구 등 이른바 '잘 나가는 지역', '교육 환경이 우수한 지역'의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다른 지역에 비해 주목할 만큼 적었다. 즉, 이러한 지역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다른 지역의 학생들에 비해 원어민 보조 교사에게 영어교육을 받을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일부 지역은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수가 5000명이 넘으며, 이런 수치는 이들 지역의 원어민 보조 교사와 관련된 교육 여건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지역은 강남 지역, 즉 이른바 8학군 지역과 달리 주거 환경이나 교육 여건 등이 열악하다고 알려진 지역이 많다.

나는 어떤 자치구가 원어민 보조 교사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상대적으로 많이 갖고 있는지, 어떤 자치구는 그렇지 못한지에 대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복잡한 데이터를 등급화하기 위한 통계분석기법인 '군집분석'을 통하여 서울 시내 지역별 원어민 보조 교사를 통한 교육 기회의 정도를 분석하였다.

위의 지도에서 학교급별로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가장 적은 등급을 부여받은 지역에 5점, 가장 많은 지역으로 분류된 지역에 1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총 15점이 되도록 점수를 부여한 다음, 군집 분석을 통해 어떤 지역이 원어민 보조 교사에게 영어 교육 받을 기회가 높은 지역인지, 어떤 지역은 그러한 기회가 낮은지를 좀 더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 서울 자치구별 원어민 보조 교사를 통한 영어 교육 기회. ⓒ이동민

위의 표를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남구와 서초구, 즉 8학군 지역은 원어민 보조 교사를 통한 교육 기회가 유리하게 주어진 지역에 해당한다. 반면 강남 지역에 비해 지역의 발전 수준이나 교육 여건 등이 낮다고 여겨지는 지역은 원어민 교사에 의한 교육 기회 역시 대체로 낮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사실은 '강남 8학군' 등의 단어로 표현되는 도시 공간 내부에서의 지역에 따른 교육 불평등 문제가 원어민 보조 교사라는 측면에 비추어 보았을 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지역을 막론하고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에 비해 중, 고등학교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이는 중, 고등학교가 초등학교에 비해 학생 수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원어민 보조 교사 배치는 '학교당 1명(이상)'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데 따른 결과로 판단된다. 따라서 원어민 보조 교사와 관련해서는 '학교당 1명'과 같은 형태가 아닌, 학교의 규모, 특성 등을 고려한 보다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원어민 보조 교사를 통한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요인

학생들에게 보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은, 지역과 학교를 막론하고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A지역은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뛰어나서 원어민 보조 교사 확보에도 적극적이고, B지역은 교육적 열의가 부족하여 원어민 보조 교사 확보에 소극적이다'라는 논리를 내세울 사람도, 그런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독자도 없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불평등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서울특별시교육청에 문의하여 원어민 보조 교사 선발 절차를 조사해 보았다. 서울시 원어민 보조 교사 선발은 매년 3월(1학기)과 9월(2학기) 두 차례 실시되며, 선발 전형에 응시한 원어민을 대상으로 서류 전형, 면접 등을 통하여 유자격자를 선발한 후 각급 학교에 배치된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예산에는 원어민 보조 교사 채용을 위한 내역이 편성(2010년 현재 42억 7500만 원)되어 있으며, 이외에 각 자치구별로 교육청과의 협력 사업 형태로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서울시 총 25개 자치구 중 16개 자치구가 이렇게 예산을 편성하였으며, 총액은 100억7598만5070원으로 서울특별시교육청 예산의 배가 넘는다. 구체적인 내역은 다음과 같으며, 서울특별시청을 통해 조사한 2010년 현재 자치구별 재정 자립도(서울시 자치구 평균 : 49.3%)도 함께 표기하였다.

▲ 서울 자치구별 원어민 보조 교사 협력 사업 예산 및 재정 자립도(2010년 기준). ⓒ이동민

위의 표를 살펴보면 강남구, 서초구의 원어민 관련 협력 사업 예산액이 다른 자치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강남구 예산은 서울시교육청 전체 예산에 육박할 정도이다. 더불어 이들 자치구는 재정 자립도 역시 다른 서울시에서 최상위에 해당할 정도로 높다. 게다가 협력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자치구는 대체로 재정 자립도 역시 저조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덧붙여 성북구의 경우 유독 초등학교에서만 원어민 보조교사 1인당 학생 수가 매우 낮게 나타난다. 이는 자치구 내에 다수 소재한 사립초등학교의 영향으로 판단된다. 서울 시내 40개 사립초등학교 중 5개교가 성북구에 소재하며, 이들 학교는 원어민 보조 교사가 학교당 1명~많게는 2명 정도 배치되어 있는 공립 초등학교와는 달리 많게는 학교당 10명 이상 배치되어 있으며, 공립 초등학교 및 공·사립 중·고등학교와 달리 학교 자체 예산으로 원어민 보조 교사를 채용한다. 이는 높은 교육비 및 우수한 교육 여건으로 인해 상류층 학생들의 비중이 높은 사립초등학교의 특성이 원어민 보조 교사에 있어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실은 원어민 보조 교사를 통한 영어 교육 기회 역시 해당 지역의 예산 확보라든가 재정 자립도 등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즉, '교육 환경이 좋고 잘 나가는 지역'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보다 나은 영어 교육을 받을 가능성 역시 높은 반면, 그렇지 못한 지역의 학생들은 그러한 기회에서조차 차별받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영어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도시는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따라서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거주하는 곳에 관계없이 도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평등하게 누릴 권리가 있으며, 이는 교육에서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주거 환경이 좋고 재정상태가 우수한 이른바 '잘 나가는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교육받을 기회도 더 많이 주어지고 그렇지 못한 지역은 교육받을 기회에서까지 소외된다면, 이런 도시는 겉모습이나 수치상의 지표가 어떻든, '사람이 살아가는' 진정한 도시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 도시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아직 그런 부분에서는 미흡한 것 같다. 살펴본 바와 같이, 서울 시내만 하더라도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여건에 따라서 원어민 보조 교사를 채용을 위한 예산 액수가 뚜렷할 정도로 차이가 났고, 그 결과라 할 수 있는 원어민 보조 교사 1인당 학생 수, 즉 보다 수준 높은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 역시 자치구별로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한 도시 내에서도 특정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차별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도시가 교육적으로 평등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90년대에 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원어민 보조 교사에게 영어 수업을 받는 것은 아직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이제는 많은 학교에서 원어민 보조 교사를 통한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니 한편으로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와 관련된 교육 기회의 평등은 도시 내부에서도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이제는 원어민 보조 교사처럼 교육과 관련된 작은 기회부터라도 도시 내부에서 평등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겉모습만 화려할 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집중호우만 내리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애물 단지 같은 건축물, 또는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조차 타당성과 실용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넣는 것보다는, 이처럼 훨씬 적은 예산이 소요되면서도 모든 시민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일에 자원과 노력을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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