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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가 중국 혐오를 부추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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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가 중국 혐오를 부추기는가? [서남 동아시아 통신] 우리는 어떤 중국을 보고 싶어 하는가?
이번 학기에 나는 현대 중국 사회에 관한 소규모 세미나 수업을 통해 학부생을 만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Understanding Modern China>란 수업을 개설해서 영어가 모국어인 교환 학생과 외국 체류 경험이 많아 영어가 능통한 한국 학생, 영어라는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토종" 한국 학생과 함께 다양한 영어로 중국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학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국내외 평가 지수에 따라 재단되고, 영어 구사 능력이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의 필수 조건으로 정착한 시대에 살면서, 문화인류학자인 나는 저 멀리 떨어진 아마존 오지보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 자체가 더 기기묘묘한 '현지'(field)임을 매순간 깨닫고 있다.

이번 학기 중국 수업도 그 중 하나이다. 매 주 수업은 인구, 노동, 성(性), 청년, 민족주의 등 특정한 소재를 중심으로 한두 개의 논문을 발제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개별 논문이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학생에게 각 주의 주제와 관련된 신문 기사나 다큐, 만화, 인터넷 블로그 등 다양한 자료들을 가져와서 공유하도록 했다.

문제는 자료를 영문 매체에서 찾다보니, 더구나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상위에 링크된 기사나 조회 수가 높은 동영상 자료를 출처에 대한 고려 없이 찾다 보니 우리가 다뤄야 할 중국이 이미 인권 유린과 비민주의 상징으로 축약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노동'은 분노에 찬 노동자의 파업과 시위로, '농민공'은 도시의 '이등 시민'으로 제도적 문화적 차별에 시달리는 농민공의 고통으로, '인구'는 정부의 계획 생육 정책 때문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못한 아이들("secret children")의 문제로 축약되었다.

'인터넷'을 주제로 한 이번 주의 수업에서 중국을 표상하는 방식의 문제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학생들이 찾아낸 모든 기사에서 '중국의 인터넷'은 곧 '중국의 민주'를 논하는 작업과 동일시되었는데, 특히 아이웨이웨이(艾未未)에 관한 자료가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1957년 출생한 아이웨이웨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치 미술가이자 반체제 인권운동가이다.

그 해 반우파 투쟁에서 시인인 부친 아칭(艾靑)이 동료 작가 딩링(丁玲)을 변호하다 우파 분자로 몰린 바람에 가족과 함께 신강위구르자치구 변방 지역으로 쫓겨났다가 16년이 지나서야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198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가 행위 예술가로서 탄탄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술에 문외한인 일반인에게 아이웨이웨이가 널리 알려진 것은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에 대한 그의 저항과 2011년 "탈세"와 "외설" 혐의로 80여 일간 감금된 사태, "Where is Ai Weiwei?"를 외치며 그의 석방을 요구한 전 세계 예술가들의 항의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었기 때문이다.

수업에서 학생들은 인터넷이 중국의 민주화를 촉발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아이웨이웨이의 인터뷰 영상과 2008년 쓰촨 대지진 당시 두부처럼 뭉개진 학교들이 불량 건축과 공사비 착복에 따른 인재(人災)였음을 밝힌 그의 다큐멘터리,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패러디해서 중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을 비판한 그의 코믹 영상을 연이어 소개했다.

ⓒglobartmag.com

아이웨이웨이는 훌륭한 인권운동가이고, 중국 사회의 병폐를 직시하는 그의 열정과 노력은 추앙받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의 이름 석 자를 중국에 사는 나의 친구들과 학교에서 자주 만나는 중국 유학생들 어느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중국 정부의 무자비한 인터넷 검열 정책에 대한 비판이 이 괴리에 대한 유일한 답변일까?

인터넷 사용자 수가 이미 5억 명을 돌파한 나라에서 어마어마한 자금을 쏟아 부으며 시행되는 각종 검열 조치는 물론 비난받아 마땅하다. 중국은 1998년부터 인터넷 만리장성(防火長城)이라 불리는 국가 인터넷 검열 시스템을 구축하여 정치적으로 유해하다 판단되는 웹사이트를 게시물 삭제나 검색어 필터링을 통해 엄격히 관리해 왔으며, 작년 3월부터는 4억 명에 달하는 네티즌이 사용하는 '웨이보(微博 : 중국판 트위터)'에 대한 실명제를 도입하여 공분을 사기도 했다. 중국의 인터넷 환경을 연구해 온 이민자 교수의 지적처럼 소위 '인터넷 여론'은 당-국가의 정당성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이슈들을 배제한 채 시민들의 알 권리 보호, 지방 간부의 부정부패 폭로, 사회 정책 비판 등 주로 민생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검열 정책에 대한 우려에 동의하면서도 내가 불편함을 갖는 이유는 중국인의 인터넷 사용이 보여주는 수많은 흥미로운 주제들이 '중국의 인터넷 검열과 비민주적 통제'라는 깔때기로 여과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 쉽게 무시될 수 있다는 점, 서구 민주주의의 발달사에 기초한 특정한 역사적 렌즈로 중국을 보는 시선을 고정시켜버린다는 점 때문이다.

"Will the Internet change China?" 이는 중국의 인터넷을 연구한 문화인류학자 쩌우용밍이 미국에서 만난 정치가와 저널리스트에게 자신의 연구 주제를 장황히 설명한 뒤 들었던 유일한 질문이었다. 결국 그의 해법은 한 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맥락을 역사화시키는 작업, 즉 청 왕조 말기 전신(telegraphy)의 도입이 당시 관료들에게 야기했던 논쟁과 20세기 후반 인터넷 도입을 둘러싼 논쟁을 비교하는 가운데 "민주"와 "인권"과 같은 최근의 지배적 패러다임을 낯설게 바라보는 작업이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중국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일까? 이는 중국 사회를 영어라는 매개로 설명하게 된 나의 곤혹스러움에서 야기된 질문이지만, 현재 중국을 표상하는 한국의 대중매체에 대해서도 똑같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신문 기사들이 '위협으로서의 중국'과 '기괴한 중국' 양자만을 시소 타기 하는 상황이 이웃한 나라를 바라보는, 혹은 유학생, 이주 노동자, 이주 여성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 안의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얼마나 굴절시키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재현의 권력에 대한 성찰은 물론 연구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화요일 동시 게재합니다. 조문영 연세대학교 교수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89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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