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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년, '티파니'를 거쳐 '냉혈한'의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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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년, '티파니'를 거쳐 '냉혈한'의 삶으로! [김용언의 '잠 도둑'] 트루먼 커포티의 책들
<인 콜드 블러드>(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만 번역되어 있던 당시, 아마 2006년경이었던 것 같다. <인 콜드 블러드>를 읽으면서 대체 왜 트루먼 커포티-처럼 유명하고 부유한 뉴욕의 사교계 명사 작가-가 페리 스미스-처럼 못 배우고 가난하고 뒤틀린 범죄자-에게 강렬한 동료 의식, 혹은 연민, 혹은 호기심을 지칠 줄 모르고 품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 <인 콜드 블러드>(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7년이 흐른 지금, 트루먼 커포티의 다른 작품들을 뒤늦게 접하면서 비로소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작가의 성장기를 짚어가면서 어린 시절의 사건이 이후의 결과와 일대일로 대응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트루먼 커포티 같은 작가라면, 그처럼 자의식이 강하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구축하려는 야망에 가득했던 이라면, 그처럼 자부심과 스스로에 대한 의혹이 뒤섞인 채 주변 세계 역시 그렇게 불안하게 받아들인 이라면, 자신이 쓰는 픽션에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반영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트루먼 커포티는 1924년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릴리 매 포크는 불과 17살이었다. 열정적인 소녀에 가까웠던 어머니는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 아출러스 퍼슨스에게 곧 실망했고 다른 남자들과 어울렸다. 결국 트루먼이 4살 때 두 사람은 이혼했다. 둘 중 누구도 아이를 책임지길 원하지 않았고, 트루먼은 앨라배마 주의 외가댁으로 보내졌다. 부모가 원치 않았던 아이는 나이 많고 까다로운 이모들 사이에서 고독하게 성장했고, 그때 그에게 우정이라는 연대를 알려주었던 사람은 60대의 나이 많은 친척 내니 '숙' 럼블리 포크와 말괄량이 이웃집 소녀 하퍼 리(이후 <앵무새 죽이기>(김욱동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를 쓴 그 작가)였다.

트루먼 커포티가 9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뉴욕에서 쿠바 출신 사업가와 재혼했고 비로소 아들을 자신의 곁에 불러들였다. 이름을 니나로 바꾼 어머니는, 그러나 트루먼이 기대했던 것 같은 다정한 모성을 베풀지 않았다. 그녀는 체구가 매우 작고 다른 소년들과는 다른-그러니까 '계집애' 같은-행동거지를 보이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자주 잔인하리만치 그를 몰아세웠다. 트루먼 커포티는 위축된 소년 시절을 보냈고, 그가 처음으로 외부에게 인정받은 것은 스무 살 무렵 단편을 잇달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 <티파니에서 아침을>(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인 콜드 블러드>와 함께 트루먼 커포티의 가장 유명한 소설 <티파니에서 아침을>(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을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 속 오드리 헵번의 '지방시' 의상과 '티파니' 보석상이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트루먼 커포티는 처음부터 줄곧 뉴욕 사교계의 세련된 중심 인물이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는 시골뜨기였고, 부모에게 버림받다시피 한 비의도적인 고아 같은 존재였으며, 결정적으로 동성애자였다.(당시만 해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힘들었던 정체성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모든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유명세를 얻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있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탐내기만 했다면, 그는 <인 콜드 블러드>의 가련하고 비열한 살인범 페리 스미스와 비슷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2005년 작 영화 <카포티>에서 홀컴 살인사건을 함께 조사했던 하퍼 리가 페리 스미스에 대한 감정을 묻자 커포티는 이렇게 답한다. "페리와 나는 같은 집에서 성장한 것 같아. 그리고 어느 날 페리가 일어나 뒷문으로 나갔고, 난 앞문으로 나간 거지." 트루먼 커포티는 페리 스미스가 하지 못했던 것, 즉 문학으로부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소명을 발견했고 그에 최선을 다했으며 거기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냈다.

트루먼 커포티가 스물 네 살 때 쓴 장편 데뷔작 <다른 목소리, 다른 방>(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은 자전적 성장소설로 분류되는 목록 중에서도 단연 최고작 중 하나로 꼽혀야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트루먼 카포티의 이후 소설들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주요 모티프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유령이 창가에서 희미하게 손짓하고 "수수께끼처럼 비밀 통로가 가득"하고 "초상화의 눈들도 사실은 눈이 아니라 엿보기 구멍일 가능성"이 높은, 과거의 영화를 간직했지만 지금은 무너져 내리고 있는 낡은 저택. 영문도 모르고 이곳에 도달한 소년 조엘은 프로이트의 가족 로망스에 사로잡힌 채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며 불안하게 흔들린다. 나는 내가 아닐지도 몰라,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는 내 친아버지가 아닐지도 몰라, 그럼 나는 누구? 나의 적은 누구?

조엘은 이곳에서 유사 아버지, 혹은 연인, 혹은 미래의 그 자신인 친척 랜돌프와 기묘한 교감을 나누고, 풋사랑을 느꼈던 이웃집 소녀 아이다벨이 난쟁이 여인과 사랑에 빠지자 이 세계는 모든 엇갈리고 비틀리고 부서지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는다.

▲ <다른 목소리, 다른 방>(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소설의 마지막은 더할 나위 없는 비애를 남긴다. 조엘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기도 문구,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불확실하고 의미 없는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주님, 제가 사랑받게 해주세요"를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린 채, 이곳을 떠나더라도 평생 "다른 목소리, 다른 방, 잃어버리고 구름에 가려진 목소리들이 그의 꿈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을 견뎌내며, 어딜 가더라도 그 자신의 고통스런 내면의 닮은꼴들과 마주쳐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어딜 가더라도 그 귀신들린 집 속의 어린 소년이었던 자신을 발견하면서, 햇빛을 발견하길 간구하며 소리에만 의존하여 꾸준하게 방향을 바꿔가며 땅속을 헤쳐 가는 "고독한 두더지"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트루먼 커포티의 소설에는 조엘의 닮은꼴이 항상 등장한다. 언제나 "여행 중"이라고 명함에 적은 채 "뭐든 익숙해지지 않아요.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거지"라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하던, 그러다가 결국 "나 너무 두려워요, 친구. 그래, 드디어. 이런 식으로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으니까. 내던져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게 내 것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야"라고 울음을 터뜨리던 홀리 골라이틀리(<티파니에서 아침을>), "그는 한 번도 시를 쓰지 않은 시인이었으며, 한 번도 그림을 그리지 않은 화가, 한 번도 사랑해 보지 않은(전혀!) 연인이었다고 고백했다. 즉 그는 방향도 없고 머리도 없는 사람이었다. 오, 하지만 그가 노력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언제나 시작은 좋았지만 항상 끝이 안 좋았"던 빈센트(<차가운 벽>(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 중 단편 '머리 없는 매'), "낯선 사람들, 얼굴만 아는 사람들"만을 "가장 진정한 친구"로 여기던 소년과 나이 많은 사촌(<차가운 벽> 중 단편 '크리스마스의 추억'), 부모에게 버림받고 누구에게나 멸시와 조롱만 당하다 결국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인 콜드 블러드>의 페리 스미스("어릴 때부터, 이제껏 살아온 서른한 해의 반이 넘는 시간 동안 페리는 상상 속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것만 같은 모험들을 진짜로 해보라고 부채질하는 책이나("다이빙으로 한몫잡기! 여가 시간에 집에서 훈련하세요! 스킨스쿠버 다이빙으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무료 설명서를 받아보세요…") 그에 상응하는 광고들("난파선의 보물! 보물 지도 50장을 이 놀라운 가격에…")을 보고 꿈꾸며 살아왔다.")는 얼굴과 이름을 바꿔가며 자꾸만 등장한다.

▲ <차가운 벽>(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조엘, 홀리 골라이틀리, 페리 스미스, 그리고 작가 트루먼 커포티는 어쩌면 평생 "단돈 25센트로 달을 보세요! 별을 보세요!"('머리 없는 매')라는 부르짖음에 홀려 헤맸는지도 모른다. 작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가짜라 할지라도 알록달록 현란한 판타지로 한순간의 즐거움을 주는 서커스단을 평생 좇으며, "다른 사람의 눈이 자기의 진짜 훌륭한 가치를 반영한다는 환상"(<다른 목소리, 다른 방>)을 애써 믿으며 삶을 소비했는지도 모른다. 트루먼 커포티는 자신의 아름답고 우울한 주인공들처럼, 사교계 명사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에 사정없이 휩쓸렸고, '논픽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로 그토록 원하던 불멸(처럼 보이는)의 명성을 얻었으나, 똑같이 '논픽션 소설'로 기획했던 상류사회의 은밀한 치부 스캔들 <응답받은 기도>를 기획했다가 격노한 부자 친구들에게 추방당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몰랐던 게 있다. 트루먼 커포티는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의 조엘이 매혹됐던, 어느 스코틀랜드 전설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현명치 못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영혼 깊은 곳까지 볼 수 있는 마법의 약을 제조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가 본 악, 충격 때문에 그의 눈은 벌어진 상처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남은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조엘의 유사 아버지 랜돌프도 이에 한 마디 거들 수 있다.

"난 사진사가 아냐. 그렇다고 화가라고 할 수도 없지. 즉, 사물을 보고 취해서 전달하는 사람을 화가라고 정의한다면 아니라는 거야. 나한텐 항상 왜곡의 문제가 있어. 난 본 것보다 생각한 걸 더 많이 그리거든."

<인 콜드 블러드>에서 영문도 모른 채 페리 스미스와 리처드 히콕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했던 클러터 부인의 책갈피에는 이런 성경 구절이 적혀 있었다. "조심하고, 깨어 있어라. 그때가 언제인지를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 뒤, 캔자스 주 홀컴 마을 사람들은 창문마다 불을 환하게 켜놓고 "전 가족 모두 옷을 다 갖춰 입고서는 밤새 뜬눈으로 경계하며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혹은 홀리 골라이틀리가 남자들에게 던지는 경고. "야생 동물은 절대 사랑하지 마요. 마음을 주면 줄수록 걔들은 더 강해지니까. 강해져서 숲 속으로 도망가 버려." 재앙은, 파국은, 혹은 강렬한 사랑은, 사랑의 상실은 언제인지 모르게 살인자처럼 다가와 등에 칼을 꽂는다. 트루먼 커포티는 그처럼 번개처럼 내리꽂는 충격의 에피파니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벌어진 상처" 같은 자신의 눈으로 그 모든 것을 파악하고 왜곡되게 기억했다. 그는 버림받았지만, 그의 소설은 영원히 펼쳐진 채 비슷한 영혼을 미혹시킬 준비를 끝냈다.

▲ 베넷 밀러의 2005년 작 <카포티>. 왼쪽이 트루먼 커포티 역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오른쪽이 하퍼 리 역의 캐서린 키너. ⓒUnited Artists

고독의 어떤 면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독자라면, 트루먼 커포티의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리 없는 매'의 빈센트 같은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창조된 형태보다 그 작품을 만든 창조자에게 더 흥미를 갖게 하는 그런 예술품들이 있다. 보통 이런 형태의 작품들에서는 그 순간까지는 개인적이어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라고 생각되었던 무언가를 찾아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든다. 나를 아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아는 거지?"

아무리 나이가 먹은 후에라도, 어린 시절 아무도 알지 못했던 고통과 상실감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라면 그 질문에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의 랜돌프처럼 "난 그렇게 나이 든 적이 없단다"라고 대꾸할 것이다. 트루먼 커포티의 소설들을 읽을 때,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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