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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이 부시보다 더 많이 죽일 수 있다고”? 미 리버럴들의 변신 - '인권' 앞세워 이라크전쟁 지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 수많은 이라크인들이 죽겠지만 후세인의 탄압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은 더 많다. 그래서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다”

60년대 베트남전 반대시위에 앞장섰고 인권 유린을 이유로 어떤 전쟁도 반대해왔던 미국의 온건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고심 끝에 입장을 바꿨다.

<사진: 엘리 비젤>

‘리버럴(liberals)’로 불리는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후세인 독재로 죽어가는 이라크 국민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전쟁일 수 있다고 결론내리면서 ‘매파’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고 미국의 일간 뉴욕타임스가 14일 보도했다.

이들 자유주의 학자들은 주로 ‘자유주의의 요새’라 불리는 동부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와 보스턴, 그리고 서부 버클리에 있는 몇몇 대학에 포진하고 있고 일부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고위 관료를 지냈다.

***보스니아 내전때부터 입장 변화**

이라크전쟁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하는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들로 뉴욕타임스가 꼽은 이들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역임했고 <제국의 패러독스>란 책으로 유명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장, <정당한 전쟁, 부당한 전쟁>의 저자 마이클 왈저 프린스턴대 교수, 나치의 유태인 학살 생존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비젤 보스턴대 교수, 유명 인권운동가인 마이클 이그나티프 하버드대 카 인권센터 소장, <테러와 자유주의> 저자이자 문화평론가인 폴 버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군축국장보(輔)였던 마이클 나흐트 버클리대 골드만 행정대학원장, 클린턴 행정부 고위관리였던 케네스 폴락 등이다.

물론 이들이 모든 미국의 자유주의자를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의 동료들과 불화를 겪고 있고 자신들의 입장변화에 대해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이들중 일부는 미국이 외교 노력을 더해야 하며 다른 나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이들이 전쟁을 지지하는 이유 역시 다양한다. 그러나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야 한다는 믿음에서는 의견일치를 보고있다.

지난주 부시 대통령과 만난 엘리 비젤은 “나는 전쟁론자가 아니지만 후세인을 쫒아내는 방법으로 전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비젤은 지난주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고문에서 자신은 늘 전쟁을 반대해왔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보스니아 내전>

<테러와 자유주의>에서 민주주의적 이상을 위해 공격적인 군사개입을 주장한 폴 버만은 “억압받는 이라크인들을 위한 시위를 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고 말했다. 버만은 지금 이라크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젊은 시절 베트남전을 반대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놀랄 필요가 없다며 상이한 듯한 두가지 현상은 모두 인도주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클 이그나티프도 내키지 않았던 매파적 태도를 왜 취하고 있는지 설명하며 “자유주의자들은 모호하고 타협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후세인이라는 끔찍한 작자를 보고 내 입장이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내 입장은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자유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이 이처럼 바뀐 계기로 이그나티프가 꼽은 것은 보스니아 내전이다. 그는 “전쟁과 무력사용을 반대하는 것은 자유주의자가 된다는 것을 뜻했지만 그건 30년전의 얘기”라며 “90년대에 자유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보스니아와 코소보에 대한 군사개입을 찬성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권에 대한 고려는 복잡한 구도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더 직접적인 계기는 2001년 발생한 9.11테러였다. 수천명의 미국인이 끔찍한 항공기 테러로 살상되는 것을 목격한 많은 자쥬주의 지식인들이 테러와의 전쟁에 동조하는 분위기로 돌아섰고, 이들은 노암 촘스키나 하워드 진 등과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촘스키 등은 전쟁은 테러 근절의 효과적 방법이 될 수 없으며 이제까지 미국이 보여온 제국주의적 행태를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차 걸프전 반대했던 클린턴 시절 관료들도 ‘전쟁찬성’**

클린턴 전 행정부의 관리들 중에도 군사 개입에 어쩔 수 없는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주로 우려하는 것은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다.

마이클 나흐트 버클리대 교수는 “불량국가들은 이중으로 위험하다.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인접국들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장이 아니라 실제적인 위협이다”고 말했다.

케네스 폴락도 “문제는 전쟁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지금 하느냐 나중에 하느냐다. 지금 전쟁을 치르면 비용이 엄청나다고 하지만, 시간을 끌었을 때의 비용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고 강경 입장을 밝혔다.

폴락이 입장을 바꾼 것은 이라크 봉쇄정책이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믿음이 생겼던 90년대다. 이같은 생각을 공유하던 클린턴 행정부 관리들은 후세인 제거만이 대량살상무기를 없애는 유일한 길이며 그를 제거하는 유일한 길은 전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폴락은 전했다.

<사진: 조지프 나이>

조지프 나이 교수는 소위 ‘연성 권력(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자다. 연성 권력이란 군사력 같은 ‘경성 권력(하드 파워)’의 반대 개념으로 한 나라의 문화적 외교적 영향력을 뜻한다. 이라크 전쟁 반대자들은 자신들의 논리에 이 개념을 차용해왔다.

그러나 정작 나이 자신은 이라크에서 군사행동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여러 매체를 통해 밝혀왔다. 나이는 “경성 권력은 연성권력을 보완해준다”며 “연성 권력을 지키기 위해 어떤 전쟁도 안 된다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입장이다. 문제가 대량살상무기이기 때문에 나는 전쟁을 말할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지프 나이는 14일 “전쟁이 시작되기 전(Before War)” 제하의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국가가 아닌 테러리스트 집단에 의해 문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현 시대를 ‘전쟁의 사유화’ 시대라고 규정, 이들 테러 단체에 무기를 확산시킬 수 있는 북한과 이라크는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기기만' '대세편승' 비판도**

인권을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전쟁에서 일어날 살상과 후세인의 탄압으로 죽어나갈 이라크인들 중 어느쪽이 더 심각한 피해일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을 마지못해 찬성하는 자유주의자들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으며 부시에 대해서도 동시에 비판하는 등 애매한 입장도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폴 버만은 아랍·무슬림들에 있는 자유주의자들을 이용해 후세인 전복을 꾀하지 못한 것과 인권 문제를 적극 제기하지 못한 점에 대해 부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조지프 나이는 후세인이 이전의 유엔 결의안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새 결의안 제출 전에 공격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새 유엔 결의안에 관해 논란이 일어나는 현재의 상황에서 더 많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이클 왈저 프리스턴대 교수는 소규모의 국지적 공격을 주장했다. 그는 “상황이 너무 복잡해 나는 반전시위에 참가할 수 없다. 후세인 정권은 파시스트 정권이기 때문이다”며 “나처럼 후세인 정권에 대해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반전 시위대들이 후세인 축출을 위해서도 시위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사진: 반전사인>

자유주의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히고 있는 지식인들의 입장 변화는 ‘협력과 교류에 의한 평화 가능’이라는 자신들의 기존 논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한 국제정치 전문가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리버럴들의 태도는 허식 내지는 자기기만일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내에서 아무리 저명한 지식인이라 하더라도 압도적인 전쟁 찬성 여론을 거스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평했다.

자유주의자들이 전쟁을 찬성하는 명분으로 내세우는 이라크인들의 인권에 대해 그는 “구실에 불과할 수 있다”며 “후세인을 쫓아내고 다른 불량국가를 다 없앤다 하더라도 알 카에다 같은 테러조직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선제공격 전략으로 미국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인데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자들까지 억지 논리로 전쟁을 지지하는 것이 미국의 분위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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