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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동북아, 한국만 역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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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동북아, 한국만 역행하고 있다 [한반도 브리핑] 세계질서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이제 완연한 가을에 들어섰다. 한여름 아침, 저녁으로 목청 놓아 울던 매미들의 소리는 어느덧 사라지고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차가워진 가을밤 공기를 쓸쓸히 공명시킨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쉼 없이 자전이라는 스스로의 운동을 하고 태양주위를 공전하면서 태양과 가까워지고 멀어지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하는 역경(易經)은 옛 선조들이 바로 태양과 지구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운동을 오랜 세월 동안 관찰, 연구하면서 만들어졌다. 역경이 기본적인 틀을 갖춘 것은 약 5천 년 전이지만 역경은 현대과학문명의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0과 1을 기본으로 하는 디지털이론의 기원이다. 컴퓨터의 원리인 디지털이론은 라이프니찌의 이진법(二進法)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라이프니찌는 역경을 보고 이진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역경은 한자 그대로 변화의 책, 영어로는 'book of change'이다. 우주의 진리를 다루는 역경은 매우 난해한 책이지만 역경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이다. 하나에서 나왔지만 서로가 성질이 상이한 두 대립물이 음양의 태극과 같이 통일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역시 뿌리는 같지만 음양의 조합이 다른 요소들이 상생과 상극의 운동을 통해 형태(體)와 쓰임(用)을 바꾸어 가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변화는 변화를 위한 변화가 아닌 새로운 생명을 위한 변화이다.

양(陽)의 기운이 가장 활발한 봄에는 감추어졌던 새로운 생명이 껍질을 뚫고 나오며 양(陽)의 기운이 극에 달하는 여름에는 새로운 생명을 여름철 무성하게 자라는 나뭇잎과 같이 양육하고, 양의 기운이 소진되는 가을에는 역(易)으로 음이 기운이 가장 활발하여 에너지를 안으로 수렴시켜 벼와 과일과 같은 물질을 만드는 시기이다. 또 음의 기운이 절정에 달하는 겨울에는 가을에 수렴하고 물질화시킨 에너지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즉 봄에 쓰기 위해 저장한다. 이러한 변화가 없으면 우리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지 못하며 역사는 그야말로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며, 새로운 생명을 위한 변화는 세상을 움직이고 인간의 사회를 움직이는 질서이기도 하다.

국제관계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제2차 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이른바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은 더 이상 헤게모니 국가라고 하기 어려워졌다. 한때 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하였던 미국은 현재 인위적으로 돈을 찍어 경기를 부양하지 않으면 국가적 도산을 피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으며, 시리아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하였다는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군사적 개입을 주저하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던 소련이 몰락하고 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이 되었고 그 힘은 절정에 다다랐다.

▲ 시리아 문제 해법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4일 러시아에서 개막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무력 침공하자 주저하지 않고 연합군을 조성하여 이라크를 공격하고 승리함으로써 유일 초강대국의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만물은 극에 이르면 되돌아간다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의 법칙과 같이 미국의 힘은 절정에 달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미국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계 다른 국가에 공공재(公共財)를 제공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며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는 있지만 그것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군사력은 마치 최고급 성능의 스포츠카에 연료가 조금밖에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스포츠카는 그 어떤 차보다 속도를 빨리 낼 수 있지만 속도를 마음껏 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갖고 있는 군사력으로 미국이 원하는 성과의 최대치를 낼 수 없다. 결국 미국은 고전적인 의미에서 이미 헤게모니 국가가 아니다.

혹자는 미국 이후 중국이 헤게모니 국가로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으나, 중국이 미국과 대등하거나 혹은 큰 경제력을 가진다고 하여도 미국이 전성기 때 누렸던 전 방위적인 패권의 지위를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치 음과 양이 다시 한 번 음과 양으로 나뉘어져 사상(四象)이 되듯이 세계의 패권은 이미 지역적으로 분할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근방에서 또 다른 변화가 감지되는 곳은 북한이다. 삼대째 세습을 하며 시대착오적인 '주체사상'을 고수하고 있는 북한에 "변화는 무슨 변화냐?" 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북한은 확실히 변하고 있다. 지난 9월 12부터 17일까지 북한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는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역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한국도 정식으로 초청되었으며 한국 선수단은 지난 12일 개막식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아래 기수 구원서가 태극기를 들고 개막식에 입장, 북한에서 열리는 공식 체육행사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휘날렸다. 뿐만 아니라 지난 14일 한국 역도 선수단 김우식과 이영균은 남자 주니어 85kg급에 출전해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시상식에선 태극기 두 장이 나란히 게양되는 가운데 애국가가 연주되었으며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 관중 모두 기립해 이를 지켜봤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북한은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을 '남조선'으로 부르며 괴뢰정권이 인민을 탄압하며 미국의 비호 아래 근근이 연명하는 곳으로, 그래서 해방시켜야 할 지역으로 여겼다. 그런 북한이 공식적으로 한국을 초청하고, 한국의 국기인 태극기가 평양 한복판에서 휘날리고, 애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북한 관중들이 모두 기립하였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이것을 통해 자신들이 한국에 그리고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입장에 변화가 있음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권 붕괴 이후 북한은 사상 유례없는 경제난을 겪었다. 북한은 1998년 '고난의 행군'이 공식적으로 끝났음을 선언하는데 이 어려운 시기를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시장과 무역을 통해서였다. 연관 산업이 횡, 종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연합기업소 간 내적 시장을 통해 자재의 수, 공급을 해결하게 하였으며, 도(道)와 도 간 그리고 군(郡)과 군 간의 물자교류를 허용할 뿐 아니라 군 단위까지 무역을 자체적으로 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분권적 조치는 내각의 총체적인 지도 아래서 진행시켜 방임적인 시장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을 경제 활성화의 기제로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유의하여야 할 점은 북한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하여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이 자생적으로 확산된 것이라기보다는 경제위기가 기존에 있었던 시장적 요소에 더욱 탄력을 실어주어 시장적 기제가 처음부터 정부의 통제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경제위기를 넘긴 북한은 "사회주의원칙을 지키면서 실리를 추구한다"는 기조 아래 정부의 통제 안에서 시장적 기제와 무역을 더욱 장려하여 경제위기 극복뿐 아니라 경제발전을 추구하게 된다. 따라서 시장 그리고 무역은 북한 경제발전을 이끄는 두 축으로 자리매김을 하며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북한 당국은 군사 및 전략적 부문에 선택과 집중을 하여 핵과 장거리 미사일 기술의 제고를 통해 안보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였다고 판단하고 경제발전에 더욱 역량을 집중했다. 그렇게 되면서 시장, 특히 무역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여기에 대해 북한은 국가적 차원에서 무역 그리고 국제화에 대한 re-orientation(방향 전환)을 시작하였다. 2009년 김정일이 김일성대학에서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며 국제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연설(교시)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국제화는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이며 미래에 대한 키워드가 되었다. 최근 북한은 '조선 속에 세계가 아닌 세계 속에 조선'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는데, '조선이 없으면,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입장과는 커다란 간극이 있는 것이며 북한의 변화 그리고 그 방향에 대해서 실감케 해주는 대목이다. 북한도 음의 기운이 절정에 다다르는 오랜 소음(少陰)의 동면(冬眠)에서 깨어나 새로운 생명을 싹 틔우고 목(木)의 기운이 가득한 태양의 영역으로 변화를 이미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북한의 이러한 변화는 양 국가의 관계에도 변화를 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아시아중시 (Pivoting to Asia)'를 내세워 자신들의 국제정책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을 부각하였는데, 이는 지역 분할 적으로 전개되는 헤게모니의 향방에서 미국의 사활적인 이해관계가 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입장은 당연히 중국을 견제하고 겨냥한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을 축으로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있으나, 일본이 평화헌법을 고치고 소위 '보통국가'로 거듭나지 않으면 미·일·한의 삼각동맹은 중간에 매우 느슨하고 불완전한 고리가 있는 것과 같이 불안한 것이다. 일본이 평화헌법을 고치려는 노력은 하고 있으나, 동맹국인 한국의 강력한 반대 그리고 대부분의 동아시아국가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핵문제로 야기된 북한과 미국 간의 근 20년간의 대립을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 상이한 방법이 있다. 전쟁을 통해 한쪽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방법과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다. 시리아사태에 대응하는 작금의 미국 처지를 고려하여 보았을 때 첫 번째 방식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방식은 단지 핵 무기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의 보다 영구적 해결로서 양국이 평화조약을 맺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이 결과로서 포함되어 있다.

지금까지 미국은 두 번째 방식을 추진하는데 주저하였는데, 그것은 북한이 그냥 놓아두더라도 어차피 내부적으로 붕괴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직 여기에 대해서 입장 변화가 있어 보이지 않지만, 북한의 경제가 나아지는 것이 가시적으로 확인된다면 미국의 북한에 대해 두고 보는 'wait and see'의 입장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기술 제고로 군사안보적 균형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미국과의 군사적 대치는 북한 입장에서 경제개발을 안정적으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북한과 관계개선이 되어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게 되면 핵확산을 방지할 수 있고, 나아가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또 다른 교두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지난 2012년 3월 8일 뉴욕 밀레니엄 플라자 호텔에서 열렸던 미국 시러큐스대학교 행정대학원인 맥스웰스쿨과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공동주최하는 한반도 관련 세미나에서 부한 외무성 미국국 최선희 부국장은 관계개선을 하고 군사동맹까지 맺자고 하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최선희 개인의 사견이 아니라 북한의 비공식적인 입장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이 자신들의 주체노선에 맞춰 경제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중국으로의 과도한 의존을 피하고 균형을 유지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상황에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야기일지 모르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더운 여름이 어느새 선선한 가을로 바뀌듯이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지만 일단 임계점(臨界占)을 지나면 완전히 성질이 다른 것으로 바뀐다. 마치 겨울의 소음의 기운이 다하여 완전히 상(像)과 체(體)가 다른 봄의 태양의 영역으로 바뀌듯이. 그러나 최근 벌어지는 한국의 실정은 미래의 이러한 변화를 고려하였을 때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전직 대통령조차 종북(從北)으로 몰고, 현직 국회의원을 내란의 수괴로 낙인 찌고 있는 작금의 한국의 현실은 우려를 넘어 시간을 역행하는 반역사적이며 국익에도 반(反)하는 일이다. 만약 북한과 미국이 정전을 종전으로 바꾸고 평화조약을 맺고 국교정상화를 한다면 미국을 종북으로 몰고 반미(反美)를 하여야 하나?

모든 것이 새로운 생명(질서)을 위해 변화한다는 역경의 가르침을 유의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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