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서방측이 이란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를 밀어부치자 이란 측은 즉각 핵활동 재개 및 핵사찰 거부라는 강수로 맞대응하고 나섰다. 이란핵 문제는 이제 위기국면으로 들어선 셈이다. 핵보유국임을 선언한 북한과는 협상을 통한 해결이 모색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특히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농축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인 이란의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란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란핵 위기의 조성을 통해 미 부시행정부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이란정부, 안보리회부 결정되면 4일부터 핵사찰중지ㆍ핵활동재개 선언**
이란은 핵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된다면 잠정중단했던 핵활동을 재개하고 오는 4일부터 유엔의 핵시설 사찰을 전격 중지시킬 것이라고 이란 핵협상 대표인 알리 라리자니 이란 국가안보최고회의(SNSC) 의장이 1월 31일 말했다.
라리자니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란 핵문제가) 안보리에 회부될 경우 우리는 자발적으로 중단했던 모든 핵활동을 시작하고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ol)의 이행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가의정서란 이란의 핵 시설과 핵 시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불시사찰을 허락한 협정을 말한다.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도 이날 타보 음베키 남아공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란 핵문제가 안보리에 회부되면 이란은 국내법에 따라 IAEA의 불시사찰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이란의 ISNA통신이 보도했다.
중국, 러시아를 비롯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이 이란 핵문제의 안보리 회부에 합의한 직후 이란이 이같은 강경대응 방침을 밝힘에 따라 이란 핵문제는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IAEA는 오는 2-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특별이사회를 열어 이란 핵문제의 안보리 회부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은 지난달 31일 런던회의를 통해 이란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가 결정된다 해도 안보리에서의 공식논의는 IAEA의 관련보고서가 나오는 3월 이후에 시작하기로 합의했었다.
한편 IAEA는 특별이사회에 제출한 비밀보고서에서 이란이 아직 우라늄농축을 재개한 것은 아니지만 농축을 위한 준비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나탄즈에 있는 PEPP 농축시설에서 가스 처리 시스템에 대한 중요한 정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핵무기 개발에 최소 10년은 걸려"**
이처럼 이란핵 문제가 위기상황으로 치닫는 데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의 안보리 회부 움직임은 과잉 대응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선 이란이 우라늄농축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IAEA조차 아직 핵무기 개발의 구체적 증거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다 해도 앞으로 10년은 걸려야 한다는 게 서방측의 일반적인 평가다. 예컨대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지난해 9월 보고서를 통해 이란이 핵무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정보국의 싱크탱크인 옥스포트 조사집단의 전문 조사원인 프랭크 버나베이 박사도 이 추정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계산"이라며 "미 중앙정보국(CIA)도 이란이 핵무기를 만드는 데는 10년이 걸린다고 분석하고 있다"고 〈B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게다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에게는 평화 목적의 우라놈농축 및 핵연료재처리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이 그런 나라에 속한다. 이란도 NPT 가입국이며 자국의 우라늄 농축은 핵에너지 개발이라는 평화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1981년부터 97년까지 16년간 IAEA 사무총장을 지냈던 한스 블릭스 같은 이는 이란 핵문제와 관련한 그 동안의 협상을 보면 북한에 비해 `채찍'은 너무 많은 반면 '당근'은 너무 적었다면서 미국과 유럽의 안보리 회부 방침을 비판했다.
블릭스 전 사무총장은 지난달 31일 온라인매체 맥심스뉴스닷컴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북한처럼 "몰래 우라늄 농축을 하는 것으로 의심받을 뿐 아니라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나라와의 협상은 통상 "유엔 안보리 밖에서 제재 위협이 없이 이뤄지고" 있는 반면 핵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는 이란에 대해서만 안보리 회부를 추진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북한의 경우 "자국이 공격받지 않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으며, 미국ㆍ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의 외교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수많은 `당근'들이 북한에 주어졌다는 점을 이란이 모를 리 없을 것"이라며 "왜 이란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란은 팔레비 왕정시절인 지난 1974년 미국의 권유로 핵개발을 시작했으나 1979년 이슬람혁명과 함께 핵개발을 중단했다. 2002년 9월 러시아의 지원으로 브쉐르에 원자로 건설을 시작했으나 같은 해 10월 아라크와 나탄즈 등의 비밀 핵시설이 미국 첩보위성에 포착됨에 따라 핵무기 개발의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이란은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이른바 EU 3국의 중재로 2003년 11월 우라늄 농축 중단 및 IAEA 사찰 허용 등의 조치를 취하는 한편 궁극적 핵개발 중단에 따른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등 협상을 계속해 왔으나 미국측의 강경태도로 협상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지난해 8월, 강경파인 아흐마디네자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란은 2년반 이상 중단해 왔던 우라늄농축의 재개를 선언했고 이후 오늘의 위기국면에까지 이른 것이다.
***부시정부 네오콘, 올봄 이란 핵시설 공습 추진**
한편 미국 일각에서는 체니 등 부시행정부의 네오콘 일파가 이란의 강경정부 출현을 빌미로 올봄 안에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습을 강행할 것이라고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이라크전쟁의 교착 상태가 악화되면서 올 11월 공화당의 패배가 예상되자 또다른 전쟁을 일으켜 미 국민들을 공화당 기치 아래 뭉치게 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연말 독일의 <슈피겔> 등은 미국의 고위 관리가 유럽 및 터키 등을 방문해 이란 공습에 대한 협조를 부탁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Targeting Iran' 참조 //www.fpif.org/fpiftxt/3089)
미국이 이란을 새로운 공격대상으로 점찍은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세계 4위 석유대국이자 천연가스 매장량2위를 자랑하는 에너지대국 이란이 최근 들어 중국, 인도,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 에너지협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강의 군사력과 함께 석유 등 에너지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바탕으로 세계의 패권을 유지해온 미국으로서는 이란과 아시아대국들간의 에너지협력은 중대한 위험요소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핵개발을 빌미로 이란을 고립시키고, 나아가 위기국면을 조성함으로써 이란과 아시아 국가간의 에너지 협력을 차단하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섣불리 이란을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다. 10여년간의 유엔 경제제재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이라크와는 달리 이란은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내 권력장악과 세계패권 유지를 위해 미국의 네오콘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는 아무로 모를 일이다.
한편 이란과 러시아는 오는 16일 모스크바에서 이란이 필요로 하는 우라늄핵연료를 러시아 영토에서 농축하자는 내용의 타협안에 대해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이 협상 결과에 따라 이란 핵 사태의 전개 방향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는 아직 외교적 협상의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며 16일 협상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켜볼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