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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조원 국민연금기금의 주인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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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조원 국민연금기금의 주인을 찾습니다" [밥&돈·12] 국민연금에 눈독 들이는 경제부처, 가입자가 견제해야
이번 주 '밥&돈'의 주제는 '국민연금 기금'이다. 썩 즐겁지 않은 주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국민연금은 '그냥 뜯기는 돈'으로 여겨지는 탓이다.

그래서인지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고갈될 기금인데"하며 아예 관심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밥&돈' 필자 가운데 한 명인 오건호 박사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앞으로 있을 연금 제도 변화를 감안하면, 쉽사리 소진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 오히려 정부 예산의 2배가 넘는 규모에 달할 기금의 운용에 대해 시민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것이 오 박사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보다 부드럽게 전하기 위해 오 박사는 '국민연금 기금'을 의인화하여 글을 썼다. '국민연금 기금'이 스스로에 대해 소개하는 방식이다. 다음은 오 박사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나는 국민연금 기금이다. 얼마 전 200조 원을 넘었다. 내 몸의 변화에 나도 놀랍고 두렵다. 올해 당신네 정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친 금액이 163조 원이다. 난 이미 당신 정부보다 큰 거대기금이다.

국민연금 기금의 힘은 대통령보다 세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커서 2030년대엔 2000조 원이 넘을 예정이다. 정부 예산보다 2배나 크고, GDP의 절반을 넘는 규모를 말한다. 혹자는 어느 시점부터 연금지출이 늘어나 2060년에 내가 소진된다고 하지만, 앞으로도 여러 번 있을 연금제도 변화를 무시한 이러한 시나리오를 나는 믿지 않는다. 다만 확실할 것은, 내가 앞으로 수십년간 천문학적 기금으로 계속 커갈 것이라는 점이다.

내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가? 난 돈이다. 자본주의에서 기본수익을 찾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기금이다. 비록 지금은 내가 온순하지만,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당신 나라는 위험할 수 있다. 물론 나를 제대로 잡으면 당신은 대통령보다 큰 권력을 쥘 수 있다는 말도 된다.

당신은 현재 200조원의 국민연금 기금을 누가 운용하고 있는지 아는가? 대통령, 재경부, 국회 등 163조원 예산을 둘러싼 공공기관들에 대해선 빠삭한 당신이 왜 200 조 원, 미래 2000조 원에 대해선 이리도 무심한가.

아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정부가 갖다 쓰고 있을 것이다. 주식투자해서 손실도 입히고 어쩌면 정치자금으로 이용했을 지도 모른다"라고.

1998년까지 정부가 함부로 가져다 쓴 거 맞다. 총 46조원을 재정자금, 공공자금 이름으로 사용하고선 이자도 제대로 주지 않아 국민연금 불신을 낳은 바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1999년부터 이러한 일은 금지되어 있다. 정부가 임의로 국민연금 기금을 가져다 쓰는 것은 지금 불가능하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권을 바로 가입자 당신이 갖고 있다

그럼 지금 나를 책임지는 주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놀라지 마라. 가입자인 당신들이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 운용을 총괄하는 기구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위원회다. 여기서 한해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방안이 확정된다. 얼마를 주식에 투자할지, 해외에 배분할지, 모두가 위원회 권한이다. 한해가 마무리되면 제대로 기금이 계획대로 운용되었는지, 그 과정이 투명했는지도 위원회가 평가한다.

이 위원회는 21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원장은 보건복지부장관이지만 가입자 대표가 12인으로 과반수를 차지한다. 가입자의 보험료로 조성된 기금이기에 그 대표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국민연금 기금 운용권을 가진 자도, 그 책임을 져야할 자도 바로 당신 가입자들이다.

당신은 국민연금 기금 운용이 못마땅한가? 여전히 불신을 가지고 있는가?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당신의 대표자들이 기금을 운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정한다. 가입자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단 말인가? 아니다. 문제가 심각하다. 이제부터 진짜 당신에게 하고픈 말을 전하겠다. 가입자인 당신들이 기만당하고 있는 비밀을 알려주겠다.

난 당신들을 대표하는 12인의 실상을 보고해야 겠다. 이들은 당신의 대표자로 임명장을 받았지만, 사실 당신들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지역가입자 대표 6인을 살펴보자. 농어민 지역가입자를 대표해서 참여하는 자가 누구인가? 농어민이 가입해 있는 대중단체? 천만에. 농어민을 상대로 금융업을 벌이는 농협, 수협이 농어민 가입자 명찰을 달고 위원회에 참여한다. 이들은 엄밀히 가입자 대표가 아니다.

다른 지역가입자 대표로 음식업중앙회와 공인회계사회가 있다. 사실 음식업중앙회는 조직 특성 상 주관부처인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공인회계사도 개인적으로 지역가입자이긴 하지만, 특수전문가집단인 공인회계사회가 전체 지역가입자를 대표하는 건 좀 이상하다.

그나마 지역가입자를 대표한 조직으로 치면 참여연대와 소비자단체협의회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도 역시 내가 보기에 못마땅한 건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뒤에서 밝히겠다.

직장가입자 대표로 참여한 노사 6인을 보자. 경영계를 대표해서 전경련, 경총, 중기협 3인이, 노동계를 대표해서 한국노총 2인과 민주노총 1인이 참여한다. 양 노총이 직장가입자를 얼마나 대표하는 지 딴지를 걸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직장가입자 대표인 것은 맞다.

하지만 경영계는 좀 다르다. 이들은 연금보험료의 절반을 내는 기업이긴 해도, 나중에 연금을 받을 가입자는 아니다. 이들이 보험료를 내고 동시에 노후에 연금을 받을 당사자인 노동자 대표와 동수로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 형평성에 맞지 않는 듯 하다.

정리해 보자. 전체 21인 중 실제 가입자 대표성을 지닌 위워은 노동계 3인, 시민단체 2인 정도이다. 대신 정부관련 위원 9인, 대표성이 취약한 가입자위원 7인 등 16명이 가입자의 보험료를 쌓인 기금을 다루는 테이블을 채우고 있다.

이제 앞에서 내가 한 말을 정정하는 게 옳겠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위원회의 주인은 가입자라고? 이건 사실과 다르다. 정부정책을 관철시키려는 정부위원, 금융자본의 이해를 도모하는 시장주의자들, 그리고 연금에 아무런 생각도 없도 거수기 위원들이 국민연금 기금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200조 원 다루는 데 쏟는 총 시간은? 일년에 8시간!

그러면 과연 이들은 얼마나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관여하고 있을까? 놀라지 마라. 200조원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여기에 쏟는 시간은 일년에 총 8시간도 안된다. 분기에 한번씩 호텔 식당에서 2시간 남짓 조찬모임을 갖고 정부가 짜놓은 기금운용계획을 승인해주는 역할이 고작이니까. 비록 회의에서 몇마디 비판적 의견을 개진한다고는 하나, 노동계, 시민단체 위원들의 무기력과 미필적 동조도 가벼이 볼 사안은 아니다.

가입자인 당신, 이제 심각성을 알게 되었는가? 국민연금을 탈퇴하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한 당신은 국민연금과 함께 살 수 밖에 없다. 내가 주고 싶은 충고는 더 이상 불평만 하지 말고 제대로 나에게 신경 좀 써 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엉터리같은 국민연금 기금 운용체계를 접하고도 아직도 심드렁하니 말이다.

당신 아는가? 내가 왜 이토록 당신의 무심함에 애타하는 지. 내가 기다리는 님은 소식은 없고, 오히려 엉뚱한 놈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의 발걸음이 심상치 않다. 지난 7월 초 국민연금법이 개정되자마자 다음날 경제부처 책임자들이 국민연금기금 운용체계를 바꿔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달에 그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마련해서 오는 정기국회 때 일사천리로 처리할 모양이다. 무언가 오랫동안 준비되어 온 프로젝트가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국민연금 기금을 향한 경제부처의 치밀한 작전

이들의 이야기는 이렇다. "가입자 당신들, 지금까지 국민연금기금 운용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사실 기금을 다룰 실력이 없지 않은가? 이제 자리를 비켜 달라. 우리가 직접 나서 챙기겠다. 자산시장 운용이 무언지도 모르는 보건복지부도 이번 기회에 빠져라. 돈을 만질 자는 우리 경제부처 뿐이다."

최근 정부부처 내에서 국민연금 기금 운용권을 둘러싼 복지부와 경제부처 사이 전투가 경제부처의 승리로 마무리된 듯 하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위원회에서 가입자 구성을 과반수 미만으로 줄이고, 위원회 관할을 경제부처가 사실상 지배하는 국무총리실로 옮긴다는 내용을 담은 법개정안이 마련될 예정이다.

난 다시 걱정이 앞선다. 지난 1998년까지 기금운용위원장은 경제기획원장관이었다. 이들은 공공자금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연금기금을 함부로 갖다 써 총 11조 원의 기회손실을 초래한 바 있다.

지금은 법으로 공공자금 강제예탁이 금지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주식시장 육성, 경기활성화, 공공재정 확보, 외환시장 개입 등 거시경제를 관리해야 하는 경제부처에 200조원을 맡기는 게 꺼림직하다. 가입자의 이익에 반해 기금을 운용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난 재경부 관료들을 믿지 못한다. 환율방어라는 명목으로 과도하게 달러를 사들여놓고선 이제는 남는 달러를 해외에서 운용하겠다며 한국투자공사를 만들어 자리를 나눠가지는 사람들, 금융위기 시기 외환은행을 '이상하게' 팔아치우고도 승승장구하는 사람들, 삼성이라면 법(금산법)까지 바꿔 불법을 합법으로 만드는 사람들, 외국자본이 오면 무조건 나라가 행복해 질거라 믿는 사람들, 아 이들이 나를 책임지겠다니...정말 '노 땡큐'다.

내가 하소연할 데는 어딘가? 한나라당은 국민연금기금이 정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며 그럴듯하게 비판은 하지만, 정적 속셈은 아예 국민연금기금을 '민간회사 성격의 투자전문회사'에 맡기자는 것이다. 금융자본의 계산에는 딱 맞아 떨어지겠지만, 사적기금과 공적기금을 구별하지 않는 이상한 논리다.

국민연금 기금은 장난거리가 아니다

내가 믿을 건 가입자인 당신들 뿐이다. 나를 지켜달라. 지금까지 무능하고 무책임하여 경제부처에 핑계꺼리를 제공한 당신이지만, 그래도 나의 주인이지 않은가.

경제부처의 과욕이 벌써 두렵다. 이후 기금 운용과정에서 문제라도 생긴다면 정부가 이 정치적 리스크를 감내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이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민간시장이 전면에 나서는 것도 적절치 않다. 이들이 공적기금인 국민연금기금을 얼마나 책임있게 관리할지 믿을 수 없다.

가입자단체인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국가독립기구를 만들고 여기서 가입자들이 중심이 되어 국민연금기금을 운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난 이 방안도 썩 내키지 않는다.

위원회가 정부와 시장으로부터 각각 독립성을 가질 수 있어 모양은 이상적이나 실제 작동할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가입자를 대표해서 일할 수 있는 기금운용 전문가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주관하겠다고 만용을 부리는 격이다. 난 장난거리가 아니다.

가입자 당신, 국민연금 기금의 주인이 되어달라

지금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체계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기금운용권을 총리실로 이관하면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악화될 뿐이다. 해법은 지금까지 들러리로 전락했던 가입자들이 국민연금기금의 실제 주인으로 제대로 서도록 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가입자들은 이제부터라도 나를 책임질 수 있도록 능력을 길러야 한다. 당신을 대변해서 일할 수 있는 자산운용가들을 길러야 한다.

당신들이 자기 발로 설 수 있을 때까지, 국민연금기금 운용체계는 현행 방식을 유지해도 된다. 대신 차기정권 5년 기간에 가입자들이 기금운용능력을 키우는 훈련프로그램을 정부에게 요구하라. 국민연금기금의 공공적 가치를 존중하는 젊은 금융전문가를 국민연금기금 장학생으로 선정하여 육성하라.

앞으로 한달이면 나의 운명이 거의 결정될 듯 하다. 한번 정해지면 나중에 바꾸기 어려운 것이 지배구조 문제다. 경제부처와 복지부는 제발 밥그룻 다툼에서 벗어나 가입자를 제대로 섬겨야 한다. 그리고 가입자 당신들, 이제 나의 주인이 되어 달라. 나를 구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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