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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세계화'…손 놓은 정부, 싸우는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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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위험의 세계화'…손 놓은 정부, 싸우는 시민" [인터뷰] <닥쳐라, 세계화!> 저자 엄기호 씨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호떡이나 붕어빵을 파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게다. 하지만 스시(초밥) 가게는 곳곳에 널려 있다. 호떡집과 달리, 스시 가게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고급 음식점으로 통한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스시 레스토랑 '노부'에는 귀네스 펠트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유명 배우들이 자주 드나든다.

도쿄의 '길거리 음식'을 뉴욕에 전달한 '세계화'의 힘

하지만 '스시' 역시 원래는 '호떡'과 다를 바 없는 '길거리 음식'이었다. 에도 막부 시대 말기에 등장한 '스시'는 오랫동안 서민들의 먹을거리였다. 20세기 초반에는 "위생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의 규제를 받기도 했다.

게다를 신고 뛰어다니던 하급 사무라이들의 요깃거리가 온몸에 명품을 휘두른 헐리우드 스타의 입에 들어가게 된 것은 지난 세기 내내 진행된 '세계화'의 힘이다. 화물 운송 체계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신선한 생선을 세계 어느 곳으로든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인 지 이미 오래됐다. 뉴욕 맨해튼 거리의 유행이 서울 청담동으로, 도쿄 시부야로 번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쉽게 상하는 날 생선으로 만든 음식이 전 세계 부유층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만큼 이른바 '세계화'가 낳은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도 드물다.

"날 생선만 세계화된 게 아니다"…"광우병, 조류독감도 '세계화'"

그런데 여기서 의문. "미처 상하기 전에 세계 곳곳으로 퍼 나를 수 있는 게 꼭 생선만일까?"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질병의 세계화' 역시 '스시의 세계화' 만큼이나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질병의 세계화'가 낳을 결과는 '스시의 세계화'와 비교할 수 없다.

지구 전체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는 '세계화'가 아니었다면, 한국인들이 광우병이나 조류독감을 걱정할 일도 없었다.

1979년 집권한 영국 대처 정부의 농·축산업 관련 규제 완화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광우병 문제는 지난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한국 사회의 쟁점이 됐다. 국민의 반발을 무릅쓰고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수입하려는 정부는 "쇠고기 문제가 한미 FTA 체결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라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한미 FTA로 대표되는 '경제활동의 세계화' 흐름에 편승하려는 노력이, 국민 건강에 대한 배려보다 우위에 놓인 셈.

결국, 거리에서 외치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 구호는 '세계화'에 대한 입장에 대한 물음과 떼놓을 수 없다.

거리에서 건진 대답 "'위험의 세계화'를 멈춰라"
▲ <닥쳐라, 세계화!> ⓒ프레시안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기록이 있다.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권력과 맞싸우는 대중 속에서 자연스레 피어난 질문에 대해 대중이 스스로 찾아낸 답은 책의 제목이 됐다. <닥쳐라, 세계화!>.

이 책을 쓴 엄기호 씨는 '국제연대 코디네이터'다. 그게 뭐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엄 씨가 만들어 낸 직업이니까. 그는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가가 된 누나를 보며 사춘기를 보냈다. 대학에 입학하고서, 그가 빈곤과 소외의 문제에 관심을 쏟은 것은 그래서 자연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운동권 모범생'의 진로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노동과 통일에 대한 구호가 가득한 대학에서, 그는 남들이 눈을 돌리지 않는 작은 틈새를 유심히 살피곤 했다. 민중 신학, 인권, 문화, 교육 등에 대한 관심이 이런 틈새에서 피어났다. 1990년대 중·후반에 대학에 입학한 이들에게는 썩 낯설지 않은 주제다. 하지만 그가 학부 시절을 보낸 1990년대 초의 대학가에는 이런 관심을 둔 이가 많지 않았다.

대학과 대학원을 마친 뒤에도, 그는 여느 '운동권'과는 다른 진로를 택했다. 청소년의 성(性)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기술지(<포르노, All Boys Do It>)를 작성했고, 대안교육 현장을 찾아다녔다.

"세계 어디서나 비명이 울렸다"

이런 그가 '국제연대 코디네이터'라는 낯선 직업에 들어선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어수선하던 무렵 한국을 방문한 국제가톨릭학생운동(IMCS) 아시아·태평양 사무국 소속 활동가들을 안내하게 된 것.

영어도 서툴고, 나라밖 경험도 거의 없었던 그에게 IMCS 활동가들이 전한 아시아 가난한 나라 빈민들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들이댄 그에게 IMCS 활동가들이 말했다. "IMCS 아시아·태평양 사무국에 일자리가 하나 있는데…." 필리핀 마닐라에서 그가 일할 의향이 있는지 떠보는 말이다.

"그때 '하늘'인지 '마음' 속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소리가 들렸다"라고 그는 토로했다. 그 소리를 따르기로 한 뒤, 그의 삶의 무대는 지구 전체가 됐다.

아프리카의 빈민가부터 태국의 산티아속 불교 공동체까지, 유엔 인권위원회(현 유엔 인권이사회)부터 세계사회포럼까지, 2006년 프랑스에서 100만 명이 참가한 청년시위 반대 시위부터 다국적 제약회사의 홍보부스를 급습한 에이즈 감염인의 시위까지.

그는 쉴 새 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비명이 울리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가 있는 현장에는 늘 언어가 넘쳤다. 절규와 비명, 구호와 함성, 탄식과 고백, 논쟁과 설득…. 어디서나 터져 나오는 언어의 홍수는 그에게도 '자신의 언어'를 만들도록 강제했다. 그리고 언어의 홍수 속에서 헤엄치며 건져 올린 언어로 지구 곳곳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기록한 게 <닥쳐라, 세계화!>다.

'세계화의 그늘'에 놓인 한국
▲ 엄기호 씨. ⓒ프레시안

그는 무척 수다스럽다. 논쟁도 무척 즐긴다. 이런 그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학자와 활동가들의 논쟁을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그리고 그가 끼어든 숱한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나왔던 말이 '신자유주의'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공공재가 사유화되고,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농민들이 밭을 떠나게 됐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나 나왔다.

그의 경험에 비춰 봐도 맞는 말이다. 굳이 나라밖 경험까지 인용할 필요도 없다. '세계화'를 내세웠던 김영삼 정부 말기, 한국을 휩쓸었던 IMF 구제금융 사태가 낳은 결과는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그리고 최근 광우병 위험 쇠고기와 조류 독감에 대한 공포를 통해 한국인들은 다시 '세계화'의 그늘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그는 질문을 던진다. "너도나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폐해를 말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는 사람일수록, '대안이 없다'라는 절망감도 깊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과연 절망뿐일까?"

과격하지만, 패배주의로 가득 찬 일부 좌파…"훈수꾼은 대안을 찾을 수 없다"

이런 질문에 대해 그는 "그렇지 않다"라고 자답한다. 이유는 이렇다.

"흔히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가장 핵심에는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는 주장이 있다고들 한다. 공식적으로는 신념에 가득 차서 '이것이 대안이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조차 돌아서서는 '대안은 없어'하고 중얼거린다.

그래서 많은 좌파들, 특히 지식인들이 가장 과격한 언어로, 그러나 패배주의에 가득 찬 태도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와 지역·시민 사회로부터 지금까지 관리되고 통제되기만 했던 사람들이 세계화의 바닥에서부터 직접 나서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싸움을 하며 희망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에이즈에 걸려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당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까지 농노이기만 했던 사람들이 싸우며 희망을 만드는 이야기다.

도저히 싸움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그렇지만 분명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세상은 여전히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고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조차 활동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들의 신념을 엄격하게 실천하는 대안마을의 사람들에게서 삶의 가능성에 대한 강렬한 영감을 받았다. 세계는 냉소와 패배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여전히 활동이 가능하다는 그 가능성을 그들은 보여주었다. 대안은 팔짱 끼고 멀찍이 물러나 관망하거나 훈수 두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순과 투쟁이 있는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보인다."


"운동권? '비장미(悲壯美)' 좋아하다 망했다"

'영감'은 <닥쳐라, 세계화!>와 저자 엄기호 씨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어다. 또 "냉소와 패배로 가득 찬" 사람들에 대한 반감 역시 마찬가지다.

책이 나오고 나서, 저자 엄기호 씨는 기자와 여러 번 대화를 나눴다. 그때마다, 그는 "운동권은 '비장미' 좋아하다 망했다"라고 말하곤 했다. "예정된 패배를 미화하는 정서, 사실 퇴폐적 낭만주의 아니냐"라는 말도 종종 곁들였다.

머릿속에 있는 도식에 현실을 대입하여 세상을 이해하는 이들, 이런 이들에게는 모든 게 '구조적인 문제'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늘 견고하다. 물론 견고한 구조는 모순을 품고 있지만, 모순이 언제 폭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구조적 모순에 맞서는 싸움은 옳은 일이지만, 대개는 패배가 예정돼 있다.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데, 비장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때로 과격한 말을 내뱉지만, 내면에는 깊은 절망감이 도사리고 있다. 하긴, 독일 철학자 니체는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다"라고 했다.

절망에서 비롯된 과격한 몸짓은 바닷물로 갈증을 달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저자는 "모델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라고 말한다. 논리적으로 완결된 모델을 갖춘 대안에 매달리는 한, 절망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절망을 땔감으로 삼은 운동은 얼핏 멋져 보이지만, 대개는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는 이야기다.

"필요한 것은, '모델'이 아니라 '영감'이다"

배우고 따라야 할 모델이 없다면, 무엇을 길잡이로 삼아 움직여야 하나? 정답은 없다. 다만,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낚아 올린 '영감'을 존중할 따름이다.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영감을 쫓으며, 길을 내는 수밖에 없다.

이런 '영감'을 던져준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인 '달릿(dalit)'들이 2004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에서 벌인 작은 실천도 그 중 하나다. 다음은 이 책에서 이런 실천을 다룬 부분이다.

"'달릿과 세계화'에 관한 워크숍이 끝나자마자 달릿들은 콘퍼런스 참석자들의 주위로 몰려가 서로 손을 맞잡고 빙 둘러싸 버렸다.

단상에서 달릿과 세계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견해를 밝힌 참석자들 그 누구도 어떻게든 이 인도의 '불가촉천민'들과 '접촉'하지 않고서는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때 목청 높여 인권과 반세계화를 부르짖었던 인도의 힌두 상층 카스트들이 경험한 것은, 자신들의 해방담론에 대한 반성이었다. 달릿들은 자신들의 해방을 먼 훗날에 성취되어야 할 일로 미루지 않고 그 자리에서 실천했다.


"잔치가 끝나도, 꿈은 현실로 태어난다"

물론 포럼이 끝나면 잔치는 끝난다. 달릿들은 자신들이 빙 둘러싼 그 사람들에 의해 자신들이 포위당해 있는 공간으로 돌아간다. 히즈라(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성전환을 통해 여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인도 사회에서 가리키는 말)들도 여전히 하루 밥벌이를 위해 북을 두드리고 웃음을 팔면서 무시당하고 착취당하는 곳으로 돌아간다. 아프리카 주민들 역시 언제 불도저로 깔아뭉개어질지 모르는 그들의 오두막 마을로 돌아간다. 그래서 그들이 체험하고 생산한 해방은, 연대는, 코뮌은 하룻밤의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억압과 착취의 견고함과 지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것은 현실이고, 저것은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프레이리가 말한 것처럼 패배주의자들이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잠시라도 경험하고 만들어졌던 그것 역시 현실이다. 파리코뮌은 겨우 78일 지속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현실로 경험되며 힘이 된다. 한국의 해방 광주도 겨우 일주일 지속되었지만, 그 힘은 10년이고 20년이고 흘러서 마침내 87년을 만들어냈고, 아직도 현실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입으로만 인권을 이야기하던 이들에게 '불가촉천민'들과 '접촉'한 경험은 많은 영감을 주는 것이었을 게다. 그리고 이런 영감에서 비롯된 실천들이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구조적 현실을 간과하지 않되, 사로잡히지도 않는…"

그런데 다시 의문이 든다. 너무 작은 이야기들만 강조하는 것 아닐까? 이를테면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수입하려는 정부의 태도에는 대통령 개인의 기질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저 '영감'만 쫓는 실천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

저자 역시 동의한다.

"물론 과장할 생각은 없다. 미시 수준에서의 대안적 실천을 거시적 수준에서의 대안적 구조로 이해하는 것은 구조를 보지 못하는 한, 큰 오류를 범할 것이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해방신학자 정승모 교수 역시 이것을 '미시적인 것에 거시적인 것이 있고, 거시적인 것에 미시적인 것이 있지만, 미시적인 것이 거시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최근 미시적인 대안적 실천을 거시적인 대안적 구조로 치환하는 몇몇 입장들에 우려를 나타냈다. 마치 대안학교가 공교육을 대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국, 삶의 다양한 현장에서 불거지는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도 국가권력과 자본이 뒤엉켜 만들어낸 구조의 문제를 아예 외면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해 "간과하지도 않되, 사로잡히지도 않는" 태도를 취할 것을 주문한다. "모델이 아니라 영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모든 것을 구조적인 문제로만 이해하는 일부 지식인들,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억압에 맞서기를 주저하는 일부 활동가들을 겨냥한 일종의 '막대 구부리기'의 성격도 띠고 있는 셈이다. 한쪽으로 너무 휜 막대를 바로 잡기 위해 반대편으로 구부리는 작업 말이다.

386과 10대, "정부는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는 생각에선 닮은꼴

이런 '막대 구부리기'는 최근의 한국 상황에 비춰볼 때 더욱 빛난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을 막기 위한 촛불 집회는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전통적인 '운동권'들이 주도하지 않았다. 10대 청소년들이 주도한 집회였다.

이들은 최루탄 속에서 단련된 386세대와 다르다. 그래서 이들은 국가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경험이 적다.

하지만 이들 역시 "정부가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는 386세대와 마찬가지다. 386세대는 1980년 5월 광주의 경험을 통해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오히려 시민을 학살했다는 것.

그리고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10대 청소년들은 광우병 위험 물질이 포함된 음식을 시민에게 억지로 먹이려는 정부를 보며,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

"국가의 기본 역할은 '시민 안전 보호'. 그러나 이제는…"

저자 엄기호 씨는 "에이즈, 인간 광우병, 조류 독감 등의 지구적 확산은 국민국가가 더 이상 시민의 안전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른바 '세계화'라고 불리는 흐름 속에서 국민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이와 함께 근대적인 국민국가의 존재 근거 역시 흔들리고 있다. 국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은 '시민의 안전 보호'다. 이는 국민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종의 합의다. 그런데 이런 합의가 깨지고 있다. '세계화'라는 명분 앞에서 국가가 기본적인 역할조차 내팽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이 생산지에서 소비되던 과거와 달리, 지구 전체로 전달되면서 질병도 함께 세계화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로 인해 이익을 누리는 집단을 대변하는 각국 정부는 이런 위험 앞에서 속수무책이다"라고 덧붙였다.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는 '세계화'를 위해서라면 '시민의 안전 보호'라는 최소 역할도 포기하는 정부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답은 모호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시민의 안전을 포기한 정부에 맞선 싸움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인간 광우병, 조류 독감이 확산하는 속도에 못지않게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 역시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닥쳐라, 세계화!>는 현재 진행 중인 이런 싸움들에 대한 보고서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이렇게 끝난다.

"광우병, 조류독감만 전염되나? 싸움도 전염된다!"

"남은 것은 가장 과격한 언어를 가장 패배주의적인 태도로 쏟아내는 자위행위밖에는 없는 것인가? 이 책에서 들려준 이야기들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그 '꿈틀 한 번'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우리의 싸움은 언제나 포위된, 실패가 예정된 것에 지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책에서 그려낸 것처럼, 세계를 돌아다니며 만난 세계화에 맞선 쉼 없는 싸움들은 패배주의가 아니라 활기와 영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것도 세계화의 가장 밑바닥에서, 세계화의 경계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도저히 싸움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의 공간에서 에너지로 가득 찬 활동들이 꿈틀꿈틀 일어나고 있다. 어른이든 아이든 반세계화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이들을 보며 반성하고 영감을 얻고 다시 움직인다.

때로는 이들의 비참한 현실에, 때로는 이들의 싸움이 던져주는 영감과 활기에, 또 때로는 이들의 엄격한 실천을 보면서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 싸움이 전염되고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너' 없는 '나'로 굴러가라는 명령에 맞서, 세계의 투쟁에 '로그인'하라"

…예전의 근대국가 체제가 나를 '무리 속의 우리'로 만들기 위해 집단 훈육했다면 제국은, 세계화는, 신자유주의는 자기계발을 통해 자기경영하는 주체가 되어 우리 모두가 '너' 없는 '나'로 굴러가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에 맞서려면 먼저 세계와 고립되어 텅 빈 성채에 불과한 '나'라는 환상에 갇혀 있지 말고 세계의 투쟁에 '로그인'하라. 그곳에 영감과, 에너지와, 활기가 가득 찬 세계화의 구멍들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계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파열음을 내며 찢어지고 있다. 대안은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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