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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에 빠진 국민연금제도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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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궁에 빠진 국민연금제도 개혁 [창비주간논평] 새로운 개혁의 방향을 생각한다
2007년 들어 국민연금 기금 총액이 200조 원을 돌파했다. 현재의 인구구조상 향후 국민연금 적립금은 빠르게 늘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 출산율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대신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해 연금재정이 악화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법으로 정해진 연금지급액이 보험료와 운용수익보다 훨씬 많게 설계된 국민연금의 특성상 일정 시점에서 적립금이 고갈될 수밖에 없다.
  
  2006년 10월말 기준으로 국민연금 기금적립금이 약 185조 원인데,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된 1988년 이후 국민연금에 가입하여 지금까지 보험료를 낸 가입자들이 법적으로 청구할 수 있는 연금수급 총액이 약 390조 원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약 200조의 잠재부채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의 잠재부채가 하루에 800억 원, 1년 동안 30조 원씩 누적되고 있다.
  
  곳간은 바닥나는데 손은 늘어나고
  
  현시점에서는 보험료 납부자에 비해 연금수령자 수가 많지 않아 국민연금 재정이 흑자이지만, 2008년 이후에는 1988년에 가입하여 보험료를 내온 사람들이 연금수령자로 전환되므로 연금지급액이 늘기 시작한다. 2047년이면 국민연금의 기금적립금이 고갈된다는 전망도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는 이미 2003년 10월 16대 국회에서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 방안을 중심으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이 법안은 3년 이상 표류하다가 마침내 2006년 1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통과되었다. 당시 개정법안의 핵심내용은 이렇다. 개정 전에는 평균소득자가 40년간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납입하면 퇴직 전 소득의 60%(60%의 소득대체율)를 받도록 되어 있었지만, 법개정을 통해 급여수준을 2008년부터 50%로 낮추는 대신 연금보험요율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0.39%포인트씩 올려 12.9%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2006년 말 국민연금 개혁안에는 연금보험요율과 급여수준의 조정보다 훨씬 이견이 심했던 기초노령연금법 제정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초노령연금법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중심이 되어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안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은 각각 65세 이상 노인의 80%, 100%를 대상으로, 국민연금가입자 평균소득의 5%(9%)에서 시작하여 15%(20%)로 상향조정하도록 했다. 이에 비해 정부와 여당은 재정 부담과 예산 제약을 이유로 지급대상을 65세 이상 노인의 60%로 한정함과 동시에 국민연금가입자 평균소득의 5%를 2008년부터 지급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본말이 전도된 국민연금 개혁 해법
  
  그 후 사학법 개정 논란 등으로 인해 이 법안의 본회의 상정이 계속 지연되었다가 2007년 4월 2일에야 드디어 본회에 상정되었다. 그러나 그날 본회의에서는 정부 및 여당 안만 상정된 것이 아니라 급여율 40%, 보험요율 9%의 재정안정화 방안과 5~10%의 기초연금안인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의 공동발의안도 동시에 상정되었다. 본회의에서의 표결 결과 정부 및 여당 안이 부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한나라당의 공동발의안도 동시에 부결되었다. 대신 정부가 따로 제출한 5%의 기초노령연금법안이 한나라당의 동의로 통과되는 예기치 못한 엉뚱한 사태가 발생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노인 표를 의식해 기초노령연금법을 편법으로 통과시킴으로써 국민연금법 개정지형이 완전히 흐트러지고 만 것이다.
  
  본회의를 통과한 기초노령연금법은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 방안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에 큰 부담이 되는 기초노령연금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국민연금법 개정 취지와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이 법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별 이견과 저항이 없었을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국민연금개정안과 기초노령연금안에 대해 새로운 합의점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국민연금 보험요율을 현행 9%대로 그대로 유지하고 급여율(소득대체율)은 40%로 낮추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 결국 이 안은 보험료 부담을 종전대로 유지하는 대신 급여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사실 이 안은 2006년말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이 공동으로 수정하여 합의한 것인데,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민주노동당을 배제하고 열린우리당과 전격 합의하여 성사됐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기초노령연금안에 대해서도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60%를 대상으로 2008년부터 급여율 5%의 기초노령연금을 부과하고 2028년에는 급여율을 10%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채택하기로 했다. 이로써 국민연금개혁이 다시 급진전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합의안도 시민단체, 언론 등으로부터 졸속이라는 비난에 직면해 또다시 결렬됨으로써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3, 4년을 끌던 국민연금개혁이 또다시 미궁으로 빠져들고 만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연금다워야
  
  현시점에서 언제 다시 국민연금 개혁안이 상임위에 상정되고 본회의에서 통과될지는 오리무중이다. 다만 지난 12월말부터 올해 4월까지 이어진 국민연금 개혁 해프닝 과정에서 향후 국민연금개혁이 어떤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지는 분명해졌다고 판단된다.
  
  첫째, 명실상부한 공적 연금제도로서 국민연금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수준과 자격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 문제에만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 보험요율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재정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급여삭감밖에 없는데, 급여수준이 지나치게 낮아질 경우 노후생활 보장제도로서 국민연금은 제도의 존립근거마저 상실하게 된다. 국민연금의 신뢰도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둘째, 기초노령연금제도의 실시에 걸맞게 재정확충 방안을 좀더 면밀하고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감세를 주장하면서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기초노령연금제를 실시하자고 제안하면 과연 누가 이를 신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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