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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경제 빅뱅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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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경제 빅뱅이 올 것인가? [우석훈 칼럼]<20>V자형,U자형,L자형,역N자형…한국경제는 어디로?
한국 경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본다면, 두 개의 큰 위기가 있었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1979년과 1980년 사이, 이 80년 공황에서 박정희가 사망했고, 전두환이 들어왔다. 1997년과 1998년 사이의 IMF 경제 위기 때에는, 최초로 정권이 바뀌었다. 딱 이 두 번이 0% 혹은 마이너스의 성장을 보였던 시절이다. 그만큼 한국인에게는 마이너스 성장이 그렇게 공포스럽다는 말이다. 워낙 박정희 시절부터 '고성장'과 '수출'의 신화를 일종의 통치 이데올로기처럼 사용했던 나라라서 그런지,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숫자 자체는 충격적이다. 그 포비아적인 반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한국 경제 외부가 위기였는데도 한국 내부는 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두 번이다. 1974년 1차 석유파동 때에, 한국 경제는 그런대로 잘 버텼다. 물론 1977년의 2차 석유파동 때에는 집값 상승과 물가상승 그리고 최초로 한국이 경험했던 실업난과 겹쳐지면서 결국 '유신경제'가 종료되었다. 또 한 번 잘 버틴 순간은, 1990년이다. 이 해는 세계경제가 0% 성장을 보인 위기의 해였다. 동구경제가 붕괴하면서 미국의 적자폭이 늘어났고, 세계적 위기였지만 한국은 전혀 그런 증상을 느끼지 않고 수출에 매진했던 해이다.

2009년은 세계 경제의 파동과 한국 경제의 파동이 제대로 겹치는 해이고, 지금 정부의 대응능력 정도를 봐서는, 미증유의 경제 파동을 겪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일단, 지금부터 내년 1분기까지 한국 경제는 실질적으로 마이너스 분기를 10년 만에 다시 경험하게 되는 셈인데, 그 사회적 충격 자체가 만만치 않을 듯싶다.

정부는 지금부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경기부양책이 내년 2분기 이후로 효과를 거둘 것이므로, 이미 예견되는 1분기의 마이너스 성장에도 불구하고, 2분기와 3분기를 지나면서 "모든 것은 좋아질 것이다"라고 전망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잠자리는 좀 편할지는 모르지만, 그 말이 그렇게 곧이들리지는 않는다.

일단, 미국의 금융위기가 아직 다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모든 위기는 끝났는가?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아직 우리는 빙산의 한 모습만을 겨우 경험한 셈이다. 수 년 전부터 예견된 서브 프라임 모기지는 이미 모습을 드러냈지만, 프라임 모기지는 아직 채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여기에 경제학자들이 상상만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한, 오피스 모기지도 잔뜩 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위기이다. 아니 오피스도? 버블을 키울대로 키운 미국 부동산 버블 국면에서 사무실도 엄청나게 지었는데, 실물 위기가 오면서 그 사무실들도 대거 부실매물로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종종 있었다.

오바마의 재정정책이 오랫동안 보수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고속도로의 보수 그리고 누구나 지적하고 있던 낡은 학교시설에 대한 보수 등 '유지보수' 부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오피스와 주택 그리고 공단지역 등 이명박 정부가 사랑하는 그 SOC와 겹치지 않게 되어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집과 사무실은, 건드리면 터지는 폭탄과 같다. 그걸 피해서 재정정책을 구상하려다보니 고속도로 보수와 학교시설물 보수라는 카드가 나온 것이다. "미국도 재정정책을"이라고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용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여기에 중국 위기가 수출중심형 한국 경제에는 대형 폭탄으로 기다리고 있다.

한국 자체의 위기를 빼고도 정부의 2분기 이후로는 잘 될 것이라는 말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미국이 다행스럽게 프라임 모기지와 오피스 모기지 등의 폭탄 제거에 성공하고, 또 성공스럽게 실물경제의 지나친 위축을 제어하고, 그리고 나서 중국과 유럽 등 바짝 얼어붙기 시작한 외부 시장들이 성공적으로 재가동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물론 그리고도 한국이 또 잘 해야, 2분기 혹은 3분기 이후의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의 기적적인 반등이 가능하다. 나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외부 위기와 내부 위기가 결합된, 복합 위기이다. 여기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는 '단절적 현상'이 벌어진다. 어쨌든 자본주의에서 공황이라는 것은 과잉투자이든, 과잉생산이든 혹은 요소가격 폭등이든, 내부에 누적된 모순들을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명박 정부는 이런 위기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방법과는 대체적으로 반대로 가고 있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판단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지만, 어쨌든 "산 입에 거미줄 치랴"라는 속담이 실감나는 2009년이 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런 단절적 상황에서는 시계열에 따른 기계적 분석보다는 패턴 분석 같은 것이 더 효과적이기는 한다.

흔히 경제위기를 묘사할 때, V자형, U자형 그리고 L자형과 같은 패턴들을 제시한다.

V자형은 한국에 있던 두 번의 위기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bound-up)하는 패턴이 이것이다. 98년도의 기억을 회상해보면, 대단히 급속하게 위기가 왔지만, 그 위기 회복의 속도도 빨랐다. 정부가 얘기하는 현 경제위기의 패턴은 V자형이라는 시나리오 위에 서 있다. 내년 1분기까지 매우 빠르게 내려갔다가, 2분기부터 다시 올라올 것이라는 게 정부 해석이다. 물론,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열어놓고 싶다.

U자형은 천천히 내려갔다가 천천히 올라오는 것을 얘기하는데, 1929년의 대공황이 그랬고, 그 저점은 아주 길고 고통스럽다. 오죽 힘들었으면, 팽창 일변도의 자본주의가 '수정 자본주의'라는 케인즈 방식을 채택했었겠는가? 지금의 한국 경제의 위기가 U자형일까? 이 경우의 저점은 짧더라도 2~3년은 갈 것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현 정부 내에서 좋은 날 보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L자형은 90년대의 일본 버블공황에서부터 나온 이름이다. 일단 내려가면, 10년 정도 아주 장기에 걸쳐서 구조조정을 하고,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완료되었을 때에나 비로소 정상 패턴으로 돌아오는 경우이다. 일본은 '일본의 큰 곳간'이라고 불리던 대장성, 즉 지금의 기획재정부에 해당하는 부처를 아예 없애버렸다. 그만큼 고통스러웠다고 할 수 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이 원래 이 L자형 경제공황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이게 끝인가? 그것도 아니다.

역 N자형이라고 불리는, 계속해서 나빠지기만 하는 경우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아르헨티나가 1945년과 1950년 사이, 세계 5대 강국이었다는 점을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나빠지기만 하고, 약간 좋아지려고 하다가, 다시 더 큰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오랫동안 흔들리고 열악해지는 패턴을, 역 N자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 V자형 경제위기를 상상하고 있지만, U자형, L자형 혹은 역 N자형, 이런 것들도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들이다. 역 N자형 패턴에 걸릴 위험도 상당히 높다.

지금 정부는 토건 중심으로 지역경제의 회생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불행히도 한국의 건설사업에서 50~60%는 토지보상비로 풀린다. 즉 대부분의 지방 토호들의 손에 바로 이 돈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반값으로 떨어진 강남의 부동산으로 바로 이 돈을 보낸다. 유사한 일은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한 번 벌어진 적이 있는데, 2009년이라는 공간에서, 한국에서 유일하게 돈을 가지고 있는 집단은, 정부가 신나게 풀어준 보상비를 손에 챙겨든 지방토호들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강남이 부동산이 떨어진 그 시점에서, 이들은 더 좋다. IMF 때 수도권의 경제 엘리트들이 "지금 이대로"를 외쳤다면, 2009년에는 지방토호들이 "지금 이대로"를 외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돈은 그대로 서울로 U턴 한다.

게다가 현실적으로는 워낙 정부가 개별 사업을 조단위의 큰 덩치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이걸 수주할 건설사도 콘소시엄 등의 형태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지배기업은 서울의 중앙건설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대한 인건비는 낮춘 상태에서, 영업 이익도 서울로 다시 송금된다. 결국 지역에 순수 경기진작 효과로 남을 수 있는 돈은, 잘 해야 10% 안팎인 셈이다. 여기에 전후방연관효과를 따지고, 케인즈 승수효과를 따져봐야, 실제 지역경제에서 경기 진작 효과는 10% 미만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상황은, '콘도법'을 중심으로 콘도와 골프장 그리고 테마파크로 마지막 회생을 시도했던 90년대 일본의 경험과 판에 박힐 정도로 흡사하다. 이대로 가면 일본의 L자형 경제위기가 된다. 그런데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당시 일본 제조업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였고,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튼튼한 제조업 부문의 중소기업들이 버티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본은 L자형 커브 속에서도 10년을 버티고, 그 지독한 불황 속에서도 결국은 걸어나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솔직히 한국이 일본의 90년대만큼의 제조업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튼튼한 중소기업망을 가지고 있을까? 게다가 일본에는 지금 한국에 있는 대형할인매장도 없었다. 그러니, 10년 혹은 그 이상의 '역 산업화(dis-industrialization)'의 공포가 기다리고 있는 역 N자형 위기패턴이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2009년, 건국 이후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유의 '경제 빅뱅'이 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지 않을 수 없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개인이나 국가나, 어떠한 시도도 시장에서 먹히지 않는, 시장 그 자체의 후퇴, 산업화 그 자체의 후퇴의 시발점이 되는 '경제 빅뱅'이 내년 3분기 정도에, 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그런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경제빅뱅 이후의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계속해서 얘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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