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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받고 끝? 대학에 집단소송을 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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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돈만 받고 끝? 대학에 집단소송을 걸자" [벼랑 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25]
2005년 대학에 입학해서 4년간 학교를 다녔다. 오는 2월이면, 드디어 졸업을 하게 된다. 졸업 학점이 130학점인데, 131학점을 들었으니 딱 졸업할 만큼만 겨우 채운 셈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수업으로 계산하면 적지만은 않은 수다. 개수로 치자면 46개의 강의를 들은 것이다. 졸업 기준을 딱 맞춘 전공 수업이 10개, 교양 수업이나 타과 전공 수업이 36 개다. 그 중 1개는 '사회봉사'라는 이름 아래 수업이 아닌 자원 활동으로 학점을 얻은 것이고 두 명의 교수님 수업을 두 번씩 들은 적이 있으니 4년 동안 나는 43명으로부터 수업을 들은 셈이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하는 사람의 직급을 가리지 않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굳이 알아보지 않는다면 내게 강의를 하는 사람이 교수인지 강사인지, 교수라면 정교수인지 부교수인지, 강사라면 전임 강사인지 시간 강사인지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애초에 시간 강사가 전공 수업을 맡는 경우도 있고 정교수가 교양 수업을 맡는 경우도 있는데다가, 수업의 질이 딱히 다르거나 하지 않으니 굳이 알 필요조차 없다. 나이가 너무 젊어 보이거나 하면 시간 강사려니, 하고 그저 지나가는 생각을 해 볼 뿐이다.

25!

내가 수업에서 만난 '시간 강사'의 숫자다. 대학에서의 4년 동안, 내가 들은 수업의 54%가 시간 강사의 것이었고 내가 만난 '선생님'의 58%가 시간 강사였던 셈이다. 내가 대학에서 들은 교양 강의의 7할이 그들의 공이다. 대학원에서 전공 공부를 계속하지는 않을 테고, 전공인 국문학을 살려 직업을 구할 가능성도 크지는 않으니 앞으로 내 삶의 많은 부분은 아마도 그 교양강의들에 빚을 지게 될 것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내 인생에서 사용할 지식의 7할쯤은 시간 강사 선생님들의 공으로 얻은 셈이다.

내 교양의 7할이 시간 강사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말하고 보면 어딘가 찝찝하다. 그들 역시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까지를 딴, 자기 분야에서의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니 그들에게서 받은 지식에 부족함이 있을 리 만무한데도 왠지 제대로 못 배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떻게 보면 '덜 배운 것 같은 느낌'이고 어떻게 보면 등록금을 헛쓴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튼 뭔가 부족한데, 그건 분명 '시간 강사'의 문제는 아니다. 그들은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수업도 할 만큼 했으니까.

'시간 강사'라서 못 한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교수실이 없으니 찾아가 질문할 수가 없었고, 박봉에 쪼들려서 변변한 책거리 역시 몇 번 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교수님들은 한 학기에 서너번 씩도 휴강을 하고 이런 저런 대체 수업들을 하는데 강사님들은 그렇지 않은 점도 차이라면 차이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도 마음껏 할 수 없을 때면 강사님들은, 학과 사무실 눈치를 봐야 한다며 객쩍은 웃음을 짓곤 했다. 따지고 보면 덜 배운 것 같은 느낌이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 같은 등록금을 내고도 덜 배웠으니 등록금을 헛되이 썼다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내 교양의 7할이 이렇게 '덜 배운' 것이 된 것은 시간 강사에게 교수실이 없고, 그들의 봉급 역시 적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학과사무실의 눈치를 봐야 해서 자기가 강의할 커리큘럼을 온전히 자기 뜻대로 짜지 못하기 때문이고 말이다. 이제까지의 연재를 통해 여러 번 언급되었듯이, 시간 강사들이 이렇게 '덜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그들에게 교원으로서의 지위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법과 대학이 그들을 교원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장기 발전 계획'이라는 것이 있다. 2025년까지를 내다보고 수립한, 말 그대로의 장기적인 발전 계획이다. 그 '수행과제' 중에 '교육 방식의 획기적인 변화 추진'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교수와 학생의 면대면 맞춤식 교육 강화'이다. 한편 12개의 구체적인 목표 중 3번째는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수진 확보'인데 그것은 크게 외국인교수 임용과 국내 교수진의 세계적 학자 양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교는 그런 계획들을 가지고 학교를 홍보하여 좋은 학생과 교수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 연구실조차 없는 시간강사를 두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수진 확보 운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광수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이다. 면대면 맞춤식 교육을 강화하고 국내 교수진을 세계적 학자로 양성하려면 시간 강사에 대한 지원을 아껴서 될 일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자기 연구를 진행할 교수실도 없는 '시간 강사'를 학교에 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교육하고자 한다면 교육과 연구를 위한 충분한 조건을 갖춘 '교원'을 두어야 할 테니 말이다.

대한민국 대학들의 죄목

시간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되돌려 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 강사의 형태로 교수진을 무한정 고용해, 교육과 연구 양쪽 모두에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대학의 관습 자체를 뜯어 고치는 일이다. 학생들이 자신이 공부하는 학교에서 그 일을 시작하기 위한 힌트가, 앞의 단락에 있다. 시간 강사로 전체 교수진의 절반 가까이를 채우고 있으면서 저런 식의 홍보를 한다는 것은 명백한 과장 광고다. 꼭 저런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더라도, '뛰어난 교수진' 운운하는 대학의 광고들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대한민국 대학들의 죄목은 비단 과장 광고만이 아니다. 간과할 수 없는 몇 가지를 읊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교원도 아닌 시간 강사로 교수진 절반을 채우면서 '최고의 교수진'이라는 과장 광고를 행한 죄

2. '최고의 교수진'을 약속하고서는 교원 지위가 없어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간 강사를 대거 고용함으로써 학생과의 계약을 어긴 죄

3. 시간 강사에게 교수실 등 필요한 지원을 해 주지 않아 학생들의 충분한 공부를 원천적으로 막은 죄

4. 어떤 수업은 교원에게, 또 어떤 수업은 교원이 아닌 시간 강사에게 맡겨 학생들이 평등하게 수업을 누리지 못하도록 한 죄

5. 시간 강사를 고용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반사회적인 일을 저지르면서,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그 볼모로 삼은 죄

죄목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처벌이다. '과장 광고', '계약 불이행', '학습권 침해', '평등권 침해' 등 어느 법정에서라도 꿀리지 않을 만큼 굵직굵직한 죄들을 대한민국 대학들은 저지르고 있으니, 이에 대한 소송을 하면 될 일이다. 대학과 직접 '계약'을 맺은 당사자들인 학생들이,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것이다.
▲ '과장 광고', '계약 불이행', '학습권 침해', '평등권 침해' ... 대한민국 대학들의 죄목 ⓒ이광수

올해 서울대에서는, 학생들이 서울대학교를 상대로 '법인화 위원회 활동 중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미국 예일대에서는 학생들이 대학을 상대로, 유색인종, 빈민층 등 사회적 소외 계층에 대한 교육 평등의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시간 강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와 같은 법적 소송을 벌이는 것이다.

허위·과대 광고를 처벌하는 법은 거의가 방문 판매나 식품 판매 등의 영역에만 적용된다. 전반적인 과대광고를 처벌하는 규정은 '경범죄 처벌법'에만 있다. 경범죄 처벌법의 1조 11항(허위광고)은 '여러 사람에 대하여 물품을 팔거나 나누어 주거나 또는 일을 해줌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잘못 알게 할 만한 사실을 들어 광고한 사람'을 경범죄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이 법이 규정하고 있는 처벌의 수준은 '10만 원 이하의 벌금, 혹은 구류나 과료에 그친다. 말 그대로 '경범죄'로 다루어 질 뿐, 실질적인 처벌 규정은 못 되는 셈이다.

아마도 대학을 상대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소송은 민사 소송이 될 것이다. 과대광고로 학생들을 현혹하고는, 우수 교수진 채용이라는 계약 사항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한 것에 대한 손해 배상이나 위자료를 청구하는 것이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몇몇 나라에서는 '교육 과오'라는 이름으로,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교육 당국이라 기관을 대상으로 부실한 교육에 대한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제도가 꽤 오래 전부터 정착되어 있다.

등록금에 걸맞는 교육서비스를 확보하자

부실한 교육에 대해 배상을 청구하는 일은 물론 한국에서도 가능하다. 1995년에 설립된 모 산업대학은 총장과 이사진 등의 방만한 재정 운영과 공식적으로는 운영권이 없던 설립자의 공금 횡령 등으로 인해 실습실·실험 기자재·전공 도서 등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자연히 관련 시설을 필요로 하는 학과의 학생들은 재학 중에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고, 결국 해당 학과의 재학생 및 졸업생 20명이 대학 설립자와 총장, 학원 재단을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건을 맡은 지방법원에서는 설립자와 총장, 학원 재단의 잘못으로 인해 원고인 학생들이 정상적인 학습을 받지 못했으므로 피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피고에게, 원고 중 졸업생에게 500만 원, 재학생에게 450만 원, 편입생에게 300만 원의 위자료를 각각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거의 10년이 다 된 판결이니, 지금의 일이었다면 액수는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이 판례에서는 설립자의 공금 횡령이라는 불법 요소가 부각되긴 했지만, 시간 강사 문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워낙에 만연한 일이라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애초에 '시간 강사'는 '불가피하게 필요한 경우'에만 채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니 우리나라 대학의 시간 강사 고용 현황 자체가 불법적인 셈이기 때문이다. 실습실이 부족하든, 교원이 부족하든 학생들이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이다.

한편, 이러한 식의 소송이 지나치게 '소비자로서의 권리'에 치중해, 대학 교육 문제의 본질을 간과할 것이라 우려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교수진의 절반 이상을 비교원―시간 강사로 구성해 질 낮은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대학들에 경종을 울린다면, 해결책은 자연스레 시간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법 개정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시간 강사의 '교권'을 되찾는 성과를 교육 현장인 대학에서 먼저 거둘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겨울 방학에는 여의도에 있는 비정규직 교수 노조의 농성장을 찾아 가보자.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방학 동안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시간 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자. 그런 다음 봄이 오면 캠퍼스에서, 대학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걸 발기인들을 모아 보는 게 어떨까. 혼자 하기에 힘이 부족하다면, 총학생회를 찾아도 좋을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를 상대로 벌이는 소송은 등록금에 걸맞은 교육 서비스를 확보하는 일인 동시에 시간 강사들의 노동권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충분히 연구하고 충분히 가르칠 수 있는 '교원'으로부터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학생들의 집단 소송, 걸어 볼 만한 싸움이 아닐까?

* 이 연재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의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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