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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결자해지를, 대학은 참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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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부는 결자해지를, 대학은 참회를!" [벼랑 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30]
비정규교수는 교원이고 교수노동자이어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의 국회 앞 천막농성 510여 일째, 이제 또 해가 바뀌었으니 햇수로는 3년차 장기농성인 셈이다.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한 비정규 교수의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지난 2006년부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해왔다. 2007년 9월 7일 대선과 총선을 앞 둔 시점에서 17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더할 수 없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당시, 최순영 의원(2004년, 민노당), 이상민 의원(2006, 열린우리당)은 법안 발의를 이미 했었고, 2007년 5월 이주호 의원(한나라당)도 법안을 발의하면서 세 당의 법안이 모두 교원 지위 회복을 내용으로 담고 있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더구나 2007년, 이주호 의원은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자신의 양심을 걸고, 더 이상 이 문제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의원직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이례적으로 민노당 최순영 의원도 이주호 의원 발의 안에 힘을 싣기 위해 공동발의자로 서명했다. 노조도 한나라당에 의구심이 있었지만, '진정성'을 거듭 말하는 이주호 의원과 정책토론회도 함께 했다. 교육위 열린우리당 간사였던 유기홍 의원은 늦어도 2008년 총선 전 임시국회에서라도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주호 의원은 정치권에서 교육정책실력자(?)라는 '개인입지'를 굳히는데 성공했을 뿐이다. 2006년 11월과 2007년 8월 노조에게 장담했던 '진정성'이 교과부 차관이 된 지금도 아직 유효한지 말이 아니라 실제로 보여줘야 할 때이다.

17대 국회 정치권 누구도 다르지 않았다. 표와 돈만 쫒으며, 자신의 이익에 따라 합종연횡만 일삼고 대학교육의 핵심 사안인 이 문제의 당위성을 요란하게 빈말만 나누다가 후순위로 밀어놓다 폐기했다. 국회가 입법하는 곳이라는 말이 무색하기만 했다. 2008년 2월 15일 17대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약식공청회라며 노조 대표(김용섭 영남대분회장)와 사용자측 대표(박승철 성균관대 교무처장)를 한자리에 앉혀놓고 입장 차이를 확인 시킨 뒤 '양측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니, 교육부와 입법조사관에게 다시 조사하라'고 해 놓고 폐기 시켰다.

18대 국회에서는 이상민 의원(2008년, 자유선진당)이 재발의 했다. 지난 2008년 12월 12일 교과위에서 '시간강사제도 개선' 공청회를 가졌고, 2009년 고등교육 예산을 약 4조 원에서 5조 원으로 약 1조 원을 늘렸다. 교과위는 이 가운데 1500여 억원을 대학강사 처우개선에 연구비 명목으로 예산으로 책정했으나 예결위 계수조정에서 삭감되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나 경악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소통부재'를 얘기한다. 이 소통부재의 근본원인을 우리 사회에서 풀지 못한 세 가지 난제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삼성의 노조 불인정, 대학강사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민주정권 10년'이란 허울뿐이었다고 비판한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상당 부분 달성됐다고 믿었으나 국가폭력을 제어하기 위해 제도적 측면에서 필요한 변화는 없었다. 정치 세력을 선택하는 문제 못지않게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 개선의 문제도 중요하다. 그동안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믿었으나 그것이 엄청난 착각이었음을 절감하고 있지 않은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관이 없는듯하지만 우리 사회 내부의 순환과 변화를 막는 난마로 깊이 얽혀 숨겨져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엄청난 억압기제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문제의 본질을 여전히 기피하고 호도하려 한다. 더구나 여론에 밀려 대학 강사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면 교과부와 대학이 한결같이 주장한다.
▲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는 대학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510여 일 째 국회 앞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이광수

국가폭력과 대학의 담합의 연속이라는 성찰과 반성을

돈이 없다. 과연 돈이 없을까. 아니다 돈은 있다. 대학에는 국고에서 매년 한국학술진흥재단, 누리사업, BK21, HK사업 등 명목으로 약 3조2500억 원을 지원한다. 대학 강사 처우 개선의 심각성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그 가운데 일부만 써도 문제는 해결된다.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수백억 원씩 투자해 짓는 건물을 한 동만 덜 짓고, 수천억 원씩 쌓여 있는 사립학교 누적 적립금에서 조금만 덜어내 지원해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재정이 파탄난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고 이제 '양치기 소년'의 말처럼 아무도 믿지 않는다.

서울의 어느 명문 사립대의 정규직교수 평균 연봉은 1억4000만 원이고 비정규직 교수의 평균 연봉은 768만 원이다. 전국적으로 강의료는 시간당 2만~5만5000원이다. 2008년 교과부의 자료에 의하면 연봉이 주9시간 강의 기준 999만 원이다. 전임교수의 5~10분의 1정도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받아야할 사회복지인 4대 보험도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대학에서 대학 강사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연구공간은 말할 것 없고 휴게실조차 없어 교정 안 어디선가 서서 강의실 한켠에서 학생지도를 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학사 참정권, 총장 선출권, 교과목 개설권, 연구실 제공, 각종 복지혜택 등에서 배제 되어 있다.

무엇보다 대학 강사들은 종강 무렵 조교로부터 전화가 오면 다음 학기 강의가 있는 것이고 전화가 없으면 강의가 없다. 근로계약 따위는 애초 없었으나 노조가 있는 몇 개 분회만 최근에 하고 있고, 90년대 초반까지 위촉장을 주는 대학은 더러 있었지만 지금은 이마저 없다. 비정규직보호 법안에서마저 박사는 전문가 집단으로 분류돼 빠졌다.

이런 현실을 두고 "비정규교수 문제는 교육 문제로 접근해야지 노동 문제로 풀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또 "강사는 지금 수련 과정에 있을 뿐, 검증이 안 되었다"고 한다. 비정규교수들은 이런 얘기를 접할 때마다 분노에 앞서 어이없고 참담하다. '교원'이 아닌 무자격 신분의 비정규교수에게 거의 공짜로 대학교육 절반을 맡기도록 한 국가 폭력과 대학의 담합을 은폐시키고 호도하려는 얘기이다.

차라리 고등교육 현장에서 교육의 주체인 대학강사는 1회용 소모품일 뿐인데, 계속 이 제도를 영원히 온존 시키고 싶을 뿐이라고 솔직히 고백하라! 여기에는 실상 교육도 노동도 인권도 없다. 우리의 대학교육에는 인간존중과 '공동 선'의 가치는커녕 승자독식이라는 지배 질서만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는 오직 1%가 향유해야하는 기득권 유지에 방해가 되면 용산참사처럼 '불에 태워 죽여도 된다'는 끔찍한 결과까지 가버렸다. 심하게 말하면 비정규교수문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표본이며 출발이다. 대학자본과 관리자인 정규직교수들이 철저히 '기득권의 마름'으로 이기적인 행태만을 보여 주고 가르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고 한경선박사의 유서에 나온 '교수임용의 행태' '강의전담교수에 가한 대학과 정규직교수의 은폐 된 횡포'에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학과 정규직교수들은 얼마나 될까. 모두 신분적으로 '교원'지위가 없으므로 악용할 수 있었던 것임을…. 그래서 그 차별과 폭력에 가까운 횡포를 누리자고 반대하는 것이라고 시인해야 한다.

어떻게 대학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1949년 제정된 교육법에 강사가 교원이었던 것을 1977년 국가 폭력에 의해 교원지위가 박탈됐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지식인을 길들이기 위해 저항하는 지식인을 제도권 밖에 두고자 했다. 1977년 10월 24일 '정부안'으로 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법사위와 본회의를 거쳐, 이 때 회의록에 보면 한마디 논의도 없이 그 해 12월 강사를 교원에서 제외시켰다. 1975년 박정희가 종신정권을 위해서 전시입법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 조치로 '교수재임용제도'를 만들고 이어서 1977년 강사의 교원지위를 박탈한다. 저항 지식인의 제도권 진입을 거르고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즈음 성래운, 송기숙 교수 등을 대학에서 쫒아냈다.

이어서 피를 묻힌 전두환 정권은 국보위에서 전국 대학에서 교수 200여 명을 해직시키고, 졸업정원제를 착안해 학생 30%를 더 뽑아 학생운동 저지 방편으로 삼았다. 그 뒤 해직교수들이 복직됐다. 그러나 이미 대학에는 도저히 대학에 들어 와서는 안 되는 지식인들이 정규직 교수로 들어와 앉아 있어 오늘날과 같은 대학 사회가 되었다고 하는 해직교수 한분의 한탄을 들은 적이 있다. 어쨌든 대학 당 전임교수 임용 조건을 완화시켜서 강사 3명을 전임교수 1명으로 인정하면서 시간강사 위촉을 조장 확산시켰다. 군사독재체제 아래 지식인과 대학 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정당성 없는 정부는 정치적 반대 세력의 모체가 될 수 있는 지식인 사회와 대학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대학의 입장에서는 비용을 대폭적으로 줄이면서 수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최신의 방안을 얻은 것이다.

문민정부 이후 대학 자율화와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고용 유연화는 강사가 대폭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을 유발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과 더욱 심각해진 대학의 상업화는 대학의 연구 활동과 교육행위마저 계량적 평가의 대상과 상업적 생산물로 변질시켰다. 또 이 때 무늬만 교수인 비정규교수를 양산했다. 비정규교수 양산 초기, 겸임교수나 비정년트랙의 주당 9시간 강의를 정규직교수 1명으로 쳐 주는 '편법산술'이 잠시 교육부의 발상으로 진행 되며 비정규교수들이 늘어났다.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교원지위를 박탈당한 국가폭력 자행 이후 결국 32 년간 정치권과 교육부가 담합하여 대학의 착취를 조장하거나 방치하면서 대학 강사는 불안한 신분에서 오는 차별을 구조적으로 혹독하게 겪는다. 또 이 담합의 고리는 교육부 퇴직관료를 대학으로 모셔 가는 회전문 인사 관행이 한 몫을 했다. 현재 대학강사는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 다음의 최극빈층이고 대학 안에서 저항과 비판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무기력한 지식인으로 고착되었다.

낙관하며 싸워야

그래도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생명력을 가졌던 1980년대 말 시간강사들은 노조를 조직하고 전국규모의 전국강사노동조합 등을 결성하여 여러 형태의 투쟁을 전개했다. 교원지위 회복을 위한 입법청원 움직임도 있었으나 1990년대 노동운동이 퇴조하면서 전국단위의 분회들이 와해된다. 대표적인 예로 '노무관리에 귀재(?)라는 신화'를 지키는 삼성이 성균관대학교를 인수한 뒤 투쟁의 강성이었던 성대분회가 여지없이 깨졌다. 노조 간부를 맡으면 어떤 사유에서든 강의에서 잘리는 불행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노조를 드나드는 인원은 한정되었다. 성균관대분회는 두 개의 문패가 있다. 하나는 노조의 '비정규교수노조 성균관대분회', 하나는 학교 측이 주장하는 '성균관대노사협의회'이다. 결과는 노동조합법 내 단체협약이 아니고 법외 노사합의다.

삼성과 싸웠던 사람들의 가장 큰 불행은 심리적 열패감에 시달려야 하는 점이다. 전쟁에서나 구사할 듯한 심리전까지도 조직적으로 구사한다는 얘기이다. 현재 성균관대분회와 성공회대분회는 교원특위를 부정한다. 그 이유로 '교원법적지위 쟁취는 특위를 구성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 일상 투쟁으로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천막농성과 1인시위와 같은 투쟁은 그나마 깃발만 들고 있는 미약한 투쟁조직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쩌랴, 강의실에 들어가 수강 학생들에게 받아도 되는 서명받는 일조차 열 자리 숫자가 안 되었다.

또 하나, 정규직 교수 임용이라는 연봉 1억 원 짜리 '당근'이나, 노조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거나 1년 단위 재계약 형태의 연봉 4000~5000만 원짜리 비정년트랙을 어떻게 뿌리치며 1년짜리 계약자들이 재계약을 걸고 어떻게 감히 농성에 가담하겠는가! 비정규교수들의 자기검열은 오직 비정규교수 자신들의 심약함에 있는가? 사용자인 아주 대단한 '교육자'인 대학들의 구조적인 악랄함에 있는가? 대학들은 한손에는 '당근'을 한발로는 '가차 없는 발길질'로 교묘히 노동조합을 짓밟았다. 더구나 더 슬픈 일은 '당근'과 '가차 없는 채찍질'에 흔들리며 피차 '치고 받고' 한다는 사실이다. 제가 비틀거리는 것이 '남의 탓'이고 '싸우는 사람들 탓'이라고 한다.

용산참사의 원인이 철거민 손에 든 새총과 화염병과 그들을 도왔던 전철연 배후에 있다고 한다. 본질은 서민의 삶의 터전을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부시고 지어대는 천민 재벌들의 탐욕에 있다. 철거민의 저항과 단결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전두환 정권이 만든 노동자의 제3자 개입 금지와 무엇이 다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경찰청장이 전 국민의 대통령이고 경찰청장이라는 본분을 망각한 몰지각에서 비롯되었다고 참회해야 하는데 여전히 요즘 말로 '개념' 없는 것과 똑 같다. 과연 대학은 "비정규 교수 문제는 교육 문제로 접근해야지 노동 문제로 풀어서는 안 된다", 또 "강사는 지금 수련 과정에 있을 뿐, 검증이 안 되었다." 그래서 교원지위 회복은 "NO!"라고 50세, 60세 지난 만년 비정규교수들 앞에서 함부로 말 할 수 있는가?

2002년 전강노가 실제는 강사이면서 무늬만 교수인 비정규교수들의 명칭만 해도 18가지나 되면서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왜 하필이면 민주노총 소속이면서 '한국'인가, 그것은 당시 성균관대분회와 영남대분회 뿐이어서 '전국'이라고 하기엔 낯 뜨거웠다고 한다. 현재 9개 분회가 있다. 미약한 조직을 가지고 싸우면 그 조직이 와해된다는데 영남대분회가 전국단위를 책임지고 있을 때 어찌 된 일인지 조직이 자생적(?)으로 늘어났다. 노조는 투쟁조직이다. 투쟁이 강고하면 조직이 유기적 관계 속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증명 했다.

2001년 교육부 앞 1인시위를 시작으로 2006년 8월 노조는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교원법적지위쟁취 특별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현재 국회 앞 천막농성까지 노조 구성원들은 퇴직금 소송, 국가인권위 진정, 관계자 면담, 1인 시위, 기자회견, 천막농성, 집회, 정책토론회, 관련 논문 발표, 범국민서명운동, <한겨레> 쪽광고 잇기, 2월 초까지 계속 될 <프레시안> 연재 기획기사, 소식지 발간, 촛불 집회 참가 등의 활동을 했다. 누군가 "더디지만 진화해 간다"라고 평가 했다. 전강노부터 20여 년 동안 말없이 또는 요란하게 지쳐 떨어지거나, 아직도 묵묵히 투쟁의 자리를 지키는 소수 비정규교수들의 헌신과 희생이 합쳐진 것이다.

그러나 천막농성 얼마 안 되어 본조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 6개 분회 간부가 '쉽고 품위 있는 투쟁방식'을 주문하며 천막투쟁을 접었다. 기존의 교수 단체들과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런저런 사건사고로 연대의 틀이 깨졌다. 천막농성으로 '될 때까지 투쟁 하겠다'는 결의는 노조의 투쟁력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보았다. 현재 영남대분회, 대구대분회, 고대분회 3개 분회와 교원특위장 등 이지만 오히려 처음보다 구도자처럼 헌신적으로 투쟁한다.
▲ 외로울수록 그 투쟁은 헌신적이다. 국회 앞 농성 천막에 봄이 올 날이 머지않았다. ⓒ이광수

이제 내부적으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만큼이나 다른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문제이고, 또 대책위를 구성해야할 단계를 가늠해야 한다. 명망가 중심이 아니라 이 운동에 시간이나 돈이나 몸이나 글을 써서 실천하고 있는 전 국민 전 계층이 참여해 교원지위 회복 싸움을 말리는 조직이 아니라 싸움을 이기게 하고 고등교육을 살리는 조직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당사자인 비정규교수는 물론 학생, 학부모, 정규직교수, 촛불 시민, 노동, 종교단체까지 참여해야 한다.

서울대 대학생사람연대 학생들은 유기홍 의원 지구당사와 교과부 앞에서 1년 가까이 1인시위를 했다. 이 문제를 학생운동의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교원지위 없는 비정규교수에게 수업을 받을 수 없고 이를 강제한 대학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 고려대 학생들은 비정규교수 농성 텐트가 재정적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이틀 동안 주점행사를 열어 지원했다. 참교육학부모회는 개인적으로 유기홍의원 지구당사 앞에서 7개월 동안 1인시위를 했다. 비정규교수 문제의 '홍보대사'라 할 만큼 가슴으로 이해한다. 학부모들은 차츰 386세대를 중심으로 자녀 대학교육의 질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정규직교수들은 대체로 비정규교수의 교원지위 회복에 거부반응을 나타냈으나 소수지만 변함없이 정규직교수들이 글과 후원금으로 생색내지 않으며 교원지위 회복 투쟁을 뒷받침한다. 언론, 촛불 시민과 종교인들은 날짜가 지날수록 이 싸움이 우리 사회 변화의 초점이며 주요 과제라고 주목하고 장기화를 안타까워했다.

또 국제적으로도 한경선 박사의 자살을 계기로 세계 곳곳의 유학생과 교민들이 관심을 가졌다. 다른 나라의 교수 강사들도 연대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관심이 고등교육법개정에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비정규교수노동의 비인간성, 인권유린을 유엔, 국제사법재판소, ILO 등에 문제로 제기할 수 있다.

희망을 갖자. 이번 겨울 방학에는 비정규교수들이 더 이상 죽지 말자! 우리 안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국가가, 대학이 구조적으로 가한 모멸을 교원지위 회복으로 한걸음 한걸음 치유해 내자.

*이 연재는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의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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