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도리마 공포',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도리마 공포',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4대강 대신 사회안전망을③] 日 총선 쟁점으로 떠오른 파견노동
일본 도쿄 번화가 아키하바라. 코스프레(컴퓨터 게임이나 만화 등장인물로 분장), 전자상가 등으로 유명한 이 거리가 지난해 6월 이후 또 하나의 상징이 됐다. '묻지마 살인'이다.

지난해 6월 25세의 한 청년이 주말 대낮에 아키하바라에 트럭을 몰고 들어와 차에서 내려 지나가는 행인들을 닥치는 대로 칼로 찔렀다. 7명이 숨지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범행을 저지른 가토 도모히로(25)는 범행 직후에는 자신의 신분을 폭력단원으로 밝혔으나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로 밝혀졌다. 그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고용 형태에 대한 불만과 두려움, 심한 고립감과 자조감을 인터넷에 털어놓으며 "승자는 모두 죽여버려"라는 글을 남기고 예고한 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 주말이면 차량을 통제해 '보행자들의 '천국'이 되는 아키하바라. 이 번화가에서 주말 대낮 17명의 사상자를 내는 참극이 발생해 일본 사회를 경악케 했다. ⓒ뉴시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한달 뒤인 7월23일 도쿄의 한 서점에서도 '묻지마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30대의 남성이 서점에 들어가자마자 흉기를 휘둘러 1명이 죽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남성도 오랫동안 파견노동자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지난 7월 초엔 40대 실직자가 오사카의 빠찡꼬 가게에 가솔린을 끼얹고 불을 질러 4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치는 일도 있었다. 지난 2008년 이후 일본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은 17건으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3년 이후 가장 많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급증한 무차별 살인을 '도리마(길거리의 악마)'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런 '도리마 살인'의 배경에는 일본의 전통인 종신고용모델이 무너지고 파견근로가 전면 허용되면서 발생한 고용불안이 놓여 있었다.

고이즈미 정권 노동유연화, 비정규직 1750만 명, 노숙자 2만 명 양산

일본은 1989년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10년 동안의 장기침체를 겪었다. 2001년 출범한 고이즈미 내각이 과감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장기침체를 벗어나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 때문이었다. 고이즈미 내각은 과감한 노동유연화 조치를 실시해 2003년 제조업까지 파견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2004년부터 파견노동자가 급증했다. 2008년 파견근로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1750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34.6%에 이른다.

2006년에는 제조업에서 파견기간을 기존의 1년에서 3년으로 늘려, 2009년에 사용기간이 종료되는 파견노동자의 다수가 해고될 것이라는 소위 '2009년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기도 했다. 지난 7월을 앞두고 한국에서 비정규직법 논란이 일었던 것과 마찬가지 문제였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파견노동자의 연 수입이 전체 노동자 평균의 60%에도 못 미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서 '2009년 문제'는 현실이 됐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파견노동자 등 비정규직이 핵심적인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지난 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총 15만7806명이 일자리를 잃었는데 그중 68%인 10만7375명이 파견노동자였고, 18%인 2만8877명이 계약직이었다.

▲ 월별 비정규직 해고상황 (자료: 日本厚生労働省(2009))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정부의 고용정책전환' 보고서에서 "파견 등 특별한 고용형태에 경제위기 충격이 집중되는 이유는 그동안 기업이 파견 및 계약직을 중심으로 고용을 늘려왔고, 경제위기에 직면하자 이들부터 해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글은 지난 17일 한국노총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됐다.

파견노동자의 60%가 35세 이하 남성 청년층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파견근로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 사회인 일본에서 파견근로의 확대는 기존 남성생계부양자모델-종신고용모델을 뒤흔들고 있다. 은 연구위원은 "생계부양자인 남성 중심으로 파견이 늘어날 경우 배우자까지 포함한 가계 전체가 빈곤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일본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 도쿄 공원을 떠돌고 있는 노숙자. 경제 위기로 파견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되면서 PC방을 전전하는 '네트난민',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 점에서 커피 한잔으로 밤을 지새우는 '맥도날드 난민' 등을 도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연합
또 제조업체의 파견노동자들은 사용사업주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해고될 경우 일자리와 더불어 주거까지 함께 잃는다. 이들은 노숙자나 PC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네트난민'으로 전락한다. 일본 노숙자 수는 올 상반기 공식적으로 2만 명을 넘어 섰지만, 지자체에 등록되지 않은 노숙자까지 합치면 3만 명이 훨씬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파견근로, 종신고용모델 흔들어

일본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동유연성' 확대가 아니라 '고용안정과 취업연계, 생활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충격 때문이다.

일본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본격화된 세계 경제위기로 여느 나라 못지않게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지난 1분기 수출이 전년에 비해 -23.7% 감소했다. OECD가 예상한 2009년 일본의 실질GDP 성장률은 -6.8%로 OECD 국가 중 아일랜드(-9.8%), 멕시코(-8.0%) 다음으로 낮다. 또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재정적자가 2010년 GDP 대비 8.7%에 이를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번 경제위기 대응책으로 사회보험 특히 고용보험과 생활보호 모두에서 배제되는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를 위한 제2의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등 기존의 고이즈미 내각과는 다른 처방을 내놓았다.

은 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제위기 대책은 단기적으로 사회보장, 중소기업 지원 및 지방활성화, 생활자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중장기적으로 성장전략에 집중하는 모양새"라면서 "고용대책은 고용유지와 취업연계, 생활지원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처럼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뀐 이유는 일본 정부 및 학계 심지어 경영계에서도 일본 고용모델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고이즈미의 노동유연성이 실업완화가 아니라 빈곤강화의 효과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8월 총선이 脫 고이즈미 노선 부채질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가늠할 8월 중의원 총선도 고이즈미 정권의 노동유연화 정책의 수명을 단축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소 정권은 일용파견 금지, 파견노동자의 처우 개선, 전속파견(못바라 파견)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파견법 개정안을 확정해 지난해 11월 내각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아직 국회는 통과되지 않은 상태다.

노동정책을 총괄하는 후생노동성을 중심으로 고이즈미 정책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후생노동성의 오치아이 준이치 국장은 지난 1월 2003년 제조업까지 파견노동이 허용된 것에 대해 "나는 원래 문제가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당시 시장원리주의가 전면적으로 나타났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를 막지 못했다. 노동행정을 담당하고 있던 누군가가 사직을 해서라도 (법 개정을) 막지 못했던 데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 밝혔다.

제1야당인 민주당과 사회민주당, 국민신당 등 야당 3당은 지난 7월 일반 제조업에 비정규직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등 정부 개정안보다 한발 더 나간 규제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번 총선을 통한 정권교체 여부와 상관 없이 규제를 강화하는 파견법 개정은 예정된 수순이다. 만약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다면 고용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 강화는 좀더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제2 사회안전망 등에 재정 투입

일본 정부도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번 경제위기를 맞아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고 있다. 하지만 4대강 살리기 등 대규모 토목건설에 집중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달리 일본 정부는 고용대책 등에 집중하고 있다. 대규모 토목건설이 경기침체를 오히려 장기화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일본 정부는 이미 지난 90년대의 '잃어버린 10년'을 통해 얻었기 때문. 은수미 연구위원은 이번 경제위기 대응책으로 일본이 발표한 고용대책 중 크게 다음 세 가지에 주목했다.

▶ 고용조정조성금의 확대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고용조정조성금을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정규직 뿐 아니라 비정규직의 경우도 해고 대신 휴업이나 직업훈련 등을 통해 고용유지를 할 경우 이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또 고용조정조성금에 잔업삭감 고용유지장려금 제도를 도입했다. 잔업시간의 삭감으로 정규 및 비정규노동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경우 조성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고용조성조정조성금 신청 접수 상황을 보면 2007년에 비해 2008년의 신청사업장 수나 대상근로자 수가 각각 148배와 409배 늘었다.

▶ 정규직 전환 등 재취직 지원

일본 정부는 지난 2월부터 2012년 3월31일까지 3년 동안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파견근로자 고용안정화 특별장려금을 신설했다. 6개월 이상 계속해 파견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는 업무에서 파견노동자를 무기 또는 6개월 이상 직접 고용하는 사업주나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사업주를 대상으로 장려금을 지원한다. 한국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금과 유사하다. 중소기업에서 파견근로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전환 근로자 1인당 2년6개월간 총 100만 엔(1300만 원)을 지급한다.

또 정규고용화특별장려금을 만들어 사업주가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장년(25-29세) 프리터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경우 1인당 중소기업의 경우 100만 엔, 대기업의 경우 50만 엔을 특별장려금으로 지원한다.

▶ 사회안전망의 확충

일본의 사회안전망은 생활보호와 사회보험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하다.

일본 정부는 사회보험과 생활보호 사이의 새로운 형태의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노동계 및 학계의 요구에 부응해 제2의 사회안전망을 3년간 한시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 4월 직업훈련, 재취직, 생활에 대한 종합적 지원을 목표로 한 긴급인재육성, 취직지원기금을 신설했다.

또 지난해 11월 훈련기간 중 생활보장 급부제도를 만들어 지난 1월부터는 직장을 잃은 파견 노동자에게까지 확대 적용키로 했다. 이는 직업훈련 수강자를 대상으로 이자율 3%로 훈련기간 중 생활비를 대출해주는 정책이다. 취직할 경우 100% 상환면제해 매우 적극적인 취업유도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22일부터 실시된 취직안정자금융자도 유사한 정책이다. 해고나 고용기간 만료 등에 따라 고용이 정지되고 사원주택 혹은 기숙사 등으로부터 퇴거명령을 받아 주거를 상실한 노동자에게 생활자금 대출을 통해 주거 확보 및 안정적 취직활동을 지원하여 빠른 재취업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출을 받기 위해 보증이 불필요하고 금리 1.5%, 6개월 거치 10년 이내 상환이다. 대부 후 6개월 이내에 6개월 이상 근무지에 취업하면 주택입주초기 비용의 100%, 생활취직활동비의 50%를 상환 면제 받는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