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촌은 살기 어렵다. 정신적 행복감이나 생활의 품격은 일부 소수가만 누리는 사치일 뿐이다. 대다수 농민들은 기본생계나 생존권조차 건사하기 쉽지 않다. 마치 농촌의 생활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에 겨운 노역이나 천형처럼 느껴진다. 초고령화, 조손가족·독거노인·다문화가족 증가, 가족·이웃·지역공동체 약화, 농가경제 악화, 양극화 심화. 오늘날 농촌의 전형적인 풍경이자 일상은 이토록 을씨년스럽고 황량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된 원인은 다분히 구조적이고 복합적이다. 앞뒤 순서, 전후사정을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이고 무차별적이기까지 하다. 역사적으로는 토지의 사유화, 상품화부터, 정치경제적으로 또는 외교적으로는 초국적자본의 신자유주의에 이르는 범위와 규모에 걸쳐있다. 농업과 농촌의 악재는 이토록 깊고 넓다.
설상가상으로 농촌의 복지수요는 날로, 자연적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눈치나 염치도 없이 사람도, 공동체도 자꾸 불가역적으로 늙어가기 때문이다. 정부의 예산은 늘 부족하고 늦다. 정책의지는 안일하거나 무기력하다. 그런 관행이나 방침 역시 불가역적으로 보인다.
체계가 왜곡된 농촌복지 정책과, 정책이 실종된 농촌복지 현장
정부는 2004년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농어촌 복지, 교육, 지역개발 등에 대한 지원 실태를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려는 정책목적이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개발 위원회’도 가동되고 있다. 위원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난 4년간 보건복지, 교육, 생활·인프라, 문화여가 등 분야에 23조5000억 원을 투·융자 지원되었다. 농어촌 주민의 삶의 질 만족도가 출범 이전에 비해 15% 증가했다. 정부 스스로 해본 평가다. 하지만 행정의 평가와 현장의 체감복지는 시각과 온도가 다르다. 현장의 농촌지역 주민과 전문가의 평가는 박하고 냉정하다. 여전히 도시지역과 비교하면 열악한 수준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평가의 차이는, 행정의 계획과 현장의 요구가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예산문제, 정책의 진정성, 우선순위 관점 등의 문제로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취약계층과 관련된 사회복지 전달체계 개선이 시급하다. 현장활동가들의 오랜 숙원이다. 현행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는 복지 수요자가 광범위한 지역에 산재돼 있는 것부터 문제다. 읍·면지역 복지 관련 공무원의 업무도 과중하다. 서비스의 질은 보장하거나 책임질 수 없다. 기존 농촌복지 프로그램은 주어진 예산에 사업을 끼워 넣거나 짜 맞추는 식이다. 모두 공급자가 결정했다. 수요자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없는 왜곡된 결정구조다. 가령 보육시설이 없는 영·유아 수 60명 이하 면지역이 전국에 수백 곳이 잔존한다. 더욱이 조손가구와 장애인 등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농어촌의 취약계층에 대한 서비스는 요원하다. 농촌의 학교 수는 지난 1982년부터 소규모학교 통폐합정책을 추진한 결과 2010년까지 5442개교가 통폐합됐다. 농촌지역의 학교 및 학생의 지속적 감소와 결손가정 증가, 부족한 정책 지원 등이 도·농간 교육격차의 원인이다. 무엇보다 보건의료는 농촌 지역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다. 농촌지역의 보건의료기관 수는 도시의 1/7 수준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농촌복지 실종’ 현상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이제 한국의 국민복지 설계도에 농촌복지는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의료, 주거, 문화 할 것 없이 낙후되고 열악하다. 교육부는 ‘적정규모 학교육성 종합대책안’이라는 이름으로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학생수 60명 이하 2000여 학교를 더 통폐합하겠다는 각오다. 정부가 2014년에 새로 편성한 농촌 복지 관련 예산은 모두 4천650억 원이다. 겉으로는 지난해보다 증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국민연금 보험료와 건강보험료 지원금의 자연증가분 때문에 그렇게 착시되는 것이다. 농촌생활 현장에서 필수적인 주거와 의료서비스 등의 복지 예산은 동결됐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농촌복지의 분명한 지표는 주거환경이다. 농촌의 주거환경 역시 열악하다. 현재 전국의 농촌지역 단독주택 186만 채 가운데 34%인 64만 채가 이른바 지은 지 30년이 넘은 노후 주택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여전히 농민에 지원되는 농촌주택개량사업비는 연리 3%에 달한다. 시중은행 담보대출 금리 4%대와 별 차이가 없다. 특별한 복지 지원정책이라 규정짓기 어려운 수준이다. 의료서비스 수준은 더 심각하다. 고령화는 농촌의 의료서비스 수요를 점증, 폭증 추세로 떠미는 현실에서 생명과 직결된 의료서비스의 문제는 치명적일 수 있다. 정부의 지원책은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보험료 50% 지원뿐이다. 관련 예산의 확충도 숙제지만 더 근본적인 처방은 근본적인 원인에서 찾아야 한다. 일단 농촌에는 제대로 된 병의원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설사 있어도 대개 시설과 인력이 부족하다. 몸이 불편한 노인환자가 직접 인접 도시까지 차를 타고 나와 통원치료를 받아야 경우가 다반사다. 지방 도시의 농촌지역 접경구역의 길목마다 각종 병원이 떼를 지어 몰려있는 이유다. 농촌복지에 딴지를 거는 악역은 예산을 틀어쥔 기재부가 도맡고 있다. 심지어 올해 계획했던 농식품부의 방문의료 서비스 예산 104억 원도 기재부는 전액 삭감했다. 현재 5곳인 ‘농업안전 보건센터’를 5곳 더 늘리기 위한 예산 30억 원은 7억 원을 삭감, 2곳만 증설이 가능하다. 농식품부의 농촌지역 고등학교 전면 무상교육도 기재부는 부정적이다. 예산 3000억 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는 핑계다. 교육부는 반대할 논리도 부족하고 저항할 힘도 별로 없다. 기재부의 예산타령 앞에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절대 약자 신세다. 오히려 정책을 부정하는 좋은 핑계거리로 활용하기도 한다. 농촌의 실정을 잘 모르는 보건복지부, 문화부 등의 농촌복지관련 사업은 현실이나 현장과 겉도는 경우가 많다.‘협동사회경제형 농촌복지서비스’ 로 ‘위험사회’에서 탈출을
지난해 농식품부 농식품발전계획에서 제시한 농촌복지 계획의 구호는 ‘자조·자립·협력을 통한 농촌 삶의 질 향상’이다. “농촌의 복지 및 삶의 질 문제 해소를 위해 농촌 지역공동체의 자조·자립·협력을 촉진하되, 지역·관련 부처간 연계협력, 농촌여건에 맞는 복지전달체계 구축 및 생활 체감형 복지서비스 지원 강화하겠다”는 것이다.오늘날 박근혜 정부는 말로는 ‘국민 복지’를 부르짖는다. 하지만 말 뿐이다. 뒤로는 복지공약을 열심히 파기하고 폐기하고 있다. 심지어 농촌 마을회관에 지원되던 난방비 푼돈도 끊은 얼음장같은 정부가 박근혜정부다. 여기서 다른 농촌·농민복지정책을 더 살펴보거나 기대하는 건 아무런 의미나 소득이 없는 짓이다. 무책임한 정부, ‘사람이 맨 나중인’ 비정한 정부다. 그럼에도, 국민을 혼내고 겁박하는 그 입으로 천연덕스럽게 ‘국민의 행복’이라는 거짓말을 여전히 버릇처럼 남발한다. 그러나 이제 믿는 국민이 많지 않다.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 사각지대에 놓인 농민들에게는 더더욱 전달되지 않는다.
이렇게 박근혜 정부 시절의 우리 농촌은 복지의 소외지역, 복지의 사각지대로 끝이 보이지 않은 막장으로 자꾸 내몰리고 있다. 지난날 산업화 이후 농촌사회와 농촌복지사업을 소외시키고 홀대한 피해가 쌓인 결과다. 일찍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간파한 ‘위험사회’의 표본이 바로 우리 농촌이다. 굳이 사회학자의 진단이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 농촌의 복지, 우리 농민의 삶이 위험한 지경이라는 사실은, 세 살짜리 아이들도 잘 안다.
연재 목록 1. [농민] '귀농촌'의 협동연대 대안 - 도시난민에서 '마을시민'으로 16.[농정] '식량주권'의 정책목표 - '양적 식량자급'과 '질적 먹거리 안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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