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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의 전환…농민을 준공무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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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패러다임의 전환…농민을 준공무원으로! [협동연대 대안국민농정]<3>사회연대적·현대적 농민운동으로
이제 도시민을 향한 농·도교류라든지 농·도상생이라는 구호는 음량과 회수를 좀 줄여보자. 사실상 불특정 다수의 지역주민을 위한다는 모호하고 공허한 농촌활성화 정책도 당분간 자제하고 재고하자. 대신 그 현장에 농민과 생산자인 농민(단체)과 소비자인 노동자(노동조합)를 함께 세워놓자. 유기적, 지속적으로 관계하는 구체적 연대의 틀을 튼튼하게 조립하자. 이른바 ‘농·노·도상생 협동연대 대안국민농정모델’ 같은 사회적이고, 현대적인 농민운동의 진보적 연대전략을 진지하게 실천하자. 평소 개인적으로는 매우 궁금했다. 전농이나 전여농의 농민회원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노동자 조합원들은, 도대체 왜, 조직적으로, 우선적으로, 다투어 사주지 않는 것인지.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이나 이해는 안 가는 게 아니다 임금협상, 단체협상 등 생계나 자존심과 직결된 절박한 현안을 다투지 않은 평소의 일상에서는 노동자나 노동조합 조합원일 수만은 없는 사회적 사정을. 차라리 처자식의 안위를 집중적으로 염려하는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의 삶에 더 충실해야하는 인간적 입장을. 나아가. 어느 지역의 소시민으로서 싸고 좋은 대형할인마트의 충성도 높은 우수고객으로서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적 실익을. 어쨌든 자본과 권력에 대해 서로 우호적이고 동지적인 농민과 노동자끼리, 팔고 사는 도움을 주고받지 못하는 최저생활의 현실은 야속하다 걍팍하다. 진정 그렇다면 ‘100% 농·도상생 대안국민농정’의 제안은 꽃이 피기 전에 또 한 차례의 공허한 구호로 퇴색될지 모른다는 노파심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농민만의 농민운동이 먼저 변하자는 말이 하고 싶었다. 오히려 농민이 먼저 노동자에게, 도시민에게, 밖으로 손을 내밀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자칫 일반적인 국민들로부터는 일부, 상층 지도부, 현장활동가 중심의 ‘아스팔트 농사’ 정치적 투쟁으로 혼동되는 외양부터 고쳐보자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이제 노동자, 도시민, 국민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사회혁신적이고 협동연대적인 농정정책과 지역공동체사업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먼저 농민운동의 동력을 새로 충전, 활동의 지평을 넓혀나가야 한다. 여기에서 이른바 ‘사회적 농민운동’, ‘현대적 농민운동’의 화두를 조심스럽게, 거칠게나마 던지는 이유다. 그게 오늘날 ‘개방농정’, ‘살농정책’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국가와 초국적자본의 무차별 공격에 대처하는 용기있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농민과 노동자, 도시민, 국민이 ‘모두, 함께’ 상생하는 정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식량주권과 국가주권을 지키는 외길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한국 농민운동은 초국적자본과 외로운 ‘다윗과 골리앗’ 싸움

▲ 2013년 전국농민대회 ⓒ정기석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운동네트워크’의 최재관 대표는 “지난 농민운동 20여 년은 수입개방 반대의 역사”라고 한마디로 규정한다. 농민운동은 1992년 말 대선을 앞두고 시작되었다. 대학생들의 ‘쌀 개방 반대’ 삭발단식농성이 단초였다. 1994년에 UR반대투쟁으로 대중과 결합했다. 그리고 1995년 출범한 WTO는 우리 농민은 물론 전 세계 농민들에게도 재앙으로 다가왔다.

2000년 들어 농민운동은 대중화, 규모화 시대를 맞이한다. 2002년 대선은 ‘아스팔트 농민운동’의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03년 초 한·칠레FTA가 체결되면서 농정개방 반대의 옹벽은 무너지고 만다. 2006년 WTO가 주춤하면서 더 모진 시련인 몰려왔다. 한미 FTA에 맞선 농민운동은 그 즈음부터 만성피로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심신이 쇠약해지고 지치기 시작했다. 동력이 떨어지면서 현장도 떨어져나갔다.

이 무렵 작목반, 영농조합법인 등 현장의 생산조직, 로컬푸드, 학교급식 등을 새로운 운동의 도구이자 방법으로 삼는 ‘지역농업’ 의제가 본격 등장했다. 현장에서부터 농민운동의 전략과 방향을 전환해보려는 구체적 시도가 일어난 것이다. 마침내 2008년 광우병 쇠고기 파동과 촛불투쟁은 농민운동의 새로운 국면과 기회를 제시했다. 수입농산물의 확산에 따른 국민들의 먹거리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생협 회원수가 폭증했다. 친환경농산물 시장은 매년 20% 이상 급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각종 FTA,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 미국을 비롯한 세계열강, 초국적자본과의 수입개방 싸움은 끝나지 않고 있다. 마치 농민의 태생적인 숙명이나 천적처럼.

한편, 지난 2003년 11월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전농의 정치세력화를 전격 결의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인 지지를 결정하고 참여하지 않는 농민회의 예외를 인정하는 유연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정치세력화의 항로는 순탄치 않았다. 이후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등으로 이른바 진보정당들이 이합집산하는 가운데 내부 활동가, 회원들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었다. 심지어 전농 내 ‘농민’으로서의 노선이나 입장 차이보다 진보정당 내 ‘당원’으로서의 정치적 노선 차이나 갈등이 ‘농민운동’ 안에 그대로 투영되는 후유증과 부작용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진보정치의 집권을 열망해온 농민들과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과 열패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치명적인 실수이자 실패였다. 오늘날 농민 등 진보진영은 2~3%의 정당 지지율, 1% 안팎의 농민회 조직률이라는 초라한 성적표와 현주소를 받아들고 사필귀정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이같은 농민운동의 문제는 어쩌면 명분투쟁의 한계와 오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관찰된다. 특히 열강과 자본이라는 강한 상대에 맞선 수입개방 반대 싸움에서 조직력과 전투력은 필수적 무기일 수밖에 없다. 이같은 정치적 투쟁에 나설 때는 정교한 논리나 정치한 체계보다 ‘무조건적’ 명분과 ‘기약 없는’ 목표를 앞세운 전술을 구사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농민들의 참여도가 떨어지고 동력도 소진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잘 알면서도 이런 소모전의 양상에서 좀처럼 헤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다만 최근 들어 오랜 투쟁 경험을 가진 농민들 가운데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과제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어 고무적이고 희망적이다. 식량주권, 먹거리 안전, 학교급식, 로컬푸드, 조례제정, 농협개혁, 협동조합 등의 숙제다. 더 큰 문제는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통계로도 농민은 3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실제 현장에서는 얼마든지 그 이하일 수 있다. 현장에서 전업 삼아 농업에 헌신하는 농업인은 그리 많이 목격되지 않는다. 어느덧 농촌에는 이농, 고령화 등으로 젊은 농민도 없고, 의욕 있게 농민운동을 이끌 인적 자원도 부족하다. 시군단위로는 농민회 조직률이 1%도 채 안 되는 지역, 농민단체의 역할과 존재감이 유명무실한 지역이 적지 않다. 게다가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등 농민과 농업을 걱정하는 우호세력, 지원세력도 관심과 협력이 줄어들고 있다. 서로 점점 멀어져 소원해지고 있다. 여기에서 ‘협동과 연대’는 농민운동을 포장하는 수사나 수단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 자체가 농업을 중심으로 지역공동체를 지키고 살리는 목적이자 방법론이 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농민운동의 주체를 풍성하게 형성하는 혁신적 매개이자, 유력한 촉진장치로 기능해야 한다. 가령, 농협이나 영농조합 같은 기존의 협동조합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농촌에는 그를 대체할 협동조합이 많이 만들어져야한다. 특히 농업과 농촌을 역량 있게 관리하고 경영할 새로운 협동사회경제적, 공동체적 사업주체가 필요하다. 기존 농협을 개혁하려는 운동과 함께, 협동조합기본법과 매뉴얼에 적힌대로 ‘협동조합 다운 협동조합’을 창업하고 경영하는 농민들을 많이 발굴하고 지원해야 한다.

공익농민화, 기간산업화, 지역농업화로 ‘농민운동’의 대안을

▲ 2013 전국여성농민대회 ⓒ정기석
농협의 존재는 농민에겐 ‘필요악’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농민으로서는 신뢰할 수 없지만 무조건 피해갈 수도 없다. 농협개혁의 주체는 엄연히 240만 조합원이다. 농사짓는 농민이다. 하지만 그동안 농협 개혁의 주체는 농민이 아니었다. 조합원이 아니었다. 농민조합원은 한낱 주변인이자 구경꾼에 불과했다. 그 자리를 사실상 정치권, 학계, 그리고 농협이 적당히 짜고 치는 ‘셀프개혁기구’가 대신했다. 제대로 개혁이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진정한 농협 개혁의 성과가 아직 뚜렷하게 기록된 적은 없다. 아마 2015년 농협 중앙회장 직선제가 관철된다면 그게 농협 개혁의 근본적인 출발점이자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09년 이후 시행되고 있는 대의원 조합장 간선제는 조합원의 자주적 조직은커녕, 농민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장치로 작동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오는 2015년 전국 조합장 동시선거에서는 전국적으로 공동의 공약을 일제히 내걸 수 있다. 다수의 농민후보를 전면에 내세울 수도 있다. 어쩌면 농민당의 배후지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농민회 차원의 체계적인 공동준비, 공동대응이 가능한 것이다. 이를 통해 농협개혁의 의제가 전국화될 수 있다. 중앙회장 직선제를 통해서는 정부로부터 독립과 정치적 자유를 직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농협 개혁 요구안에는 농민들의 경제 민주화 요구를 구체적으로 담을 수 있다. 지역 농협의 경우에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활동과 사업의 추진력과 성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 중요한 건, 싸움에 나서기 전에 농민운동의 기반과 진지를 재구축하는 작업을 선행해야하는 것이다. 농민도 줄어들고 농지도 줄어들고, 농업의 생산성과 부가가치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농민운동의 전열과 의지를 온전하게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정부는 줄기차게 농민운동 진영에 대한 분열, 분리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교묘하게도 단체별, 농가별, 개인별로 차별적, 우선적 정책지원책을 구사한지 오래다. 농민과 농민, 농민과 국민 사이에 협동과 연대의 고리를 끊어보려는 의도는 노골적이다. 안타깝게도 일부 농민들은 그같은 정부의 집요한 전략에 속아 넘어가거나 길들여지는 경우도 더러 목격되고 있다. 본업인 농사보다 보조금만을 좇고 노리는 ‘기형적 다방농민’은 결국 정부의 기획 작품인 셈이다. 이쯤이 총체적으로, 내부 진영의 전열부터 단속하고 재정비할 필요가 절박한 임계점으로 간주된다. 그동안의 관성적이고 관행적인 투쟁 방법론이 아닌 전향적 방법의 대안을 연구하고 개발할 필요도 있다. 가령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도시민들과 협동하고, 나아가 농업을 국가기간산업의 위치로 올리고, 유기농업에 복무하는 순정한 농부들을 공익농민으로, 공무원급으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발상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한미 FTA 투쟁을 겪으면서 농민과 노동자가 실질적인 노·농연대를 조직하고 각계각층이 결합하는 형태로 변화할 수 있었던 건 고무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앞으로 좀 더 다양한 방면에서, 다양한 의제로 노동자,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사업이 조직되고 강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생산자와 소비자가 따로 없는 국민농업의 동일한 구성원으로서, 도시민, 비농업인, 일반 국민 등과 다각적이고 다채로운 연대사업도 가능할 것이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사회적기업 ‘언니네텃밭’에서 추진하는 꾸러미사업은 선도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지역농업화’도 유력한 농민운동의 전략적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동안 농민 활동가들은 농민운동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고 희망의 빛깔이 바래면서 운동의 전망에 생활을 의탁하기 쉽지 않았다. 막강하고 거대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에 맞서면서 중과부적으로 전투에는 졌으나 전쟁에 진 것은 아니라는 자존감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새로 시작하는 발판은, 도약대는 국가나 세계라는 공간보다 보다 작고, 보다 공동체적이고, 보다 유기적인 ‘지역’이라는 공간과 범위가 적당할 것이다. 일단 생산과 생활과 운동의 통일성, 동질성을 확보하고 서로 공유하기에 지역만큼 적합한 곳은 없다. 지역에서는, 농민운동 조직이 농민운동 뿐 아니라. 시민사회운동이나 지역공동체운동을 주도하고 견인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역순환 생명농업운동’은 근본적인 농민운동으로 돌아가려는 시도처럼 들린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현대로, 미래로 나서는 새로운 농민운동의 방법이다. 지역 차원과 단위의 농민운동은 반미, 반세계화의 구호보다 유기농, 지역공동체농업의 대안을 개발, 실천하는 선도적 동력이다. 사회운동의 주체로서 지역자치 운동을 앞장서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운동의 주체는 마땅히 지역농업에서 유리된 기업이나 단체가 아니라 지역공동체에 생활과 생존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소농, 가족농이라야 한다. 물론 지역농업의 조직화 노력은 자주적 생산조직으로서 영농조합법인, 농업회사법인 등 농업경영체, 지역농협, 생협,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의 형태로 다종다양하게 진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노동조합, 협동조합, 각종 시민사회 조직과 직접 교류하고 연대하면서 대규모 자본과 시장에 종속되지 않는 도농 직거래 운동, 농·노·도 상생 운동의 모델을 실천하는 것이다. 최근 ‘공익농민화’도 농민운동의 혁신적 화두로 흔히 회자되고 있다. 농업의 본질은 국가의 공익에 봉사하는 국가기간산업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농업에 복무하는 농민은 공적인 지위를 보장받아 마땅하다. ‘공익농민’으로서 공무원에 준하는 대접과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농정 전문가들은 농업과 농촌을 자연과 생명, 물, 공기 등과 같은 공공재로 기꺼이 인정한다. 농업과 농촌이 발휘하는 다원적 기능으로서 농업·농촌의 소중한 가치와 효용을 강조한다. 굳이 경제적으로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환산해본다면 연간 약 50조 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농민은 이같은 다원적 기능을 수행하는 주체이자 주인이다. 국가와 사회가 맡아야 할 공공적 역할을 농민이 홀로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런 공익적인 농민들이 그에 합당한 지위와 대우를 확보하는 건 요구가 아니고 당위다. 농업이라는 국가기간산업을 책임지는 농민들을 준공무원화하자는 제안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다.

▲ '국민과 함께 하는 농민 운동 네트워크' ⓒ정기석

농민운동의 염원이 함축된 식량주권 의제도 전 국민과 가치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식량주권은, 식량이라는 문제가 농민들의 문제뿐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문제, 인류의 보편적인 권리라는 문제의식에서 거듭 출발해야 한다. 생산자인 농민들은 스스로 생산 방식, 종자 등을 선택할 권리를 확보하고, 도시민 등 소비자들은 ‘내가 먹고 있는 것들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를 알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요구해야 한다. 따라서 식량주권이 목적으로 하는 농업 생산 우선, GMO 반대, 농업환경이나 천연자원, 물, 토지, 종자, 지식 등에 대한 사용권과 통제권, 식량에 대한 접근권, 국가의 정책 결정권 등은 농민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이 추구하는 목적과 다르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도 농민운동, 시민사회운동 분야가 식량주권 실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나아가 식량주권은 농민뿐 아니라 여성이나 노동자들의 권리이기도 하다. 사회연대를 더욱, 실천적으로 공고히 할 수 있는 최적의 공통의제로 삼을 수 있다. 현장 농업경영인이자 농업정책가인 허헌중은 “농민운동은, 농업·농촌·농민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풀뿌리 농민대중의 이해에 기초해, 농민대중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지속적인 노력의 과정을 통해, 집단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농민운동이야말로 “인간 생존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인 땅과 농업, 지역공동체를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풀뿌리 농민대중의 자치와 자립, 상호부조의 능력과 지혜를 회복해나가는 것이자, 농민대중의 풀뿌리 경제, 풀뿌리 정치, 풀뿌리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 강조한다. 농민운동은 바로 ‘지역’의 풀뿌리 경제, 정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대중운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을 새롭게 인식하고 지역에 뿌리 내려야 할 과제와 책무를 운동성 안에 숙명적으로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은 운동의 대중적 토대이자 생활의 근거지이며,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하는 생산의 원천으로, 도시와 농촌, 농민과 노동자(국민), 생산과 소비를 연계하는 기본고리이다. ‘지역’은 모든 것을 소통하고 연대하며 새로운 투쟁을 만들어가는 대중운동의 터전이다.” 전농 정책위원장 출신 농민운동가 박웅두가 규정하는 ‘지역’의 의미이자 가치다. 사회적이고 현대적인 농업정책가가 진단하는 ‘새로운 농민운동관’과, 정통 농민운동가가 바라보는 ‘전통적인 지역운동관’은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일맥상통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농민운동의 사회연대적인 현대화 전략의 해법을 그 접점쯤에서 구하면 적당할 듯하다. 그리고 누구보다 농민운동을 지지하고 농업회생을 지원하는 어느 진보정당의 사회연대적 강령 또는 국가비전은 이렇게 새기고 있다. “친환경 유기농업 및 지역순환농업 등 생태농업으로 전환하고,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실시, 농민기본소득 보장, 토종 종자 보호 육성 등을 통해 농업과 농촌을 회생시키며 식량주권을 확보한다. 농․축․수산 협동조합이 협동조합 본연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고, 귀농 및 도시농업 등을 지원 육성하고 도농연대를 실현한다.” 우리는 이미 농민운동이 가야할 길에 모두, 함께 서 있다. 서로,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어깨 걸고 함께 가는 일만 남았다.

연재 목록

1. [농민] '귀농촌'의 협동연대 대안 - 도시난민에서 '마을시민'으로
2. [농민] '농촌복지'의 사회적 서비스 해법 - 100세시대 '협동사회경제형'으로
3. [농민] '농민운동'의 연대 전략 - '사회연대적' 농민운동으로
4. [농민] '공익농업'의 국가기간산업화 -공익농민에게 '월급 기본소득'을
5. [농민] '여성농민'의 가치 - 여성농민에게 '절반의 영농권'을
6. [농업] '6차농산업화'의 정도 - 중소농 중심 '협동화 6차산업'으로
7. [농업] '기업화 농산업'의 대안 - '마을•지역 공동농업'으로
8. [농업] '먹거리 정의'의 중요성 - '농도상생형 사회복지'의 열쇠
9. [농업] '농산물 유통'의 혁신 대안 - 도시민이 책임지는 '농민의 생활'
10.[농업] '친환경농업'의 실천 방안 - '잘 먹고, 잘 사는' 지름길
11.[농촌] '농촌교육공동체'의 전망 - 마을을 살리는 '학교'
12.[농촌] '협동조합'의 사회적 경제 - '을(乙) 중심'으로
13.[농촌] '농촌마을만들기'의 출구전략 - 사회생태적 '마을살리기'로
14.[농촌] '농정협치(거버넌스)'의 가능성 - '한국형 농업회의소'의 법제화를
15.[농촌] '에너지자립마을'의 전환 - '지역순환농업' 기반으로

16.[농정] '식량주권'의 정책목표 - '양적 식량자급'과 '질적 먹거리 안전'
17.[농정] '농정 재정'의 개선 방향 - 중앙집중에서 '지방분권'으로
18.[농정] '도시농업'의 역할 -'국민농업'의 학교이자 전진기지
19.[농정] '지역공동체'의 발전전략 -'지방재정'의 균형부터
20.[농정] '농협'의 개혁 해법 - '경제협동조합'으로 환골탈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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