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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강정호, 기회는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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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강정호, 기회는 반드시 온다 [배지헌의 그린라이트] 의외의 피츠버그行이 주는 기회
지난 주말 내내, 국내 야구팬들의 관심은 넥센 강정호의 메이저리그 진출 포스팅 결과에 쏠렸다. 강정호에 '500만 2015달러'를 베팅한 팀이 어디인지를 두고 온갖 예측과 억측이 쏟아졌고,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트윗 하나에 수십 개의 기사와 수만 건의 게시글이 재생산되어 나왔다. 마침내 그 답이 나왔다.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소속팀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주인공이다.

피츠버그의 입찰 승리 소식은 의외의 결과다. 그간 국내 메이저리그 전문가 사이에서는 강정호의 행선지는 유격수 또는 내야에 ‘구멍’이 난 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에 주전 유격수 지미 롤린스가 떠난 필라델피아를 비롯해 2루수가 약점인 토론토, 올겨울 가장 뜨거운 팀인 샌디에이고까지 후보로 거론됐다. 미국야구에 밝은 한 관계자는 “LA 다저스 류현진이 팀 내에 강정호에 대해 열심히 홍보했다”며 “디 고든이 빠진 다저스도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예측한 바 있다. 하지만 모두 틀렸다. 피츠버그는 그간 나온 숱한 예상과 분석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이름이다.

피츠버그의 현재 팀 상황을 살펴보면 이 팀이 왜 강정호에 베팅했는지 더욱 의아하게 느껴진다. 피츠버그는 이미 유격수 자리에 조디 머서라는 좋은 선수를 보유했다. 머서는 2014년 리그 유격수 중 13번째로 많은 승리를 팀에 추가로 안겨준(WAR 2.0) 바 있으며, 유격수치고는 나쁘지 않은 타격(12홈런)에 평균 이상의 수비력을 갖춘 선수다. 내년 시즌에도 주전 유격수가 유력하다.

2루에는 1라운드 지명자 출신의 간판타자 닐 워커가 버티고 있고, 3루에는 2014년 타율 0.315에 장타율 0.490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낸 조시 해리슨이 있다. 1루도 각각 시즌 30홈런을 두 차례 기록한 거포 페드로 알바레즈와 코리 하트가 번갈아 기용될 예정이다. 내야 백업요원으로는 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슈퍼유틸리티 요원 션 로드리게스가 새로 가세했고, 수비력이 좋은 유격수 페드로 플로리몬도 대기하고 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내야에는 도무지 강정호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게다가 피츠버그는 전형적인 스몰 마켓 팀으로 그간 선수 연봉에 큰 돈을 쓰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2014년 주전 내야수 중 연봉 500만 달러 이상을 받은 선수는 1루수 알바레즈와 간판스타 닐 워커였는데, 이들은 피츠버그에서 데뷔해 다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급이다. 이에 피츠버그의 포스팅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는 물론 미국 현지에서까지 ‘다른 구단들을 견제하기 위해 포스팅에 참가한 것 아니냐’, ‘이전에 오클랜드가 이와쿠마 포스팅에서 승리한 뒤 실제로 계약할 의지는 보이지 않았던 사례가 연상된다’, ‘강정호가 실제로 피츠버그와 계약이 가능하겠느냐’는 부정적인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강정호의 미국행 가능성이 마냥 비관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현재 피츠버그 내야진은 겉보기에는 아주 탄탄해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확실한 부분도 적지 않다. 올스타 2루수 닐 워커는 최근 잦은 부상으로 최근 3년간 연평균 133경기 출장에 그쳤다. 3루수 조시 해리슨이 ‘폭발’한 것도 2014년이 처음이라, 2015년에도 같은 활약을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이는 내년이 풀타임 3년 차 시즌인 조디 머서도 마찬가지. 1루수 페드로 알바레즈의 성적은 해가 갈수록 하락세이며, 코리 하트도 최근 몇 년간 부상에 신음했다. 이 선수들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자리를 꿰찰 내야 요원도 풍족하지 않다. 2014 시즌이 끝난 뒤 백업 멤버 대부분이 팀을 떠났고, 작년까지 내야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커버하던 조시 해리슨이 주전 3루수가 되면서 백업 요원이 수적으로 크게 부족해진 상황이다. 공격력을 갖춘 우타자 내야수로서 강정호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강정호의 역할이 단순히 백업이나 보험에 그칠 거라고 미리 단정할 필요도 없다. 2016년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닐 워커는 그 이전에 트레이드 등을 통해 팀을 옮길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공백이 된 2루 자리를 꿰차거나, 또는 유격수 조디 머서가 2루로 옮기면서 비게 될 유격수 자리를 채우는 것도 가능하다. 아니면 앞에서 언급한 대로 ‘불확실한’ 주전 내야수들이 부상 또는 부진을 겪을 때 언제든 강정호에게 기회가 돌아올 수 있다.

이는 강정호 본인의 미국 무대 성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빅리그에서 처음부터 주전으로 기회를 잡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타자인 강정호가 투수 류현진처럼 처음부터 리그에 완벽 적응해서 활약하기는 쉽지 않다. 자칫 주위의 기대와 선수 본인의 부담감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백업 멤버로 서서히 리그 적응력을 키운 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는 건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다. 투수가 타석에 나서는 내셔널리그는 경기 후반 대타 기용도 잦고 수비수들의 자리 이동도 많은 편이다. 주전 타자라도 정기적인 휴식일이 주어진다. 강정호가 실력을 보여줄 기회는 충분하다.

피츠버그의 조촐한 예산 규모, 이 때문에 강정호 포스팅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우려도 현재 상황을 보면 기우에 가깝다. 피츠버그는 2012년까지 팀 연봉총액 6000만 달러를 넘지 않는 ‘짠돌이’ 구단이었지만 2013년에는 8000만 달러 이상으로 투자를 늘리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연봉총액이 약간 줄긴 했지만 여전히 7000만 달러 이상의 규모를 유지했다. 최근 성적 상승으로 선수단에 투자하는 씀씀이가 점차 커지는 중이다. 2015년을 앞둔 현재는 FA로 여러 선수가 빠져나가면서 연봉총액에 여유도 생겼다. 강정호에게 투자할 여력은 충분하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4년 2000만 달러 수준의 계약은 어렵겠지만, 계약기간 3~4년에 연간 300만 달러 안팎의 계약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피츠버그와 계약에 성공한다면 강정호에게 주어질 과제는 크게 세 가지다. 최우선 과제는 소속팀과 리그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다. 또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구위와 다양한 구종, 심판 성향, 시차, 휴식일 없는 스케쥴, 미국 야구장 그라운드에 대한 적응도 포함된다. 류현진이 앞서 보여준 대로 ‘외국인 선수’에겐 적응력이 곧 성공을 뜻한다. 이 점에서 피츠버그라는 팀은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선수단 전체가 가족적이고 화목한 분위기를 자랑하고, 사령탑인 클린트 허들도 선수 친화적인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광적인’ 응원 분위기는 아니지만 팬들이 팀과 선수들에 갖는 애정도 높은 편이다. 과거 박찬호도 피츠버그 시절 자신이 느낀 팀 분위기에 호의적인 평을 한 바 있다.

두 번째 과제는 강정호의 강점인 우타 ‘파워히터’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 일본 프로야구에서 미국에 진출한 타자들은 대부분 자기 강점을 지우고 이치로처럼 교타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결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강정호는 반대로 갈 필요가 있다. 타율을 잃고 삼진이 늘더라도, 자기 장점을 살려 힘 있는 타격을 보여줘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수비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우타 내야수는 어디서나 매력적인 존재다.

단 피츠버그 홈구장인 PNC 파크가 장거리 타자, 특히 우타자에게 불리한 구장이라는 점은 아쉽다. 미국의 통계전문가인 댄 짐보스키는 강정호가 .230/.299/.389(타율/출루율/장타율)의 타격 성적을 낼 것으로 예상했다. .389의 장타율은 2014년 메이저리그 전체 유격수 중 8위에 해당한다. 한편 메이저리그 전문가 이현우는 강정호의 성적으로 .247/.320/.425를 예상했는데, 이는 2014년 메이저리그 유격수 중 4~5위급의 공격 기록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강정호가 갖는 경쟁력이 ‘공격력’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세 번째로는 다양한 수비 포지션을 소화하는 과제가 남는다. 그간 강정호의 유격수 수비력을 두고 다양한 견해가 나왔지만, 막상 진출해서 뛴다면 수비력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내야수 중에도 수비력이 아주 탁월한 선수부터 평균 이하 수비력을 다른 장점(타격, 주루)으로 만회하는 선수까지 다양한 유형이 있다. 강정호가 자기 장점인 파워히팅만 제대로 발휘한다면 수비력이 큰 마이너스 요소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주 포지션인 유격수 외에 2루, 3루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느냐다. 피츠버그 팀 사정상 강정호는 유격수 외에도 2루와 3루로 자주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무난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강정호는 국내에서 주로 유격수로만 나왔지만,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3루수로도 문제없는 모습을 보였다. 넓은 수비범위보다는 빠른 손놀림과 송구가 장점인 강정호에게는, 어쩌면 유격수보다는 2루와 3루가 잘 맞는 자리일 수 있다. 실제 현지 스카우트 중에는 강정호를 두고 “2루, 3루가 적합하다”는 평을 내린 이가 많았다. 이처럼 다양한 포지션을 커버하는 능력은 미국 무대에서 강정호가 자기 가치를 높일 기회이기도 하다.

수비에서는 메이저리그 특유의 수비 시프트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도 과제다. 피츠버그는 미국에서도 특히 시프트를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팀이다. 시프트가 성공하려면 그라운드의 선수들과 팀 벤치 간에 원활하고 유기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또 시프트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도 타구를 아웃으로 처리할 수 있는 순발력과 허슬 플레이도 중요하다. 강정호의 소속팀 넥센은 국내에서 가장 시프트를 자주 활용하는 팀 중 하나였다.

국내 무대에서 강정호는 가공할 타격과 뛰어난 수비력을 자랑한, 최고의 유격수였다. 강정호는 영웅에서 ‘해적’으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을까. 해적단의 일원이 되어서도 변함없는 활약을 이어갈 수 있을까. 만족스러운 협상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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