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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30만 원 나오면 집 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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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30만 원 나오면 집 살래요!" [함께 사는 돈 탐방기] 기본 소득은 환대다
<프레시안>과 녹색당,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함께 사는 돈 탐방기'라는 공동 기획을 시작합니다.

지금은 '각자 생존'의 시대라고 합니다.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48.1%에 달하고, 체감 불평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장년층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점점 높아지고 있는 기본 소득에 대한 관심도 이런 현실의 반영입니다.

이 기획에서는 우리 사회의 소득 실태를 진단하고, 지역과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대안을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각자 생존이 아니라 함께 사는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주온이라고 합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바로 가기 : ) 단체에서 기본 소득 운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활동한 지 3년이 되어가지만,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기본 소득 얘기를 꺼내본 것은 이번 전국 투어가 처음이었습니다. 기본 소득을 개인과 공동체에 변화를 일으킬 매개체로서 구체적으로 상상하려면 지역에서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번 전국 투어가 자기 삶으로부터 출발하는 기본 소득 논의의 물꼬를 트길 바라며 길을 떠났습니다.

첫 행선지였던 제주에 이어, 지난 8일 전남 보성군의 벌교에서 여성 농민으로, 청년 농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농민에게 기본 소득을


벌교에 도착해, 전남녹색당 위원장을 맡고 계신 최혁봉 님의 댁으로 향했습니다. 전남의 경우 개인이나 단체가 행사를 진행할 만한 공적 공간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이처럼 개인 집에서 모이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이날 행사를 기획하고, 장소를 마련해주신 전남녹색당에서는 함께 나눠먹을 음식도 준비해주셨습니다. 직접 가꾼 싱싱한 쌈채소를 넣은 강된장 비빔밥과 말린 고구마묵의 식감이 굉장한 임자수탕이 주 메뉴였는데요. 보기만 해도 건강한 음식에 투어 3일차의 피로가 곧장 달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맛도 아주 좋았어요.


해가 질 즈음이 되자 장흥, 해남, 순천, 고흥, 보성 곳곳에서 오신 분들이 둥그런 서까래 아래 가득 둘러앉았습니다. 모두에게 여행단의 자기 소개를 간단히 하고,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님의 발제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기본 소득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에 이어 농민과 기본 소득에 초점을 맞춰 현행 농업 정책을 비판하고 이에 비해 기본 소득은 어떤 이점이 있는지 얘기했습니다.

1990년 초 이래 농산물 시장 개방과 자유 무역 확대로 농가 소득이 점점 하락하고,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농촌 고령화 문제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농업과 농촌이 갖는 공익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들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특히 농업인의 소득 보장과 농업의 다원적 기능 증진을 목적으로 도입된 농업 직불금의 경우, 농지 면적을 기준으로 지급되다 보니 대규모 농가에 혜택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농가 소득 상위 10퍼센트에게 전체 쌀 직불금의 절반이 돌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봤자 전체 농가 소득에서 직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퍼센트로 매우 낮지만요.


직불금이 농민들의 실질적인 소득 향상에 도움을 주지 못할 뿐더러, 높은 행정 비용을 들이면서도 농사를 짓지 않는 부재 지주들에게 직불금이 전달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을 지닌 농민기본 소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본소득농민네트워크' 같은 당사자 그룹이 결성되어 더 적극적으로 기본 소득을 주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붙여, 올초 최혁봉 전남녹색당위원장님이 기고하신 칼럼 '농민에게 기본소득을'(관련 기사 ’)에서, 농업 정책과 기본 소득에 관해 더 생생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김주온


"내 통장에 매달 30만 원씩 평생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이어서 장흥에서 오신 '율' 님의 '여성 농민과 기본 소득' 발제가 있었습니다. 주위의 농민, 직장인, 백수, 활동가, 어린이, 아이 엄마 등 여성들을 대상으로 '내 통장에 매달 30만 원씩 평생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라는 간단한 앙케트 조사 결과를 정리한 글이었습니다. 율 님이 정리하신 주요 답변 여섯 가지를 아래에 덧붙여봅니다.

1. 배운다, 돌아다닌다, 혹은 배우러 돌아다닌다.

"전 매달 30만 원이 들어온다면 10만 원씩 책을 사고 20만 원은 뭔가 좋아하는 걸 배우는 데 사용하고 싶네요. 음, 아직도 빵 배우는 게 좋아서 이번에도 김포까지 빵 수업을 들으러 가기로 했어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그림 그리는 30대 여성, 아마 결혼은 안 함)

"빵, 염색 등을 배우러 다닌다." (차가 없어서 불편한 40대 귀농 여성)

2. 문화 활동에도 돈이 들어

"내 삶을 풍성하게 해줄 취미, 문화, 인문학, 교양 등에 반 정도를 쓰고, 나보다 가난한 부모님께 일부 드리고, 나머지는 괜찮은 단체에 후원하겠음." (문경 40대 귀농 여성)

"10만 원은 정치 활동 후원, 10만 원은 아기들 후원, 10만 원은 도서, 영화 등등 문 화활동비로요." (해남 40대 약사)

"잡지 구독 정도?" (화순 30대 귀농 여성)

"시골 산다고 문화적 욕구가 없어지진 않던데요. 조건이 불리할 뿐이지요." (율)

3. 재밌는 상상, 맛있는 상상


"평생이요?! 저는 가게 낼래요. 월세 걱정없이 쉬엄쉬엄 놀면서 하는 가게요." (30대 귀촌 아기엄마)

"30만 원 어치 식재료를 사서 계절 음식 요리를 만들어 지인분들과 함께 맛있는 식탁을 이어가고 싶어요. 일주일에 한번 빵 만들어 동네 이웃분들께 판매하고는 있는데 재료비만 해도 한 달 30만 원 정도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재료비 따로 벌어 빵 만들고 식탁 차려 먹고 놀며 지내고 있어요." (20대 귀농 가정의 딸)

4. 생계의 비용, 그 무게

"그 돈을 모아서 우리 가족의 새집을 사거나 고치는 비용에 보탠다. 그 후 들어오는 돈은 생활비에 보탠다." (초등학교 2학년 꼬마)

"기본 생활비(전화, 전기, 연금, 의료보험) 등 걱정없이 소농으로 행복하게 살 것 같아. 소박한 삶이 보장되는 기분..." (군포의 60대 언니)

5. 안 쓰고 모은다.

"안 쓰고 계속 넣어둔다. (돈 쓸 데가 생길 때까지 든든함을 즐기기)" (서울 사는 40대 홀몸 백수)

"모은다. 애들 크니까 앞으로 쓸 데가 생길 것이다. 집 대출금 이자도 갚고, 일을 쉬어가며 할 수 있고." (40대 귀농자)

"평생 대출금 상환한다." (스스로 ‘참담한 대답’이라고 평한 30대 주부)

"화폐로 꼭 사야만 하는 것 구입하고 큰 돈이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서 모아 놓겠어요. 그 돈은 내가 필요할 수도 있고, 친구가 필요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먹고 사는 일과 정신의 풍요로움을 느끼고 살 수 있을만한 정도 외엔 사실 돈의 필요성은 그다지 많이 느끼지 못해요. 화폐의 저축보다는 관계의 저축이 우리에겐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 돕고 나누고 살 수 있는." (귀촌을 준비하는 30대 개인 사업자)

6. 선물하겠다.

"후원한다, 아름다운 일에 쓰고 싶다, 가난한 부모님께 일부 드린다."

율 님은 기본 소득이 우리들의 관계를 이어주고, 너그러움을 일깨우며, 증여의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 후 “누가 여성 농민을 위해 울어줄까?”라는 질문을 띄우며, 원래의 주제였던 ‘여성 농민과 기본 소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갔습니다.

여성농민과 기본소득

"시골 여자들은 아무래도 불리한 게 많지요. 사람이 한번 태어나 자기 안의 재능과 꿈을 펼치는 걸 행복의 조건이라고 친다면 시골 여성들에겐 삶과 꿈을 펼칠 길이 좁은 편입니다. (…) 시골에서 여성들이 모일래야 교통 약자들이니 차편도 없고, 모일 공적 공간이 현저히 부족하고, 용돈도 모자라고, 시간도, 스트레스 풀 곳도 별로 없으니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어요. 사람 만나기도 힘들고, 자기 안의 것을 펼치기도 힘들다면 어떻게 될까요? 고립감과 갑갑함을 느끼겠죠. 두손 두발 다 들고 결국 도시로 떠나거나, 우울증에 잡아먹히기 쉬운 조건이에요. 그래서 여성 농민은 지금 멸종 직전이거든요.”

“돈이면 모든 걸 살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돈으로 한방에 팔자를 고칠 수 있다고 믿진 않아요. 하루아침에 시골마을 구석구석까지 철길이 깔리고 온갖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는 살판 놀이판이 펼쳐질 거라고도 생각지 않지요. 하지만 농촌 여성으로서 기본 소득에 대해 최대한 공정하게 이렇게 답해 볼게요. 기본 소득은, 우리들 여성 농민 한사람, 한사람의 삶을 북돋울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일 거라고.”

여성 농민의 경우, ‘여성 농민’이라는 이름을 갖기까지도 운동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1992년에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생산 주체자로서 ‘여성 농민’이라는 호칭을 제안하기 전까지 여성 농민은 ‘농가 주부’, ‘농가 부녀자’로만 불려왔습니다. 여성 농민 한사람, 한사람이 개인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남편 소유의 농장에 의존하는 존재로만 여겨진 것이지요.

그러나 그 후로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여성 농민’은 농촌 사회에 여전히 낯선 존재인 것 같습니다. 이런 문화 탓에 홀로 귀농, 귀촌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한발 주춤하게 되곤 하지요. 여성 농민 개인이 각자의 수입을 갖게 된다면 개인의 삶에서부터 공동체 사회에 이르기까지 어떤 변화들이 생길지, 율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해졌습니다.


ⓒ김주온


청년 농민의 현실

해남 미세 마을에서 온 김단 님은 기본 소득 도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청년 농민의 현실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기본 소득의 도입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농촌에 가는 청년들(귀촌하는 청년들)에게 기본 소득을 주면 농촌에 문화적 인프라는 많이 생겨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청년 ‘농민'의 경우에는 기본 소득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김단 님에 따르면, 이미 농업을 하고 있는 청년들은 귀농 2세대 농민이거나 몹시 어렵게 정착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청년들이 새로 농민이 되기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게다가 국가 정책은 농민을 농업 경영인이나 중소기업인으로 만들려는 방향이라 청년들이 농민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내년에는 억 단위의 돈을 빌려서 트랙터를 장만하겠어' 정도의 포부를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생각해본 결론은, 농업이 금융업에 종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임대 사업 같아요. 농사를 짓는 행위는 파생 상품 같고, 이를 통해 돈을 어떻게 빌려줄 것인지가 중요해진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대규모 기업농이 아니면 농사를 지어서 부채를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결국 싼 이자를 미끼로 모든 것을 담보 잡히는 상황에 치닫고 맙니다. 여기에는 토지와 집으로 대표되는 농촌의 인프라 부족이라는 구조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농업에 있어서 미래세대를 준비하는 데는 기본 소득보다는 토지 공유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농촌에서 농민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농촌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인프라와 도시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인프라가 다르지요. 예전에 지역에 농민이 새로 왔을 때 가장 먼저 준 게 토지와 집, 쌀 한 가마니였는데, 기본 소득은 쌀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지. 우리 사회는 기본 인프라의 마련 비용이 너무 큰 것 같아요. 과거에 공공재였던 요소들이 너무 많이 사라지고, 사유화되었기 때문에."

인프라와 관련해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농민 기본 소득에 대한 의견을 내신 분도 있었습니다.

"농사 짓는 사람 중에 은행에 빚이 없는 사람 있으면 손 좀 들어보실래요? (귀농한 지 얼마 안 된 농민 한 분만이 손을 들었음) 농촌에 집이나 토지 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귀농을 적극적으로 권할 수도 없고, 정부 보조도 부족하고 결국 은행에 빚을 지게 되고. 악순환이 이루어지면 다 정리하고 올라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에게 기본 소득이 주어진다면, 서울에서도 농업을 선택하고 내려오는 이들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기본 소득

풍요로운 농촌 이미지는 옛말입니다. 사람은 텅텅 비어가는 한편, 급속하게 금융 산업화된 농업의 현실 얘기는 막막함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단지 현금 소득이 안정된다고 농민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기본 소득의 가능성을 지지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토지나 금융도 그렇고 현재는 99대 1이라 할 정도로 부의 편중이 심한 상태에서 돌파구를 찾는 게 너무 막연한데요. 이런 상황 속에서 고용된 사람들이 억압적인 노동을 스스로 조금이나마 탈피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이 노동시장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 제초제를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기본 소득은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를 만나고 같이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이게 모든 걸 해결해주는 건 아니기 때문에 더불어 삶의 방식을 어떻게 가져갈지 심각하게 고민해야겠죠."

비 내리는 산속의 밤이 깊어가며 자리한 사람들 모두 빠짐없이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모두가 기다리던 수제 에일 맥주와 전남 곳곳에서 온 막걸리로 파티를 시작했습니다. 술도, 안주도 최고였어요. 진정한 환대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회로부터 기본 소득이라는 환대를 받는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요.

<함께 사는 돈 탐방기>

(☞관련기사 : [함께 사는 돈 탐방기]연 200만 원 받는 알래스카 주민, 제주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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